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18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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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후 40일”
주님이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셨다. 왜일까?
주님은 당신의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40일간 광야에서 자신의 사역을 준비하셨다. 이는 철저히 인간적인 욕망을 내려놓는 순간들이었다.
주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까지는 전적으로 인간 예수로서의 삶을 사셨다. 목수의 아들로서 그 세상적인 삶을 사신 것이다. 이제 그 삶을 청산하고 전적으로 메시아로서의 삶을 사셔야 하는 그 순간에 인간적인 삶에서 얻었을지도 모르는 그 인간적인 욕망을 제어하는 그 일을 하신 것이다. 이는 구속주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첫 순간에 하실 일이셨다. 또한 그 일을 행하심으로 선택된 자로서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감당해야 할 그 일의 모범이 되게 하려 하심이기도 했다.
주님의 그 시험당하신 일의 내용은 전적으로 인간의 욕망에 관한 것이었다. 돌덩이가 떡 덩이가 되게 하는 그 유혹은 식욕에 대한 것이요 이는 궁극적으로 생명유지 본능에 대한 욕망이었다. 또 다른 유혹은 명예욕과 권세에 대한 것으로 이들에 대한 욕망은 인간에게서 가장 큰 유혹들인 것이다.
40일간 제자들에게 보이신 것은 자신이 모범을 보인 것처럼 그렇게 제자들의 사역을 준비시키시는 순간들이었다.
세상적인 욕망은 눈을 어둡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하시기를
(사 5:14) 음부가 그 욕망을 크게 내어 한량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중에서 연락하는 자가 거기 빠질 것이라
고 하셨다.
최초의 인간, 아담 역시 그 욕망에 사로잡혀 그 눈이 멀어 선악과의 열매를 취하여 먹게 되었다. 그 결과로 그는 하나님과 등지는 삶을 살게 되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야 할 그들이 한순간의 그 욕망을 쫓은 결과로 그 복된 삶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주님이 당신의 제자로 부르신 그 열두 명의 갈릴리 사람들도 아담의 후손이니 그들 역시 그런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자들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 열두 명은 오늘을 살아가는 믿음의 백성들을 예표하는 자들일지도 모른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를 따른 것은 그 순간의 욕망이었다. 그 땅에서 장차 예수께서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이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실 것이며, 그때 자신들이 한 자리씩 얻게 될 것이라는 지극히 세상적인 욕망을 꿈꾼 것이었다.
그런 세상적인 욕망으로 가득한 그 제자들이었기에 그들은 아무런 능력을 행하지 못했다. 한 사람이 자기 아들을 제자들에게 데려와서 고쳐 달라 했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고 결국 예수께 나아온 그 사건은 그들이 그런 욕망으로 가득했었다는 것을 증거 한다.. 주님은 그들에게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꾸짖으셨다. 믿음이 없는 것은 그 속에 욕망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마 17:14) 저희가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가로되
(마 17: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마 17: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마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의 어미의 행한 바에서 주님의 제자들이 그런 욕망으로 가득했음을 알 수 있다. 주님이 왕으로 등극하면 자신의 아들들을 높은 자리에 앉게 해 달라는 청탁이었다.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겼다는 것은 그들도 한 가지였다는 뜻이다. 그런 그들이 주님을 대신하는 그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까?
(마 20:20) 그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마 20: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마 20:2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마 20:23)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마 20: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마 20: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마 20: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마 20: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베드로는 주님이 물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자신도 그런 능력이 있게 해달라고 했고 주님은 그를 물 위로 걸어오게 허락하셨다. 그러나 세상 욕망에 갇혀있는 그에게 그 능력은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하였다. 성경은 그가 물속으로 빠져 들어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주님은 그런 베드로를 향해 믿음이 적은 자라고 나무라셨다. 그에게 세상적인 욕망이 가득 차있었으니 믿음이 충만할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마 14: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마 14:26)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마 14:27)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마 14:28)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마 14: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마 14: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마 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주님이 부활하신 후 밤새 물고기를 잡았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다시 그물을 던지라 하시니 그때서야 물고기가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가득 잡혔다. 백오십 세 마리의 숫자는 그들을 통해 전도를 받아 구원 얻을 성도들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주님은 그 후에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심으로 베드로에게 욕망의 끊을 놓았는지를 확인하셨다. 그때 베드로는 이전의 그 베드로가 아니었다. 이제는 세상적인 욕망을 모두 내어버리고 온전한 믿음으로만 채워진 주님을 닮은 베드로가 되어있었다. 주님은 그 베드로에게 비로소 사명을 맡기셨다. 내 양을 먹이라고.
이때에 비로소 제자들은 자신들의 세상적인 욕망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었다.
(요 21: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요 21: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 21:16)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요 21:17)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그 시간 이후에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했고 그들은 방언을 하고, 병자들을 고치는 작은 예수들이 되었다.
그때부터 성령은 제자들과 함께 하실 수 있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성령이 충만해지기 위해서는 헛된 세상적인 욕망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 욕망이 제거되는 그 공간에 참된 믿음이 채워지게 된다.
(행 1:3)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행 1: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행 1:6)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행 1:7)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2:1)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행 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행 2:3)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행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주님처럼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고,
(행 3:2)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행 3: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행 3:4)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행 3:5)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행 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행 3: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행 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죽은 자를 살리는 진정한 사도가 되었다.
욕망이 가득하면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그 욕망을 내어버리고 그 자리에 믿음을 채우면 이 같은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게 된다.
지금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같은 믿음의 소유자가 돼라 명하고 계신다.
(행 9: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행 9:37) 그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쉬우니라
(행 9:38) 룻다가 욥바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오라고 간청하니
(행 9:39)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행 9: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행 9: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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