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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에 숨겨진 하나님 이치의 발견에 관하여(2)

by 영동장로교회 2024. 10. 6.

2024. 10. 6.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자연 속에 숨겨진 하나님 이치의 발견에 관하여(2)”

 

 

이 지구 위에 푸른 나무가 있고, 그곳에서 우리가 사는 것은 어쩌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사랑의 큰 복을 베푸실 그것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별에 이 지구와 같은 그런 아름다움이 있고, 또 우리와 같은 사람이 살고 있는가!

 

많은 과학자들이 외계행성에서 우리와 같은 생명체가 살고 있는지를 찾고 있지만,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시 73:28)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태양과 지구가 상호작용하며 만유인력으로 서로 연결되어 아름다운 태양계를 유지하는 것을 보여주심으로써 우리가 늘 하나님을 찾으며 그와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이것이 참된 복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려 하셨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도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고, 가까이 계실 때 부르라고 당부했다. 그것이 복 있는 자의 취할 태도이다. 과연 우리의 삶도 그러한지 믿음 생활 속에서 부지런히 살펴야 한다.

(사 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것이다. 모세는 그 백성들에게 그 방법을 부지런히 가르쳤다. 기도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라는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그 복을 누릴 것이다.

(신 4: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이스라엘과 같이 모세의 그 말에 참되게 귀를 기울이지 못한다. 그 이스라엘이 끝내는 세상 유혹에 끌려 모세의 이 말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제 갈 길로 갔고, 결국에는 세상의 올무에 걸리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당부하셨다. 이 뜻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졌다. 그러나 인간은 어리석어 쉽게 깨닫지 못하니,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반복해서 말씀을 가르치셨다.

 

그래서 성경에는 다른 많은 표현들이 등장하고 있다. 한 내용을 여러 방식으로 표현한 것은 어리석은 자들에게 온전하고 바르게 깨달을 수 있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배려였을 것이다. 얼마나 사랑하시기에 그렇게 애타도록 말씀하신 것인가!

 

일반계시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도 한가지 이치를 말씀하시는 데에 여러 가지 현상을 동원하여 반복적으로 말씀하셨다. 그리하심은 죄로 인해 어두워진 인간의 그 어리석음 때문에 깨닫지 못할 것을 염려하심이셨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 자상하신 가르침이 어리석은 인간들에게는 핵심을 잃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한 것 같다.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한마디로 했다면 어쩌면 그들이 더 잘 알아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저런 많은 가르침 속에 이 말씀을 두었기에 그들은 그 핵심을 놓쳐버린 것 같다. 더구나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 가르침이 레위기에 가서야 나오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 한마디의 가르침을 그들이 온전히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다.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레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하나님 입장에서 그런 자들이 오죽 답답하셨으면 직접 이 땅에 오셔서 말씀하시기까지 하셨을까!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신 주님이 바리새인들에게 드디어 이 말씀을 직접 가르치셨다. 그러나 귀가 열리지 못한 그들이니 어찌 그 말씀을 깨달을 수 있었겠는가!

(마 22: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마 22:35)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마 22:36)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마 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 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 22: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 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태양계와 같은 그렇게 큰 세계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그 뜻을 담아두시더니, 이제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 뜻을 미시 세계인 원자들 세계 속에 담아 두셨다.

 

우리 주변에 너무나도 흔하게 접하는 것이 탄소 원자이다. 그 탄소 원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 뜻을 담아 두셨다. 그리고 강가나 바닷가에 그렇게도 흔하게 늘려있는 모래 속의 실리콘 원자 속에도 숨겨두셨다.

 

탄소 원자는 제일 바깥의 전자 궤도에 4개의 전자가 돌고 있다. 탄소 원자가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것은 제일 바깥 궤도에 돌고 있는 이 4개 전자들의 움직임에 있다. 최외각에 돌고 있는 4개의 전자를 가진 어떤 탄소 원자가 이웃한 4개의 다른 탄소 원자와 만나면 그들에게 각각 전자 1개씩 내어준다. 이렇게 주면 그 주위에 있던 4개의 다른 탄소 원자들도 각기 한 개씩 전자를 내어준다.

