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27.(2020년 마지막 주일)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주님의 모범을 본받는 참 제자가 되자”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무는 길목에 섰다.
서산을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니 문득 주님의 그 사랑이 떠오른다.
그 붉은 저녁노을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구속을 위해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보혈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주님의 그 사랑만큼 아름다운 것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그것을 잊고 살아왔다. 내 삶이 고되고 바쁘다는 그 핑계로.
그러나 주님의 그 희생으로 새 생명을 얻게 된 우리가 그 사랑을 잊고 사는 것은 참된 생명을 얻은 자로서는 참으로 부끄러운 삶이다.
자연을 통해 하나님 당신의 그 뜻을 드러내신 것을 일반계시라 한다. 저녁노을이 매일 매일 반복되는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의 현상이다. 왜 그렇게 하나님은 창조하셨을까?
일반계시에 속하는 한 현상인 저녁노을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그 위대한 구원사역의 의미를 드러내어 보이셨다. 저녁노을을 그렇게 붉게 하신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그 위대하신 사랑의 행위를 드러내고자 하심이다. 어리석어 잊어버리기를 잘하는 우리를 생각하사 매일 매일 그 십자가에 흘리신 그 피를 우리로 하여금 잊어버리지 않게 하사 늘 은혜를 생각하게 하사 우리의 구원이 완성될 수 있게 하려고 하신 하나님의 지극한 배려이셨다.
우리는 늘 주님을 배반하는 삶을 살아왔지만 주님은 그런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과연 주님은 그러하셨다. 성경은 이 사실을 너무나도 실감나게 기록하고 있다.
주님의 수제자, 베드로. 그는 오늘날 주님을 따르는 우리 모두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지금 우리는 누구라도 주님을 잘 믿고 따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점에서는 우리 모두는 베드로이다. 그는 주님의 제자 중에서 스스로 자신이 주님을 가장 열정적으로 섬기며 따른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주장했다.
그러나 그 베드로가 결정적인 순간, 주님을 배반하고 떠나버린다. 그것을 주님이 모르셨을까? 이미 그 사실을 아시고 그에게 미리 예언하셨다. 그 때 베드로는 강하게 그것을 부인한다. 결코 그러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 모습에서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베드로일지라도 그를 사랑하시고 그를 위해 기도하셨다. 그는 참사랑의 하나님이셨다.
(막 14: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막 14: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막 14: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
(막 14:3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막 14:31)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주님을 배반할 그 베드로임을 아셨음에도 주님은 진실로 그를 위해 성부하나님께 기도하셨다.
(눅 22: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눅 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눅 22:33) 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은 성부하나님의 우편에 계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신다.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게 하여달라고. 이는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그 사랑의 행위이신 것이다.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7: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요 17:7)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요 17: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요 17:9)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요 17: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요 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 17:12)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요 17: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7: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요 17:15)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요 17: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요 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 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요 17:19)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십자가의 그 모진 고통이 전해져 오는 그 순간에도 주님은 기도하셨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 누구인가?
그 때의 그 로마병정들은 바로 오늘의 우리들을 상징하는 자들이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오로지 우리의 죄 때문이니 우리가 곧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인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성부하나님께 간구하시는 기도를 하고 계신다.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그 큰사랑의 은혜를 어찌 우리는 잊고 사는가!
(눅 23: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눅 23: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주님을 십자가에 매달고 조롱거리로 삼은 저들을 미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의 그 무거운 죄를 아시고 그 무거운 죄를 사하여 달라고 죽으시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 간구하시는 그 마음, 원수에게 호의를 베푸는 그 사랑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주님의 그 사랑에 보답하는 길임을 우리는 안다. 이 한 해가 저무는 이 순간에 다시 한 번 우리의 가슴 속에 새겨놓자.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그 가르침이 내 마음을 울리는가?
(눅 6: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눅 6: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이제라도 주님의 그 마음을 닮자. 그래서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담아 이 한 해를 마무리 하자.
사단에 속하지 않은 자들 중에 내게 원수된 자가 있는가? 그런 자를 사랑하라 하신 주님의 그 가르침을 진심으로 따르는 우리가 되자. 그래서 그런 자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사랑은 먼저 받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주는 것이다. 남이 내게 손을 내밀기 전에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참 사랑이요, 주님이 가르쳐주신 그 사랑이다.
그렇게 사랑한 그 제자, 베드로. 그는 분명 주님의 입장에서는 원수된 자의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그런 자에게 주님이 먼저 찾아오셔서 손을 내미셨다.
(요 21: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 21:16)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요 21:17)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주님을 부인했던, 주님을 배반했던 그 베드로를 용서하시고 내 양을 돌보라하심으로 그를 포용하셨다. 원수를 사랑으로 용서하시는 위대한 그 모범을 우리에게 친히 보이셨다. 우리도 이와 같이 함으로써 이 한 해를 마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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