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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에 관한 소고(1)

by 영동장로교회 2024. 11. 24.

2024. 11. 24.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하나님의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에 관한 소고(1)”

 

 

누구나 어릴 적 기억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어머니께서 동생을 낳던 그 날에 대한 기억이 가장 오랜 기억일지도 모른다. 또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그 기억도 그중의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그 순간에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사건은 기억에 강한 흔적을 남겼고, 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하는 것이리라.

 

나 역시 그런 기억의 파편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고등학교 다닐 때쯤에는 갑자기 어느 순간에 “왜 내가 살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다가왔다. 그전에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힘든 일들을 부둥켜안고 끙끙거릴 때마다 “왜 이런 힘든 일을 던져버리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가? 차라리 이 삶을 끝내버리면 편안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때 내게 다가온 그 질문은 그래서 오랜 숙제가 되었다. 도대체 왜 살아가야만 하는가?

 

그러다가 어느 날 내 눈에 띈 한 문장,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라는 그 말씀으로 인해 내 삶은 급격히 변화되기 시작했다. 이 답을 보기 전까지의 내 생각은 지극히 염세적이었다. 살아야 될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방황했었기에 당연한 현상이었다.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그러나 그 답을 희미하게나마 찾았으니, 내 삶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으리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 일을 행하는 삶일 것이다. 예수께서도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가 내 제자가 된 것을 이로써 나타내게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고, 그분의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 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요 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그래서 그 이후로는 내가 무엇을 하든지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그 일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또 그 일을 이루기 위한 그 삶을 살았다. 그러면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 즉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대개는 다음과 같이 답을 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란,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성경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첫 번째 방법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며,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삶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중요한 방법이 된다.

(마 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2.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는 삶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은 그분을 사랑하고 경배하는 삶이다.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과의 관계를 깊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중요한 부분이 된다.

(마 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 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 열매를 맺는 삶이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가 내 제자가 된 것을 이로써 나타내게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믿음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믿음,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이다. 이러한 열매를 맺음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

(요 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4.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삶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삶이기도 하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삶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 된다.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5. 정직하고 도덕적인 삶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은 정직하고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거짓과 부정적인 행동을 경고하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은 윤리적으로 바르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임을 강조하고 있다.

(미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골 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6.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계획을 믿는 삶이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이름을 높이는 삶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중요한 부분이 된다.

(롬 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롬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란 대체적으로 이 여섯 가지의 유형에 속하는 일을 행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그 삶을 탐구한다면 어디 이 여섯 가지에 해당하는 일만 있겠는가!

 

사람마다 저에게 주어진 달란트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니, 그 모습을 헤아려 구분한다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되느냐?”라고 하는 질문에 명쾌한 답을 하기도 참으로 곤란할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살피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에 대한 드러난 현상만을 살펴 묘사한 일이 될 것이라 할 것이다. 우리가 자연 현상을 관찰하면 때와 장소에 따라 각기 다른 현상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현상만 보고 묘사한다면, 그 묘사된 결과는 실로 엄청난 숫자가 될 것이다. 그러면 차라리 그 현상을 있게 한 그 본질이 무엇인가를 살피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수학의 경우가 그러하다.

 

학교 다닐 때 수학 시험을 치러본 경험은 다 있을 것이다. 시험에서 틀린 문제를 다시 공부해서 다시 시험을 본다 해도 그 문제가 그대로 출제되지 않는 한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한다. 틀린 문제가 다시 그대로 출제되는 경우는 잘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그러한 문제가 출제될 수 있도록 한 그 본질, 즉 공식을 깊이 이해하는 편이 좋은 성적을 얻게 하는 길이 된다. 원리를 알면 여러 가지 현상이 다 다르게 드러날지라도 같은 원리에서 나온 것이니 하나의 문제로 볼 수 있게 된다.

 

신앙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의 그 원리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이해한다면 그 원리에 따라 행하면 되는 일이다. 그래서 그 원리가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일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에서 그 원리를 찾아내기 위해서 선행해야 하는 질문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 무엇이었느냐?“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왜 만드셨느냐?”라고 하는 것은 ”인간 창조의 목적이 무엇이었느냐? “하는 그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이렇게 질문한 것에 대한 답은 곧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느냐? “에 대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통상적으로 이 질문을 하면 대개 다음과 같은 답변을 듣게 된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성경은 인간 창조의 목적에 대해 명확히 언급하며, 그 목적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다루고자 하셨는지 알 수 있는데, 그 주요 목적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과의 교제를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들과 교제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셨고, 그 목적은 인간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분과 교제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던 모습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과의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창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원하셨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며 그분의 이름을 높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이사야 선지자는 "내 이름으로 불리우는 모든 자,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인간의 존재 목적 중 하나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사 43: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3.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존재로 만드심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서로 사랑하고, 그 사랑을 통해 하나님을 반영하는 삶을 살도록 창조하셨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라"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두 가지 중요한 계명을 주셨다. 인간은 서로 사랑하며 공동체를 이루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보여야 할 존재로 창조되었다.

(마 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 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 22: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관리자가 되게 하심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땅을 다스리고 모든 피조물을 관리하라고 명하셨다.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창조 세계를 돌보고, 보존하며, 하나님의 뜻에 맞게 관리해야 할 책임이 주어졌다. 이를 통해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권위와 책임을 지고 세상을 다스리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5. 자유 의지와 선택의 자유를 누릴 자가 되게 하심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다.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선택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자유가 있으며, 그 자유 의지에 따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선택하도록 하셨다. 이는 하나님이 강제로 인간을 사랑하거나 순종하게 하시지 않고, 자발적인 사랑과 순종을 원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시며, 인간에게 선택할 자유를 주셨다.

