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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대학원

유기의 교리

by 영동장로교회 2019. 7. 17.

어거스틴과 칼빈으로 이어진 정통보수신학의 사상을 이어받고 한국의 장로교 신학의 거장이신 박형룡박사님의 교의 신학을 모범으로 하여 새로 작성한 이 교리서는 오직 바른 신앙 사상으로 무장하여 이단들의 공격으로부터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도 여러분의 신앙을 보전하는데 도움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 7. 17.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유 기

 

1) 유기 교리의 개념

 

아담으로 시작된 인류는 아담의 범죄함으로 인해 모두 예외 없이 죄 중에서 잉태되는 운명에 처해졌다. 이는 하나님이 아담과 맺은 행위언약을 어김에 의한 결과였다. 만약 하나님이 아담과 행위언약을 맺지 않으셨다면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죄를 결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이 명하신 그 말씀을 어기는 것이 곧 죄가 되는 일이다. 그래서 아담의 모든 후손은 반드시 죄인의 신분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죄의 결과는 영원한 죽음에 처해지는 것이었다. 이들 중에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청구권을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속성상 공의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또한 사랑의 하나님이시니 그 사랑을 드러내실 수밖에 없으시다. 그래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 중에 얼마를 구원하시기로 영원에서 작정하셨다. 이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어 보이신 증거이다. 이 택하심에 들지 못한 자들에는 그들의 죄로 인해서 영원한 죽음으로 향해 나아가는 그 길이 준비되어있다. 그 길을 가게 된 자들을 유기된 자라 한다.

 

유기된 자들이 유기되는 것은 오직 죄로 인한 것은 아니지만 유기된 자들이 당하는 멸망은 그들의 그 죄 때문이다. 만약 유기되는 것이 죄로 인한 것이라면 선택될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인들 중에서 유기될 자선택될 자를 구분하셨다. 그렇게 구별하신 것은 단지 하나님의 그 기쁘신 뜻에 따를 뿐이다. 하나님이 왜 한 사람은 선택하시고 한 사람은 기각하셨는지 그 이유가 우리에게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고 바빙크는 말했다.(Herman Bavinck, “The Doctrine of God”, p. 398)

 

이 유기에 대한 교리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았다. 로마 카톨릭파, 루터파의 절대 다수, 알미니안파, 그리고 메도디스트파는 통상으로 이 교리를 기각한다. 만일 그들이 이 유기교리를 말한다면 그것은 예지에 의한 유기이다. 예지에 의한 유기란 유기될 자가 하나님 앞에 악한 일을 행할 것을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그를 유기에 처하시기로 정하셨다는 것인데 이는 잘못된 사상이다. 이 생각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부정하는 것으로 사람의 의지에 의해 선택되어지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함의하는데, 이는 분명히 선택과 유기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속한다는 것을 부정하므로 전혀 수용될 수 없는 사상이다. 죄를 지은 인간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구원받을 자의 자리에 설 수 있게 되는 그 선택을 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르트(Barth)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를 인간이 배척함으로 인한 유기를 말하였으나, 이것도 잘못된 사상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계시, 즉 하나님의 뜻을 거역함으로써 유기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생각 속에는 인간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접하기 전에는 전혀 유기될만한 요소가 그에게 없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인간은 이미 아담의 범죄로 인한 원죄를 지닌 죄인 상태였으므로 그 이후에 그가 전혀 죄를 범하지 않는다하더라도 그는 유기의 상태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일 뿐이다.

 

유기에 대하여 모즐레(Mozley)타락 이후에 전 인류는 하나의 멸망의 무더기였는데 하나님이 얼마는 구출하고 기타는 그들이 있는 곳에 버려두기를, 얼마는 영광에 올리려고 그들에게 자격을 부여함에 필요한 은혜를 주고 나머지는 영벌에 버려두려고 이 같은 은혜를 주지 않으시기를 주권적 하나님이 기뻐하셨다고 했다.(Mozley, “The Augustinian Doctrine of Predestination”, p.297)

 

그러나 하나님이 정말로 유기된 자에게 은혜를 주지 않으신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셨을까? 예수를 십자가에 매단 그들을 향해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주소서라고 성부하나님께 말씀하신 주님의 그 심정 속에는 유기된 자가 유기되는 그것을 기뻐하심이 있을 수 있을까? 선택된 자들을 위해 필연적으로 유기 될 자들을 유기 되게 버려두실 수밖에 없으셨던 하나님은 유기될 수밖에 없는 자들에게 지극히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셨을 것이다.

