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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대학원

예정론

by 영동장로교회 2019. 7. 20.

어거스틴과 칼빈으로 이어진 정통보수신학의 사상을 이어받고 한국의 장로교 신학의 거장이신 박형룡박사님의 교의 신학을 모범으로 하여 새로 작성한 이 교리서는 오직 바른 신앙 사상으로 무장하여 이단들의 공격으로부터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도 여러분의 신앙을 보전하는데 도움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 7. 20.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예 정 론

 

1 절 예 정

 

예정은 하나님의 작정의 한 영역으로 본다. 하나님의 그 하실 바에 대한 모든 것인 작정을 전체 집합으로 보면 예정은 그 작정의 부분집합이다. 이 부분 집합은 특별히 이성적인 것들의 구원에 관한 작정이라 할 것이다.

 

 

1)신학과 성경에서의 예정의 교리

 

(1) 신학상 예정의 교리

예정의 교리는 성경이 경멸당하는 지금의 시대에서 더욱 많은 수난을 당하는 부분이기도하다. 또한 이 교리는 예로부터 많은 비난과 반대를 받아왔다. 특히 칼빈주의의 절대예정은 더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이 교리는 분명 복음주의 교회의 신경에 고백되어 있으며 교회의 신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 성경상 예정의 교리

칼빈의 절대적 예정이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입당을 고수해온 것은 오직 성경에 충실하고자 하는 열망에서였다. 성경이 예정을 가르치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일이다.

 

칼빈주의의 예정론을 반대하는 알미니안주의자들, 이성론자들 그리고 무신앙자들이 말하기를 성경은 칼빈주의의 의미로 해석할 때 비로소 공정히 해석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는 것은 칼빈의 예정론이 오히려 타당하다는 것의 인정이 될 것이다.

 

독일 이성론자들의 교의신학에 남긴 결과들에 관한 최고 권위자 웩솨이덜(Wegscheider)은 그의 저서에 이렇게 적었다. “문제의 성구들은 칼빈주의 교리를 가르친다. 그러나 바울이 그 시대에 성행한 거칠고 그릇된 상념들에게, 특별히 유대인의 특수주의의 좁은 정신에게 그릇 인도된 것이다.“ (“Institutiones Theologial Dogmaticae”, Pt. Ill , ch. Ill , § 145)

 

끼본(Gibbon)도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아마 오히려 더 독립적인 변론자는 알미니안주의 로마서 주석을 통독할 때에 웃을 차례가 될 것 이다.”(“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ere”, ch. XXXIII, note 31)

 

2) 예정의 주체와 대상

(1) 예정의 주체

예정은 전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일치한 행위였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예정의 두 부분인 선택과 유기를 하나님의 삼위에 별 없이 귀속시키는 것은 다음과 같다.

(9:13)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9: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9: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11:7)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벧전 2:8)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 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러나 원의 경륜에 있어서 구속은 성자에게, 성화는 성령에게 특별히 귀속시킴과 같이 예정의 주권적 행위는 성부에게 특별히 귀속시키는 것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다.

(17: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 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17: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17:9)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 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 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 고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벧전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 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2) 예정의 대상

작정은 하나님의 하실 바 그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하지만 예정은 이성적 피조물에 한한다. 그리고 그 대상이 되는 피조물 중에서도 타락한 인류를 특별히 그 대상으로 하신다. 예정의 대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사람이다.

이 때 사람은 타락한 존재로서 선하거나 악하거나를 막론하고 모두 그 대상이 된다. 택함을 입은 자나 유기를 당하기로 정해진 자나 모두 예정의 대상이다.

 (9: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9: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둘째는 천사이다.

성경은 거룩한 천사들을 말함과 동시에 최초의 지위를 지키지 아니한 악한 천사들을 말하고 있다.

(8: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9: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벧후 2: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1: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그리고 성경은 택한 천사를 언급하고 있어 논리상 택함을 입지 못한 천사 또한 있음을 함의한다.

(딤전 5:21)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편벽되이 하지 말며

 

천사들의 경우에는 하나님이 저들을 창조하실 때에 이미 선택될 자와 유기 될 자를 구별하시고 선택된 천사들에게는 특별 견인의 은혜를 베푸시고 그 외의 천사들에게는 그것을 주시기 않으시기로 작정하셨다. 타락한 인류에게는 하나님이 특별히 일정 수를 선택하여 구원을 허락하시는 반면 타락한 천사들의 경우에는 그와 같은 은혜가 주어지지 않는다. 선택함을 입은 천사는 그들이 거룩한 상태를 유지하였기에 선택의 복된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이 은혜로 그들을 택하셨기에 그런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의 예정과 천사의 예정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사람은 타락한 후에 선택되지만 천사는 타락 전에 선택된다. 그래서 타락한 천사는 구속을 위한 중보가 있을 이유가 없다.

