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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

by 영동장로교회 2018. 8. 26.



https://drive.google.com/file/d/1eKnZgQ7-L5YHJfMBJ3RoKGnYidXRuNZJ/view?usp=sharing

2018. 8. 26.

노아의 방주

 

하나님을 떠난 자들을 향해 하나님은 참되게 그들을 부르셨다.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동행할 때가 가장 복되다는 것을 알게 하려 하셨다. 죄를 범한 아담에게 제사를 허락하심도 사람들로 하여금 이 진리를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이셨다. 그러나 이 진리를 사람들은 알지 못했고 외면했다. 죄로 인해 그들의 눈이 가리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담은 범죄한 후에 비로소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 삶이야말로 참으로 복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 때는 이미 자신은 범죄한 자였기에 그 땅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는 자의 자리에 설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사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올 길을 열어주셨다. 아담의 죄에 대한 용서의 방도로 제사를 허락하셨고, 아담은 그 제사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죄의 용서와 장차 영화 구원으로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복된 길을 허락받았다. 하나님의 뜻은 그러했다. 아담에게 그런 은혜를 베푸신 것은 단순히 아담 한 사람을 위해 그리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 땅에 태어날 모든 자들에게 그와 같은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원하신 하나님이셨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5:3) 아담이 일백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5:4)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5:5) 그가 구백삼십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아담이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을 닮은 셋을 낳았다. 하나님이 셋에게 은혜를 베푸셨기에 셋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믿음의 아들이었다.

이 믿음의 형상이 어디서 온 것인가?

셋의 믿음이 이렇다는 것은 곧 아담의 믿음이 그러했다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셋이 아담의 모양 곧 아담의 형상과 같다고 하는 것이다. 애초에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로 지음을 입었다. 그 형상이 지금 회복되었다는 것은 아담이 하나님의 허락하신 구원 얻을 방도를 온전히 수납하여 지켜내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것을 셋이 그대로 본을 받았다는 것이 아담의 형상과 같았다는 것이다. 아담의 자손 중에 셋을 제외하고는 그 아비 아담의 모습을 답습하지 않았다. 죄인을 향한 구원의 은혜가 베풀어지지 아니한 자에게는 비록 하나님이 제사를 통한 구원의 방도를 마련해 두셨을지라도 도무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것에 대한 간절함이 결코 그들에게 욕망되지 않는다. 죄로 인한 어두움이 그들의 눈과 귀를 죄사함의 방편인 그 제사에 대해 가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하나님은 인내하시며 기다리셨다. 도무지 돌아오지 못하는 그들이라는 것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노아의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셨다. 이는 죄인일지라도 그들에게 베푸시는 일반은혜인 것이다. 이는 누구라도 도무지 인내하지 못하시고 곧 진노를 발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기다리심이셨다.

(34:6, 개역)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9:17, 개역) 거역하며 주께서 저희 가운데 행하신 기사를 생각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하며 패역하여 스스로 한 두목을 세우고 종 되었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사오나 오직 주는 사유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저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

(86:15, 개역)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103:8, 개역)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145:8, 개역)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48:9, 개역)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예를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2:13, 개역)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4:2, 개역)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그 노하심을 더디하실지라도 결코 죄인을 그대로 묵과하실 수는 없으시다.

(14:18, 개역)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과실을 사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고 아비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3, 개역)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죄인을 결코 사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 발의 티끌이로다

그래서 그 기다리심은 노아 때까지였고 그 때에 하나님은 죄인을 심판하시기로 하셨다.

(6:7)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그 순간에도 죄인을 향한 그 사랑을 멈추지 않으셨다. 그 땅의 사람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셨다.