 

하나님이 선택된 자들을 그 자리에 세우신 것은 선택된 자를 사랑하심이기 떄문이라고 믿는다. 유기된 자들이 유기된 자의 자리에 선 것은 그들이 선택된 자보다 무능하거나 처음부터 도덕적으로 결함이 더 많기 때문이라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더 유능할 수 있고 보다 나은 성품의 소유자일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들을 택하지 않으심은 선택된 자를 더 사랑하심 때문이라 생각한다. 왜 하나님이 선택된 자들을 사랑하셨을까 하는 것에 대해 나는 알지 못한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만이 아시는 하나님의 고유 권한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생각하기를 유기란 하나님이 무단히 어떤 자들을 멸망에 처하도록 선정하셨다 한다. 하밀톤은 말하기를 칼빈주의의 반대자들이 그리는 화상은 구원 얻기를 열망하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거절하시는 잔인한 하나님의 화상이니 그것은 조잡한 만화이다. 하나님은 구원 얻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지만 성질이 변하지 않은 자는 구원 얻기를 원하지 않는다.”(F.E. Hamilton. 박형룡 교의신학 신론 P. 295)고 했다.

 

유기에 대한 오해를 하는 그들의 이러한 오착은 인간이 처음부터 죄인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지 못한데서 기인한다. 그리고 이 오착은 인본주의 사상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적당히 덮어두시거나 눈감아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죄를 범한 자를 영원한 형벌에 두시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실현이다. 분명히 하나님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약속하셨으므로 그 약속대로 그 약속을 어긴 자를 영벌에 두시는 것은 합당하다.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그러한 운명에 놓인 자들 중에 일부를 택하셔서 구원하시기로 은혜를 베푸신 것이 바로 선택이다. 그러므로 유기는 잔인한 하나님이신 것을 드러내는 일이 아닌 것이다. 벌을 받을 일이 없는 무죄한 자를 하나님이 강압적으로 지정하셔서 그를 벌할 자의 자리에 세우시는 그런 무자비한 분이 아니시다. 유기를 그런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도 큰 오착이다.

 

죄를 범한 그들이 악으로 향해 스스로 택한 그 길을 가도록 그냥 그대로 두시는 것이 유기인 것이다. 유기는 선택과 달리 하나님이 그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는 것이다. ‘선택은 오직 사랑하시는 자에게만 허락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이신 것이다.

 

하나님은 타락한 천사에 대해서는 전부를 간과하심으로 타락한 천사 모두는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악하고 반역한 사람에게는 타락한 천사처럼 그렇게 모두를 간과하지 않으시고 그 중의 일부에게 받을 이유없는 행복을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베푸셨다.

(벧후 2: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1: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하나님은 유기된 자에게는 도무지 어떤 은혜도 허락하지 않으시는 무정한 하나님이 아니시다. 비록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버려질 자라도 그들에게도 은혜를 베푸신다. 그 은혜를 보통 은혜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에는 결코 구원에 대한 은혜가 주어지지 않는다.

 

유기된 자에게도 하나님은 선택된 자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햇빛을 허락하시고 이 땅을 사는 동안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기도 한다. 그들을 선택하지 않으셨다는 이유로 그들을 저주의 대상으로 삼으시거나 공공연히 햇빛과 비를 차단하는 그런 일을 도무지 하시지 않으신다. 결코 무정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조차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렇지만 결국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이 땅에서의 그들의 생이 마감되는 그때에 그들을 영영히 벌하시는 자리에 세울 수밖에 없게 되시는 것이다.

 

잃어진 자들, 즉 유기될 자들의 유기됨은 그들이 고의적으로 죄의 길에 행하는 때문이요, 그들은 스스로 자멸하여 온 것이다.

