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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세상에 모세만큼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길만한 자가 있을까.
그는 태어나서 세 달 만에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아 나일강에 버려진다. 그 당시에 애굽의 왕, 바로의 명에 따라 이스라엘의 피를 받아 태어난 어린 아이 중에 사내아이는 무조건 죽음을 당할 운명이었고, 그래서 그 부모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나일강에 갈대 상자 속에 그를 태워 보냈지만, 어찌되었던 그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가 되고만 것이다.
(출 2:2)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달을 숨겼더니
(출 2:3)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고
(출 2:4) 그 누이가 어떻게 되는 것을 알려고 멀리 섰더니
여기서부터 그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구원사적인 관점에서는 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 그러한 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고, 그런 삶을 산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의 눈으로 보지 않고 세상적인 관점에서 한 인간의 삶의 여정에서 본다면 그는 분명 불행한 자인 것이다. 부모에게 버려지는 것이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복된 자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우리 중의 대부분은 모세보다 복되다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중의 거의 모두는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버림받은 자, 모세.
그는 기적적으로 나일강에 나와 있던 바로의 공주에 의해 건짐을 받는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모세가 된 것이다. 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자란다. 어쩌면 이 모습으로는 그는 세상에서 최대의 행복자의 자리에 선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 당시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 애굽의 왕자의 자리에 섰으니 그보다 행운인 자가 있을 수 있을까. 그는 장차 그 강한 나라, 애굽의 왕인 바로의 자리에도 설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을 지닌 지상 최대의 행운아의 자리에 선 자였다. 그 순간에는 그는 지상 최대의 행복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행복자는 가장 불행한 자가 되기 위한 조건이다. 가장 행복한 자만이 가장 불행한 자의 자리에 설 수 있다.
(출 2: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하수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하숫가에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에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출 2:6) 열고 그 아이를 보니 아이가 우는지라 그가 불쌍히 여겨 가로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
애굽의 왕자로 자란 모세,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리라고.
자신의 친모였으나 유모로 가장하여 그를 젖 먹여 키운 자신의 어머니를 통해 그 자신이 유대인이며, 자기 동족이 애굽 땅에서 구원이 절박한 노예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애굽의 왕자인 자신이 언젠가는 이 일을 친히 해결하리라고 다짐했다.
(출 2:7) 그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이 아이를 젖 먹이게 하리이까
(출 2: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그 소녀가 가서 아이의 어미를 불러오니
(출 2: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출 2:10) 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 이름을 모세라 하여 가로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그 자신이 스스로 힘이 생겼다고, 그래서 그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어느 날 자신의 동족을 괴롭게 하는 애굽의 감독자를 스스로 징계하는 일을 행했다. 그럴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애굽 감독자를 죽인 이 일이 빌미가 되어 그는 도망자의 자리에 서게 된다. 광야로 몸을 피해 달아났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의 자리에서 한 순간에 이 세상의 최대 불행자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이 순간만큼은 모세는 지상 최대의 불행자의 자리에 섰다고 세상 사람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아마도 모세 스스로도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왕이 될뻔 한 자가 오갈 곳이 없게 된 처지에 놓인 것만큼 불행한 일이 있을까. 그 순간에는 자신을 선택하신 하나님에게 얼마나 큰 원망을 했을까. 아마도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했을지도 모른다.
(출 2: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역함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출 2:12)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에 감추니라
정처 없이 길을 헤매고 다녔을 것이다. 그리고 훗날 자신의 아내가 되고 장인이 될 사람들을 만난다. 겨우 몸을 의탁하고 살 수 있었다. 그 모세가 그 날들에 행복을 누렸을까. 끝없는 방황과 원망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러했기에 그가 아들을 낳았을 때 그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지었던 것이리라.
