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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0:29-30 말씀의 의미에 관하여(4부) - 부자 청년의 구원 여부를 중심으로(3)

by 영동장로교회 2025. 9. 14.

2025. 9. 14 . 영동장로교회 최규만 목사

 

 

“마가복음 10:29-30 말씀의 의미에 관하여(4부)“

부자 청년의 구원 여부를 중심으로(3)-

 

지금까지는 부자 청년에 관한 이 사건의 배경에 대해 살폈다. 오늘은 이러한 배경을 토대로 해서 마지막 부분의 말씀, 즉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에 담긴 그 뜻에 대해서 가급적 깊이 있게 살필 것이다.

(막 10:23)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예수께서는 이 부자 청년의 사건에 대한 언급을 마무리하실 때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일까? 천국에 들어가려면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막 10:23)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막 10:24)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막 10:25)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막 10:26)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막 10:27)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예수께서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고 분명히 하셨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마태의 기록에도, 그리고 누가의 기록에도 발견된다. 그러면 부자는 천국에 못 들어가니 천국에 가려면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마가복음 10:23 (또는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9:23, 누가복음 18:24)의 이 말씀은 예수께서 부자 청년 사건이 있었던 직후에 하신 말씀이다.

(마 19: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마 19: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눅 18:24) 예수께서 저를 보시고 가라사대 재산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눅 18:25)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주: 누가복음에는 부자라는 말 대신에 “재산이 있는 자”라고 표현되어있다. ‘부자’ 대신에 “재산이 있는 자”라는 표현에서의 ‘재산’은 “마음을 두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세상을 탐하는 탐욕이니, 결국 세상을 탐하는 우상숭배에 진배없다.

(골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우상을 숭배한다는 것은 그 마음에서 하나님을 버림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마 8: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믿음의 백성들의 마음이 성전이기에 주님이 거하실 곳은 성도들의 그 마음이다. 그런데 그 마음이라는 곳에 세상의 재물을 탐함으로 인해 생겨난 재물의 우상이 자리하고 있으니, 예수께서는 ”내가 머무를 곳이 없다“고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마음에는 주님이 거하실 거처가 마련되어 있는가?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예수께서 거하지 못하시는 마음을 가진 자의 그 마음이 어디 천국이겠는가! 그런 마음을 가진 자라면 천국을 소유하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부자가 천국을 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교회사적으로 많은 논의가 있었다. 단순히 “부자는 천국에 못 들어간다” 또는 “가난해야만 구원을 얻는다”라는 식으로 이해한다면 성경 전체와 모순이 생긴다.

 

이 말씀에 관한 주요한 해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재물이 구원의 장애물이 되는 이유에 관해서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심은 재물에 대한 집착이 문제이지, 재물 자체는 죄가 아니라는 뜻이다.

 

예수께서 바로 이어서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라고 말씀하시며, 재물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사람을 하나님한테서 멀어지게 하는지를 강조하셨다.

 

세상에서의 부자는 종종 자신의 의와 안정을 재물에서 찾는다. 따라서 부자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자기 능력과 소유에 의지하는 쪽으로 마음이 굳어진다. 이는 재물을 의지함이니, 재물을 의한다는 것은 곧 그 재물이 우상이 됨이다.

 

부자의 어리석은 이 생각에 대해 예수께서는 이미 비유의 말씀으로 교훈하셨다. 누가복음 12장에서의 예수의 이 말씀은 탐심과 재물 의존의 허망함을 경고하신 비유의 말씀이시다.

(눅 12:16)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눅 12:17)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눅 12:18)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눅 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눅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 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결국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고 하신 이 말은 세상에 속한 자, 즉 사탄에 속한 자로서의 한계에 관한 말씀이셨다. 여기서의 부자는 세상에 속한 자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그런 부자는 재물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세상에 속해 있으니 어찌 천국 백성으로서의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글에서 이렇게 교훈하고 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 6:6)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딤전 6: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딤전 6: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 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과연 사도 바울다운 가르침이시다. 그는 복음 전하는 그 일을 사명으로 받으면서 이미 삼층천을 체험했다. 천국의 그 가치를 능히 알았기에 세상의 재물은 더 이상 그를 유혹하지 못했다. 그 깨달음을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가르친 것이 이 글이었다.

