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3.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그리스도 예수의 속죄의 한계”
그리스도 예수의 속죄 사역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이 땅의 모든 인류에게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적용하시기 위한 사역이었을까?
이 질문은 그리스도의 사명과 사역이 모든 인류에게 차별 없이 동등하게 관계를 가지는가 아니면 어떤 특별한 자들만을 대상으로 하여 관계를 가지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전자는 ‘보편적 속죄’에 대한 이야기이고, 후자는 ‘제한 속죄’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예수님의 사랑을 참으로 많이 받았던 제자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요한은 예수의 속죄 사역이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한 일이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보편적 속죄’를 지지하는 보도로 보인다. 과연 그러할까?
(요일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일 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일 2: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요일 2:4)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요일 2: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요일 2:6)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행하신 속죄사역은 그 효능 면에서는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다 구원하기에 충분한 효능을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만족이 모든 사람, 즉 그 수가 아무리 많다할지라도 하나도 빠짐이 없을 정도로 많은 죄인들을 구원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 만족의 효과는 제물의 존엄에 의뢰하는 바이니 우리의 죄로 인하여 자신을 드리신 하나님의 독생자의 존엄에 제한이 있을 수 없음과 같이 그의 사역의 효과에는 제한이란 있을 수 없다.
또한 그리스도 예수의 속죄 사역으로 인한 만족이 장차 존재할 어느 죄인에게든지 적당하여 가히 적용할만한가를 따질 문제도 될 수 없다. 모든 사람에 대한 율법의 요구는 다 동일하다. 따라서 한 사람을 구원하기에 합당한 것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에도 마찬가지로 합당할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만족을 적용받지 않아도 좋을 인물은 없다. 그런 자도 예외 없이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순종과 죽음의 공로는 인류 각 개인이 다 칭의를 위하여 수요하므로 모든 사람에게 적당하다.
그리스도 예수의 이 속죄사역의 효능은 모든 인류에게 적용될 때 그 효능에서 전혀 문제가 있을 바는 아니다. 효능 면에서는 그러하다. 그러나 실제적용에서는 그 한계가 있다. 개혁파의 입장에서는 선택된 피택자에게만 특별히 이것이 적용되어 그 효능으로 칭의에 이른다고 본다.
반면에 속죄의 만족론을 주장함에서는 개혁파와 같은 입장을 취하는 루터파라도 속죄의 기도 (企圖)된 한계의 문제에서는 이것이 모든 인류에게 동등한 관설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개혁파는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택하신 백성만을 현실적으로 또는 확실히 구원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죽으셨다고 한다.
그러면 과연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택하신 백성들만을 위하여 그리하셨을까?
그리하셨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리스도의 제사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에 객관적으로 효능 면에서 충분하였고, 하나님의 권능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힘차게 역사하여 구원에 인도하기에 능히 가능하였는데 어찌하여 그는 모든 사람들을 다 구원하지 않으시는가? 그 이유가 무엇일까?
유한한 인생이 무한한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은 기어 다니는 지렁이가 하늘을 나는 새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따라서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지 않는 그 이유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중을 드러내어 보이신 성경의 말씀을 주의 깊게 살핌으로써 어렴풋이 그 뜻을 알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땅이 죄의 권세 아래에 있었던 그 때에 하나님은 한 사람을 부르시고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셨다. 그리고 그 족속들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셨다. 그 땅의 많은 사람들과 구분하신 것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는 그 순간부터 죄는 이 땅을 지배하게 되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사단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 세상의 사람들은 예외 없이 모두가 죄인들이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영원한 죽음뿐이었다. 그 죽음을 비껴갈 자는 하나도 없었다.
(엡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그런데 그런 사람들 중에서 오직 한 사람 아브람을 하나님이 부르셨다.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훗날에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불리게 되고 그의 손자 야곱이 이스라엘로 불리게 될 때 그 자손들이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이루게 된다. 그들이 애굽에서 민족을 이루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던 날에 그 주변에 있던 이방 족속들이 모두 두려움에 몸을 움츠렸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족속들과 함께 하고 계심을 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 일이었다.
(출 7:4) 바로가 너희를 듣지 아니할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더하여 여러 큰 재앙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출 7:5)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매
(출 14: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출 14:22)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출 14:23)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 뒤를 쫓아 바다 가운데로 들어 오는지라
(출 14:24)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 구름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출 14:25) 그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극난하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가로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출 14:2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출 14:27)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매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출 14:28)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을 이스라엘 정탐꾼들이 정탐하러 갔을 때 그 성의 한 사람, 라합이 말한 이야기에서 과연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심이 온 천하에 알려지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신 것이다. 만약 온 땅의 족속들의 하나님이셨다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편을 들어 이스라엘이 이와 같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까?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이렇게 드러날 수 있었을까?
(수 2:8) 두 사람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수 2:9)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수 2: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수 2: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사도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인 로마서에서 언급한 글에서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택하신 백성들만을 위하여 속죄사역을 행하셨을 것이란 것을 추측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한다.
사도바울은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라고 말함으로써 이방인들 중에서 일부가 믿음의 백성이 된 이유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아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된 이스라엘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여기서 이방인들 모두가 믿는 자가 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시기나게 할 정도의 믿음의 백성들만이 은혜로 선택이 되었고, 시기하게 될 그 이스라엘도 이 땅의 많은 족속들 중에서 은혜로 선택된 한 족속이었다. 이렇게 선택된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선택된 자들인 것이다.
(롬 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롬 11: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롬 11:3)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롬 11:4)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롬 11:5)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롬 11: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롬 11:7)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롬 11: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롬 11:9)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롬 11:10)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롬 1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롬 11:12)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롬 11: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롬 11:14)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롬 11:15)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롬 11: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사도바울은 또 다시 언급하기를 이스라엘의 구원은 구원을 얻을 이방인의 수가 하나님이 족하다고 생각 하실 충만한 숫자가 될 때 비로소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구원은 모두에게 허락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된 자들에게만 허락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의 속죄 사역의 만족은 선택된 자들에게만 한정되는 만족이다.
(롬 11: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하나님이 특별히 많은 죄인들 중에서 구원하기로 몇몇을 믿음의 백성들로 선택하신 것은 오직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요 11: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요 11: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요 11: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요 11: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롬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 되므로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목적으로 죄인 모두를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구원할 자, 우리들을 특별히 구별하여 은혜로 선택하신 것이다.
세상사람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특별히 선택된 우리에게만 고귀하고 값진 구원이 주어진 것에 대해 우리는 참으로 감사하는가?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고전 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하나님은 애초에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사랑의 우교를 나누기를 원하셨으나 그 일을 이루지 못하셨다. 그러나 이제는 죄인들 중에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천국에서 우리와 사랑의 우교를 나누심으로 당신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셨다. 우리를 향한 그 위대하신 사랑을 나누어주시려는 하나님의 그 위대하심,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드러나실 것이다.
(계 21:22)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계 21: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우리를 특별히 선택하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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