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학대학원

선택의 교리

by 영동장로교회 2019. 7. 19.


어거스틴과 칼빈으로 이어진 정통보수신학의 사상을 이어받고 한국의 장로교 신학의 거장이신 박형룡박사님의 교의 신학을 모범으로 하여 새로 작성한 이 교리서는 오직 바른 신앙 사상으로 무장하여 이단들의 공격으로부터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도 여러분의 신앙을 보전하는데 도움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 7. 19.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선 택

 

1) 선택 교리의 개념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에 하나님의 작정에 의하여 또는 그의 영광을 위하여 어떤 사람들과 천사들은 영생을 얻게 예정되고 어떤 자들은 영원한 멸망을 받게 예정되었나니라고 기록되어있다.(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 제3)

 

선택유기이중예정을 구성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이성적 피조물에 향한 작정이시다. 이성적 피조물에는 사람과 천사가 있는데, 그 차이점은 사람은 처음부터 전수로 타락한 존재로 드러나 그중에서 일부를 선택하시는 것이고, 천사는 그 창조 이후에 일부가 타락된 것으로 그 타락한 천사들에게는 타락한 인류에 대한 일부의 구원이 예정된 것과는 다르게 전혀 구원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타락한 천사들에 대한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그 하실 바에 대한 결의를 작정이라 하는데, 특별히 이성적 존재에 대한 구원의 작정에 한하여 예정이라한다. 인류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한 하나님의 작정인 이 예정에 선택과 유기가 존재하는 것이다. 선택은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계획이요, 유기는 죄인들 향한 영벌의 준비이다.

 

선택되는 자는 결코 그의 행위에 의로움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베푸시는 은혜에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9: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러나 유기되는 자는 그 유기됨의 이유가 그 자신에게 있다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이 선택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음을 구별하여야 한다.

 

그 첫 째는 민족적 선택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이 선택의 대표적인 예가 된다. 그들을 선택하셔서 특권과 특별봉사를 맡기신 것은 그들이 어떤 장점이나 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열의에 의하셨다는 것이다.

(4:37)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사랑하신고로 그 후손 너를 택하시고 큰 권능으로 친히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며

 

(7: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7: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10:15) 여호와께서 오직 네 열조를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 후손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147:19) 저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147:20) 아무 나라에게도 이같이 행치 아니하셨나니 저희는 그 규례를 알지 못하였도다 할렐루야

 

(3: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를 쳐서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온 족속을 쳐서 이르시기를

(3:2)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

 

사도바울의 선교사역에서 성령이 아시아에서 전도하지 못하게 하시고 마게도냐 사람의 부르는 환상을 보고 유럽으로 건너갔으니 이는 하나님이 어떤 지역에는 복음을 받을 특권을 주시고 어떤 지역에는 주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6: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16: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16: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 갔는데

(16: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6: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우리에게 복음이 전해진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심에 대한 확실한 증거이다.

 

둘째는 교회적 개인론’(Theory of Ecclesiastical Individualism)이라고 하는 선택이다. 이는 하나님이 어떤 한 사람의 외면적 교회와 은혜의 방편에 대한 관계를 미리 정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출생에 의해 하나님의 섭리로 어떤 이는 영적으로 매우 유리한 환경에 놓이게 되고 어떤 이는 매우 열악한 영적 환경에 놓이게 된다. 즉 어떤 이는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복음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는 환경에서 자라게 되고 어떤 이는 전혀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게 된다. 이는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의한 결과이지 그 아이의 공로에 의하거나 과오에 의한 결과는 아니다.

(32:8)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셋째는 직무적 선택이다. 이 선택은 어떤 사람이 지닌 직무와 재능은 자신의 의욕 여부에 관계없이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부여하셨다는 것을 말한다. 성경은 어떤 이들을 직무적으로 선택하여 그들로 하여금 귀중한 직무와 특별봉사를 하게 한 것을 기록하고 있다.

모세의 선택과,

(3: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제사장의 선택과,

(18:5)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택하여 내시고 그와 그의 자손으로 영영히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서 섬기게 하셨음이니라

군왕의 선택과,

(삼상 10:24)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의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

(78:70)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선지자의 선택과,

(1: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사도의 선택과 같은 것이다.

(6: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이런 선택은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시려고 내게 능력 주신 자라는 것에 대한 증거가 된다.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넷째는 구원을 위한 선택이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동시에 영원한 영광의 후사가 되게 하시려는 개인적인 선택이다.

(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11:5)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고전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살전 1: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벧전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벧후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선택은 하나님의 주권적 열의로 전혀 구원 받을 공로가 없는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특별은혜를 베푸신 것이 선택이다. 이는 구원 얻을 자인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분명히 드러내신 은혜의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이시다.