 

천사들의 선택은 중보로서의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이 예정된 것이 아니라, 오직 원수(元首)로서의 그리스도 안에서 봉사적 관계를 가지도록 선택된 것이다.

 

스트롱은 인류의 경우에서와 같이 천사들도 거룩하게 창조되고 시련을 받으나 더러는 그들의 완전상태를 보존하고(특별견인의 은혜를 받은 때문에) 더러는 그들의 무죄상태에서 떨어진 결과로 선한 천사들은 선으로 굳어지고 악한 천사들은 악으로 굳어지도록 예정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A.H.Strong, “Systematic Theology”, Vol. Il ,P. 450 )

 

셋째는 중보로서의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었다. 그리스도는 인간처럼 구원을 위한 예정의 대상은 아니시지만 다음 몇 군데의 성경말씀의 지원으로 예정을 받으셨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창세전에 성부하나님의 총애의 대상으로 택하심을 받았다.

(9:35)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고

(42: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벧전 1: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중보자로서 그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산돌이셨다.

(벧전 2: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중보자로서 그는 성도들이 본받을 하나님의 형상이셨다.

(고후 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

(1:13)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느뇨니

 

그리스도는 성도들이 본받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미리 정하심을 받았다.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부하나님이 그에게 천국과 모든 영광을 맡기심으로 그것을 성도들에게 주실 수 있게 되었다.

(22: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그리스도께서는 예정의 대상이시기도 하지만 예정의 주체이시기도 하다. 그는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으로 더불어 선택에 참여하신다. 이것을 증거하는 성경구절은 다음과 같다.

(13:18)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성부하나님은 성자하나님을 통해 일하시고 성자하나님이신 그리스도는 항상 성부하나님과 행동하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은 성부하나님이 성자하나님을 통해서 사역하심을 말한다. 그러므로 성부하나님의 이 선택은 곧 성자하나님의 선택이기도하다. 따라서 성자하나님은 선택의 주체가 되신다.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2 절 선 택

 

1) 선택 교리의 개념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에 하나님의 작정에 의하여 또는 그의 영광을 위하여 어떤 사람들과 천사들은 영생을 얻게 예정되고 어떤 자들은 영원한 멸망을 받게 예정되었나니라고 기록되어있다.(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 제3)

 

선택유기이중예정을 구성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이성적 피조물에 향한 작정이시다. 이성적 피조물에는 사람과 천사가 있는데, 그 차이점은 사람은 처음부터 전수로 타락한 존재로 드러나 그중에서 일부를 선택하시는 것이고, 천사는 그 창조 이후에 일부가 타락된 것으로 그 타락한 천사들에게는 타락한 인류에 대한 일부의 구원이 예정된 것과는 다르게 전혀 구원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타락한 천사들에 대한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그 하실 바에 대한 결의를 작정이라 하는데, 특별히 이성적 존재에 대한 구원의 작정에 한하여 예정이라한다. 인류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한 하나님의 작정인 이 예정에 선택과 유기가 존재하는 것이다. 선택은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계획이요, 유기는 죄인들 향한 영벌의 준비이다.

 

선택되는 자는 결코 그의 행위에 의로움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베푸시는 은혜에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9: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러나 유기되는 자는 그 유기됨의 이유가 그 자신에게 있다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이 선택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음을 구별하여야 한다.

 

그 첫 째는 민족적 선택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이 선택의 대표적인 예가 된다. 그들을 선택하셔서 특권과 특별봉사를 맡기신 것은 그들이 어떤 장점이나 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열의에 의하셨다는 것이다.

(4:37)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사랑하신고로 그 후손 너를 택하시고 큰 권능으로 친히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며

 

(7: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7: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10:15) 여호와께서 오직 네 열조를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 후손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147:19) 저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147:20) 아무 나라에게도 이같이 행치 아니하셨나니 저희는 그 규례를 알지 못하였도다 할렐루야

 

(3: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를 쳐서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온 족속을 쳐서 이르시기를

(3:2)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

 

사도바울의 선교사역에서 성령이 아시아에서 전도하지 못하게 하시고 마게도냐 사람의 부르는 환상을 보고 유럽으로 건너갔으니 이는 하나님이 어떤 지역에는 복음을 받을 특권을 주시고 어떤 지역에는 주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6: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16: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16: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 갔는데

(16: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6: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우리에게 복음이 전해진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심에 대한 확실한 증거이다.