 

이렇게 전자를 서로 내어주면서 결합하는 것을 탄소 원자들의 ‘공유결합’이라고 한다. 그 중심에 있는 탄소 원자가 먼저 자신의 전자를 이웃한 탄소 원자들에게 내어주는 이것이 이웃사랑을 상징한다. 내가 먼저 손 내밀어 주었더니 이웃한 탄소 원자들도 고맙게 여기고 자신의 것도 내어주어 결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는 사랑의 결합이다. 그래서 나는 ‘공유결합’을 ‘사랑의 결합’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이런 내용의 강의를 할 때마다, 나는 꼭 이점을 강조했다. 하나님의 의도하신 바를 깨달았기에 그렇게 말하여 가르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탄소 원자들이 이렇게 결합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탄소는 숯이다. 양초를 태우면 올라오는 그을음도 탄소다. 만약에 그 숯이나 그을음을 새하얀 드레스에다 묻힌다면 어떤 소리를 들을까?

 

그렇게나 하잘것없는 탄소들이 공유결합을 통해 결정을 이루면 놀랍게도 다이아몬드가 된다. 다이아몬드를 보잘것없는 것이라고 무시할 만한 사람이 있겠는가!

물론 이 모든 세상적인 것들에서 초월한 자라면 다이아몬드도 돌같이 하찮게 여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보잘것없다고 여기며 천시했던 탄소로 다이아몬드가 되게 하신 것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의 말씀을 담아두려 하심이었다. 그 말씀은 애초부터 죄인 되어 그렇게도 보잘것없었던 우리를 선택하셔서 하나님 사랑을 입히심이다.

 

이는 탄소 원자가 4개의 최외각 전자를 갖게 하심에서 드러난다. 최외각 전자가 이웃한 4개의 탄소 원자들에게 전자를 각기 하나씩 내어줌으로써 이웃사랑에 대한 그 이치를 깨닫게 해주려 하심이었다. 우리가 그 이치를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드디어 다이아몬드와 같이 고귀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시려고 이 탄소로 만든 다이아몬드에 일반계시의 그 말씀을 담아 두신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다이아몬드는 공유결합에 참여한 전자의 숫자가 모두 8개가 된다. 이 8이라는 숫자는 통상적으로 성경에서는 새로운 출발을 상징한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그 지으실 사람이 장차 죄인 되는 그 자리에 설 것을 이미 내다보시고, 그를 당신의 그 사랑으로 구원하사 새 생명이 되게 만드시겠다는 그 뜻을 이 8개의 전자 속에 담아두셨는지도 모른다.

 

실리콘에서도 공유결합에 참여한 8개의 전자가 서로 사랑함으로써 공유결합을 이루어 사람들에게 이롭게 할 실리콘 결정이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거듭난 후에 이웃사랑을 실천할 소중한 존재로 세우실 그것에 대한 암시였으리라.

 

그러니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그 마음에서 그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그 일, 즉 복음 전하는 그것이 마땅한 일이지 않겠는가?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막 16: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롬 10: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롬 10: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성경에서 8이라는 숫자가 암시하는 것은 분명히 새로운 출발이라는 것이다. 그 근거는 노아가 방주를 만들고, 그 방주에는 노아 가족 모두 8명이 탔다는 것이다. 그 땅의 새로운 시작은 이 8명으로부터 이루어졌다. 이들은 홍수 이후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는 그 일을 맡았다.

(창 6: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창 6: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또 다른 근거는 할례의 시행에 대한 날짜에서다. 유대교 전통에서 할례는 출생 후 8일째 되는 날에 행해졌다. 그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구별됨을 상징하는 중요한 의식이었다. 할례를 행함은 거룩하게 구별된 새 삶의 시작을 알리는 일을 의미했다.

(레 1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레 12: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여인이 잉태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칠 일 동안 부정하리니 곧 경도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레 12:3) 제팔 일에는 그 아이의 양피를 벨 것이요

 

가장 선명하게 8이라는 숫자가 새로운 시작임을 알리는 참 근거는 주님이 부활하신 날에서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은 안식일 다음 날, 즉 일주일을 시작하는 첫날에 일어났다. 이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구원의 시작을 의미했다. 주님이 부활하신 날은 일주일이 끝난 후에 새로운 주간이 시작되는 날인 여덟 번째 날에 해당한다.

(요 20:1)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따라서 하나님께서 다이아몬드가 되도록 하는 탄소의 공유결합에 참여한 전자의 숫자가 모두 8개가 되게 하신 것은 죄인이었던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될 그것을 이미 암시하셨음이 되었다. 이제 누가 보잘것없던 탄소에서 변화된 다이아몬드의 맑고 투명한 그 숭고한 아름다움을 멸시하겠는가!

 

이렇게 미시 세계인 원자의 세계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그 고귀함을 숨겨놓으셨다. 그리고 그 반대되는 거시세계인 태양계 안에도 하나님의 그 위대하고 숭고한 사랑과 그리고 그 사랑을 받은 죄인이 변화되어 의인 되는 새로운 삶에 대한 그 비밀도 숨겨두셨다.