(5: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인류 역사에서 많은 무리가 복음을 듣지 못한 상태로 흘러온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이 그들을 그들의 죄 가운데서 죽도록 버려두신 것, 즉 간과하심을 보인 역사적 증거이다.

 

2) 유기 교리의 두 요소

 

유기 교리에 대한 고찰에서 유기의 작정은 두 요소로 구성되는데, 간과(preterition)’정죄(condemnation)’이다

간과는 중생시켜 구원을 베풀 자의 자리에 세우는 것에서 어떤 자는 제외시키는 이고, 정죄는 그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둘 것을 말한다.

 

(1) 간과의 소극성과 주권성

간과는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구원하시기를 선택하지 않으시고 지나가버리는 일이기에 이는 하나님의 소극적 행위이시다. 아무 동작도 행하시지 않고 그냥 지나가시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이시다. 간과된 자가 선택된 자보다 더 악한 죄인은 아니므로 단지 그 죄 때문에 간과하신 일은 아니시다. 선택도 하나님이 의욕하심인 것과 같이 간과도 하나님이 의욕하신 일일 뿐이다. 택함을 입은 자의 하나님이시니 간과도 하나님이 그 택한 자에게 어떤 의미를 갖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깊으신 섭리가 작동한 결과일 것이다.

 

이 유기는 선택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열의와 직접적 동력을 가지고 수행하지 않으신다. 선택된 자에게는 하나님이 친히 소명, 중생, 신앙, 칭의의 조성자가 되시지만, 유기된 자에 대하여는 그들의 타락, 불의한 상태, 죄악한 행위를 직접 조성하시어 그들의 유기를 직접 실현하는 일은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불의하지 않으시고, 악을 행치 않으시며, 불의가 없으시다.

(9: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34:10) 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단정코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단정코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

(92:15)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바위시라 그에게는 불의가 없도다

 

이 유기하심에 대해 하나님은 기뻐하실까?

선택은 하나님의 기쁘신 열의를 가지실 것이나 형벌과 수난을 결과하는 이 유기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전혀 기뻐하실 이유가 없다. 빠빙크(Bavinck)하나님이 유기의 작정에 성과하시는 것은 그 자체에서 그의 기쁨의 대상이 아니다고 했다.(Bavinck, Op. Cit., p401)

 

선택과 유기는 병행적 균형을 가지지 않는다. 즉 선택은 선택된 자의 선한 행실의 결과가 아니라 오직 죄인 중에서 기쁘신 뜻에 따라 선정한 자에게 하나님이 특별히 특별은혜를 베푸심이니 그가 구원 얻음의 원인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이지만,

(9: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유기는 멸망할 자의 그 멸망당함의 원인이 그에게 있어 그 자신의 멸망의 책임이 그에게 있다는 것이다.

(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살후 2: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살후 2:11)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살후 2: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따라서 구원에는 원인이 없으나 진노에는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2) 정죄의 적극성과 법정성

정죄는 하나님의 행위의 적극성이요, 동력적이다. 또한 정죄는 하나님의 법정적 행위로써 죄를 형벌하는 행위이다. 이는 죄에 대한 공의의 집행이니 법정적 행위인 것이다. 간과에 대한 이유는 우리가 분명히 알기 어려우나 정죄는 죄가 그 이유임이 분명하다. 신도게요에 그들의 죄 때문에 그들은 치욕과 진노를 당하도록 정명하여라고 기록하고 있다.(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 37)

 

유기의 작정은 하나님의 공의의 영원적 현현을 그 목적으로 한다. 하나님은 죄에 대한 형벌이 주어질 것을 확실히 하신다. 이것의 실현이 없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시다는 속성을 확실히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분명히 하나님이 멸하시기로 준비한 그릇이 있다.

(9:22)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유기 작정의 다른 목적은 선택된 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을 보다 풍부히 느껴 깨닫게 하려하심이다. 자기보다 더 유죄하거나 무가치하지 않은 다른 사람을 영원한 멸망에 버리웠는데, 그보다 못한 자신을 죄에서 일으켜 세우시고 영생에 인도하신 하나님의 그 사랑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이다.

