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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어리석음과 하나님의 은혜에 관하여(1)

by 영동장로교회 2024. 9. 15.

2024. 9. 15.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인간의 어리석음과 하나님의 은혜에 관하여(1)”

 

 

파스칼은 그의 저서 ‘팡세’에서 인간의 어리석음과 자만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이 ‘팡세’라는 책을 파스칼이 직접 책으로 출판하지는 않았다. 생전에 그는 자신의 철학적, 신학적 사유를 정리할 책으로 이 팡세를 구상했지만, 그의 생전에는 이 작업이 완성되지 못했다.

 

생전에 그는 많은 메모와 단상을 남겼으나, 이를 체계적인 형태로 정리하거나 출판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의 사후, 1669년에 그의 친구이자 동료인 ‘프랑수아 드 사살’ (François de Sacy)과 ‘피에르 베이유’ (Pierre Bayle) 등의 인물들이 파스칼의 유언과 메모를 바탕으로 이 ‘팡세’를 출판하게 되었다.

 

‘팡세’는 ‘생각들’ 또는 ‘사고들’이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 말이다. 말 그대로 평소에 파스칼은 인간 존재, 신앙, 도덕, 그리고 철학적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과 사유를 했다. 그리고 이 고민과 사유가 담긴 메모와 단상들을 묶은 책이 바로 이 ‘팡세’이다.

 

이 책의 284번째 단락에서 그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판하고 있다. 파스칼은 인간이 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세상의 의미와 자신의 위치에 대해 무지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인간이 끊임없이 자신을 합리화하고자 하며, 그러한 시도가 어리석음을 더욱 부각시킨다고 지적했다.

 

274번째 단락에서도 그는 인간의 자만심과 그로 인한 어리석음을 다루고 있다. 파스칼은 인간이 자신의 지혜와 능력에 대해 과도하게 자만하고 있는데, 이는 인간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무지하고 불완전한지를 가리고자 하는 방편이 될 뿐이라고 설명한다.

 

파스칼의 지적대로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다. 그렇다면 그가 지적한 대로 인간은 왜 어리석은 것일까?

 

사람은 자신의 무지를 인식하지 못한다. 대체로 인간은 자신의 한계와 무지를 자각하지 못하고, 스스로 지혜롭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인간이 자신의 존재와 지식의 한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그 근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하나님이 처음 사람 아담을 창조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지혜로움을 허락하셨다. 그러했기에 그는 능히 그 땅에 있는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한 이해를 지니고 있음을 함의한다.

 

사물에 대해 따로 배워서 지식을 얻어 가진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지닌 것이기에 이는 또 다른 의미에서 ‘지혜 있음’의 의미가 된다.

(창 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창 2:20)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그러나 아담의 이 지혜는 그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음으로 인해 상실되고 말았다. 전도서 기자는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들이 많은 계책을 내어 자기들만의 악을 추구하였도다.”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인간이 죄를 범함으로써 처음의 그 지혜로운 자의 지위에서 어리석은 자의 자리로 떨어져 버리고 말았음을 드러내어 밝힌 것이다.

(전 7:29)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

 

또한, 이 구절은 하나님이 사람을 본래 정직하고 지혜로운 존재로 지으셨으나, 사람들이 자신의 자아 중심적인 욕망과 악한 계책을 추구함으로써 타락하게 되었음을 명시한 것이다. 이 일로 인해 인간의 지혜와 정직은 왜곡되었고, 결과적으로 어리석음을 초래하게 되었음을 설명하는 말이 된다. 따라서 이 구절은 죄가 지혜로움을 잃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분명히 시사해주고 있다.

 

솔로몬은 그의 글에서 “악한 것이 어리석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죄를 지음이 악한 것이니 죄인 된 자는 결국 어리석은 자라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이 어리석은 이유는 그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전 7:25)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궁구하여 악한 것이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하였더니

 

 

사도 바울은 죄를 범한 인간의 속성에 대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 지혜가 어두워진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의 지혜가 어두워졌다고 설명함이다. 그런고로 사도 바울의 이 말에는 죄로 인해 지혜가 손상되었다는 그 개념이 반영되고 있음이다.