 

둘째는 교회적 개인론’(Theory of Ecclesiastical Individualism)이라고 하는 선택이다. 이는 하나님이 어떤 한 사람의 외면적 교회와 은혜의 방편에 대한 관계를 미리 정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출생에 의해 하나님의 섭리로 어떤 이는 영적으로 매우 유리한 환경에 놓이게 되고 어떤 이는 매우 열악한 영적 환경에 놓이게 된다. 즉 어떤 이는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복음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는 환경에서 자라게 되고 어떤 이는 전혀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게 된다. 이는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의한 결과이지 그 아이의 공로에 의하거나 과오에 의한 결과는 아니다.

(32:8)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셋째는 직무적 선택이다. 이 선택은 어떤 사람이 지닌 직무와 재능은 자신의 의욕 여부에 관계없이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부여하셨다는 것을 말한다. 성경은 어떤 이들을 직무적으로 선택하여 그들로 하여금 귀중한 직무와 특별봉사를 하게 한 것을 기록하고 있다.

모세의 선택과,

(3: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제사장의 선택과,

(18:5)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택하여 내시고 그와 그의 자손으로 영영히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서 섬기게 하셨음이니라

군왕의 선택과,

(삼상 10:24)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의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

(78:70)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선지자의 선택과,

(1: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사도의 선택과 같은 것이다.

(6: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이런 선택은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시려고 내게 능력 주신 자라는 것에 대한 증거가 된다.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넷째는 구원을 위한 선택이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동시에 영원한 영광의 후사가 되게 하시려는 개인적인 선택이다.

(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11:5)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고전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살전 1: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벧전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벧후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선택은 하나님의 주권적 열의로 전혀 구원 받을 공로가 없는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특별은혜를 베푸신 것이 선택이다. 이는 구원 얻을 자인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분명히 드러내신 은혜의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이시다.

 

 

2) 선택 교리의 특징

 

소요리문답(20)하나님은 홀로 그 아름다우신 뜻대로 영원부터 어떤 자들을 영생 얻게 하시려고 선택하시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에는 어떤 사람들과 천사들은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선택하시고라고 기록 되어있다. 이어서이렇게 예정된 천사들과 사람들은 정확 불변적으로 지정되고 그 수는 전연 확정적 결정적이어서 조금도 가감할 수 없나니라고 했다. 선택은 피택자들 속에 선견되는 신앙이나 고행 또는 그 신앙의 견인 또는 그들의 가진 아무 것도 조건 또는 이유로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 3장에 하나님께창세 영원불변 하시는 목적과 오묘한 계획과 아름다운 뜻대로 영생하기로 예정된 자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으니 이 선택은 피조자 속 선견되는 신앙 혹은 고행 또는 신앙의 견인 혹은 기타 그들의 가진 아무 것도 조건으 하지 않고 또는 유로 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서 나오는 일이다.

 

그리하여 모든 것은 그의 영광스러운 은혜의 찬송을 위한 것뿐이다. 하나님께서 택함을 입은 자에게 영광을 주신 그는 영원하시고 자유로우신 대로 영광을 받게 방법까지 예정하셨다.

 

이러므로 선택된 자들은 아담 안에서 타락 하였다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나니 이르매 성령의 역사를 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효과적으로 부름을 받아 의를 얻고 양자가 되여 성화되어 또한 그의 능력에 의하여 신앙으로 구원에 들어간다. 피택된 외에는 아무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 받거나 부름을 거나 의롭다 하심을 얻거 양자가 되거나 성화되거나 구원을 얻는 자가 없나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1) 주권적이시다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와 그의 기쁘신 뜻에 의한 것이 선택이다. 칼빈은 하나님은 구별 없이 누구에게나 구원의 희망을 주지 않으시고 사람에게는 거절하는 구원을 사람에게는 주신다고 하는 대조 의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하는 영원택의 교리를 이해하기 전에는 리는 우리의 원이 하나님의 자유로운 자비의 샘물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을 확신하지 것이다.”고 했다.(기독교강요 3 21 1)

 

여기서 칼빈은 선택이 전연 하나님 주권적 의지에 한다는 것을 말하여 사람에게는 거절하는 구원을 사람에게는 준다.” 함으로써 그것은 하나님의 온전한 은혜 자비 결과라는 것이다. 그는 다른 에서 이와 유사하게 하나님은 영원하고 변함없는 거룩하신 따라 구원에 적합한 자를 작정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러한 결정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자비에 의거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기독교강요 3 21 7).

 

선택의 성경적 증언을 살펴보면 택의 원인이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있고, 주권적 의지는 오직 기쁘신 에 따른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9: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9: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선택의 주권성은 사도 요한의 말씀 속에 분명히 드러난다.

