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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뜻대로

by 영동장로교회 2020. 11. 1.

 2020. 11. 1  영동장로교회 최규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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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뜻대로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사람으로서 욕심을 버리는 일이 쉬울까?

 

어린 아이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울고 떼를 쓰는 것은 인간에게서 그 욕심이 본능임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애초에 인간은 그 욕심 때문에 하나님과 맺은 그 행위언약을 깨어버렸던 것이 아닌가?

 

하나님과 같아보려고 한 그 욕심이 결국 인간으로 하여금 죄인된 자의 자리에 서게 하였다. 그리고 그 후손들은 누구나 그 죄를 안고 태어나게 되었다.

(3: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3: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성경의 그 많은 예화들은 우리로 하여금 그 욕심을 버려라 하는 것을 교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세의 경우가 그렇고, 여호수아의 경우가 그렇고 기드온의 경우도 그러하다. 그리고 신약에서 베드로는 가장 대표적으로 그것을 교훈한 예가 될 것이다.

 

모세가 애굽의 왕자로 있을 때 자신의 뜻대로 자기 동족을 구하려고 하였다. 이것은 모세의 욕심이었다. 만약 그때 그가 그 일을 해내었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보다는 모세 그 자신을 드러내어 보이게 되었을 것이다.

(2: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역함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2:12)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에 감추니라

(2:13)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그른 자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2:14) 그가 가로되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 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가로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하나님은 그런 모세를 광야로 내어보내시고 40년의 세월이 지나가게 하셨다. 모세가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되기까지 40년이 걸렸다는 의미이다. 그렇다고 그 40년이 지났을 때 그가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되었던 것은 아니다. 40년 동안에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다는 기록이 없다. 이는 그가 진실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그때까지는 모세에게서의 하나님은 귀로만 들은 하나님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과의 진실한 만남을 이루지 못한 채 살아온 것이다. 하나님이 호렙산에서 그를 부르시고 그에게 사명을 맡기셨을 때까지는 그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한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여전히 자신의 뜻을 고집하는 삶을 살아온 것이었다. 그가 자신의 뜻을 꺾은 것은 하나님이 부르신 그때였으니 그 40년 동안은 여전히 자신의 뜻을 내세우는 삶이었을 것이다.

(3: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3:11)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3: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3:13)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3: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3:16) 너는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실로 너희를 권고하여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

(3:17)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3:18)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사흘 길쯤 광야로 가기를 허락하소서 하라

(3:19)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의 가기를 허락지 아니하다가

(3:20)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3:21)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갈 때에 빈 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3:22) 여인마다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우거하는 자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 자녀를 꾸미라 너희가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리라

(4:1) 모세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4: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지팡이니이다

(4: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것을 땅에 던지라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4: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잡으니 그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4:5) 또 가라사대 이는 그들로 그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함이니라 하시고

(4:6)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 손에 문둥병이 발하여 눈 같이 흰지라

(4:7) 가라사대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손이 여상하더라

(4:8)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이적의 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둘째 이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4:9) 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하수를 조금 취하여다가 육지에 부으라 네가 취한 하수가 육지에서 피가 되리라

(4:10)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4: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4: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4:13) 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4: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를 발하시고 가라사대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 그의 말 잘함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마음에 기뻐할 것이라

(4: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 입에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4: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4: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그런 모세를 통해 바른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배웠을 여호수아에게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훈련을 시키셨다. 전쟁을 앞두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했다. 나라면 그렇게 하라할 때 그 명령을 따랐을까?

(5:2) 그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5:3)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그리고 그 강한 성 여리고성을 정복하는 그 전쟁에서 참으로 희한한 전략을 지시하셨다. 그 성을 그냥 돌기만 하라는 것이다. 세상에 그렇게 전투를 하는 방법이 있는가?

 

인류 역사에서 그전에도 없었고 그 후에도 없을 이 방법을 사용하라면 나라면 그리했을까?

병법에 대해 공부한 자라면 도무지 수용할 수 없는 그 방법으로 하는 일이 쉬울까?

 

그래서 여리고 성을 도는 그 전략과 전술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그 훈련이었던 것이다. 여호수아를 비롯해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의 2세들은 그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그 훈련을 성실히 수행했고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해주셨다. 그 전쟁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감당해주셨다. 그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신 선물이었다.