(롬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인간이 죄를 지었음으로써 결과하는 이 어리석음에는 ‘자만심’과 ‘자아 중심적 사고’, 그리고 ‘세속적인 유혹에 대한 무지의 드러냄’이 담겨있다.

 

죄인 된 인간은 누구나 자만심과 자아 중심적인 사고에 쉽게 빠지게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권고하기를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라고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로마교회 성도들이 죄인의 신분에 있었을 때의 그 어리석은 교만 때문에 넘어져 자아 중심적 사고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누구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는다면 죄악된 그 본성의 지배에 따라 능히 자아 중심적 사고에 쉽게 몰입되어 자만하는 자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다. 그리하는 그것이 어찌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는가!

(롬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그는 갈라디아서에서도 자아 중심적인 사고와 자만심이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경고함으로써, 죄의 결과로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자만하게 될 수 있음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갈 6: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예수의 형제 야고보도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라고 말했다. 교만은 자아 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이는 죄를 결과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음에 대한 경고였다.

(약 4:5)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약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약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죄인 되었기에 능히 교만하여질 수 있다는 이 사실에 주목하여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권면하기를 “새로 나온 자가 교만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라고 했다. 이는 죄의 결과로서의 교만이 마귀와 정죄에 빠지게 할 위험을 초래할 수 있음에 대한 사도 바울의 또 다른 경고였다.

(딤전 3:1)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딤전 3: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딤전 3: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딤전 3: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딤전 3: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딤전 3: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딤전 3: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솔로몬도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함으로써 자아 중심적 사고와 자만심이 결국 헛된 것임을 경고했다. 그의 이 말은 인간의 자만과 자아 중심적인 사고는 궁극적으로 무의미하며, 무가치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솔로몬은 죄인 된 인간이라면 그 누구라도 능히 자만심과 자아 중심적인 사고에 빠지기 쉬운 상태에 있다는 것을 경고하면서, 이러한 경향이 영적, 도덕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음도 상기시켜주었다.

(전 1: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 1: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 1:3)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전 1: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죄로 인해 어리석게 된 자는 세속적인 유혹에 대해 무지하므로 그 유혹에 너무나도 쉽게 넘어간다. 또, 죄인 된 인간은 세속적인 유혹과 욕망에 쉽게 휘둘리게 되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어리석은 행동일 것이다.

 

사람들이 종종 물질적 성공이나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면서, 신앙적 진리나 도덕적 가치를 너무 쉽게 간과해 버리는 것은 죄를 범한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일 것이다. 예수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물질적 목표와 신앙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셨다.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믿음의 백성된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게 하신 말씀으로써, 언제나 하나님을 향해 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진 믿음의 백성 된 그 자리에 서라고 하시는 당부의 말씀이셨을지도 모른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쓴 편지에서 “돈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한 말에서, 돈과 물질에 대한 사랑이 신앙에서 멀어지게 하고, 많은 고통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딤전 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딤전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갈라디아 교회에 쓴 편지에서도 이 일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다. 죄로 인한 그 육신이 주장하는 육체의 욕망과 감각적 쾌락은 신앙적 가치와 도덕적 삶에 반하는 행동임을 일깨워주면서, 바른 신앙의 자세를 가지라고 촉구했다.

 

그의 말대로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그리스도처럼 우리의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과연 우리는 이 말대로 정말로 우리의 육체와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인가?

(갈 5: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

(갈 5: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갈 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 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세상의 쾌락과 물질적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훼손할 수 있음에 대해서 야고보도 지적하여 경계했다.

