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8.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아브라함과 야곱과 요셉의 기록이 전하는 구원사적 의미에 관하여(1)”
성경 창세기에는 대략 5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그중에서 가장 길게 언급된 사람은 야곱이다. 야곱의 이야기는 창세기 25장에서부터 시작하여 50장에 이르러서야 끝을 맺고 있다. 왜 야곱의 이야기가 그 많은 사람 중에서 그렇게 가장 길게 기록되었을까?
그것은 그 야곱이 바로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상징하고 있음 때문이다.
야곱은 에서의 쌍둥이 동생으로 태어났다. 동생으로 태어나는 그 순간에서도 그는 형 에서의 발꿈치를 붙들고 나왔다. 이는 그 형 에서의 자리를 탐함이었다. 그의 이기적인 탐욕은 그 후에도 그의 삶 속에서 이어졌다. 그의 이기적이고 교활한 모습은 형 에서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빼앗는 사건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창 25:24)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동이가 있었는데
(창 25:25)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갖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창 25:26)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이었더라
(창 27:6) 리브가가 그 아들 야곱에게 일러 가로되 네 부친이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창 27:7)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어 나로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창 27:8)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창 27:9) 염소떼에 가서 거기서 염소의 좋은 새끼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부친을 위하여 그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창 27:10) 네가 그것을 가져 네 부친께 드려서 그로 죽으시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창 27:11) 야곱이 그 모친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창 27:12)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뵈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창 27:13) 어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
(창 27:14) 그가 가서 취하여 어미에게로 가져왔더니 그 어미가 그 아비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더라
(창 27:15) 리브가가 집 안 자기 처소에 있는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취하여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창 27:16) 또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그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꾸미고
(창 27:17) 그 만든 별미와 떡을 자기 아들 야곱의 손에 주매
(창 27:18)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른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창 27:19) 야곱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청컨대 일어나 앉아서 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의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야곱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무리한 방법을 쓰는 모습을 서슴없이 드러내어 보였다. 그래서 그의 초기 모습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으니, 그 모습은 주님을 만나기 전의 우리의 모습 그대로였다.
(창 28: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창 28:19)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창 28:20)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창 28:21)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창 28: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야곱을 변화시켜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세우셨다. 분명히 그의 삶이 그와 같은 극적인 변화를 이루어간 것은 하나님이 인도하신 은혜의 결과였다. 이기적이고 교활한 야곱이지만 그를 사랑하셔서 택하시고 은혜로 인도하심으로써 그를 흠모할만한 믿음의 선진으로 세우셨다. 그리하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은혜를 베푸실 것에 대한 그 약속을 그대로 드러내어 보여주심이었다.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며 자신의 약함과 교만을 인정하고,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는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새로운 삶을 시작함에 대한 상징적인 순간이 되었다.
천사와 씨름을 한 것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한 것을 말한다. 그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으면 그 튼튼한 환도뼈조차도 어긋나고 말았을까! 이는 목숨을 걸 정도의 처절한 기도였음을 말한다. 그 기도하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죄인임에 대한 고백도 함께 했을 것이다.
간교하고 교활한 삶을 살았으니 분명 자신이 죄인임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 회개가 처절했음이 그의 환도뼈가 어긋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산모가 아기를 낳을 때 느끼는 그 고통이 얼마나 크던가! 이는 환도뼈가 벌어지는 그 순간의 고통이다. 야곱이 바로 그 고통을 당한 것이다. 처절한 기도 속에서의 그 고통을 감내해낼 때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바꾸신 것이다. “이제부터 너는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
야곱이라는 이름은 원래 "발꿈치를 잡다" 또는 "속이다"라는 말이다.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와 속이며 살았던 그의 삶이 이 이름 속에 그대로 담겨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그를 야곱이라 하지 않고 이스라엘이라 하셨다.
이는 “하나님과 싸우다 또는 하나님과 함께 이기다”라는 뜻이다. 믿음으로 승리한 자를 가리키는 이름이 아닌가!
죄인이 변화되어 의인으로 거듭난 그 모습이 이 이름 속에 담겼다. 죄를 회개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함을 입은 자에게 베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그 이름이다. 하나님을 감동하게 한 그런 처절한 회개의 기도를 통해 야곱이 의인의 자리에 섰다.
그러고 나서 야곱은 드디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이루게 된다. 그 결과로 야곱은 후에 가족을 이끌고, 형 에서와의 화해도 이루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야곱이 변화될 수 있었고, 야곱의 이 변화는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될 수 있음에 대한 증거로 드러나고 있었다.
(창 32: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창 32: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네며 그 소유도 건네고
(창 32: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창 32:25)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창 32:26)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창 32: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창 32: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창 32:29)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창 32:30)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창 32: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창 32:32)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 큰 힘줄을 친고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환도뼈 큰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이처럼 야곱의 일대기가 길게 다뤄진 그 이유는 야곱처럼 이기적이고 교활한 우리일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야곱이 변화되듯이 그렇게 우리도 하나님이 기뻐하실 자의 자리에 서게 될 것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증거로서의 기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 이야기가 얼마나 중요하고 귀한 것이겠는가! 그러했으니 그렇게 길게 설명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야곱 다음으로 길게 그 행적이 기록되고 있는 사람은 요셉이다. 그의 이야기는 창세기 37장부터 50장까지에 걸쳐서 다뤄지고 있다. 그의 이야기가 이렇게 길고 상세하게 다뤄진 것도 그의 삶이 우리에게 암시하는 바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암시하는 바가 무엇이었을까?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한 번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는 유난히도 특별하게 야곱의 사랑을 받았다.