(고후 12: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고후 12: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고후 12: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고후 12: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부디 디모데가 물질의 유혹에 빠지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썼지 않았을까!

자신처럼 디모데도 천국에 대해 순순한 사모를 하기 바랐을 것이다. 이것이 참된 믿음의 아버지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목회자라면 이 마음으로 성도들을 가르치며 인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목회자에게 있어서의 사랑이다.

 

둘째는 가난 자체가 구원의 조건은 아니라는 뜻이다.

성경에는 믿음으로 부유하면서도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 욥, 요셉, 다윗, 솔로몬, 바나바, 아리마대 요셉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그 땅에서 부유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만을 의지했지, 그들이 가진 재물을 의지하는 그 일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 주어진 재물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만 사용한 자들이었다.

 

다윗은 많은 재물을 소유했지만, 그의 마음은 오직 그것으로 하나님의 전을 세우고자 하는 갈망으로만 가득했다.

(삼하 7:1) 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에

(삼하 7:2)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삼하 7:3) 나단이 왕께 고하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소서

 

그 마음을 하나님이 아셨으니 전을 짓는 그 일을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미루셨다. 하나님의 마음은 이러했을 것이다. “내가 너의 마음을 이제 알았다. 너의 그 마음만으로도 나는 족하니, 너 대신에 그 일을 너의 아들 솔로몬에게 맡기마”.

(삼하 7:4)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삼하 7:5)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

(삼하 7:6)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과 회막에 거하며 행하였나니

(삼하 7:7) 무릇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행하는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삼하 7:8)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고

(삼하 7:9)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삼하 7:10)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삼하 7:11)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삼하 7: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삼하 7:13)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삼하 7:14)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삼하 7:15)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 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삼하 7: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의 이 마음은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번제물로 바치려고 했을 때, “내가 너의 믿음을 이제사 알았노니, 너의 그 믿음이 내게 족하다“고 하실 때의 그 마음이셨을 것이다.

(창 22:9)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창 22: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창 22: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창 22: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따라서 “가난해야 구원받는다”라는 단순 논리로 이 구절을 읽어서는 안 된다. 재물이 하나님보다 앞설 때 그것이 구원의 걸림돌이 된다는 점을 이해하고, 명심해야 할 일이다.

 

세 번째는 제자들이 놀란 이유와 예수께서 하신 대답에 관한 것이다.

제자들은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하고 놀라 묻는다. 그 질문에 예수께서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라고 답하셨다. 즉, 부자든 가난한 자든 누구든지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다.

(막 10:26)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막 10:27)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따라서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모든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라는 선언이 아니라, “재물이 우상이 되어 하나님보다 앞서 있으면, 그것은 천국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된다”라는 교훈이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은혜로 역사하실 때, 부자든 가난한 자든 모두 구원에 이를 수 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천국에 가려면 반드시 가난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구원에 이를 자로 선택된 자로서는 재물에 묶이지 않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의 이 가르침에 대한 많은 해석들이 신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3세기에, 오리겐 (Origen)은 이 말씀을 문자적인 의미로 해석하기보다는 영적으로의 해석을 강조했다. 즉, 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부에 집착하고 재물을 신뢰하는 마음이 문제라고 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라는 이 말씀은 물질적 소유보다는 영혼이 욕망에 사로잡힌 상태를 지적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영혼이 세상적 욕망을 대표하는 물질에 사로잡혀있다면 어찌 그에게 구원이 임할 수 있겠는가!

 

4세기의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John Chrysostom)는 재물이 많으면 그것이 탐심과 교만을 불러일으켜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게 만든다고 설교했다. 하지만 가난한 자라 할지라도 탐심과 욕망에 사로잡히면 동일한 위험에 빠진다고 경고했다. 어찌 그러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문제는 부 자체가 아니라 부에 대한 태도라고 강조했다.

 

어거스틴 (Augustine)은 이 본문을 인간의 구원론과 연결했다. 인간은 자기 힘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으므로,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는 이 구절을 강조했다.