 

 

2) 선택 교리의 특징

 

소요리문답(20)하나님은 홀로 그 아름다우신 뜻대로 영원부터 어떤 자들을 영생 얻게 하시려고 선택하시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에는 어떤 사람들과 천사들은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선택하시고라고 기록 되어있다. 이어서이렇게 예정된 천사들과 사람들은 정확 불변적으로 지정되고 그 수는 전연 확정적 결정적이어서 조금도 가감할 수 없나니라고 했다. 선택은 피택자들 속에 선견되는 신앙이나 고행 또는 그 신앙의 견인 또는 그들의 가진 아무 것도 조건 또는 이유로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 3장에 하나님께창세 영원불변 하시는 목적과 오묘한 계획과 아름다운 뜻대로 영생하기로 예정된 자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으니 이 선택은 피조자 속 선견되는 신앙 혹은 고행 또는 신앙의 견인 혹은 기타 그들의 가진 아무 것도 조건으 하지 않고 또는 유로 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서 나오는 일이다.

 

그리하여 모든 것은 그의 영광스러운 은혜의 찬송을 위한 것뿐이다. 하나님께서 택함을 입은 자에게 영광을 주신 그는 영원하시고 자유로우신 대로 영광을 받게 방법까지 예정하셨다.

 

이러므로 선택된 자들은 아담 안에서 타락 하였다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나니 이르매 성령의 역사를 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효과적으로 부름을 받아 의를 얻고 양자가 되여 성화되어 또한 그의 능력에 의하여 신앙으로 구원에 들어간다. 피택된 외에는 아무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 받거나 부름을 거나 의롭다 하심을 얻거 양자가 되거나 성화되거나 구원을 얻는 자가 없나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1) 주권적이시다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와 그의 기쁘신 뜻에 의한 것이 선택이다. 칼빈은 하나님은 구별 없이 누구에게나 구원의 희망을 주지 않으시고 사람에게는 거절하는 구원을 사람에게는 주신다고 하는 대조 의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하는 영원택의 교리를 이해하기 전에는 리는 우리의 원이 하나님의 자유로운 자비의 샘물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을 확신하지 것이다.”고 했다.(기독교강요 3 21 1)

 

여기서 칼빈은 선택이 전연 하나님 주권적 의지에 한다는 것을 말하여 사람에게는 거절하는 구원을 사람에게는 준다.” 함으로써 그것은 하나님의 온전한 은혜 자비 결과라는 것이다. 그는 다른 에서 이와 유사하게 하나님은 영원하고 변함없는 거룩하신 따라 구원에 적합한 자를 작정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러한 결정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자비에 의거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기독교강요 3 21 7).

 

선택의 성경적 증언을 살펴보면 택의 원인이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있고, 주권적 의지는 오직 기쁘신 에 따른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9: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9: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선택의 주권성은 사도 요한의 말씀 속에 분명히 드러난다.

(요일 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하나님의 이 주권성에 따라 스스로 구원할 자를 선택하시고 그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아오게 하셨다. 그러므로 선택은 하나님이 스스로 취하신 행동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열의에 기인한다.

(65:4)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사람의 구원에 협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그 사람의 태어난 때와 장소, 그의 부모, 교육의 정도 그리고 복음의 청취가능성 등의 선택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기에 선택의 하나님 주권성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만약에 사람의 구원에 대한 구경적 결정적 요소 사람 안에 있고 하나님 안에 있지 않다고 한다면 구원을 얻을 자가 전혀 없을 있으니 예수 죽음은 공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를 확실케 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의 구원에 그것을 응용하는 일에도 확실케 하셨다. 영아들과 정신적 불구자들이 구원은 하나님의 직접 주권적 선택에 의하는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2) 무조건적이시다

알미니안파는 선택은 하나님이 사람의 선견된 신앙이나 선행에 의지한다고 한다. 그러나 선택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열의에 의해 배타적으로 결정된다. 이는 무조건적이다. 선택된 자에게는 성령에 의해 새 생명의 씨가 심겨진다. 이 씨가 자라 믿음의 열매를 맺게 되는데 그 열매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들로 드러난다. 성도들의 선한 행실은 그 좋은 예가 된다. 따라서 그 열매는 선택 된 자의 의의 열매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 되는 의인 것이다. 그런고로 선택된 자들의 신앙과 선한 행실은 하나님의 은혜의 과실이며 전능의 물이니 선택을 위한 조건이 될 없다.

(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9: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딤후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딤후 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벧전 1: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 에 흩어진 나그네

(벧전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그리스도 안에서이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선택이란 무슨 의미인가?

이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의 은혜로 택하여졌다는 것이다. 이 선택은 인생의 공로나 그 어떤 것에 의하지 않고 다만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이 있을 것을 말한다.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벧전 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벧전 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 1: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의 선택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의 기초 혹은 기원이란 말인가?

항론파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개혁파는 하나님의 선택이 그리스도의 구속을 위한 행동으로 인해 자극을 받아 그를 선택의 기초로 삼거나 원인으로 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강조한다.

 

빠빙크(H.Bavinck)는 선택의 작정의 외적 원인이시라는 의미에서 그리스도가 선택의 원인이시었다고 불러지기는 로마 카롤릭파, 항론파, 루터파, 보다 더 근대의 신학자들 다수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개혁파 신학자들은 이것을 기각하여 왔으니 옳게 그리한 것이다.”고 말했다. (Bavinck, “Gereformeerde Dogmatick”, Vol. Il , p. 365.

