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진리에 관하여 - 왜 하나님이 진리이신가?(2부)”
“주로 말미암는다”라는 것은 모든 만물이 성자 하나님을 통하여 창조되고 유지되며 섭리 속에서 다스려진다는 신앙의 고백이다. 성자께서는 성부와 본질을 같이 하시는 ‘말씀(로고스)’으로서 창조 사역의 중재자이시며, 만물의 존재 근거를 이루신다.
따라서 주님께서 창조의 매개가 되신 것은 그분이 곧 진리이시며, 하나님 자신으로서 만물을 존재케 하는 능력을 가지셨기 때문이다. 이 말은 창조가 삼위 하나님의 내적 사역 속에서 성자에 의해 수행되었음을 선포하는 신학적 표현이다.
주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은 모든 만물의 궁극적인 목적(Goal)이 하나님께 있음에 대한 선포이다. 이는 “진리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밝힘이다.
(고전 8: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진리의 근원으로서의 의미를 지닌 이 구절은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을 '물(水)'이라는 물질에서 찾으려 했던 시도와는 대비되며, 진리의 근원이 물질이나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초월적인 존재 자체에 있음을 밝힘이었다.
만물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것은, 하나님이 만물을 존재하게 하신 분(Being)이시므로, 만물에 대한 모든 참된 지식(진리) 역시 그분에게서 비롯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함이다. 이는 존재론적인 의미에서의 진리를 가리킴이다.
(시 36:9)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골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골 1: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이 구절을 통해 진리의 근원이 통일적 근원을 가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과학적 진리, 철학적 진리, 신학적 진리 등 모든 영역의 진리가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통일된 근원을 가진다는 신학적 토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신학적으로 정의된 또 하나의 진리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 즉 계시된 말씀이다. 이는 본체로서의 진리가 드러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Self-revelation)의 내용, 즉 진리이신 계시된 말씀을 통해 인간에게 전달된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진리가 드러나니 그것은 말씀이었고, 그것이 기록된 것이 성경이다. 그래서 성경(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은 참된 계시이며, 신학에서 진리를 담고 있는 가장 권위 있는 자료가 될 수 있었다. 궁극적으로 성경은 인간의 삶과 구원에 필요한 모든 진리를 담고 있다.
(요 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신학적인 관점에서의 진리는 하나님 자신을 진리로 한다. 그래서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본질을 진리라고 한다.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따라서 신학적 진리는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의 속성에서 출발한다. 즉, 진리는 단순한 개념이나 규칙이 아니라 인격적 실재이다.
또 신학에서는 사물과 존재의 참된 이치를 진리로 본다. 이는 하나님의 속성, 말씀, 창조 질서 등을 통해 진리가 드러남을 의미한다.
이것은 철학에서 말하는 보편타당하고 불변하는 참됨과 연결되기는 하지만, 신학에서는 초월적·인격적 근원이 강조되고 있다.
신학에서 강조하는 진리의 개념은 하나님의 계시로 나타나는 것을 포함한다. 하나님의 뜻과 성품은 인간이 독자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 계시를 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다. 그래서 성경,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성령의 사역을 통해 인간은 진리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시 119:160)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가 영원하리이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요 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요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이러한 신학적 진리의 특징은 보편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진리가 모든 존재와 사건에 적용되는 하나님의 속성이시라는 것이다.
(시 119:89)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사 45:22)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며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사 45:23)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나의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약하리라 하였노라
(롬 2: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롬 2: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신학적 진리의 또 다른 특징은 불변성(不變性)이다. 이는 시간과 상황, 시대와 문화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진리가 변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진리는 하나님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며, 하나님 자신이 변함이 없으신 분이기 때문이다.
(말 3:6)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히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약 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고 변함이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진리는 인간의 이해나 시대적 조건에 따라 달라지지 않으며, 모든 시대와 상황 속에서 동일하게 참된 실재로 남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는 이 말씀은 곧 진리의 불변성을 가장 명확히 증언하는 구절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진리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동일하게 유효하다.
(히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참되다는 것도 신학적 진리의 특징이다. 신학적 진리는 거짓이 없으며 완전하게 참되다. 신학적 진리가 철학이나 과학에서의 진리와 유독 다른 특징은 인격적이라는 것이다. 신학에서의 인격적 실현으로서의 진리는 하나님의 인격과 행위 속에서 드러남을 말한다.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그리고 신학의 진리는 계시 가능함에 있다. 진리의 계시 가능성은 인간이 진리를 알 수 있도록 나타남을 의미한다.
(롬 3: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민 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일 5: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출 34: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철학은 이성적·논리적 추론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지만, 신학은 철학적 진리 탐구를 포함하되 하나님의 계시와 인격적 실재를 통합함에서 그 차이를 보인다. 즉, 신학적 진리는 철학적 진리에 초월적·인격적·계시적 차원을 더하여 확장된다.
결국 신학적 진리란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에서 비롯된 참됨으로, 보편성과 불변성을 가지며, 하나님이 계시를 통해 인간에게 나타내시는 인격적·초월적 현실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그 본질에 있어서 진리이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진리이시라는 이 고백은 어디에서 기원하며, 무엇을 근거로 하는가?
이는 단순한 도덕적 진실성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성경은 하나님을 “모든 것의 근원”이라 증언한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은 모든 원인의 원인이시며, 그분 자신 안에 존재의 근거를 두신 자존자(自存者) 이시다.
