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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서로 사랑하라

by 영동장로교회 2020. 11. 29.

2020. 11. 29.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drive.google.com/file/d/1DNaZEMzToTPzNSe03b6S5wRdMJmKlB7R/view?usp=sharing

 

“갈등”

- 서로 사랑하라

 

믿음의 백성들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서로 간에 많은 갈등을 겪는 것은 왜일까?

 

가장 큰 불행은 믿음의 백성들 간의 갈등이라 할 것이다. 천국의 모형이 되어야할 그 교회 안에서 서로 간에 반목함으로써 일어나는 그 갈등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이와 같은 일들이 현상으로 드러나는 그 이면에는 우리가 미처 감지하지 못하는 사단의 치밀한 간계가 작용하고 있다. 사단은 이 갈등을 유발시키기 위해 ‘오해’라는 수단을 사용한다. 상대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가지게 함으로써 그 오해를 발생시키고 이 오해를 통해 갈등을 고조시키는 것이 사단이 주로 사용하는 수법이다.

 

이스라엘 중에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은 부활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졌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없다하고 바리새인들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그들 사이에는 상당한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사두개인들은 말씀에 대한 오해를 하였다고 주님은 분명하게 선언하셨다.

(막 12:18)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막 12:19)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거든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막 12:20)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아내를 취하였다가 후사가 없이 죽고

(막 12:21) 둘째도 그 여자를 취하였다가 후사가 없이 죽고 셋째도 그렇게 하여

(막 12:22) 일곱이 다 후사가 없었고 최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막 12:23)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을 당하여 저희가 살아날 때에 그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막 12:2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막 12:25)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막 12:26)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을 의논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막 12: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막 12: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저희의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대답 잘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막 12: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막 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막 12: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막 12:32) 서기관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막 12: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막 12:34) 예수께서 그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 사단이 찾아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하도록, 즉 말씀에 대한 오해를 유도했다. 하나님은 분명히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선언하심으로 자신의 뜻을 분명히 밝히셨다. 그러나 사단은 그들로 하여금 그 말씀에 대해 오해하도록 유도했다. 하와는 하나님의 그 말씀을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고 하셨다고 그 말씀을 오해했다. 그 말씀을 그릇되게 해석했다는 것이다.

(창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3: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과연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릇되게 해석함으로써 오해에 이르렀다. 그녀가 오해를 하게 된 것은 사단이 그녀의 마음을 읽고 다가와 그릇된 말씀으로 유혹을 함으로써 결과한 일이지만 그 시초는 그녀의 마음에서 생기되었다. 바로 그녀 자신의 욕심에서 그 일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과 같이 되기를 욕심하는 그 마음을 사단이 읽은 것이다. 사단은 그녀에게 “하나님과 같이 되어”라고 밝힘으로써 하와가 그런 욕심을 잉태하고 있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창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창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나님은 그 사람을 가장 복된 자가 되게 하시려고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명하신 사명을 감당함으로써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 자리에 서 있을 때에 가장 복된 자가 된다는 사실을 그 순간의 하와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때 사단은 그 찬스를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교모하게 그 말씀을 변개시키도록 유도하고 그 변개된 말을 참된 것으로 믿게 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너뜨리게 만든다. 이것이 사단의 하는 일이다.

 

그런고로 믿음의 백성들은 항상 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게 마련이고, 믿음의 백성에게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직 주님이 심판주로 오시기 전인고로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사단은 주님이 다시 오셔서 불과 유황 못에 던져버려질 때까지는 할 수 있는데 까지 믿는 자들을 미혹할 것이다.

(계 20:7) 천 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계 20: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계 20:9)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계 20: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사단은 기회가 생기면 그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고 공격한다. 그래서 한 사람의 성도라도 주님으로부터 분리시키려고 한다. 이러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그 시험을 당하는 자가 주님에게 속한 주의 백성이라는 증거이다. 사단은 주님께 속하지 않은 자들은 결코 시험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험을 당하는 자는 시험이 올 때 그것을 즉시 깨달아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믿음 안에서 깨어 있어야만 한다.

 

믿음 안에서 깨어있을 수 있는 것은 말씀에 대한 바른 지식을 하고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이 지식은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를 전제로 한다. 하와는 말씀을 아는 지식에서 완전하지 못했다. 하나님은 분명히 “먹으면 죽으리라”고 하셨으나 그녀는 “죽을까 하노라”고 했고, “먹지 말라”고 하신 말씀도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잘못 지식하고 있었다. 이 말씀에 대한 잘못된 지식은 결국 하나님의 그 의도에 대해 잘못된 이해로 나아갔다. 그녀는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오해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대신에 단절되는 쪽으로 나아가게 했다. 결국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인간 편에서 온 이 갈등이 고착화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막으셨다. 하나님 편에서 화해의 길을 여셨다. 그 일은 당신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 위에 제물로 내어주심으로써 하셨다.

(창 3: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창 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제 우리는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파수꾼이 파수하듯 그렇게 깨어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 사단의 그 공격을 감지할 수 있게 된다.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보답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말씀을 바르게 지식하고 그 말씀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그 일에 힘을 쓸 것이다.

(시 127:1) [솔로몬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갈등을 일으키게 하는 일들이나 시험이 오면 그 즉시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또한 깨달아야 한다.

 

사단이 공격하는 그 일도 하나님의 영역 안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그 일을 알지 못하는데 그 일이 일어나는 법은 없다. 욥의 경우처럼 사단은 하나님께 그 일의 실행을 청원하고 하나님이 그 일을 허락하실 때 그런 일이 일어난다. 그 일을 꾸민 것은 사단이고 사단은 그 잘못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 물으심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죄가 임한 것은 우리 내면에 자리 잡고 있었던 그 욕심에서 기인하였으니 그 죄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욥 2:3)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

(욥 2:4)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

(욥 2:5)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욥 2:6)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욥 2:7) 사단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한지라

 

하나님이 사단에게 시험할 수 있도록 그렇게 허락하심은 그 일을 통해 그 믿음의 백성으로 하여금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비상한 섭리이시다. 사단은 피시험자를 자신과 함께 가장 불행한 자의 자리에 서게 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 사단의 흉계조차도 피시험자인 믿음의 백성으로 하여금 은혜의 자리에 서게 하심으로 가장 복된 자의 자리에 세우신다.

(욥 42:1)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 42:2)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욥 42: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욥 42: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욥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 42: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욥 42:12)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욥 42:13)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

(욥 42:14)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며

(욥 42:15) 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 아비가 그들에게 그 오라비처럼 산업을 주었더라

 

이 같은 은혜를 베푸심이란 믿음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하여 드디어는 참된 사랑의 단계로 나아가게 하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위대한 사랑을 드러내심이다. 그 일이 발생한 것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간 우리 잘못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저지른 그 잘못조차도 선하게 사용하셔서 당신의 의를 이루시고 우리를 복된 자의 자리에 나아갈 길을 여셨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그 뜻에 순종할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일이다.

 

서로 사랑하라는 그 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화해와 협력을 이루는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주님의 그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아닐까?

(막 12: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