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22.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에 대한 그 비밀에 관하여(1)”
성경은 일관되게 우리의 구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구약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는 이야기들이 주로 언급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는 그 과정을 담은 출애굽기가 있다. 시편과 이사야서 같은 책들도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다.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메시지가 그 중심이다. 복음서에서는 예수의 삶, 죽음, 부활을 통해 인류의 죄를 구원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사도행전과 서신서에서는 예수를 믿는 자들이 구원을 받는다는 가르침이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성경 전반에 걸쳐 구원이라는 주제가 일관되게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조건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죄인이라고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그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하나님께 자기의 이 죄를 자기를 대신해서 하나님께 아뢰어줄 중보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누구라도 이미 자신은 죄인이기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동의해야 한다.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런 죄인을 위해 대신 그 죄를 아뢸 수 있는 중보자를 세우실 것을 작정하신 그것이 효험이 있게 된다.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죄인은 반드시 그런 중보자를 통해서만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아뢸 수 있고, 하나님께서는 그 중보자를 통해서만 죄 사하심을 허락하신다.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여기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것을 ‘회개’라고 한다. 그리고 이 회개는 중보자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전달되고, 하나님께서는 그 중보자를 통해 자신의 죄를 사하실 것에 관한 확신을 가지는 그것을 ‘신앙’ 또는 ‘믿음’이라 한다. 이 회개와 신앙을 합쳐서 ‘회심’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고할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라는 것이다. 죄인인 자가 또 다른 죄인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중보자가 될 수는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아담의 후손이기에 아담의 그 죄를 물려받았다.
그래서 이 죄를 ‘원죄’라고 하는데, 원죄라는 관점에서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죄인이다. 따라서 죄인이 죄인을 대신해서 중보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참된 중보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 원죄가 없어야만 한다.
예수는 남자를 통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났으니 그는 처음부터 죄가 없으시다. 그래서 그는 우리를 대신해서 중보자의 자리에 설 자격을 지니셨다. 예수 외의 그 누구도 중보자가 될 수가 없다.
(히 7: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히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히 7: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흔히들 이 예수의 탄생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예수가 태어난 이유는 여러 가지 신학적, 구속적, 역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 목적은 주로 구속과 구원의 완성과 관련이 있다. 구체적으로 예수가 태어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인류의 죄를 구속하기 위함이다(우리의 죄에 대한 희생의 제물이 되시기 위함).
예수의 탄생은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루어진 사건이다. 기독교 신앙에서는 모든 인간이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고 가르치고 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속죄의 제물이 되기 위해 태어나셨다. 예수는 죄의 대속을 위해 태어나셨으며,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간에게 구속을 제공하셨다.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둘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이루기 위함이다(중보자로서의 역할을 위해서임).
예수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의 다리 역할을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지만, 예수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여 화해를 이루셨다.
예수의 탄생은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을 인간에게 나타내며, 그를 통해 인간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고후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고후 5: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셋째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기 위함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전하고, 이를 온전히 이루기 위해 태어났다.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는 과정이었다. 예수는 단순히 구세주로서 구속의 일을 완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의와 정의, 사랑을 이 세상에 드러내는 역할도 했다.
(요 6: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요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넷째는 새로운 왕국을 세우기 위해서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왕국을 이 땅에 세우기 위해 태어났다. 그는 지상에서 정치적인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왕으로서 인간의 마음과 영혼을 다스리기 위해 오셨다. 예수는 그가 오신 목적이 영원한 왕국의 확립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셨다.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사 9: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다섯째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본보기로서이다.
예수는 인간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를 본보기로 보여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는 완전한 인간이자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사람들과 올바르게 관계를 맺는 모습을 통해 인간에게 모델을 제공하셨다.
예수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는 삶을 사셨으며, 이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하셨다.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여섯째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주기 위해서이다.
예수는 새로운 삶의 길을 제시하기 위해 오셨다. 그의 가르침과 사역은 단순히 구속에 그치지 않고, 인간이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예수의 탄생은 구속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으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요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여기까지가 흔히들 말하는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이유라고 한다. 그러면 정말 이 이유 외에 또 다른 이유는 없는 것일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결국은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던 구약의 시대에도 많은 사람이 구원받았다. 그때는 예수가 아니 계신 시절이었다. 중보자가 없이는 구원을 이루는 것이 원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인데,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해서 구원을 얻게 되었다는 것인가?
이 질문은 기독교 신학에서 중요한 주제다.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알지 못했지만, 그들이 믿었던 하나님과 그의 구속 계획을 통해 구원받았다고 본다. 예수 이전의 많은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죄에 대한 속죄 방식으로서의 제사가 존재했다.
제사는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 제사는 사람이 고안해서 만든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제정하여 주신 제도였다. 하나님께서는 그 제사를 통해 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셨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바대로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것은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는 예수께 우리 죄를 고백함으로써만 이루어진다. 이 길만이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면 어찌해서 구약 시대에는 이 제사라는 방법으로 그들이 구원에 이를 수 있었는가?