(행 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출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만약 하나님의 존재가 어떤 외부적 도움이나 원인에 의해 규정된다면, 그는 더 이상 모든 원인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은 절대자(絶對者)이시다. 절대자는 오직 자신에 의하여 결정되는 존재, 곧 자결정자(Self-determining Being)가 되신다.
그렇다면 자결정하시는 하나님께서 만일 어떤 외적 조건이나 사유(事由)에 의해 영향을 받으신다면, 그분은 더 이상 절대자(Absolute Being)가 아니시다. 그러나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은 결코 외적 원인에 의해 규정되거나 제한받지 않으신다.
그분의 뜻은 스스로 정하시는 뜻이며, 그분의 행위는 그분 자신의 선(善)과 완전성에서 비롯된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자존성(自存性)이며, 동시에 진리의 절대성을 보증하는 근거가 된다. 하나님은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으시며, 모든 존재는 오히려 그분께 의존한다.
따라서 진리 또한 하나님 바깥에서 정의되거나 증명될 수 없다. 진리는 하나님 자신에게서 나와, 다시 하나님 자신 안에서 완성된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은 바로 이 사실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선언이다.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만약 하나님의 행하심 가운데 그릇됨이 있다면, 그는 절대자가 될 수 없다. ‘그릇됨’이란 곧 ‘흠’이며, 흠은 부족함을 뜻한다. 부족함은 완전하지 못함을 의미하므로, 이는 절대자의 정의에 위배된다.
하나님을 ‘원인 없는 원인(無因之因)’으로 정의한다면, 그 안에 어떤 결함이나 오류가 있다는 것은 자가 모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는 오직 ‘참’만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또한 하나님의 존재 자체에는 허위나 왜곡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러하므로 하나님은 참된 진리가 되신다.
또한 절대자의 속성은 불변성(immutabilitas)을 본질로 가진다. 만약 어떤 존재가 시간과 장소, 상황에 따라 변한다면, 그것은 결코 절대자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스스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나는 여호와라, 변하지 아니하나니”라고 하셨다.
(말 3:6)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분의 불변성은 곧 그분의 신실성과 완전성을 보증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기에 절대자이시며, 절대자이시기에 불변하신 분이다.
하나님은 모든 원인의 원인이 되시기에 그 존재는 보편성(universality)을 지닌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은 특정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모든 피조세계의 근원적 기준이 되시며, 모든 진리의 표준이 그분 안에서 비롯된다. 이 보편성과 불변성이 바로 진리의 근거이며, 진리이신 하나님의 존재적 속성을 구성한다.
결국, 하나님이 진리이시라는 고백은 단순히 그분이 거짓말하지 않으신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곧 하나님이 그 존재 자체로 진리의 근원이며, 모든 참됨의 궁극적 표준이라는 뜻이다. 그분의 말씀은 진리이며, 그분의 뜻은 진리이며, 그분 자신이 진리이시다.
따라서 “하나님은 진리이시다”라는 신앙의 선언은, 인간의 인식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궁극적인 존재론적 결론이자, 동시에 신앙의 중심 고백이다.
그분 안에서 거짓은 설 자리가 없으며, 그분 밖에서는 참이 설 수가 없다.
신학에서의 진리는 단순히 개념적 정의나 철학적 명제가 아니라 인격적이며, 하나님 자신의 존재와 사역 안에서 드러나는 실체라고 이미 언급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과 성품을 세상 가운데 드러내신 사건이 곧 ‘계시(啓示, revelation)’이며, 그 계시의 절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남이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학에서 진리를 아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사건이다. 요한복음은 이 사실을 분명히 드러낸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리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 하여, 영원 전부터 존재하신 진리의 말씀이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셨음을 선포한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는 진리가 단지 초월적 영역에 머무는 관념이 아니라, 역사 속으로 임하신 하나님의 인격적 현존임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가 드러났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자기 계시(Self-revelation)가 완전하게 성취되었음을 뜻한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말씀하시고, 율법과 예언을 통해 당신의 뜻을 나타내셨으나,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한 진리의 전달자가 아니라, 진리 자체의 현현(顯現)이시다.
(히 1:1)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히 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그분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선언하심으로써, 진리를 어떤 추상적 이념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동일시하셨다.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진리는 또한 우리를 살리시려는 구속사적인 진리이다.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동시에 드러나며, 이는 진리가 단순한 지적 사실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케 하는 생명적 능력임을 보여준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이 말씀에서 ‘진리를 안다’라는 것은 곧 말씀 안에 거하고, 말씀의 주체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삶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는 말씀을 안다고 말하는데, 과연 주님과 연합하는 삶을 살고는 있는 것인가?
(요 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결국 말씀으로서의 진리는 문자나 교리의 형식에 갇히지 않는다. 그것은 인격적이며, 역사 속에서 실체로 드러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다. 성경은 그 계시된 말씀의 증언이며, 성령은 그 말씀을 통해 오늘도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시다.
(요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러므로 신학적 의미의 진리는 언제나 그리스도론적 중심성을 지닌다. 진리는 곧 말씀으로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계시되었으며, 그분 안에서만 참되게 인식될 수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깊이 아는 것이 중요하니,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삶을 살아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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