(창 37: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창 37:4)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
요셉이 야곱으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는 것은 주님이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지극한 사랑을 받은 그것을 상징한다. 실제로 주님이 물로 세례를 받으시던 그날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심에서 드러났다.
(마 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 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그런 요셉이 형들의 시샘으로 결국에는 죽음으로 내몰리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려 한 그 모습을 그대로 예표한 일이 되고 있다.
(창 37:16) 그가 가로되 내가 나의 형들을 찾으오니 청컨대 그들의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치소서
(창 37:17) 그 사람이 가로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요셉이 그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창 37:18)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창 37:19)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창 37: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결국 요셉이 팔려 가서 애굽에서 노예로서의 삶을 산 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메시야께서 이 땅에 낮고 천한 종의 몸으로 오실 그것을 예표한 그 일이 되고 있었다.
(창 37: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골육이니라 하매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창 37:28) 때에 미디안 사람 상고들이 지나는지라 그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 올리고 은 이십 개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고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사 53: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눅 2: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눅 2:5)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눅 2: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눅 2:7)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요셉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팔려 가서 보디발의 아내에게 잘못된 고소를 당해 감옥에 갇히게 된다. 이는 주님께서도 아무런 죄도 없으신데도 고소를 당해 빌라도 앞에서 심문을 받으신 그 일에 대한 예표이다.
요셉이 갇힌 그 감옥은 바로의 시위대장이었던 보디발의 집에 설치되어있었던 것으로 왕에게 중죄를 지은 죄인들을 가둔 감옥이었다. 그러니 그곳에 요셉이 감금되었다는 것은 곧 죽음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곳에 요셉이 머문 것은 주님께서 부자의 묘지에 안치되심을 상징하는 일이었다.
(창 39: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창 39:6)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창 39:7)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창 39: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창 39: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창 39: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시무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은 하나도 거기 없었더라
(창 39:12) 그 여인이 그 옷을 잡고 가로되 나와 동침하자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가매
(창 39:13) 그가 요셉이 그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창 39:14)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도다 그가 나를 겁간코자 내게로 들어오기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창 39:15) 그가 나의 소리질러 부름을 듣고 그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창 39:16) 그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 오기를 기다려
(창 39:19) 주인이 그 아내가 자기에게 고하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창 39: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요 19: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요 19:39)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요 19:40)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요 19:41) 예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요 19:42) 이 날은 유대인의 예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요셉이 애굽왕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이집트의 총리 자리에 오른다. 이는 요셉이 애굽의 실질적인 왕이 됨이었다. 바로는 요셉에게 왕의 인장 반지를 끼워줌으로써 그가 애굽을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권한을 위임했다.
(창 41:38)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창 41:39)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있는 자가 없도다
(창 41:40)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니라
(창 41:41)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노라 하고
(창 41:42)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고
(창 41:43)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로 애굽 전국을 총리하게 하였더라
요셉이 감옥에서 풀려나 애굽의 실제적인 왕인 총리가 된 것은 주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심으로써 사탄을 이기시고 진정한 왕이심을 선포하신 그 일을 상징하는 일이었다.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 후에 기근으로 요셉의 형들이 이집트로 곡식을 사러 온다. 요셉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그 형들의 죄를 용서하며 그들을 기근으로부터 구원한다. 기근으로부터 구해줄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귀족과도 같은 삶도 살게 해주었다.
이는 하나님 앞에 원수와 같은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또한 영원한 나라의 백성으로 삼아주심에 대한 예표였다. 우리가 죄인이었음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죽음을 보지 않게 하실 뿐만 아니라 장차 왕 같은 자들로 삼으사 주님과 함께 다스릴 자로 세우시겠다는 그 약속에 대한 증거가 되게 하셨다.
(창 45: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능히 대답하지 못하는지라
(창 45: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가로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창 47:3) 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묻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고
(창 47:4) 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곳에 우거하러 왔사오니 청컨대 종들로 고센 땅에 거하게 하소서
(창 47:5) 바로가 요셉에게 일러 가로되 네 아비와 형들이 네게 왔은즉
(창 47:6)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비와 형들로 거하게 하되 고센 땅에 그들로 거하게 하고 그들 중에 능한 자가 있는줄 알거든 그들로 나의 짐승을 주관하게 하라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계 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계 22: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계 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이러한 요셉의 삶은 오실 주님을 그대로 예표하는 삶이었기에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렇게도 중요한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실 메시야를 상징하는 요셉의 이야기도 그렇게 길게 설명되고 있었다.
요셉 다음으로 길게 설명되고 있는 사람은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11장 후반부에서 등장하여 창세기 25장까지 그의 이야기가 다루어지고 있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을 그에게서 어떻게 점진적으로 이루어가시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면에서 아브라함의 삶은 선택하심을 입은 우리의 삶의 여정에 대한 본보기로서의 그 가치가 매우 크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이 이야기를 그렇게 길게 다루도록 하신 것이다. 그의 삶은 믿음, 순종, 시험, 하나님의 약속과 그 성취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다음 주에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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