구약시대를 살아간 그들은 구원의 주인인 예수를 만난 적이 없다. 단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방식으로서의 그 제사를 드림으로써 오실 메시야를 믿음으로 받음이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에 이를 수 있게 하셨다. 그들은 오실 메시야를 그렇게 믿음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래서 구약의 제사는 오실 메시야에 대한 그림자였던 것이다.
(히 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히 11:14)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구약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예고하는 형태로서 오실 메시야에 대한 그림자로 이해된다. 구약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고하는 믿음이었고, 그들이 믿었던 구속의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하실 것이라는 그 비밀을 미리 알았기 때문에 그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약 시대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표하는 형태로 이해해야만 한다. 이들은 구원의 완성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기대하고 믿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모든 구속 사건을 완성시키기 위한 계획의 중심에 계신 분이다. 결국, 구약의 구원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예고하는 믿음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히 10:1)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히 10: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히 10:3)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히 10: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히 10:5)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피면, 구약 시대에는 구원에 이르는 방법이 신앙과 순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구약의 구원 개념은 크게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과 죄 사함을 위한 제사 시스템으로 설명될 수 있다.
구약에서 구원에 이르는 주요 방법은 첫째, 믿음과 순종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믿음으로 의롭다 여기는 것을 중요시하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았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구약 시대의 구원에 있어 중요한 모델로 여겨진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고 그분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구원의 핵심이었다.
(창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둘째는 제사와 희생이다. 구약 시대에는 사람들의 죄를 사하기 위해 제사와 희생이 중요했다. 특히 유대인의 제사 제도에서는 동물의 피를 흘려 죄 사함을 받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이는 죄를 속죄하기 위한 중요한 절차였으며, 하나님께서 제정한 규례에 따라 제사를 드리며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있었다.
(레 16:3)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을 삼고 수양으로 번제물을 삼고
(레 16:4)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고의를 살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셋째는 율법의 준수였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율법(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구원과 관계가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었고, 따라서 죄를 지을 때마다 제사와 회개의 방법을 통해 구원의 은혜를 입을 수 있었다.
넷째는 회개와 용서였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시며 구원의 기회를 주셨다. 죄를 지은 후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면 구원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었다. 특히, 다윗 왕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함으로써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
(시 51:1)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저에게 온 때에]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시 51: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시 51:3)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시 51: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시 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 51:6)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시 51:7)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시 51:8)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시 51: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 51: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 51: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 51:13)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시 51: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시 51: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시 51:16)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시 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시 51:18)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시 51:19)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
따라서 구약 시대의 구원은 주로 믿음, 순종, 제사 제도, 회개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구약에서의 구원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될 구원의 그림자를 미리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언급된 구약시대의 믿음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구약 시대에서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지적인 동의나 감정적인 신뢰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신뢰, 순종, 그리고 충성을 바치는 삶을 포함하는 전방위적인 믿음을 의미했다. 따라서 구약에서 믿음은 다음과 같은 측면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의지를 드러냄이다.
구약 시대의 믿음은 하나님이 신실하시고 믿을 만한 존재라는 신뢰에서 출발한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구속자로, 그리고 자신들의 삶을 인도하시는 주권자로 믿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다. 이 사건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순종을 나타내고 있었다.
(창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창 22: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 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창 22: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창 22:5)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창 22: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창 22:7)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창 22:8)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창 22:9)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창 22: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창 22: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창 22: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 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구약에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순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그분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고 여겨졌다. 예를 들어,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애굽에서 탈출시켰다.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야만 그분의 은혜와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가 너희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고, 그들은 그 약속을 믿고 그분의 명령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했다.
(출 19:4)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출 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출 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셋째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포함하고 있음이다.
구약 시대의 믿음은 단순한 믿음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종종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을 때 회개하고 다시 그분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다윗 왕은 그의 시편 51편에서의 고백과 같이 죄를 지은 후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다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려 했다.
넷째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에 대해 믿는 것이다.
구약 시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시고, 세상을 구원하실 그 계획을 믿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구속의 약속을 하셨고, 이스라엘의 역사 전반에 걸쳐 그 약속을 이루어 가고자 하셨다.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창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예를 들어,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구약의 믿음은 이 구속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이 그 약속을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았다.
다섯 번째는 하나님의 의로움에 대한 확신을 가짐이다.
구약 시대의 믿음은 하나님이 정의롭고 의로운 분이라는 확신을 갖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행위를 공평하게 심판하시며, 의로운 자를 보호하시고 악인을 벌하시는 의로운 재판관이셨다. 예를 들어, 욥기에서 욥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의로움을 믿고, 하나님이 모든 일을 잘 처리하실 것이라고 확신했다.
(욥 19: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욥 19:26)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그런고로 구약 시대에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함, 말씀에 대한 순종, 구속의 계획에 대한 신뢰, 의로움을 믿고 따르는 삶을 의미했다. 그래서 믿음은 행위로 드러났으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살아있는 신앙으로 나타났다.
(다음 주에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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