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11. 영동장로교회 최규만 목사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 다 주께 맡기라
베드로 사도는 우리의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라고 권면하고 있다.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그런데 맡기라 하신 그 말씀에 도대체 순종하지 못하는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께서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의 뜻도 “모든 것을 나 예수에게 맡기라”는 것이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맡긴다는 것은 신뢰를 전제로 한다. 신뢰할 수 없는 자에게는 아무 것도 맡길 수 없다. 맡겨야할 그것이 내 것이라면 더더욱 아무에게나 선뜻 맡길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내어맡기기 위해서는 맡아줄 그 상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야 하며 또한 맡길 자의 입장에서는 내 것이라는 소유욕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어린 아이가 높은 곳에서 그의 아비에게 뛰어내릴 수 있는 것은 그 아비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자기의 신체가 부상을 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보존 될 수 있음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에게 온전히 내어 맡기기 위해서는 그의 말씀에 대한 온전하고 바른 깨달음과 그 말씀에 대한 믿음의 확신이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없이는 전부를 내어맡기는 그 일은 불가하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의 은혜가 임하여야만 비로소 가능해진다.
(눅 4: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눅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눅 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성령하나님이 이 은혜를 주시는 것은 나의 노력과는 무관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은혜를 받은 줄로 믿고 감사함으로 이 말씀을 깨닫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은혜를 받은 자가 마땅히 하여야 할 바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다만 ‘청지기’일 뿐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자신의 삶을 사는 자는 극히 드물다. 매 순간마다 소유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자기의 소유물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식도 자기의 것이라 하고, 자기가 소유하여 살고 있는 집도 자기의 소유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 세상의 관점에서는 그러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전혀 그러하지 않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날에는 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가야한다.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그 모든 것이 진정으로 자신의 것이었다고 할 수 있는가?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청지기일 뿐이다. 하나님 앞에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그것을 임시적으로 관리할 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니 마냥 버려두거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내 것이 아니니 소중히 여길 것도, 정성을 쏟을 것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결코 그럴 수는 없다. 충성된 종이라면 주인을 위해 마땅히 일하여야 한다. 따라서 주인의 모든 것에 대해 정성을 다하여 아끼고 보살펴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을 사는 날 동안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맡겨진 그 일을 감당해야 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그 모든 것에 대해 정성을 다하여 돌보며 아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자로 보인다.
예수는 이 사실에 대해 예화를 들어 설명하셨다. 달란트의 비유이다.
(마 25: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마 25: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마 25: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마 25:17)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마 25: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마 25: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마 25: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마 25: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마 25: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마 25: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마 25: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마 25: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마 25: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마 25: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어라
(마 25: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마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주님이 이 비유의 말씀을 주실 때 전제하시기를 이는 천국에 대한 비유라고 하셨다. 달란트의 비유는 천국에서의 원리, 즉 참된 자유자에게 있어서의 그 원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참된 자유자라면 청지기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그 몫에 대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두 달란트 받은 자는 두 달란트를 남겼고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는 다섯 달란트를 남겼다. 이 때 주인은 이 두 종에게 더함도 덜함도 없이 똑 같이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고 칭찬했다. 참된 청지기 사상을 소유하고 이 땅에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천국에서의 상 주심을 표현하신 예화이다.
이 땅의 그 어떤 재물이 천국에서의 그 소유와 비교가 될 수 있을까?
이 진리를 바르게 깨닫는 자는 도무지 이 땅의 재물에 대한 욕심을 가질 수 없다.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한 자가 바로 한 달란트 받은 그 자이다. 그는 도무지 자신의 사명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 채 아까운 세월을 보낸다. 물론 이 땅의 재물에 대해서도 그 중요성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낭비하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 주인은 그 삶에 대한 책임을 그날에 엄하게 물으셨다.
우리가 천국의 백성이 되는 그 날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이렇게 그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이 청지기 사상에 대한 깨달음이 없으면 세상사는 날 동안 그 자신의 소유에 매여 사는 노예가 된다. 노예란 자유가 박탈당한 상태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았을 때는 분명히 참 자유자였다. 그러나 소유욕이 그에게 다가 왔을 때 그는 사단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비밀을 깨닫게 해주시려고 그리고 노예에서 자유자가 되게 해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 이사야 선지자는 오실 주님에 대한 그 예표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사 61: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과연 그 예언대로 주님은 우리에게 그 자유를 주시려고 오셨다.
(눅 4: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눅 4: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눅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눅 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눅 4: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눅 4:21)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자유케 하시겠다는 그 말씀은 바로 이런 뜻이었다.