(요일 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하나님의 이 주권성에 따라 스스로 구원할 자를 선택하시고 그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아오게 하셨다. 그러므로 선택은 하나님이 스스로 취하신 행동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열의에 기인한다.

(65:4)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사람의 구원에 협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그 사람의 태어난 때와 장소, 그의 부모, 교육의 정도 그리고 복음의 청취가능성 등의 선택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기에 선택의 하나님 주권성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만약에 사람의 구원에 대한 구경적 결정적 요소 사람 안에 있고 하나님 안에 있지 않다고 한다면 구원을 얻을 자가 전혀 없을 있으니 예수 죽음은 공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를 확실케 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의 구원에 그것을 응용하는 일에도 확실케 하셨다. 영아들과 정신적 불구자들이 구원은 하나님의 직접 주권적 선택에 의하는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2) 무조건적이시다

알미니안파는 선택은 하나님이 사람의 선견된 신앙이나 선행에 의지한다고 한다. 그러나 선택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열의에 의해 배타적으로 결정된다. 이는 무조건적이다. 선택된 자에게는 성령에 의해 새 생명의 씨가 심겨진다. 이 씨가 자라 믿음의 열매를 맺게 되는데 그 열매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들로 드러난다. 성도들의 선한 행실은 그 좋은 예가 된다. 따라서 그 열매는 선택 된 자의 의의 열매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 되는 의인 것이다. 그런고로 선택된 자들의 신앙과 선한 행실은 하나님의 은혜의 과실이며 전능의 물이니 선택을 위한 조건이 될 없다.

(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9: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딤후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딤후 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벧전 1: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 에 흩어진 나그네

(벧전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그리스도 안에서이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선택이란 무슨 의미인가?

이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의 은혜로 택하여졌다는 것이다. 이 선택은 인생의 공로나 그 어떤 것에 의하지 않고 다만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이 있을 것을 말한다.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벧전 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벧전 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 1: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의 선택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의 기초 혹은 기원이란 말인가?

항론파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개혁파는 하나님의 선택이 그리스도의 구속을 위한 행동으로 인해 자극을 받아 그를 선택의 기초로 삼거나 원인으로 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강조한다.

 

빠빙크(H.Bavinck)는 선택의 작정의 외적 원인이시라는 의미에서 그리스도가 선택의 원인이시었다고 불러지기는 로마 카롤릭파, 항론파, 루터파, 보다 더 근대의 신학자들 다수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개혁파 신학자들은 이것을 기각하여 왔으니 옳게 그리한 것이다.”고 말했다. (Bavinck, “Gereformeerde Dogmatick”, Vol. Il , p. 365.

개혁파신학자들이 이 칭호를 기각한 것에 대해 빠빙크는 말하기를 그리스도는 성부로부터 온 사랑의 선물인 바 그 사랑은 성자의 파송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성자가 성부를 용사하시도록 움직이신 것이 아니라, 오직 선택하는 사랑이 성부 자신에서 기원하였다.”(Ibid)고 하였다.

 

,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선택하심에 대한 강박적이거나, 추동척이거나, 혹은 공로적인 원인이 아니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실현에 있어서의 매개적 원인 또는 선택의 목적인 구원의 공로적 원인이라 칭할 수 있으나 선택 자체의 강박적, 추동적 혹 공로적 원인이시기 불가능함은 그 자신이 예정과 선택의 대상이신 때문이며 구속의 의론에서 그가 중보적인 사역을 담임하실 때에 그에게 주어진 일정한 숫자의 백성이 이미 있었던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택하시는 사랑은 성자의 파송보다 먼저였다.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딤후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4) 불변적이시다

불변하시다는 것은 하나님의 비공유적 속성에 속한 것으로 그의 존재와 본체에서의 불변하심뿐만 아니라 우리를 향하신 구원의 목적과 작정하심에도 전혀 변함이 없으시다 함이다. 그러므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은 불변적이시고 그 택하신 자의 구원도 확실케 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수행하시는 구원의 사역을 스스로 이루어 가심으로써 선택의 작정을 중단 없이 실현하신다. 선택함을 입은 자들로 하여금 믿고 끝까지 견인을 받게 하시는 것과 그리스도의 객관적 사역과 성령의 주관적 사역에 의하여 이 결과를 확실하게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시다.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딤후 2: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5) 영원적이시다

선택은 하나님의 영원에서의 행하신 바이다. 이 신적 선택은 결코 어떤 시간 안의 선택과 동일시되지 말 것이다. 이 선택이 금생에 하나님의 특별 은혜를 받아 누림을 위함이든지, 고귀한 특권들과 책임 있는 봉사를 위함이든지 혹은 내세의 영광을 물려받을 것을 위함이든지를 물론하고 이것은 반드시 영원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여기서 창세 전이란 것은 어떤 일이 영원에서 되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6) 불가항적이다

