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17.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그리스도 예수의 속죄 사역”
- 성경이 말하는 세상의 의미는 무엇인가?
요한은 예수를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다. 그러면 예수는 이 땅의 모든 죄인들을 위해 죽으신 것이란 의미인가?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은 또 다른 구절의 말씀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이란 어떤 의미일까?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은 유대인이었다. 그들의 동족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족속들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은 이 땅의 많은 족속들 중에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 이는 이 땅의 많은 족속들을 대신해서 장자로 세우심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그 뜻을 받들고 이 땅의 많은 족속들에게 하나님의 그 사랑을 전파해야할 사명을 지닌 족속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의미에서의 선민이라는 생각보다는 오직 유일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누릴 족속이라는 그 의미에서의 선민사상을 지닌 족속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방인들에 대해서는 배타적이었고,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을 알리는 그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하나님의 뜻을 오해한 이스라엘의 무지를 깨우치기 위해 그리스도 예수가 그들에게로 오셨다. 유대 땅 베들레헴에 예수가 태어나신 것이다. 사도요한은 그런 이스라엘을 염두에 두고 ‘세상’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오직 유대인들만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에게만 예수에 대해 말하려고 했다면 그는 당연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중에서만 구원할 자를 택하신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족속들을 대상으로 하여 구원할 자를 선택하셨기에 사도요한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복음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족속들을 위한 것이 되고 따라서 요한은 그런 의미에서 ‘세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세상”은 이 땅의 모든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요한은 “저를 믿는 자”로 한정된 ‘세상’을 말하고 있다.
이것이 참이라는 것을 사도바울의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서신서인 로마서에서 그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언급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일 때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가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이었고 그 때 그 대상은 구원받을 자들이라는 것이다. 이 구원받을 자들, 즉 하나님의 사랑을 입을 자들을 요한은 ‘세상’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요한의 그 ‘세상’이라는 것은 이 땅의 모든 자들을 가리키는 그 세상이 아니라 오직 구원을 얻을 이스라엘 밖의 이 땅의 모든 선택된 자들인 그 ‘세상’인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의 속죄는 이 세상의 모든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구원받기로 택하심을 입은 자들만을 위한 ‘제한 속죄’였던 것이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요한의 또 다른 글에서 예수의 그 죽음이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처럼 오해하게 만드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는 “온 세상의 죄”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보편적 속죄’를 말하는 뜻한 인상을 준다.
(요일 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이 글에서 요한은 이미 믿음 안에서 구원이 확정된 자들과 아직 복음이 전달되지 못해 믿음 안에 거하지 못한 자들을 구별하고 있을 뿐이다. 그가 말하는 “온 세상의 죄“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이 땅의 모든 구원 얻을 족속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죄인 상태에 있어 요한은 그것을 ”온 세상의 죄‘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의 죽음은 구원 얻을 자들을 위한 죽음이며 ‘제한 속죄’가 된다. 요한이 말하는 ‘세상의 구주‘도 이 땅의 모든 죄인을 위한 구주가 아니라 구원을 얻기로 택정함을 입은 자들의 구주란 의미에서의 ’세상‘이다.
(요일 4: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예수의 그 속죄가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들을 위한 것이었음은 예수 자신의 기도에서도 분명히 밝혀진다. 그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면서 하나님께 드린 그 기도에서 그는 자신이 기도하는 이것이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라고 밝힘으로써 자신의 속죄는 택하심을 입은 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의 그 속죄는 모든 죄인들을 위한 보편적 속죄가 아니라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들을 위한 제한 속죄라는 것이 분명하다.
(요 17:9)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요 17: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요 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성경에서 등장하는 이 ‘세상’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천하로 다 호적하라”고 한 이 말에서 사용된 천하도 영어로는 world로 역시 세상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그 세상으로서 택하심을 입은 자들로 한정되는 그 세상과는 다르다. 또한 요한이 말씀하신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라고 할 때의 그 세상도 일반적인의미에서의 그 세상일 뿐이다. 예수께서 기도 중에 언급한 세상도 요한이 언급한 그 세상과는 다르게 일반적인 의미의 온 세상이니 유기된 자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이다.
(눅 2:1) 이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요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롬 1:8)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이에 반하여 다음과 같은 구절에 사용된 세상은 일반적인 의미의 그 세상이라기보다는 한정된 수의 사람을 가리킨다.
(요 12:19)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저를 좇는도다 하니라
(요 14: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요 18:2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의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히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롬 11:12)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롬 11:15)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만약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에서의 세상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께서 이 땅의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로 하신 것이었다고 결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그리스도는 택하심을 입은 자들만 구원하시기로 의장되셨으므로 여기서의 세상이란 구원 얻을 자들에게만 한정된 의미에서의 세상인 것이다.
(요 6: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요 6: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사도바울의 말씀인 로마서 11장에 등장하는 세상은 분명히 이스라엘을 제외한 그 세상이 되므로 성경에 등장하는 세상이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말하는 그런 의미의 세상만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구원에 관해 말씀하실 때 등장하는 그 ‘세상’이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포함하는 그런 의미의 세상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분명히 할 수 있다.
(롬 11:12)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롬 11: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롬 11:14)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롬 11:15)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이제 우리는 요한이 말한 ‘세상 죄’라는 것이 유대인들에게만 한정될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족족들에게 확장된 그 ‘복음’과 관계된다는 것을 암시한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드디어 복음은 모든 민족들에게로 확장이 되고,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뜻대로 유대인들에게만 갇혀진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민족들에게 열려진 하나님으로서 그 사랑을 실현하실 것이 이 표현 속에 담겨 있기에 이 표현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일종의 선포였다. 이제 그 사랑이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까지 도달한 것이다!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사도바울 역시 요한이 말한 그 세상을 자신의 글 속에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고후 5: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서두에 언급한 요한의 글에서의 그 세상의 의미는 이제 명확해졌다. 온 세상이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그런 의미에서의 세상이 아니라 한정된 숫자의 사람들, 즉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정하신 선택받은 자들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현재 요한과 관계가 맺어져 있지 않지만 구원에 이를 자들을 말한다.
우리란 현재 믿음을 가진 자들로서 요한과 관계를 맺고 있는 자들인 것이다. 구원얻을 이 땅의 주님의 백성들 중에서 요한과 만나고 있는 자들을 뺀 나머지 모든 사람들을 요한은 ‘세상’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은 이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고 그의 속죄는 이들을 위한 것이었으니 ‘보편적 속죄’가 아니라 ‘제한 속죄’, 그것을 주님이 이루셨던 것이다.
(요일 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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