(요 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3)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요 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요 8: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요 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요 8:37)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또 구약의 하나님의 말씀 중에 그의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신 것은 바로 이 진리를 깨닫게 하여 주시려는 비상한 섭리이셨다.
(신 15:12) 네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만일 육 년을 너를 섬겼거든 제칠년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것이요
(신 15:13)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공수로 가게 하지 말고
(신 15:14) 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 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신 15:15)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하셨음을 기억하라 그를 인하여 내가 오늘날 이같이 네게 명하노라
(신 15:16) 종이 만일 너와 네 집을 사랑하므로 너와 동거하기를 좋게 여겨 네게 향하여 내가 주인을 떠나지 아니하겠노라 하거든
(신 15:17) 송곳을 취하여 그의 귀를 문에 대고 뚫으라 그리하면 그가 영영히 네 종이 되리라 네 여종에게도 일례로 할지니라
(신 15:18) 그가 육 년 동안에 품군의 삯의 배나 받을 만큼 너를 섬겼은즉 너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하기를 어렵게 여기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하루는 한 부자 청년이 예수께 질문했다. 그는 많은 재산을 소유한 부자 청년이었다. 그의 소원은 영생을 얻는 것이었다. 영생을 얻는다함은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하는 그 삶이니 참으로 자유한 자의 자리에 서는 일이었다.
그는 외형적으로는 참으로 믿음이 좋은 자처럼 보였다. 그 당시 그는 모세의 율법을 충실히 이행했으니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모범적인 믿음의 청년인 셈이다. 그러나 주님의 그 한 마디, “네 재물을 팔아 가난 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라“는 그 말씀에 얼굴색이 변하여 근심하고 돌아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마 19: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마 19: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마 19:18)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 하지 말라,
(마 19: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마 19:20)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마 19: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마 19: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마 19: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마 19: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마 19:25)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마 19:26)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그 부자 청년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믿음이 좋은 청년처럼 보였다. 모세가 명한 그 십계명을 잘 지켰으니 그는 분명 외형적으로는 믿음이 좋은 청년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없었다. 십계명을 지키라 하신 하나님의 그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했다. 십계명을 잘 지키라는 것은 그 본래 의미에서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라는 뜻이며, 삶에 있어서는 그 이웃을 자신보다 더 사랑하라는 뜻이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참 주인이 되라는 뜻이다.
참 주인은 진정으로 자유자인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니 그 하나님의 아들 된 자는 아버지의 그 모든 것이 또한 자기의 것이다. 자기의 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그 자가 참 아들이니 자기의 것으로 하나님이 가장 소중히 여기시며 사랑하시는 그 이웃에게 어찌 나누어주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 부자 청년은 여전히 깨닫지 못한 자였고 그래서 참 자유자가 되지 못했다. 그는 그 순간에는 믿음이 좋은 청년처럼 보였을지라도 참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여전히 사단의 종으로서 그 욕심에 매여 있는 불쌍한 자였다.
그는 자신의 그 모든 재물을 자신의 욕심으로 소유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옛날 아담이 선악과를 자신의 그 욕심으로 소유함으로써 그가 가장 불행 자의 자리, 자유자에서 죄의 종이 된 자의 자리로 전락한 것처럼 그렇게 그 부자 청년도 그런 자리에 서있었던 것이다.
주님에게 나아와 질문했던 그 순간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은혜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종의 자리에서 자유자의 자리로 이동할 수 있었던 그는 그 찬스를 살리지 못했다. 그 불행의 원인은 그가 말씀에 대한 깨달음을 얻지 못함에 있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그런 기회를 주시기를 원했지만 결국은 자신의 어리석은 그 잘못 때문에 그 순간에는 그 행운을 잡지 못했다. 그는 그 많은 재물에 대해서 다만 청지기일 뿐이라는 그 깨달음을 얻지 못한 불행한 청년이었다.
그가 노년에 이르러서 주님을 찾아 왔다면 그렇게 하신 하나님은 참으로 잔인한 하나님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노년은 자유자로 살아갈 기회가 더는 없는 자를 상징한다 할 것이니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면 그는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니 그를 청년의 때에 부르셔서 돌이켜 자유자로 살아갈 기회를 넉넉히 허락하셨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 우리로 하여금 이 비밀을 깨닫도록 도우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유자로 살아갈 기회를 주시고 그리고 그 자유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그 은혜의 삶을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참으로 놀라운 섭리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이 놀라운 은혜가 차고 넘치시기를 축원하노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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