선택의 실행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에 의안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이것을 항거하여 거역하지 못한다. 이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의한 결과이다. 선택의 실행에 대하여 사람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어 어느 정도의 반항을 시도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반항은 하나님의 더 큰 자유의지에 종속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자기의 선택의 작정을 실행하심에 있어서는 사람의 의지를 강압하지는 않으신다. 이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유의지를 충분히 존중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스스로 깨달아 하나님의 그 뜻에 순종하게 될 때까지 인내하시며 기다려주신다. 그리고 끝내는 우리의 영에 성령의 감화를 입게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그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시고 그에게 영광 돌리게 하신다.

(110: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는 효과적 은혜에 대하여 전능 하신 힘으로 저희(피택자)를 세워 모든 착한 일을 행하게 하시며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게까지 하시나니라. 그러나 이 사람들도 은혜를 힘입어 감심(괴로움이나 책망 따위를 기꺼이 받아들임. 또는 그런 마음)으로 자유롭게 나오나니라”(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 101)고 하였다.

 

 

3) 선택의 목적

하나님의 이 영원적 선택의 목적은 무엇일까?

 

첫째는 가까이 있는 하나님의 그 뜻이다. 사람이 얻기로 선택되었다는 것은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이시다.

(11:7)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11: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11:9)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11:10)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1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살후 2:13)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위에서 언급한 여러 형태의 선택을 생각하면 그 각각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하심의 목적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을 위한 선택만을 고찰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하심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으실 것이다.

 

둘째는 최종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우리의 구원도 이 목적에 포함된다. 빠빙크는하나님이 하시는 바 무엇이든지 그는 자기 자 신의 영광을 위하여 하신다. 따라서 선택의 원인과 목적도 하나님 안에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Herman Bavinck, “The Doctrine of God”, p. 401).

 

성경에도 하나님의 영광이 선택의 최고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1: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서에도 이모든 것은 그의 영광스러운 은혜의 찬송을 위한 것뿐이다.” 하였(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서 3 5),

 

사회적 복음은 사람이 봉사를 위하여 선택되었다 한다.

 

선택된 자들이 봉사나 선행을 위하여 예정되었다는 것은 성경적에서도 말하고 있는 바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택의 최종목적인 하나님의 영화롭게 하는 일의 보조적일 뿐이다. 구원과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선택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성도로서의 생활에 봉사와 선한 행위는 당연한 일일뿐이다. 이러한 일은 구원받은 성도로서의 책임과 의무에 해당하며, 또 한편으로는 그러한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해야 하는 것이다.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딤후 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3 절 유 기

 

1) 유기 교리의 개념

 

아담으로 시작된 인류는 아담의 범죄함으로 인해 모두 예외 없이 죄 중에서 잉태되는 운명에 처해졌다. 이는 하나님이 아담과 맺은 행위언약을 어김에 의한 결과였다. 만약 하나님이 아담과 행위언약을 맺지 않으셨다면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죄를 결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이 명하신 그 말씀을 어기는 것이 곧 죄가 되는 일이다. 그래서 아담의 모든 후손은 반드시 죄인의 신분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죄의 결과는 영원한 죽음에 처해지는 것이었다. 이들 중에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청구권을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속성상 공의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또한 사랑의 하나님이시니 그 사랑을 드러내실 수밖에 없으시다. 그래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 중에 얼마를 구원하시기로 영원에서 작정하셨다. 이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어 보이신 증거이다. 이 택하심에 들지 못한 자들에는 그들의 죄로 인해서 영원한 죽음으로 향해 나아가는 그 길이 준비되어있다. 그 길을 가게 된 자들을 유기된 자라 한다.

 

유기된 자들이 유기되는 것은 오직 죄로 인한 것은 아니지만 유기된 자들이 당하는 멸망은 그들의 그 죄 때문이다. 만약 유기되는 것이 죄로 인한 것이라면 선택될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인들 중에서 유기될 자선택될 자를 구분하셨다. 그렇게 구별하신 것은 단지 하나님의 그 기쁘신 뜻에 따를 뿐이다. 하나님이 왜 한 사람은 선택하시고 한 사람은 기각하셨는지 그 이유가 우리에게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고 바빙크는 말했다.(Herman Bavinck, “The Doctrine of God”, p. 398)

 

