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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의 비밀

by 영동장로교회 2020. 7. 19.

2020. 7. 19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삼위일체의 비밀”

 

 

삼위일체의 교리, 그것은 머리로는 결코 깨달을 수 없는 기독교의 교리이다.

오직 가슴으로 깊이 공감함을 통해 그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하나님의 독특한 존재 양식이시다.

 

성부하나님이 성자하나님을 보내실 때의 그 심정을 우리가 어떻게 머리로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진리를 우리가 머리로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는 일이었다면 하나님은 굳이 사람을 남녀로 창조하지 않아도 되셨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진리를 머리로만 깨달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하나님은 인생을 남녀로 창조하시고 그들에게서 자식을 보게 하셨다.

(창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흔히 남녀 간의 사랑을 에로스라 표현한다. 그러나 참된 부부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더 이상 그들은 에로스의 사랑관계에 있지 않다. 그들의 사랑은 아가페의 그 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상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놓는 그 사랑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그들의 자녀를 위해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는 그 일조자도 아무런 조건없이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단계에 이른 자만이 하나님의 삼위되심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 진리를 이해하고 드디어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그 경지에 이르게 하시려고 이 땅에서 우리로 하여금 남녀의 자리에 각각 서게 하시고 결혼을 통해 자손을 보게 하신 것이다.

(창 4: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이 땅에서 이 진리를 깨닫게 되면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 날에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계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계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계 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계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계 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 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계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그 때는 우리가 더 이상 남녀의 관계를 통한 부부의 관계도 필요치 않다. 자녀와의 관계도 더 이상 의미를 갖지 않게 된다. 결혼이 필요치 않은 곳이니 굳이 남녀라고 구분을 지을 필요도 요구되지 않는 곳이 천국이다. 오직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만 맺어지고 이웃하는 모든 자들과는 더함도 덜함도 없는 같은 정도의 사랑을 주고받는 세상일 것이다.

(막 12:19)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거든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막 12:20)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아내를 취하였다가 후사가 없이 죽고

(막 12:21) 둘째도 그 여자를 취하였다가 후사가 없이 죽고 셋째도 그렇게 하여

(막 12:22) 일곱이 다 후사가 없었고 최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막 12:23)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을 당하여 저희가 살아날 때에 그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막 12:2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막 12:25)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이 땅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그 사랑을 가슴으로 깨닫게 하시는 그 일은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셔서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그 심정을 오롯이 느껴 깨달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참사랑의 행위이시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그 아들을 보내신 그 심정을 우리가 알 수 있을까?

그것을 느끼고 깨닫도록 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남녀로 만드셨고 자녀를 낳게 하셨다.

 

자녀를 낳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그 사랑을 이해할 수 있게 하신 그 방법 외에 또 다른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있었다면 하나님은 그런 방법을 이용하셨을 것이다. 하나님이 남녀로 지으신 것은 그 방법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보신 것이리라.

 

성자하나님이 성부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가 그 사명을 받들 수 있었을까?

또한 성부하나님이 성자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그 때 우리를 구속하시려고 성자하나님을 보내신 그 일이 효력이 있었을까?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드릴 때 그가 그 아들 이삭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 제사에 효험이 있었을까?

그 아들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을 진실로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가 참된 제물이 될 수 있었을까?

그 아비 아브라함을 너무나도 사랑하였기에 그 순간의 아브라함이 하여야할 그 일을 그 아들 이삭이 자원하여 기꺼이 이루어 주려고 자신이 스스로 단 위로 걸어 올라간 것이다.

(창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창 22: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 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창 22: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창 22:5)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창 22: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창 22:7)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창 22:8)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창 22:9)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창 22: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창 22: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이것이 성자하나님이 성부하나님을 사랑하셨기에 성부하나님의 그 뜻을 이루어주시려고 이 땅에 제물이 되시려고 오셨던 그 일의 모형일 것이다. 이것이 참사랑, 아가페였다. 그 때 성부하나님의 심정을 그 때의 아브라함만이 모든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온전히 가슴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이 땅의 참된 아비된 자들은 성부하나님의 심정을 이해할 것이요, 이 땅의 참된 자녀된 자들은 성자하나님의 그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이런 진리의 깨달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남녀로 각각 만드시고 결혼을 통해 자녀를 낳게 하심으로, 그리고 자녀가 되게 하심으로 깨닫게 하셨으니 그와 같은 제도를 주신 것은 우리에게 최고의 선물이었고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최대 행복 자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넘치는 이 하나님의 우리에게 베푸신 그 크신 은혜를 어찌 감당하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