 

 

3) 유기 교리에 대한 성경적 근거

 

유기에 대한 명확한 사실이 성경의 말씀 속에 드러나 있다.

불신자들이 주님께 부딪치며 거치어서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는 것은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때문이라고 하였다.

(벧전 2:8)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유기된 자가 교회에 가만히 들어와 불경건하며, 방탕하며, 그리고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라고 하였다.

(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영광 받기로 예비된 그릇에 대비되는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은 유기될 자를 말함이다.

(9:22)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9: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이방인은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다는 것도 유기된 자를 가리킴이다.

(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1: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

(1: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1: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1:32)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은 유기된 자에 대한 말씀이다.

(살후 2:9)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살후 2: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살후 2:11)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살후 2: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한 자들은 바로 유기된 자를 가리킴이다.

(12:39)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12:40)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이 말씀은 유기된 자를 말하는 이사야 6장에서 인용된 것인데, 이곳 외에도 신약의 여러 군데에 인용되고 있다.

(13:14)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3: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 함이라 하였느니라

(4:12)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8:10) 가라사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28: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11:9)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11:10)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유기되기로 정해진 자들의 그 심정이 강퍅하여짐은 하나님의 직접적 감화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들의 본래 가지고 있던 악한 충동에 그들을 방임하여 두심으로 그들의 그 심정이 점점 더 완고하여지고 강화되게 하심이었다.

 

주님께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하신 것도 악으로 굳어져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들을 아주 버려두심이었다.

(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심판 날에 주님께서 악한 자들에게 내리실 명령,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신 것은 유기의 영원에서의 작정에 대한 최종 실현이 도리 것이다.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4) 유기 교리에 대한 신경들과 저명한 신학자들의 지원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를 포함한 개혁파 신경들은 선택의 교리와 함께 유기의 교리를 말하여 이를 예정의 근본적인 부분으로 언급하고 있다.(화란 신도게요 제16, 똘트 교헌 115,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 37, 대요리문답 제13)

 

어거스틴(Augustine)과 칼빈(Calvin)은 선택과 함께 유기에 대한 교리를 인정했다. 특히 칼빈은 유기를 성경적 진리로 인정하고 그에게는 이 교리에 대해 부정할 자유가 없음을 스스로 고백했다. 그의 저서에서 선택이 그것의 반대인 유기 없이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기독교강요 323)

루터(Luther)도 의인에게 영원한 구원이 있는 것과 같이 악인에게는 영원한 멸망이 있음은 하나님의 작정에 속한 것이라 했다.

유기를 부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대한 부정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악을 심판하셔야만 하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 죄인을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으로 심판하실 자로 선정하시는 작정이 곧 유기인 것이다.

 

루터는 어떤 사람은 구원을 얻고 어떤 사람은 멸망하는 유일원인은 그가 전자의 구원과 후자의 멸망을 의욕하시는 데서 생긴다.“고 했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적 원인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지 아니함으로써 발생한 것이다. 만약 아담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그의 자유의지로 선택하였더라면 그는 영생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선악과를 범하는 불순종을 선택함으로써 하나님이 정하신 행위언약을 위반하는 죄를 짓게 되었고 그로인해 정죄 받을 자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결국 그의 후손들 모두는 하나님 앞에 죄인된 자가 되었고 영원한 멸망에 처해질 운명에 놓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창세전에 그들 중에 얼마를 택하셔서 특별은혜를 주시기로 작정하셨다.

 

이들이 선택된 자이고 그 나머지는 유기된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기될 자에게도 보통은혜를 허락하셨다. 그를 저주하시는 무정한 하나님은 아니셨다. 가인은 인류 최초의 유기된 자가 되었으나 하나님은 그 가인에게도 그 땅을 사는 동안 보통은혜를 입게 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셨다.

(4: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4: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유기된 자들이 피택된 자보다 더 큰 분량으로 이 땅에서의 행복을 누리는 때가 자주 있다.

(3:14)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3:15)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니라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를 받아 누리는데 있다. 특별은혜는 오직 선택된 자에게만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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