이 유기에 대한 교리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았다. 로마 카톨릭파, 루터파의 절대 다수, 알미니안파, 그리고 메도디스트파는 통상으로 이 교리를 기각한다. 만일 그들이 이 유기교리를 말한다면 그것은 예지에 의한 유기이다. 예지에 의한 유기란 유기될 자가 하나님 앞에 악한 일을 행할 것을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그를 유기에 처하시기로 정하셨다는 것인데 이는 잘못된 사상이다. 이 생각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부정하는 것으로 사람의 의지에 의해 선택되어지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함의하는데, 이는 분명히 선택과 유기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속한다는 것을 부정하므로 전혀 수용될 수 없는 사상이다. 죄를 지은 인간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구원받을 자의 자리에 설 수 있게 되는 그 선택을 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르트(Barth)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를 인간이 배척함으로 인한 유기를 말하였으나, 이것도 잘못된 사상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계시, 즉 하나님의 뜻을 거역함으로써 유기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생각 속에는 인간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접하기 전에는 전혀 유기될만한 요소가 그에게 없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인간은 이미 아담의 범죄로 인한 원죄를 지닌 죄인 상태였으므로 그 이후에 그가 전혀 죄를 범하지 않는다하더라도 그는 유기의 상태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일 뿐이다.

 

유기에 대하여 모즐레(Mozley)타락 이후에 전 인류는 하나의 멸망의 무더기였는데 하나님이 얼마는 구출하고 기타는 그들이 있는 곳에 버려두기를, 얼마는 영광에 올리려고 그들에게 자격을 부여함에 필요한 은혜를 주고 나머지는 영벌에 버려두려고 이 같은 은혜를 주지 않으시기를 주권적 하나님이 기뻐하셨다고 했다.(Mozley, “The Augustinian Doctrine of Predestination”, p.297)

 

그러나 하나님이 정말로 유기된 자에게 은혜를 주지 않으신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셨을까? 예수를 십자가에 매단 그들을 향해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주소서라고 성부하나님께 말씀하신 주님의 그 심정 속에는 유기된 자가 유기되는 그것을 기뻐하심이 있을 수 있을까? 선택된 자들을 위해 필연적으로 유기 될 자들을 유기 되게 버려두실 수밖에 없으셨던 하나님은 유기될 수밖에 없는 자들에게 지극히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셨을 것이다.

 

하나님이 선택된 자들을 그 자리에 세우신 것은 선택된 자를 사랑하심이기 떄문이라고 믿는다. 유기된 자들이 유기된 자의 자리에 선 것은 그들이 선택된 자보다 무능하거나 처음부터 도덕적으로 결함이 더 많기 때문이라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더 유능할 수 있고 보다 나은 성품의 소유자일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들을 택하지 않으심은 선택된 자를 더 사랑하심 때문이라 생각한다. 왜 하나님이 선택된 자들을 사랑하셨을까 하는 것에 대해 나는 알지 못한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만이 아시는 하나님의 고유 권한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생각하기를 유기란 하나님이 무단히 어떤 자들을 멸망에 처하도록 선정하셨다 한다. 하밀톤은 말하기를 칼빈주의의 반대자들이 그리는 화상은 구원 얻기를 열망하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거절하시는 잔인한 하나님의 화상이니 그것은 조잡한 만화이다. 하나님은 구원 얻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지만 성질이 변하지 않은 자는 구원 얻기를 원하지 않는다.”(F.E. Hamilton. 박형룡 교의신학 신론 P. 295)고 했다.

 

유기에 대한 오해를 하는 그들의 이러한 오착은 인간이 처음부터 죄인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지 못한데서 기인한다. 그리고 이 오착은 인본주의 사상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적당히 덮어두시거나 눈감아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죄를 범한 자를 영원한 형벌에 두시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실현이다. 분명히 하나님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약속하셨으므로 그 약속대로 그 약속을 어긴 자를 영벌에 두시는 것은 합당하다.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그러한 운명에 놓인 자들 중에 일부를 택하셔서 구원하시기로 은혜를 베푸신 것이 바로 선택이다. 그러므로 유기는 잔인한 하나님이신 것을 드러내는 일이 아닌 것이다. 벌을 받을 일이 없는 무죄한 자를 하나님이 강압적으로 지정하셔서 그를 벌할 자의 자리에 세우시는 그런 무자비한 분이 아니시다. 유기를 그런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도 큰 오착이다.

 

죄를 범한 그들이 악으로 향해 스스로 택한 그 길을 가도록 그냥 그대로 두시는 것이 유기인 것이다. 유기는 선택과 달리 하나님이 그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는 것이다. ‘선택은 오직 사랑하시는 자에게만 허락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이신 것이다.

 

하나님은 타락한 천사에 대해서는 전부를 간과하심으로 타락한 천사 모두는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악하고 반역한 사람에게는 타락한 천사처럼 그렇게 모두를 간과하지 않으시고 그 중의 일부에게 받을 이유없는 행복을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베푸셨다.