(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노아를 통해 그들이 돌아올 기회를 허락받았다. 노아가 방주를 짓는 그 120년의 시간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애초부터 그 기회를 잡을 능력이 없었다. 하나님이 그 능력 없는 자들 중에서 노아의 가족들에게는 하나님이 친히 그 능력을 심어주셨다. 그것이 하나님이 노아의 가족들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였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가 없었다면 노아와 그의 가족들도 모두 물로 하신 그 심판을 피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짓게 하심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시겠다는 징표와도 같은 것이었다. 방주를 기준으로 하여 방주 안에 있는 자와 바깥에 있는 자는 각각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자와 하나님을 떠나 있는 자를 의미한다. 하나님과 함께한 자인 노아와 그 가족들은 생명이 보존되었고 하나님을 떠나 있던 그 땅의 사람들은 모두 멸망당하고 말았다. 생명이 보존된 노아와 그 가족들은 실로 복된 자들인 것이다. 따라서 복된 자들의 근본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인 것이다.

(6:14)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하나님의 아들들이 가장 불행한 자의 자리에 서게 된 연유는 무엇이었던가?

성경은 분명히 그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은 믿는 자들을 의미하며,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딸과 결혼하였다는 것은 믿음 생활의 포기를 의미하며 이를 육체가 됨이라 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날이 120년이라 함은 120년 후에 그들에게 심판이 있을 것이란 의미였다. 방주가 완성되는 그 날, 120년 후에 비가 내려 홍수가 나는 심판이 벌어졌다.

(6: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게 하신다. 방주는 구원함을 상징한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을 구원하시려고 방주를 허락하신다. 방주는 그리스도이신 주님을 상징한다.

120년 동안 방주를 짓게 하시면서 죄인들에게 기회를 허락하신 것이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로 하여금 구원을 얻을 기회를 허락하신 것을 상징한다. 12는 믿음의 숫자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온전히 회복되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이루라고 주시는 기회의 시간, 그 시간이 12*10으로 주어짐으로써 하나님이 진실로 완전히 허락해주신 기회의 날들의 시간이었다. 10이란 통상 완전함을 상징하는 수이다.

 

방주의 길이는 300규빗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믿음(3:하나님을 믿는 수*10*10:완전한 수의 거듭)으로만 들어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폭이 50규빗이니(5는 구원의 수)구원을 온전히 이룰 수 있음을 상징한다. 높이가 30규빗임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따르는 믿음을 요구하심이다. 그래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고, 가장 복된 자의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6:15)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께 드릴 감사의 예물을 하나님이 친히 준비해 주셨다. 정결한 짐승 암수 일곱은 3쌍과 한 마리로 구성됨이니 한 마리는 제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공중의 새도 그리하셨다. 그러나 부정한 것은 그냥 암수 한 쌍으로 하셨다. 그것을 제물로 쓰지 않게 하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는 정결한 자가 되기를 바라심이다.

이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장 복된 자들에게 베푸시는 은혜이다.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이신 것이다.

(11:7, 개역)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11:16, 개역)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벧전 3:20, 개역)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의 모습과 그런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33:15) 오직 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33:16)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 보장이 되며 그 양식은 공급되고 그 물은 끊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온전한 믿음의 소유자인 우리로 하여금 아무 염려 말라 하신다.

(6:34, 개역)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4:6, 개역)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벧전 5:7, 개역)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하나님과 함께 동행한 노아.

그에게는 아무 두려움이 없었다. 오직 순종함으로 모든 것을 주께 맡겼다. 사람의 능력으로라면 과연 노아가 그 방주를 지을 수 있었을까? 노아는 그 모든 일에 다 준행했다라고 기록되고 있다. 그것이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하는 구원 받을 수 있는 믿음임을 알아야 한다.

(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우리라면 어떠했을까? 이런 저런 핑계를 대었을 것이다. 그 큰 배, 그 땅의 모든 짐승들을 쌍으로 모아 실을 수 있었고 또 그들이 먹기에 충분한 식량과 물을 다 실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를 갖는 그 배를 혼자서 지으라면 노아처럼 그렇게 쉽게 순종했을까?

나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하나님과 함께하는 그 믿음이라면 불가능이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인 나.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무슨 일인들 능치 못하리요!

(18:14, 개역)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32:17, 개역)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과 드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시니이다

(32:27, 개역)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9:23,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