 

태양계에도 8개의 행성이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다. 왜 하필이면 그 숫자가 8일까!

 

얼마 전까지는 9개의 행성이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수성 (Mercury), 금성 (Venus), 지구(Earth), 화성(Mars), 목성(Jupiter), 토성(Saturn), 천왕성(Uranus), 해왕성(Neptune)의 8개 행성이 공전하고 있다. 과거 한때는 플루토 (Pluto)도 행성으로 간주되었으나, 2006년 국제천문연맹(IAU)에 의해 왜행성으로 재분류되어 현재는 공식적인 행성 목록에서 빠지게 되었다.

 

2006년까지는 플루토가 태양계의 9번째 행성으로 여겨졌지만, 그 이후 국제천문연맹(IAU)이 새로운 행성 정의를 발표하면서, 명왕성은 왜소행성(dwarf planet)으로 재분류된 것이다.

플루토라는 이름은 로마 신화에서 지하 세계의 신 "플루토"에서 유래되었으며, 이에 따라 한국어로는 "명왕성"이라 불렸다. "명"은 어둡고 깊은 지하 세계를 의미하는 한자이다.

 

지하 세계 하데스를 다스리는 신이라면 어쩌면 사탄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뜻을 가진 명왕성이 태양계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사탄이 뱀으로 변장하고 아담을 유혹한 그것을 상징한 것이라면 너무 억지일까?

 

그리고 그 명왕성이 행성의 지위를 잃고 쫓겨난 것은 아담을 유혹한 그 죄를 뱀에게 물으신 그 일을 암시하고 있는 일이었다면 우연의 일치라 할까?

 

명왕성이 쫓겨나고 드디어 태양계가 8개의 행성으로 구성된 것은 장차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자로서의 삶을 살게 될 그것을 처음부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리시려고 그렇게 애초부터 작정하신 일이리라!

 

태양계의 그 아름다움이란 거듭난 우리가 새 사람으로서 행하게 될 그 아름다움을 상징하여 미리 보여줌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그 삶이 도대체 얼마나 아름답기에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이 아름다움에 비교하셨을까!

 

우리의 이 아름다움이 손상되지 않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호하시는 전신 갑주를 입히셨다. 하나님께서 그리하신다는 것을 이 지구를 둘러싼 보호막이 있게 하신 그것으로 드러내셨다.

 

실제로 우리의 이 지구는 다양한 우주 환경에서 오는 해로운 전자기파나 입자로부터 생명체를 보호하기 위해 자연적인 방어막을 가지고 있다. 그 주요 방어막 중에 첫 번째가 자기권(Magnetosphere)이다.

 

자기권은 지구의 핵에서 생성되는 자기장이 지구를 둘러싸 보호하는 영역이다. 이 자기장은 태양풍(태양에서 방출되는 고에너지 입자 흐름)과 같은 해로운 우주 입자가 지구의 대기층에 직접 닿는 것을 막아줌으로써 우리를 보호한다.

 

자기권은 태양풍과 상호작용하여 '버퍼' 역할을 하며, 대부분의 해로운 입자를 우회시키거나 대기 상층부에서 산란시키는 작용을 한다. 특히, 고에너지 입자와 방사선으로부터 지구상에 있는 우리를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두 번째가 대기층(Atmosphere)이다. 지구의 대기는 해로운 우주 방사선과 자외선(UV)을 차단하는 또 다른 중요한 방어막이다. 특히, 지구 대기의 성층권에 위치한 오존층은 해로운 자외선(UV-B 및 UV-C)을 흡수하여 지구 표면에 도달하지 못하게 막아주기에 우리가 피부암과 같은 질병에 노출되는 것을 막아주어 우리의 생명을 보존해준다.

 

대기의 두께는 우주에서 오는 작은 운석이나 파편이 대기층에서 연소되도록 도와줌으로써 지구 표면에 도달하지 않도록 한다. 만약 큰 운석이 떨어지면 우리의 생명은 보장될 수 없다.

세 번째 방어막은 전리층(Ionosphere)이다.

 

대기 상층부의 전리층은 우주에서 들어오는 고에너지 자외선, X선, 감마선 등을 흡수하며, 이 과정에서 공기의 분자가 이온화되어 전리층을 형성한다. 이 층은 고에너지 방사선을 차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전리층이 없다고 상상해보라!