(벧후 2: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1: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하나님은 유기된 자에게는 도무지 어떤 은혜도 허락하지 않으시는 무정한 하나님이 아니시다. 비록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버려질 자라도 그들에게도 은혜를 베푸신다. 그 은혜를 보통 은혜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에는 결코 구원에 대한 은혜가 주어지지 않는다.

 

유기된 자에게도 하나님은 선택된 자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햇빛을 허락하시고 이 땅을 사는 동안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기도 한다. 그들을 선택하지 않으셨다는 이유로 그들을 저주의 대상으로 삼으시거나 공공연히 햇빛과 비를 차단하는 그런 일을 도무지 하시지 않으신다. 결코 무정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조차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렇지만 결국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이 땅에서의 그들의 생이 마감되는 그때에 그들을 영영히 벌하시는 자리에 세울 수밖에 없게 되시는 것이다.

 

잃어진 자들, 즉 유기될 자들의 유기됨은 그들이 고의적으로 죄의 길에 행하는 때문이요, 그들은 스스로 자멸하여 온 것이다.

(5: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인류 역사에서 많은 무리가 복음을 듣지 못한 상태로 흘러온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이 그들을 그들의 죄 가운데서 죽도록 버려두신 것, 즉 간과하심을 보인 역사적 증거이다.

 

2) 유기 교리의 두 요소

 

유기 교리에 대한 고찰에서 유기의 작정은 두 요소로 구성되는데, 간과(preterition)’정죄(condemnation)’이다

간과는 중생시켜 구원을 베풀 자의 자리에 세우는 것에서 어떤 자는 제외시키는 이고, 정죄는 그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둘 것을 말한다.

 

(1) 간과의 소극성과 주권성

간과는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구원하시기를 선택하지 않으시고 지나가버리는 일이기에 이는 하나님의 소극적 행위이시다. 아무 동작도 행하시지 않고 그냥 지나가시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이시다. 간과된 자가 선택된 자보다 더 악한 죄인은 아니므로 단지 그 죄 때문에 간과하신 일은 아니시다. 선택도 하나님이 의욕하심인 것과 같이 간과도 하나님이 의욕하신 일일 뿐이다. 택함을 입은 자의 하나님이시니 간과도 하나님이 그 택한 자에게 어떤 의미를 갖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깊으신 섭리가 작동한 결과일 것이다.

 

이 유기는 선택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열의와 직접적 동력을 가지고 수행하지 않으신다. 선택된 자에게는 하나님이 친히 소명, 중생, 신앙, 칭의의 조성자가 되시지만, 유기된 자에 대하여는 그들의 타락, 불의한 상태, 죄악한 행위를 직접 조성하시어 그들의 유기를 직접 실현하는 일은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불의하지 않으시고, 악을 행치 않으시며, 불의가 없으시다.

(9: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34:10) 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단정코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단정코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

(92:15)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바위시라 그에게는 불의가 없도다

 

이 유기하심에 대해 하나님은 기뻐하실까?

선택은 하나님의 기쁘신 열의를 가지실 것이나 형벌과 수난을 결과하는 이 유기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전혀 기뻐하실 이유가 없다. 빠빙크(Bavinck)하나님이 유기의 작정에 성과하시는 것은 그 자체에서 그의 기쁨의 대상이 아니다고 했다.(Bavinck, Op. Cit., p401)

 

선택과 유기는 병행적 균형을 가지지 않는다. 즉 선택은 선택된 자의 선한 행실의 결과가 아니라 오직 죄인 중에서 기쁘신 뜻에 따라 선정한 자에게 하나님이 특별히 특별은혜를 베푸심이니 그가 구원 얻음의 원인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이지만,

(9: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유기는 멸망할 자의 그 멸망당함의 원인이 그에게 있어 그 자신의 멸망의 책임이 그에게 있다는 것이다.

(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살후 2: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살후 2:11)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살후 2: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따라서 구원에는 원인이 없으나 진노에는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2) 정죄의 적극성과 법정성

정죄는 하나님의 행위의 적극성이요, 동력적이다. 또한 정죄는 하나님의 법정적 행위로써 죄를 형벌하는 행위이다. 이는 죄에 대한 공의의 집행이니 법정적 행위인 것이다. 간과에 대한 이유는 우리가 분명히 알기 어려우나 정죄는 죄가 그 이유임이 분명하다. 신도게요에 그들의 죄 때문에 그들은 치욕과 진노를 당하도록 정명하여라고 기록하고 있다.(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 37)

 

유기의 작정은 하나님의 공의의 영원적 현현을 그 목적으로 한다. 하나님은 죄에 대한 형벌이 주어질 것을 확실히 하신다. 이것의 실현이 없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시다는 속성을 확실히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분명히 하나님이 멸하시기로 준비한 그릇이 있다.

