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21. 영동장로교회 최규만 목사
“마가복음 10:29-30 말씀의 의미에 관하여(5부)“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쫓았나이다“라는 고백에서 드러난 베드로의 성향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1) -
예수께서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고 말씀하실 때, 베드로가 불쑥 나서서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라고 말했다.
베드로가 그렇게 말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평소 태도로 보아 그는 분명히 세상의 유익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고 여겨진다. 일례로 그는 변화산에서 예수께서 모세와 엘리야가 대화하실 때 그곳에 초막 셋을 짓자는 주장을 펼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순전히 그의 세상적인 욕심이 반영된 주장이었다.
그러했기에 어쩌면 그의 말은 ”그 부자 청년의 경우에는 자기가 가진 부를 포기하지 못해서 예수 따르는 일을 거절하고 떠나갔는데,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다. 그러니 적어도 나는 그 청년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서 튀어나온 발언이었을 것이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그런 결정을 해서 예수를 따랐으니 예수께서는 분명히 자신에게 특별한 보상을 베풀 것이라고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제자들은 예수가 그 땅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할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서로 높은 자리를 얻으려고 충성심 경쟁을 벌였다.
(막 10: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막 10: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막 10:37)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막 10:3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게 된 발화 상황을 자세히 살피면 이렇다.
이 말씀은 부자 청년 사건 직후 나온다.
(막 10: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막 10:23)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막 10:24)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막 10:25)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막 10:26)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막 10:27)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막 10:28)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예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신 뒤, 제자들이 놀라움과 두려움 속에서 반응한 맥락이다. 이때 베드로는 즉시, 자신과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온 것을 자랑하듯 말하고 있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한 것은 평소 그의 성향을 살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의 행적은 복음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즉흥적이었고 직설적이었으며, 종종 자기감정과 생각을 먼저 표현하는 경향이 많았다. 이러한 베드로의 성향은 예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초기에도 잘 드러난다. 그는 언제나 먼저 나섰다. 그 열심은 하나님의 뜻이라기보다는 자기의 세상적인 경험에 바탕을 둔 확신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물 위로 걷는 일을 하게 해달라는 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배경은 이러했다.
이 사건은 오병이어의 이적 직후에 일어난다. 많은 무리를 먹이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배에 태워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보내시고, 홀로 산에 올라가 기도하셨다.
(마 14: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마 14: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마 14: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마 14: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마 14: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한편 제자들은 밤 사경(새벽 3–6시쯤)에 바다 한가운데서 풍랑을 만났다. 바로 그때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어 그들에게 다가오셨다. 제자들은 두려움에 “유령이다”하며 외쳤으나, 예수께서는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하시며 자신을 밝히셨다.
(마 14: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마 14: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마 14:26)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마 14:27)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이 맥락에서 베드로는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요청했고, 예수의 오라 하심으로 잠시 물 위를 걸었으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지게 되었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심으로 이 사건은 마무리된다.
이 사건은 예수의 자기 계시와 제자 베드로의 연약한 믿음이 대비되는 장면이었다.
(마 14:28)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마 14: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마 14: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마 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마 14: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이 사건에서 드러난 베드로의 성향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는 성급한 열정적인 믿음의 성향이다.
베드로는 제자들 가운데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이었다. “저도 물 위를 걷게 하소서”라는 요청은 대담하고 열정적인 신앙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앞장서기를 좋아했고, 자기 확신에 찬 모습을 자주 보였다. 그의 이러한 성향은 예수를 향한 신뢰에서 비롯된 적극성을 지닌 장점으로 작용하기는 했지만 깊은 분별보다는 순간의 열정에 이끌리는 단점을 드러내어 보였다.
둘째로 그의 성향은 환경에 쉽게 흔들리는 연약함을 지니고 있었다.
처음에는 믿음으로 걸어갔지만, 바람과 파도를 보자 두려움이 찾아왔다. 이는 베드로의 내적 성향, 즉,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상황에 압도되는 인간적 연약함을 잘 보여주었다.
여기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는 예수의 말씀은 그의 불안정한 연약한 신앙을 지적하신 것이다.
세 번째는 위기에서 곧바로 주님을 찾아 부르짖었다.
비록 의심하고 빠졌지만, 베드로는 즉시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부르짖었다. 평소에는 늘 자신만만하고 용감한 듯이 보였지만 죽음과 같은 두려움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나약한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냄이었다.
온전히 성숙한 믿음을 가지지 못한 그때의 베드로는 이처럼 나약한 존재였음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연약한 존재이기에 주님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적 연약함 속에서도 주님만이 구원의 유일한 소망임을 그가 본능적으로 인식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 사건은 성령의 역사 이전의 베드로에게서 나타난 “자기 의와 열심”의 전형을 보여주는 동시에, 은혜로 변화될 성향을 예시하는 장면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주님은 베드로의 물 위로 걷게 해달라는 그 요청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들어주셨을까? 그가 물 위로 걸으면 빠질 것을 모르셨을까?