(약 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약 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에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약 4:5)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죄를 범한 인간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지 아니하면 비록 겉으로는 하나님을 알지라도 그를 영화롭게 하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으며, 그의 마음이 어두워지고 어리석어져 세속적인 유혹에 쉽게 넘어가게 된다. 그러한 경향에 대해서는 사도 바울도 그의 로마서 서신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롬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롬 1: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롬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롬 1:25)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하나님의 온전하신 은혜가 임하지 않은, 죄인 된 상태에 머물러 있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또 다른 현상은 자신의 유혹에 따라 또다시 죄를 지음이다. 이 죄는 결국에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결과를 낳고 만다.

 

우리도 때때로 유혹을 받는 것은, 비록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고 거듭남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완전한 성화를 이루지 못함 때문이다. 성화의 초기에는 우리에게 여전히 죄악 한 본성이 남아 있다. 그래서 이 유혹에 끌려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택하심을 입은 우리는 택하심을 입지 못한 자들과는 다르게, 그때마다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는다. 성령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우리가 능히 기도함으로써 그 위기를 탈출할 수 있다. 만약 그 순간에 우리가 머뭇거린다면 우리도 역시 택함을 받지 못한 자들의 무리에 속해있음이 되고 만다.

 

그래서 매 순간 깨어 있어 믿음의 승리자가 되어야 할 그 책임과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세속적인 욕망과 유혹에 쉽게 넘어가게 되는 택함 받지 못한 무리와는 우리가 그런 면에서 질적으로 다른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매 순간 도우시는 성령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말씀을 붙잡고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약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약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믿음의 백성들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죄인의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자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본향을 사모하기에 세상에 몰입되지 않는 것이 믿는 자의 삶의 태도이다. 그래서 세상을 탐하지 않고, 바르게 지배하는 삶을 살고자 할 뿐이다. 믿음의 백성은 재물과 세상의 명예, 권력을 탐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지혜롭게 다스리려 한다.

 

그러나 죄로 인해 영안이 가려진 그들은 그 재물과 권세와 명예의 노예로 사는 그 삶을 스스로 선택한다. 그 선택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그들은 결코 인지하지 못한다. 사도 바울은 재물과 명예와 권세의 그 굴레를 던져버렸기에 그는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디모데에게 이 사실을 가르쳐 교훈했다.

(딤전 6: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딤전 6:6)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딤전 6: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딤전 6: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 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평생토록 부와 권세와 명예를 누리고 살았던 솔로몬도 노년에 이르러서는 천국을 사모하는 자에게 그것이 모두 무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깨달은 그것을 뒤에 오는 자들에게 깨닫게 해주려고 이르기를 ”돈을 사랑하는 자는 돈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못하느니라. 이것도 헛되도다."라고 했다.

 

참된 믿음의 백성들에게는 물질적 성공과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결국 헛되며, 인간은 이로 인해 만족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바르게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점이 죄로 인해 어리석은 상태에 있는 자들과 구별되는 다른 점이다. 물질적 성공과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헛되며, 따라서 이러한 것으로는 누구라도 만족을 얻지 못한다. 어리석은 자들은 이를 알지 못한다.

(전 5:10)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전 5:11) 재산이 더하면 먹는 자도 더하나니 그 소유주가 눈으로 보는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

 

어리석은 인간이 지니는 또 다른 특징의 하나는 미래와 불확실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회피하려는 경향이다. 그래서 그런 자들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직시하지 않고, 현재의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려고 한다. 이러한 태도는 인간의 본질적인 불완전성과 어리석음을 드러낸 것이다.

 

사람의 어리석음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되었기 때문에 발생한다. 즉,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깨지면서 사람은 자신의 진정한 지혜와 이해를 상실하게 되고, 그로 인해 어리석은 판단과 행동을 하게 된다.

 

결국 인간의 어리석음이란 죄로 인한 결과이다. 죄를 범한 자는 하나님과 분리될 수밖에 없고 하나님과 분리되었기에 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죄이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라고 했으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의 자리에 설 수밖에 없다.

(사 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 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엡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엡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디음 주에 계속해서 2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