(6: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6:3)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6:4)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칠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6:5)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6:6)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일곱 제사장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행하라 하고

(6:7)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 행할지니라

(6:8)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이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진행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

(6:9)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진행하며 후군은 궤 뒤에 행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하더라

 

기드온이 전쟁에 나갈 용사들을 선발할 때 하나님은 300명까지 그 숫자를 줄여나가셨다. 누구라도 기드온의 입장이라면 하나님께 항의를 했을 것이다. 상대의 적군 숫자가 얼마나 되는데 고작 300명으로 이 전쟁을 어떻게 치르느냐고. 그러나 기드온은 하나님의 그 뜻에 잠자코 순종하며 따랐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한 그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들에게 하나님은 그 전쟁의 승리를 선물로 주셨다. 그 전쟁은 하나님이 친히 행하셨다. 적들이 한 밤중에 서로를 향해 칼을 휘두르게 하심으로 그 전쟁을 마감하셨던 것이다.

(7:7)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7:8)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각각 그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러 두니라 미디안 진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 있었더라

(7:9) 이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7:10)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를 데리고 그 진으로 내려가서

(7:11) 그들의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능히 내려가서 그 진을 치리라 기드온이 이에 그 부하 부라를 데리고 군대가 있는 진 가에 내려간즉

(7:12)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

(7:13) 기드온이 그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 동무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엎드러뜨리니 곧 쓰러지더라

(7:14) 그 동무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날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더라

(7:15)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고 이스라엘 진중에 돌아와서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고

(7:16)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고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7:17)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나의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 가에 이르러서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7:18) 나와 나를 좇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그 진 사면에서 또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7:19) 기드온과 그들을 좇은 일백 명이 이경 초에 진 가에 이른즉 번병의 체번할 때라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7:20)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좌수에 횃불을 들고 우수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가로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하고

(7:21) 각기 당처에 서서 그 진을 사면으로 에워싸매 그 온 적군이 달음질하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7:22)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적군으로 동무끼리 칼날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7:23)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므낫세에서부터 모여서 미디안 사람을 쫓았더라

 

대제사장의 뜰에서 뒤를 돌아보시며 베드로의 눈과 마주치신 그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베드로는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의 뜻을 버리고 주님의 뜻대로 따르기까지 3년의 세월이 걸렸다.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베드로는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있었다. 자신의 목숨에 대한 염려를 모두 버리고 그는 참으로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될 수 있었다.

(22:59) 한 시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가로되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22:60)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너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방금 말할 때에 닭이 곧 울더라

(22: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22:62)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귀한 일군들이었다. 그들에게서 욕심을 버리게 하셔서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만 행하는 자들이 되게 하셨다. 이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고 그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가 되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믿음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우리들 중에서 과연 우리는 자신들의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자들이 얼마나 될까? 여전히 많은 성도들의 기도 중에 무엇을 달라는 주시옵소서의 표현이 가득한 것은 그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그 만남이 진실해야 한다. 건성으로 만나서는 결코 변화될 수 없다. 그 만남을 진정으로 사모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그 마음을 선물로 허락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만난 모세는 그제서야 진정으로 하나님과의 진실한 관계를 이루게 되었고 대제사장의 뜰에서 뒤돌아보시며 자신과 눈을 마주친 그때서야 주님과의 진정한 만남을 이룬 베드로가 되었다.

 

주님께서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진실되고 진정한 만남을 이루지 못한 형식적인 만남을 유지하고 있는 자들에 대한 경고하심이다.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우리의 생각과 욕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수동적인 것이 되고 그래서 그런 우리의 삶은 소극적인 삶, 피동적인 삶이 되어서 무기력한 삶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가?

 

이런 생각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그 삶에 대한 지극한 오해의 결과일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그 삶은 그 어떤 삶보다도 치열하고 그래서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들의 그 삶이 무기력했다고 보이는가??

엘리야의 그 삶은 전투적이었으며 목숨을 건 치열한 적극적인 삶이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란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다. 이런 삶은 하나님이 인생을 만드신 그 목적을 온전히 성취하는 삶이요, 이 삶은 곧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