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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8 영동장로교회 최규만 목사
“기드온의 삼백용사“
하나님은 그 속성상 무한히 영광스러우시기 때문에 자신의 그 영광을 드러내실 수밖에 없으시다. 그 영광을 드러내심에는 소극적인 면으로 천지 창조를 통해 이루셨고 적극적인 면으로서는 우리를 창조하셔서 그 일을 드러내려 하셨다.
따라서 우리 인생의 그 창조목적이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시는 데에 있게 하셨다. 이는 우리 삶의 진정한 목적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 일을 천지창조와 같은 일을 통해 직접 이루시기도 하지만 우리를 통해 그 일이 성취되게 하심을 더 기뻐하신다. 그래서 우리를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 일에 대한 귀한 일꾼으로 세우시는 것이다. 성경의 많은 믿음의 역사들은 그래서 이루어진 일들이다. 그 사역들을 통해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을 돌려드렸던 것이다.
기드온의 삼백용사의 사건은 가장 전형적인 예가 된다.
기드온은 인간적으로는 참으로 약하고 작은 자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한 기드온은 그 백성 이스라엘을 압제하고 있는 미디안을 한 사람처럼 칠 수 있는 강한 자가 될 수 있었다.
(삿 6:14)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삿 6:15)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삿 6: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미디안 연합군의 숫자가 메뚜기의 중다함과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알만큼 많았다고 하였으니 이스라엘에게서 미디안의 연합군을 상대하는 그 일은 인간적인 입장에서는 크고 두려운 일이었다.
(삿 7:11) 그들의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능히 내려가서 그 진을 치리라 기드온이 이에 그 부하 부라를 데리고 군대가 있는 진 가에 내려간즉
(삿 7:12)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
그러나 싸움에 대해 두려워 떠는 자는 결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없다.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음이다. 그것을 본인들이 직접 감당해야하는 일이요 자신들이 하나님과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들이 처리해야할 일이라는 표현이다.
그러나 그 전쟁이라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일이요, 특히 이 미디안의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상대하려고 침략해온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려고 하신 일이었다. 따라서 그 일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일이었다. 믿음의 사람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다. 전쟁은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삼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삼상 17: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
(삼상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이 전쟁을 수행할 자들은 그래서 그 전쟁을 두려워 할 일이 아니었다. 과연 300용사는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미 기드온에게는 하나님의 신, 즉 성령이 임하여 있었다.
(삿 6:34)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 족속이 다 모여서 그를 좇고
하나님께서는 이 삼백용사를 선발하는 방법을 기드온에게 가르쳐주셨다.
(삿 7:5)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 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무릇 개의 핥는 것 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 하시더니
(삿 7:6)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삿 7:7)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물가에 다다른 자들은 두 가지 유형으로 갈라졌다. 서서 그 손바닥의 물을 핥는 자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였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셨다는 것은 참으로 편한 자세로 물을 마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긴박한 전쟁을 앞둔 자로서의 모습이 아니다. 적어도 지금 전쟁을 준비하는 자로서의 마음자세가 갖추어져 있다고 보기 어려운 자들의 모습이다. 이런 자들이 어떻게 그 민첩한 전쟁을 행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와 반대로 물을 그 손에 떠서 개의 핥는 것 같이 혀로 마신 자들은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능히 그 상황에 대처할 준비 자세를 갖춘 자들임을 의미한다. 이들은 이미 그 정신 자세가 능히 그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 전쟁은 여호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지만 그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군대이다. 이스라엘 군대를 그냥 구경꾼으로만 두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그 이스라엘 군대가 없더라도 하나님이 전쟁을 이기시지 못하실 것은 아니지만 굳이 그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 전쟁을 수행할 군대로 삼으시는 것은 그들에게 그 전쟁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시려함이시다.
기드온의 그 삼백 용사들은 그렇게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그 자리에 설 수 있도록 그렇게 특별히 선택된 자들이었다. 그렇게 선택된 자리에 서게 된 기드온의 그 삼백용사들이 부럽게 생각되는가? 그 자리가 부럽지 않다면 하나님과의 관계 정립이 아직 되어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최종적으로 선택된 삼백 용사들이 가진 특징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그들이 임할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는 것이다. 적들에 비해 그 숫자가 너무 적었으나 그들은 결코 떨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온전히 무장되어 담대해질 수 있었다.
(삿 7:3)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고하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일만 명이었더라
둘째로 그들은 그 전쟁에 임할 정신 무장이 되어 있었고 한 마음으로 뭉쳐져 있었다.
(삿 7:6)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삿 7:7)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이는 믿음으로 하나가 될 때 나타나는 위대한 능력이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성인의 가르침 중에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는 것이 있다. 이 표현은 하나님과 그 믿음에 대한 어렴풋한 깨달음일지도 모른다. 그 삼백용사들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그 믿음 하나로 뭉친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지혜를 허락하셨다.
(삿 7:15)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고 이스라엘 진중에 돌아와서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고
(삿 7:16)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고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삿 7:17)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나의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 가에 이르러서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삿 7:18) 나와 나를 좇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그 진 사면에서 또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기드온을 따라 하나님의 허락하신 그 지혜로 그 전쟁을 수행하고 결국 그들은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그 땅에 드러내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사모하는 자들을 통해 그 땅에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오늘 나는 이 같은 은혜가 임하기를 원하는 그런 믿음의 소유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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