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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2. 24.
“하나님의 사랑”
무한한 사랑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속성상 필연적으로 당신의 사랑의 대상을 창조하실 수밖에 없으시고 그 창조된 대상을 영원히 사랑하실 수밖에 없으시다.
하나님이 만드신 그 사랑의 대상이 바로 우리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실 수밖에 없으시기에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희생시키시기까지 하셔서 우리를 살려내신 것이다. 이것은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심을 증거해 보이신 사건인 것이다.
아담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인 우리를 대표하는 자였다. 그런 아담의 어리석은 욕망에서 잉태된 이기심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금하신 선악과를 자신의 몸 속 깊은 곳으로 숨겨 들이고 그것을 영원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고 했다.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은 그런 의미인 것이다. 그 욕망은 자신이 가장 높은 자의 자리에 서고자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자리에서 벗어나 섬김을 받는 자의 자리에 서려고한 것이다. 그것은 최고의 교만이었다.
(잠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과연 그는 성경의 이 말씀과 같이 패망하였고 최초의 넘어진 자, 즉 범죄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범죄의 결과는 온 인류에게 전해졌다.
아담이 범죄 한 후에 하나님이 그에게 찾아오셔서 물으셨다. 하나님의 그 물으심에 그는 가장 사랑해야할 그의 아내를 모든 책임의 당사자로 지목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모든 책임이 그녀에게 있다고 항변했다.
그 순간의 아담은 그 아내를 사랑했을까? 하나님을 떠난 자의 모습이 이러하다.
(창 3: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창 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창 3: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 3:11)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창 3:12)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기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왜 하필 하나님은 아침도 아니고 한참 활동할, 해가 중천에 떠있는 정오도 아닌 바람이 불어 서늘한 이때에 아담을 찾아 오셨을까?
뱀의 유혹을 받아 심장이 뛰기 시작하고 드디어 그 선악과를 따서 입에 넣는 순간 그의 심장은 터질 듯이 가장 빠르게 뛰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선악과를 쥐고 있는 손에는 땀이 흘러 축축하고 그 이마에도 땀방울이 흘렀을 것이다.
그 모든 결행의 순간이 지나고 그는 차츰 마음이 가라앉는 순간을 맞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 자신의 그 잘못을 돌아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가 이성을 되찾아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된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이 그에게 다가오셔서 물으신 것이다. 이 순간을 성경은 ‘날이 서늘할 때’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를 지극히 인격적으로 대우하시는 하나님의 깊으신 배려하심이 이렇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 순간에서야 그가 이성적으로 사실관계를 명확히 분별할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릴 수 있게 된 때이기 때문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기에 하실 수 있는 행동이신 것이다. 하나님의 이런 사랑을 성경은 ‘하나님이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사’라고 표현하고 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을 떠난 자는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한다. 가장 사랑해야할 아내조차도 사랑하지 않는 아담, 그는 하나님을 떠난 자의 표상이었다. 부부는 한 몸을 이룬 존재이기에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자신도 사랑하지 않는 자란 것이다.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이다. 아무 것도 사랑할 수 없는 자, 그는 세상에서 최대 불행자인 것이다.
(창 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 2: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하나님은 지극하고 무한한 사랑으로 사람을 대하셨다.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당신이 창조하신 그 땅의 모든 것을 사람에게 다 주셔서 다스리는 자리에까지 앉히셨을까!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의 그 완전하신 사랑을 사람들도 가지기를 원하셨다. 이를 성경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하신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창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이 귀한 사랑을 잃어버린 것, 이것이 바로 죄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요 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사랑하지 않는 존재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 죄라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그 죄의 근본인 것이다. 하나님의 이 사랑을 잃어버린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되었다. 모세의 십계명은 바로 이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인식과 회복을 기대했다.
사람은 하나님의 그 사랑을 잃어버렸기에 그것에 대한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십계명은 잃어버린 그 사랑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 자신들이 사랑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책임을 깨닫도록 하는 역할을 하도록 준비된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그 범죄의 결과는 이 율법을 통해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인식과 회복에 대해 무능하게 했다.
주님을 찾아온 한 부자청년은 십계명을 온전히 지키려는 삶을 살았다. 그러했음에도 그런 그가 사랑을 온전히 깨닫지 못한 것은 바로 인간의 그 무능을 증명해 보인 예였다.
(마 19:18)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말라, 간음하지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말라,
(마 19: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마 19:20)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마 19: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마 19: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사람의 능력으로는 잃어버린 그 사랑을 회복할 수 없기에 사랑을 잃어버린 그 사람을 위해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를 보내주셨다. 그 독생자이신 주님을 통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그 참된 사랑을 다시 심어주시고자 하셨다.
참된 사랑의 소유자이신 하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사랑의 소유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그렇게 되어야만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속성을 닮지 않은 존재와는 상종하실 수가 없으시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신다. 따라서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그 속성이신 사랑을 소유한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 소위 말하는 성화란 이 사랑이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요 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오신 주님은 성부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목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 그 사랑을 심어주시려고 일하셨다. 그 때 비로소 인간이 밝혀내지 못한 율법의 비밀이 주님에 의해 밝혀졌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이 그 십계명이라고.
(마 22:35)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마 22:36)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마 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 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 22: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 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그래서 드디어 그 사랑을 온전히 깨달아 하나님의 참된 사랑의 소유자로 거듭난 제자들이 생겨났다. 요한은 그 대표적인 제자였다. 베드로도 주님의 그 사랑을 온전히 소유한 자로 거듭났고, 바울 역시 그 사랑을 주님대신 사람들에게 전파한 자가 되었다.
(요일 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일 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주님의 그 사랑을 소유한 자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시려고 주님을 통해 그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그 사랑의 소유자가 되게 하셨다. 그런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을 올려드릴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사는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함이라 하였으니 우리는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그런 사랑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쁨으로 찬양하는 모습을 이루어내어야 한다.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리에게 그 사랑을 심어주시사 우리를 만나주신 그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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