(9:22)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유기 작정의 다른 목적은 선택된 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을 보다 풍부히 느껴 깨닫게 하려하심이다. 자기보다 더 유죄하거나 무가치하지 않은 다른 사람을 영원한 멸망에 버리웠는데, 그보다 못한 자신을 죄에서 일으켜 세우시고 영생에 인도하신 하나님의 그 사랑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이다.

 

 

3) 유기 교리에 대한 성경적 근거

 

유기에 대한 명확한 사실이 성경의 말씀 속에 드러나 있다.

불신자들이 주님께 부딪치며 거치어서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는 것은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때문이라고 하였다.

(벧전 2:8)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유기된 자가 교회에 가만히 들어와 불경건하며, 방탕하며, 그리고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라고 하였다.

(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영광 받기로 예비된 그릇에 대비되는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은 유기될 자를 말함이다.

(9:22)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9: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이방인은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다는 것도 유기된 자를 가리킴이다.

(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1: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

(1: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1: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1:32)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은 유기된 자에 대한 말씀이다.

(살후 2:9)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살후 2: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살후 2:11)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살후 2: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한 자들은 바로 유기된 자를 가리킴이다.

(12:39)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12:40)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이 말씀은 유기된 자를 말하는 이사야 6장에서 인용된 것인데, 이곳 외에도 신약의 여러 군데에 인용되고 있다.

(13:14)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3: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 함이라 하였느니라

(4:12)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8:10) 가라사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28: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11:9)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11:10)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유기되기로 정해진 자들의 그 심정이 강퍅하여짐은 하나님의 직접적 감화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들의 본래 가지고 있던 악한 충동에 그들을 방임하여 두심으로 그들의 그 심정이 점점 더 완고하여지고 강화되게 하심이었다.

 

주님께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하신 것도 악으로 굳어져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들을 아주 버려두심이었다.

(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심판 날에 주님께서 악한 자들에게 내리실 명령,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신 것은 유기의 영원에서의 작정에 대한 최종 실현이 도리 것이다.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4) 유기 교리에 대한 신경들과 저명한 신학자들의 지원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를 포함한 개혁파 신경들은 선택의 교리와 함께 유기의 교리를 말하여 이를 예정의 근본적인 부분으로 언급하고 있다.(화란 신도게요 제16, 똘트 교헌 115,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 37, 대요리문답 제13)

 

어거스틴(Augustine)과 칼빈(Calvin)은 선택과 함께 유기에 대한 교리를 인정했다. 특히 칼빈은 유기를 성경적 진리로 인정하고 그에게는 이 교리에 대해 부정할 자유가 없음을 스스로 고백했다. 그의 저서에서 선택이 그것의 반대인 유기 없이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기독교강요 323)

루터(Luther)도 의인에게 영원한 구원이 있는 것과 같이 악인에게는 영원한 멸망이 있음은 하나님의 작정에 속한 것이라 했다.

유기를 부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대한 부정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악을 심판하셔야만 하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 죄인을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으로 심판하실 자로 선정하시는 작정이 곧 유기인 것이다.

 

루터는 어떤 사람은 구원을 얻고 어떤 사람은 멸망하는 유일원인은 그가 전자의 구원과 후자의 멸망을 의욕하시는 데서 생긴다.“고 했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적 원인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지 아니함으로써 발생한 것이다. 만약 아담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그의 자유의지로 선택하였더라면 그는 영생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선악과를 범하는 불순종을 선택함으로써 하나님이 정하신 행위언약을 위반하는 죄를 짓게 되었고 그로인해 정죄 받을 자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결국 그의 후손들 모두는 하나님 앞에 죄인된 자가 되었고 영원한 멸망에 처해질 운명에 놓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창세전에 그들 중에 얼마를 택하셔서 특별은혜를 주시기로 작정하셨다.

 

이들이 선택된 자이고 그 나머지는 유기된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기될 자에게도 보통은혜를 허락하셨다. 그를 저주하시는 무정한 하나님은 아니셨다. 가인은 인류 최초의 유기된 자가 되었으나 하나님은 그 가인에게도 그 땅을 사는 동안 보통은혜를 입게 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셨다.

(4: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4: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유기된 자들이 피택된 자보다 더 큰 분량으로 이 땅에서의 행복을 누리는 때가 자주 있다.

(3:14)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3:15)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니라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를 받아 누리는데 있다. 특별은혜는 오직 선택된 자에게만 주어진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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