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설교-링크 클릭하면 재생됩니다

하나님의 연애편지

by 영동장로교회 2018. 7. 22.

 

하나님의 연애편지

 

남의 연애편지에 대해서는 누구나 관심 내지는 호기심을 가진다.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보려고 애를 쓴다.

 

하나님이 쓰신 연애편지라면 어떨까?

호기심이 발동하여 보려고 할 것이 아닌가?

성경은 하나님이 쓰신 연애편지다. 우리를 짝사랑해서 쓴 연애편지 그것이 성경이다.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고 할 때의 그 세상은 바로 우리를 의미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어 그 하나뿐인 아들을 죽게까지 했다. 그런 사랑이야기가 적혀있고 그것을 우리가 볼 수 있도록 기록한 것이 성경이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쓴 연애편지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나 우리는 하나님의 그 사랑에 대해 무덤덤하거나 시큰둥할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짝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이 안타까운 사랑은 성경의 여러 곳에 나타난다.

 

하나님이 지극한 사랑으로 사람을 만드셨다. 그 사람이 바로 우리다.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1: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1: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과 필요한 것을 예비하셨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의 필요에 따라 공급하셨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좋은 것을 하나도 아낌없이 주셨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다스리는 지극히 존귀한 자리에 우리를 세워주셨다. 그러나 그 사람, 우리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났다. 이때의 하나님의 그 심정은 어떠하셨을까?

 

(3: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하나님은 그 배반하고 떠난 사람, 우리를 위해 헤어지지 않는 옷을 만들어 입히신다. 하나님의 짝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우리를 위해 우리가 영원토록 죄만 지으면서 살게 될 것을 막으시려고 우리로 하여금 생명나무를 먹지 못하게 막으셨다. 이것 또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짝사랑의 행위이시다.

 

(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세월이 흐른 후에 하나님이 그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애끓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잘 따랐던 그 옛날의 이스라엘을 내가 기억하고 있노라고. 그러하니 이제 다시 내게로 돌아오라고.

그 이스라엘은 우리를 상징한다.

 

(2:2) 가서 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외쳐 말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2:3) 그 때에 이스라엘은 나 여호와의 성물 곧 나의 소산 중 처음 열매가 되었나니 그를 삼키는 자면 다 벌을 받아 재앙을 만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2:4) 야곱 집과 이스라엘 집 모든 가족아 나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2: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열조가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관대 나를 멀리하고 허탄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그 사랑의 애원을 무시하고 끝내 돌아오기를 거부했다.

 

(대하 36:1) 국민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세워 그 부친을 대신하여 예루살렘에서 왕을 삼으니

(대하 36:2) 여호아하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삼 세더라 저가 예루살렘에서 치리한지 석 달에

(대하 36:3) 애굽 왕이 예루살렘에서 그 위를 폐하고 또 그 나라로 은 일백 달란트와 금 한 달란트를 벌금으로 내게 하며

(대하 36:4) 애굽 왕 느고가 또 그 형제 엘리아김을 세워 유다와 예루살렘 왕을 삼고 그 이름을 고쳐 여호야김이라 하고 그 형제 여호아하스를 애굽으로 잡아갔더라

(대하 36:5) 여호야김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을 치리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대하 36:6)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올라와서 치고 저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대하 36:7) 느브갓네살이 또 여호와의 전 기구들을 바벨론으로 가져다가 바벨론에 있는 자기 신당에 두었더라

(대하 36:8) 여호야김의 남은 사적과 그 행한 모든 가증한 일과 그 심술이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그 아들 여호야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대하 36:9) 여호야긴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 달 열흘을 치리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대하 36:10) 세초에 느브갓네살이 보내어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여호와의 전의 귀한 기구도 함께 가져가고 그 아자비 시드기야를 세워 유다와 예루살렘 왕을 삼았더라

(대하 36:11) 시드기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일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을 치리하며

(대하 36:12)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일러도 그의 앞에서 겸비치 아니하였으며

(대하 36:13) 느브갓네살 왕이 저로 그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케 하였으나 저가 배반하고 목을 곧게 하며 마음을 강퍅케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대하 36:14) 제사장의 어른들과 백성도 크게 범죄하여 이방 모든 가증한 일을 본받아서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거룩하게 두신 그 전을 더럽게 하였으며

(대하 36:15)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 사자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대하 36:16) 그 백성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며 그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로 그 백성에게 미쳐서 만회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대하 36:17)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저희를 다 붙이시매 저가 와서 그 성전에서 칼로 청년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백발노옹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

(대하 36:18) 또 하나님의 전의 대소 기명들과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과 방백들의 보물을 다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대하 36:19) 또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을 헐며 그 모든 궁실을 불사르며 그 모든 귀한 기명을 훼파하고

(대하 36:20) 무릇 칼에서 벗어난 자를 저가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매 무리가 거기서 갈대아 왕과 그 자손의 노예가 되어 바사국이 주재할 때까지 이르니라

 

 

우리는 모두가 하나같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갔음에도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를 짝사랑하셨다. 드디어 하나님 자신이 직접 이 세상에 오셨다. 그 배반한 우리를 찾아서.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그 지독한 사랑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냉담했다.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1: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그리고 우리는 드디어는 우리를 그렇게도 짝사랑하기만 했던, 그래서 친히 우리를 찾아오신 그 하나님을 죽여 버렸다. 우리를 사랑한 죄로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서서히 죽어 갔다. 그러나 죽는 그 순간에도 우리를 짝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23: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23: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언제나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고백하여도 우리는 하나같이 그 사랑을 외면해버리고 심지어는 그 사랑을 멸시하고(“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그것은 나약한 사람들이 지어낸 것이다라는 등의 생각과 표현들), 부끄러워하며(교회 다니는 것 그 자체를 부끄러워하거나 성경책을 들고 가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행위 등), 부담스러워하기도(교회 출석 권유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거나 교회 일을 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 하는 행위들) 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신다고 고백하신다.

 

사도바울은 돌이켜서 자신의 주님에 대한 사랑을 드디어 고백했다. 주님의 그 완전하신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는 그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한다고 고백했다.

 

(1:16, 개역)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지금 나는 이 사도바울처럼 주님의 그 온전하신 사랑을 받아들였는가?

나는 진실로 주를 사랑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