베드로가 물 위를 걷고자 한 것은 어쩌면 자신도 예수와 같은 능력자가 되기를 꿈꾸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물 위로 걷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뱃사람인 베드로로서는 너무나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의 스승인 예수가 물 위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그 순간 그의 내면에서 세상적인 욕심이 발동한 것인지도 모른다. 예수께서 물 위를 걸으시니 나도 걸을 수가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그 마음을 예수께서 모르셨을까?
하지만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그 요청을 들어주심으로써 훗날 베드로가 인간적인 생각과 세상적인 경험을 초월해야만 가능한 참된 믿음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그 신비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기회로 삼아주시려고 그 요청을 허락하신 것이리라.
사람으로서 물 위를 걷는 것을 경험한 베드로는 과연 훗날 죽은 자를 살리고,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책망함으로써 그들이 곧 죽음에 이르게 하는 등의 이적을 행하는 그 자리에 세게 되었다.
(행 9: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행 9: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행 9:38) 룻다가 욥바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오라고 간청하니
(행 9:39)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행 9: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행 9: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행 9: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행 3:1) 제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행 3:2)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행 3: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행 3:4)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행 3:5)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행 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행 3: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행 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행 3: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행 3:10)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행 5: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행 5: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행 5: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행 5: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행 5: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행 5: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행 5:7)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행 5:8) 베드로가 가로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가로되 예 이뿐이로라
(행 5:9)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한대
(행 5:10)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장사하니
(행 5: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물 위로 걷는 이 사건을 통해 베드로는 참된 믿음이란 오직 주님만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훗날 주님의 이름으로 이 같은 이적들을 행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주님을 그것을 이미 내다보시고 이 순간 베드로에게 그것에 대한 사전 교육을 시키려 하심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 사건을 기록케 하심으로써 우리에게도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가르침을 베푸시려고 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로 등장하는 사건이 베드로의 신앙고백 직후,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하며 나선 일이다.
앞선 본문에서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위대한 고백을 했다. 예수께서는 그 고백을 칭찬하시며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라는 선언까지 하셨다.
(마 16:15)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그런데 이 고백 직후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메시아로서의 사명이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고난·죽음·부활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드러내셨다. 이는 당시 제자들의 메시아 이해, 곧 정치적 해방자·승리자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마 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바로 이때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말렸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는 이 말은 예수의 구속 사역을 부정하며, 인간적 판단으로 스승의 죽음을 막으려는 시도였다.
(마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이 사건에서 드러난 베드로의 성향을 다음의 몇 가지로 말하여지고 있다.
첫째는 “인간적 열심과 애정에서 비롯된 성급함”이라고 한다.
“베드로는 스승을 향한 충성심과 애정 때문에 불쑥 반응했지만, 그의 열심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적인 정과 의로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그의 스승이신 예수에 대한 인간적인 정과 의로움은 정말 순수했을까?
그의 예수에 대한 인간적인 정과 의로움이 진실로 순수했다면 예수가 붙잡혀 가신 그때 세 번이나 부인할 수 있었을까?
자기의 스승인 예수는 반드시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실 것이고, 그러면 자기는 수제자이니 가장 높은 자리를 주실 것이라고 그 믿음에서 나온 “주여 그리마옵소서”는 아니었을까?
예수가 죽으면 자기가 꿈꾸던 세상 왕국에서의 그 자리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니, 그것을 막으려는 그 의도에서 “그리 마옵소서”하며 말린 것은 아니었을까?
둘째는 “메시아에 대한 오해와 자기 의를 드러냄”이라고 한다.
베드로는 메시아를 세상적인 승리의 왕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고난과 십자가는 그의 기대와 맞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그는 자기 생각 속의 메시아 상을 예수께 강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는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의를 앞세운 전형적인 세상에 속한 자의 모습이다. 우리의 믿음이 그런 믿음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세 번째는 “항상 앞장서려는 성격과 지도 욕구을 드러내려는 성향”이라고 한다.
베드로는 언제나 제자들 중에서 가장 먼저 나서는 사람이었다. 여기서도 스승을 붙들고 “간하였다(강하게 항변하다)“라고 표현된 것은 그의 주도적이고 예수를 자가 손아귀에 쥐려는 다소 지배적인 성향을 드러낸 것이다.
그의 성격이 그러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가 언제나 제자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나선 것은, 예수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면 가장 높은 자리는 당연히 수제자에게 줄 것이라고 여겼기에 그 수제자 자리를 지키려는 그 욕심이 더 강하게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된 것은 세상에서의 그 지위를 탐해서가 아니다. 오직 주의 영광을 위한 그 일을 하려고 주님의 제자 된 자리에 선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직분이나 지위를 탐하는 그 욕심을 내는가?
네 번째는 ”믿음과 의심이 교차하는 성향을 드러냄“이라고 말한다.
불과 몇 절 전에는 위대한 신앙고백을 했던 베드로가 곧바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가로막는 도구가 되고 있다. 이는 그의 신앙이 순간순간 흔들리며 인간적 의와 하나님의 뜻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를 아직 깨닫지 못한 그때의 베드로였다. 세상의 욕심을 아직 버리지 못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과 세상의 욕심 사이를 오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베드로의 이러한 행동에서 우리는 세속적인 인간적 열심이 하나님의 뜻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내용이 길어서 다음 주에 계속해서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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