개혁파신학자들이 이 칭호를 기각한 것에 대해 빠빙크는 말하기를 그리스도는 성부로부터 온 사랑의 선물인 바 그 사랑은 성자의 파송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성자가 성부를 용사하시도록 움직이신 것이 아니라, 오직 선택하는 사랑이 성부 자신에서 기원하였다.”(Ibid)고 하였다.

 

,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선택하심에 대한 강박적이거나, 추동척이거나, 혹은 공로적인 원인이 아니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실현에 있어서의 매개적 원인 또는 선택의 목적인 구원의 공로적 원인이라 칭할 수 있으나 선택 자체의 강박적, 추동적 혹 공로적 원인이시기 불가능함은 그 자신이 예정과 선택의 대상이신 때문이며 구속의 의론에서 그가 중보적인 사역을 담임하실 때에 그에게 주어진 일정한 숫자의 백성이 이미 있었던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택하시는 사랑은 성자의 파송보다 먼저였다.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딤후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4) 불변적이시다

불변하시다는 것은 하나님의 비공유적 속성에 속한 것으로 그의 존재와 본체에서의 불변하심뿐만 아니라 우리를 향하신 구원의 목적과 작정하심에도 전혀 변함이 없으시다 함이다. 그러므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은 불변적이시고 그 택하신 자의 구원도 확실케 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수행하시는 구원의 사역을 스스로 이루어 가심으로써 선택의 작정을 중단 없이 실현하신다. 선택함을 입은 자들로 하여금 믿고 끝까지 견인을 받게 하시는 것과 그리스도의 객관적 사역과 성령의 주관적 사역에 의하여 이 결과를 확실하게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시다.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딤후 2: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5) 영원적이시다

선택은 하나님의 영원에서의 행하신 바이다. 이 신적 선택은 결코 어떤 시간 안의 선택과 동일시되지 말 것이다. 이 선택이 금생에 하나님의 특별 은혜를 받아 누림을 위함이든지, 고귀한 특권들과 책임 있는 봉사를 위함이든지 혹은 내세의 영광을 물려받을 것을 위함이든지를 물론하고 이것은 반드시 영원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여기서 창세 전이란 것은 어떤 일이 영원에서 되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6) 불가항적이다

선택의 실행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에 의안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이것을 항거하여 거역하지 못한다. 이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의한 결과이다. 선택의 실행에 대하여 사람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어 어느 정도의 반항을 시도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반항은 하나님의 더 큰 자유의지에 종속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자기의 선택의 작정을 실행하심에 있어서는 사람의 의지를 강압하지는 않으신다. 이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유의지를 충분히 존중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스스로 깨달아 하나님의 그 뜻에 순종하게 될 때까지 인내하시며 기다려주신다. 그리고 끝내는 우리의 영에 성령의 감화를 입게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그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시고 그에게 영광 돌리게 하신다.

(110: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는 효과적 은혜에 대하여 전능 하신 힘으로 저희(피택자)를 세워 모든 착한 일을 행하게 하시며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게까지 하시나니라. 그러나 이 사람들도 은혜를 힘입어 감심(괴로움이나 책망 따위를 기꺼이 받아들임. 또는 그런 마음)으로 자유롭게 나오나니라”(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 101)고 하였다.

 

 

3) 선택의 목적

하나님의 이 영원적 선택의 목적은 무엇일까?

 

첫째는 가까이 있는 하나님의 그 뜻이다. 사람이 얻기로 선택되었다는 것은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이시다.

(11:7)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11: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11:9)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11:10)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1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살후 2:13)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위에서 언급한 여러 형태의 선택을 생각하면 그 각각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하심의 목적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을 위한 선택만을 고찰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하심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으실 것이다.

 

둘째는 최종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우리의 구원도 이 목적에 포함된다. 빠빙크는하나님이 하시는 바 무엇이든지 그는 자기 자 신의 영광을 위하여 하신다. 따라서 선택의 원인과 목적도 하나님 안에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Herman Bavinck, “The Doctrine of God”, p. 401).

 

성경에도 하나님의 영광이 선택의 최고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1: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서에도 이모든 것은 그의 영광스러운 은혜의 찬송을 위한 것뿐이다.” 하였(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서 3 5),

 

사회적 복음은 사람이 봉사를 위하여 선택되었다 한다.

 

선택된 자들이 봉사나 선행을 위하여 예정되었다는 것은 성경적에서도 말하고 있는 바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택의 최종목적인 하나님의 영화롭게 하는 일의 보조적일 뿐이다. 구원과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선택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성도로서의 생활에 봉사와 선한 행위는 당연한 일일뿐이다. 이러한 일은 구원받은 성도로서의 책임과 의무에 해당하며, 또 한편으로는 그러한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해야 하는 것이다.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딤후 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신학대학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위일체론  (0) 2019.07.24
예정론  (0) 2019.07.20
유기의 교리  (0) 2019.07.17
사사기의 두 레위인  (0) 2019.06.23
2019년도 조직신학 - 서론(1)  (0) 2019.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