 

그러면 우리는 그 고에너지 방사선에 그대로 피폭당할 것이다. 방사선에 노출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인해 우리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마지막 네 번째 보호막이 반 알렌 대(Van Allen Belts)이다.

지구의 자기권 내에 존재하는 반 알렌 대는 우주에서 오는 고에너지 입자들을 가두어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 이 방사선 띠는 주로 전자와 양성자 같은 입자를 붙잡아 두며, 지구의 자기장이 영향을 미치는 지역에서 강력한 방어막을 제공한다.

 

이러한 여러 자연적인 방어막 덕분에 지구에서 사는 우리는 우주의 해로운 전자기파와 입자들로부터 보호받고 있으며, 생명을 이어간다. 그런데 우리는 한순간이라도 이 4개의 보호막에 대해 감사했는가?

 

이 보호막은 우리를 사랑하사 끝까지 지켜 보호하시려는 하나님의 그 은혜를 상징한다. 이 보호막이 없다면 우리가 한순간이라도 살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우리는 한순간이라도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은혜가 없다면 살 수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주 당연한 듯 그 은혜를 잊고 산다. 하나님의 은혜로 새 생명을 얻었다고 생각한다면 한순간이라도 하나님의 이 보호하심의 은혜를 잊지 말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묘하게도 이 방어막은 4겹으로 되어있다.

지구는 해로운 우주 환경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여러 겹의 방어막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크게 4겹으로 나눌 수 있다. 각 방어막은 특정한 역할을 하며 서로 보완하여 우리를 지키고 있다.

 

통상적으로 성경에서는 이 4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완전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 숫자는 주로 땅이나 세상과 관련된 주제를 나타내고 있는데, 성경의 여러 구절에서 자연의 질서, 우주의 구조, 그리고 창조 세계와 관련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4의 숫자는 특별히 창조와 우주의 완전성을 드러낸다.

창조된 세계의 완전성은 땅의 네 방향(동, 서, 남, 북)과 네 가지 주요 요소(땅, 물, 공기, 불)에서 드러난다.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이 땅과 하늘, 바다를 포함한 세계를 창조하셨는데, 특히, 창조의 네 번째 날에는 해, 달, 별과 같은 천체들이 만들어졌으며, 이것이 세상의 빛을 주관하고 낮과 밤, 계절과 시간을 나누는 역할을 하고 있다.

(창 1:14)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창 1:15)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창 1: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창 1:17)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창 1:18)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19)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따라서 지구 주위에 4개의 보호막이 있다는 것은 지구를 보호함이 완벽하고 완전하다는 뜻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그 사랑과 우리를 보호하심이 완전하고 완벽하심을 스스로 선언하신 그 말씀일 것이다.

 

실리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실리콘도 최외각을 도는 전자의 숫자가 4개이다. 그런데 이 4개의 전자는 탄소 원자의 경우와 다른 점은 그들의 핵으로부터의 거리가 탄소보다는 더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탄소가 실리콘보다는 하나님을 더 가까이하는 자를 상징함인지도 모른다. 이는 하나님을 더 가까이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다이아몬드처럼 귀하다는 것을 말씀하심이었을 것이다. 실리콘은 탄소에 비해 최외각 전자가 원자의 핵으로부터 좀 더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공유결합하는 것은 동일하다. 따라서 실리콘도 공유결합을 하기에 이웃사랑에 대한 그 이치를 숨겨놓으시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실리콘이 공유결합했기에 그 강한 정도는 어느 물질보다 강하다. 그런데 이 실리콘의 결정도 탄소와 같이 다이아몬드 결정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실리콘 단결정이며, 이는 반도체를 만드는 웨이퍼의 재료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자라면 반도체의 도움 없이 살 수 있는 자가 있을까? 휴대폰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만약 반도체가 없어진다면 통신은 물론 온 사회가 그야말로 혼돈에 빠지고 말 것이다. 모든 사람을 위해 자신을 내어준 것이 바로 이 실리콘 원자였으니 가히 이웃사랑의 그 이치가 여기에 담겨 있지 않은가!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그 하나님의 뜻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연 속에 담아두심으로 이미 깨어있는 믿음의 사람이라면 들을 수 있게 하셨다. 이 말씀의 비밀을 아주 작은 미시 세계 속에도 담아 두셨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너무나도 큰 세계인 우주 속에 있는 태양계와 너무나도 작은 미시 세계인 원자의 세계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이 비밀의 말씀을 담아 두셨다. 그렇게 하신 것은 “온 우주가 나의 음성을 듣고 화답하노라”라는 그 선언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