(출 2:22)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가로되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40년간 그는 광야에서 양을 치는 목자로 살았다. 그 삶이 애굽의 왕자로서 사는 삶과 어찌 비교될 수 있었겠는가. 세상적으로 바라보면 그 삶이 어찌 행복한 삶이 될 수 있었을까. 모세가 그 장인과 처음으로 대면하고 그 집에 머무를 수 있었을 때 성경은 모세가 기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 기쁨은 그가 그곳에 머무는 것이 진실로 행복되다라는 의미에서의 기뻐함보다는 아무 곳에도 머무를 곳이 없던 그가 이제 머무를 곳이 생긴 것에 대한 기쁨이지 진실로 그 삶이 복되고 만족하다의 의미에서의 기쁨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날까지 단 한 번의 온전한 행복자로서의 기쁨은 누리지 못한 것 같다. 그 날들에 대해 그런 기쁨이 없었으니 성경은 그런 기록을 남기지 못한 것이다.
(출 2:21) 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그가 그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었더니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느꼈을 그 모세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다. 하나님이 그를 부르신 것이다.
(출 3:1)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출 3: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출 3:3)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출 3: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출 3: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 3: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당신의 일군으로 세우시고 그에게 사명을 맡기신다.
그 날에 그는 기뻐했을까.
지나온 삶을 돌아보았을 때, 그는 하나님의 버리심을 철저히 경험하며 살았을 것이다.
강대한 나라의 위대한 바로로서의 삶을 꿈꾸었을 그를 한 순간에 보잘 것 없는 목자로 만드시고, 이제는 그에게 무거운 짐을 맡기시려는 하나님의 그 뜻을 모세는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을지도 모른다.
(출 3: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출 3:8)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출 3:9)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출 3: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가 하나님의 그 부르심에 답하는 그 장면을 보면 그의 대답은 극히 겸손한 자의 대답처럼 보여진다. 너무나도 무력하고 그래서 아무 능력도 없는 자라고 고백하고 있다. 당연히 지금의 모세는 그러하다. 그러나 그 속에는 어쩌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그런 마음이 담겨있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내가 구해내려고 하지 않았나이까. 그런데 그 때 하나님은 나의 편이었습니까. 왜 이제 와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게 이 일을 하라 하십니까?”라고 하는 마음이 가득했을 것이다.
(출 3:11)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래서 가장 불행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모세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이다.
하나님과의 이 깊은 대화의 교제를 통해 모세는 지상 최대의 불행자의 자리에서 지상 최고의 행복자의 자리에로 이동을 하고 있다.
(모세가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철저히 깨달아 나갔고, 반면에 하나님의 그 말씀을 통해 모세 자신은 그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게 능력을 더하시는 하나님이시며 함께 하사 모든 것을 이루실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주시는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룬다는 것을 철저히 깨달아 간 것이다. 광야 40년의 생활은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 준비하신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 40년의 시간이 없었더라면 모세는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을 내려놓는 이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모든 것을 예비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드디어 모세는 자신의 세상적인 욕망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음으로써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사역자의 자리에로 나아가게 되었다. 자신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그 일을 감당하는 자로 거듭나면서 그는 드디어 지상 최대의 행복자의 자리에 올라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주시는 사명을 감당하면서 사는 자이다.
(출 3: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출 3:13)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출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 3: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출 3:16) 너는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실로 너희를 권고하여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
(출 3:17)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출 3:18)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사흘 길쯤 광야로 가기를 허락하소서 하라
(출 3:19)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의 가기를 허락지 아니하다가
(출 3:20)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출 3:21)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갈 때에 빈 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출 3:22) 여인마다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우거하는 자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 자녀를 꾸미라 너희가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리라
(출 4:1) 모세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출 4: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지팡이니이다
(출 4: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것을 땅에 던지라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출 4: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잡으니 그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출 4:5) 또 가라사대 이는 그들로 그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함이니라 하시고
(출 4:6)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 손에 문둥병이 발하여 눈 같이 흰지라
(출 4:7) 가라사대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손이 여상하더라
(출 4:8)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이적의 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둘째 이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출 4:9) 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하수를 조금 취하여다가 육지에 부으라 네가 취한 하수가 육지에서 피가 되리라
(출 4:10)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출 4: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출 4: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출 4:13) 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자신의 능력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온전히 고백하는 말이다.)
(출 4: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를 발하시고 가라사대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 그의 말 잘함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마음에 기뻐할 것이라
(출 4: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 입에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출 4: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출 4: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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