(창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창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6.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하게 하심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 가기를 원하셨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서, 복음을 전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존재로 살아가야 함을 강조하셨다.

(마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마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7.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시기를 원하셨다. 에덴동산에는 생명 나무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과의 관계를 상징한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통해 인간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다"라고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인간의 영원한 생명의 열쇠이다.

(창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통상적으로 하나님의 인간 창조목적에 대해서는 이상과 같은 답을 얻는다. 그런데 여기에 언급된 일곱 가지도 모두 ‘현상’이다. 그 현상의 이면에는 불변하는 진리에 해당하는 ‘원리’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 원리는 이 일곱 가지를 하나로 묶을 수 있게 해준다. 이 일곱 가지를 하나로 묶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니신 속성 중에서 ”하나님의 단순성”이라는 것이 존재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단순하다는 것은 현상이 여러 가지로 드러날지라도 그중에 그 현상을 지배하는 원리가 존재함을 의미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우선 첫 번째 언급된 현상부터 살펴보자.

 

첫 번째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이루시려고 사람을 만드셨다고 하는 주장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목적에서 작용하고 있는 그 원리에 따른 결과로서 드러난 현상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들과 교제하려고 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은 인격적이심을 그 속성으로 하고 계신다. 인격적이시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그 대상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대상이 되는 천사와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도 인격을 부여하셨다.

 

하지만 그 대상에 대해서는 구별하셨는데, 천사는 부리실 종으로 지으셨고, 사람은 특별히 인격적 교류를 하시되 사랑으로 하시기로 하셨다. 그래서 사람은 당신의 자녀 자격으로 지으셨다. 이는 하나님의 중요한 속성이신 ‘사랑’으로 하신 일이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은 오직 사랑할 대상으로 지으시었지만 천사는 하나님의 뜻을 집행할 존재로 지으심에서 구별되게 하셨다. 그러하실지라도 천사를 전혀 사랑하지 않으심은 아니다. 종이라도 주인이 베푸는 사랑이 있듯이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음에는 분명하나 사람이 받는 그 사랑과는 구별된다.

 

특히 타락한 천사에 대해서는 오직 그 책임만을 물으시니 그들에게는 구원하심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사람은 오직 사랑할 대상으로 지으셨으니 죄인 된 상태에 있을지라도 구원하시는 은혜의 사랑을 베푸시는 것이다. 타락하여 죄악한 상태에 있기는 타락한 천사도 마찬가지지만 그들에게는 애초부터 구원에 대한 계획이 없으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그들과 교제를 나누기 원하셨던 그 목적은 하나님 편에서의 유익을 구하기 위한 그 목적이 아니었다. 만약 하나님이 홀로 계시기가 심심하셔서 그것을 해소하실 목적에서 사람을 창조하셨다면, 이는 하나님 편에서의 유익을 추구하기 위한 그 목적이었다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을 그 속성으로 지니셨기에 오직 사람을 사랑하실 대상으로 만드셨기에 이는 전적으로 우리 사람 편에서의 그 유익을 위한 일이 되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가지도록 창조하셨던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한다는 것은 우리 속에 하나님이 담아두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의 그 속성인 사랑이 있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능히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한번 생각해보라. 이 세상에 어떤 유명한 사람이 있다고 할 때, 그 사람을 아무나 사랑할 수 있는가? 내가 사랑한다고 한들 그 사람이 나의 사랑을 받아주겠는가?

 

또 세기의 미인이 있다고 하자. 내가 그 여인을 사랑한다고 한다면 그 연인이 나의 사랑을 받아주겠는가! 이 세상의 어떤 사람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 존재인 하나님께서는 나의 사랑을 받아주시려고 나를 만드셨다는 것이 아닌가! 과연 우리는 이 놀라운 은혜를 이해하기나 하는 것일까!

 

내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셨다는 성경의 그 가르침은 그래서 참으로 놀랍고 놀라운 은혜의 가르침이 아닌가!

(요일 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첫 번째 언급된 인간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려고 하신 일이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언급된 인간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 일을 내가 원한다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해 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었겠으며,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를 만드셨다는 것 자체가 우리를 사랑하심이었다.

 

우리를 사랑하시니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 자리에 세우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 일을 하게 하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 일을 한다면 그 자체가 우리의 공로인 듯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 작동하고 계셨던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일도 내가 한 공로가 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으로써 얻게 될 그 상급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어찌해서든지 우리에게 상급을 쥐여주려고 하신 그 사랑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우리를 지으셨다는 것도 그 근저에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그 사랑의 위대한 작용이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세 번째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존재가 되게 하실 목적으로 지으셨다는 것이다.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공동체를 이루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보여야 할 존재가 되게 하시려고 창조하셨다는 그 주장도 결국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그 사랑이 그 근저에서 작동하고 있음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당신의 형상과 모양인 그 사랑으로 지으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우리가 사랑을 드러낼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이 우리의 본성에 심어 놓으신 그 사랑을 드러내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일종의 도전 행위가 될 수 있다.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그 뜻에 따라 그 사랑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지극한 불순종이다. 하나님의 그 명령에 따르지 않는 것만큼 명백한 불순종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그 은혜를 이해한 자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그 뜻을 따라 행해야만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그 사랑을 받은 것에 대한 보답이 될 것이다. 은혜를 받은 자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어떤 행위를 하는 그것은 그의 공로가 될 수가 없다.

 

그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의무에 해당할 뿐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을 실천한 존재로 만드시고 하나님의 그 사랑을 세상에 드러낼 존재로 만드셨다는 것도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그 사랑이 작동한 결과가 될 뿐이다.

 

 

 

(다음 주에 2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