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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by 영동장로교회 2018. 8. 12.

https://drive.google.com/file/d/1JO-e8snT7Qt-2oZJjfOt2E_cjdC9SCBP/view?usp=sharing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인간의 불행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한 것일까?

 

사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형상과 우리의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들로 다스리게 하자라고 하셨다.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만드신 그 사람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심은 하나님의 대리자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라는 것이었다. 그때 하나님의 소감은 좋았다고 하신 다른 날과는 달리 심히 좋았다고 하셨다. 이는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한 일이니 진실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 것이었다.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1: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1: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이것은 또한 사람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삶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근심이나 걱정이나 불안함이 있을 수 없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 그것이 가장 행복한 삶인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함으로써 하나님과의 분리를 택한 것이다.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하나님과의 분리를 도모한 이 마음이 인간불행의 근원점이 되었다. 이 마음이 실행에 옮겨진 그 순간이 인생 속에 불행이라는 것이 그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 되었다. 이전에는 없었던 두려움, 공포, 수치스러움, 속임, 근심, 걱정 등의 불행을 만드는 요소들이 생겨났다.

(3: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3: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이와 같은 내면적 불행은 드디어 외면적 불행의 모습으로 확대되어져 갔다. 하나님의 뜻과는 다르게 내 생각을 주장하고, 내 뜻대로 하고자 하는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는 원인이 되었다. 외면적으로 드러난 인간 불행의 모습은 에덴에서 추방된 자의 모습이다. 이는 하나님과의 완전한 분리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3: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3: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3: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가장 불행한 존재, 그 인간에게 그래도 하나님은 은혜를 준비하고 계셨다. 그를 찾아오신 것은 그를 영원히 불행한 존재로 버려두지 아니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작정하심을 드러낸 사건이고 그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은 그의 불행을 근본적으로 치유하실 것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셨다.

(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아담으로부터 유전된 대로의 삶을 사는 자의 불행에 대하여 전도자는 이렇게 고백했다.

(1:12)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1:14)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15)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고 이지러진 것을 셀 수 없도다

(1:16) 내가 마음 가운데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큰 지혜를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자보다 낫다 하였나니 곧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1: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1: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하나님이 이런 인생을 불쌍히 여기사 살리시려고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그 땅의 모든 불행한 자들에게 이렇게 외치셨다.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깨달았을까? 그들의 영은 죽어 있었으니 그 말씀은 그들에게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하사 새 생명을 심어주신 자들 외에는 이 말씀의 은혜를 누리지 못했다. 오늘 이 순간에도 이 말씀은 택함을 입은 자에게만 그 생명을 가질 뿐이다. 그들 외에는 보아도 보지 못할 것이요, 들어도 듣지 못할 것이다. 이 말씀의 은혜를 받는 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

 

이 말씀이 그 귀에 들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스로 자신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될까?

이 질문이 너무나도 어리석은 것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게 살고 있는 믿음의 백성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자들의 모습은 바로 요나 선지자의 그 모습이다. 하나님이 요나의 이야기를 기록케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보고 읽게 하신 것은 어리석은 그 요나의 모습처럼 되지 말고 지혜 있는 자 같이 되라는 명령이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1: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1: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1:4) 여호와께서 대풍을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신 당신의 종, 사도 바울은 주님의 그 말씀을 온전히 깨달아 실천한 모범을 보인 인물이다. 그러했으므로 그의 삶은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내었다. 그는 하나님과 온전히 연합한 삶을 이루어 내었다. 그래서 그는 그 땅에서 가장 행복한 자가 되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권면하고 있다.

(4: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주 안에 선다함은 주님과 온전히 연합한 삶,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니 가장 불행한 자의 자리에서 가장 행복한 자의 자리에 돌아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참된 행복을 느꼈으니 그는 항상 기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주의 백성들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4:8)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4: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4: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4: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회복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능력을 그는 스스로 경험하였고 그 복을 혼자 누리지 아니하고 주님의 백성들에게 나누기를 원하였다. 이것은 주님이 주시는 사랑이다.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는 하나님과 온전히 연합한 삶을 살아내었다. 그러했으므로 주님이 하심 말씀,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신 그 말씀은 살아 생명력이 있었고 그래서 그 말씀대로 그가 경험한 바에 의거해서 그 자신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한 것이다.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이제 우리도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의 삶을 삶으로써 이 말씀들이 생명력이 있게 하자.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게 하자. 내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