(막 10:27)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선택된 자들만이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원리를 설명한 것이다. 구원을 위한 선택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고유한 주권이다.

 

어그스틴의 주장은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가난 자체가 구원의 조건은 아니며, 사랑(카리타스)으로 부를 사용하면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라고 했다.

 

13세기의 중세 시대의 신학자인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재물 그 자체는 악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사랑하고 집착하는 것이 악이다.”라고 정리했다. 부 자체는 하나님이 주신 피조 세계의 일부이며 선하지만, 탐욕(avaritia, 탐심)이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부자는 자선과 나눔을 통해 구원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보았다.

 

16세기의 종교개혁가인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부자 청년의 이야기를 율법과 복음의 대조로 보았다.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으며, 부자 청년처럼 결국 무력하게 된다. 부는 인간이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는 “우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구원은 가난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16세기의 장 칼빈(John Calvin)은 그의 주석에서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씀을 부의 속성 때문이라고 보았다. 즉, 부는 자연스럽게 교만, 탐욕, 자기만족을 불러일으키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부를 의지하게 만든다고 보았다.

 

그러나 칼빈은 이 말씀을 부의 전면적 부정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이 은혜로 부자를 깨뜨리시고 변화시키시면, 구원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부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만 바르게 사용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결론적으로, 교회사 전체 전통에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라는 말씀은 곧 부 자체를 악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 대신 의지하게 만드는 영적 위험성을 지적한 것으로 이해되어왔다.

 

만약에 구원에 이를 자로 선택된 자 중에서 하나님께서 이 땅 사는 동안에 넉넉한 재물을 허락하셨다면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 “이 재물은 나의 육신의 쾌락이나 안정을 위해서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단으로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다”라는 그 사실이다.

 

그러니 이 땅에서 특별히 물질의 복을 받은 자는 이를 이용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하게 드러내는 그 일을 잘 감당하는 지혜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이시여! 당신께서 제게 재물을 주시면 그것으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는 그 일에 사용할 수 있도록 저를 인도 하옵소서!”라고.

 

하나님은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어떤 형태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각기 다른 달란트를 허락하신다. 그것이 많든 적든 간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사용하기에는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

 

어떤 이에게는 말씀을 잘 전하고 가르치는 지혜를 주시고, 어떤 이에게는 남다른 기술을 얻게 하시고, 어떤 이에게는 특별히 재물을 잘 다루는 재능을 주신다. 이 중에서 물질의 복을 허락받은 자는 그 물질을 다루는 재능도 함께 받는다.

 

그 재능을 살리는 일은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다. 하나님께서 그리하심은 그 재능을 잘 살려 당신의 영광을 이루는 그 일을 하게 된다면 그것을 천국에서의 상급 베푸실 구실로 삼아주려 하심이다.

 

따지고 보면 그것이 정말로 그의 공로가 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그 재능을 주지 않으셨다면 그가 그런 결과를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공로로 삼아주시는 것은 그를 지극히 사랑하심에서 오는 은혜의 선물인 것이다. 과연 그렇지 아니한가?

 

이러한 다양한 달란트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 일을 그들이 온전히 이룰 것이다. 그러니 물질의 복을 크게 받은 자들은 그 물질의 풍부함을 인하여 이웃을 업신여기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한 행위는 지극히 우매한 자로서의 어리석은 짓일 뿐이다.

(엡 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엡 4: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은 결국 "재물이 있는 자"가 아니라 "재물에 매여 있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신 것이다. 때로는 가난한 자도 탐욕에 빠질 수 있고, 원망에 가득 차 있을 수도 있다.

 

오직 심령이 가난한 자, 곧 자기 힘과 능력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음을 잘 알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만이 천국을 소유할 수 있음이다.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그런데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부가 곧 하나님의 축복 증거로 여겨졌다. 그들의 이 잘못된 물질관을 바로 잡는 것은, 곧 그들을 구원하여 살리시려는 예수의 입장에서는 그의 사역의 첫걸음일 수 있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재물이 오히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삶에 방해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가르치신 것이다.

 

누구라도 재물을 신뢰하면 하나님을 신뢰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하니 재물에 매여 종노릇 하는 자가 되지 말고, 그 재물을 잘 다스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노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