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설교-링크 클릭하면 재생됩니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by 영동장로교회 2019. 6. 2.

2019. 6. 2.

https://drive.google.com/file/d/1yucGXpEprYbQOnRa26E-IhBrxa1Q-CB4/view?usp=sharing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과 전쟁을 치르고 돌아 왔다. 그 전쟁은 숫자적으로 부족한 그에게는 모험이었을 것이다. 비록 이기고 돌아왔으나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가 그 알 수 없는 그 이후의 일로 인해 두려워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14:9) 곧 그 다섯 왕이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과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 네 왕과 교전하였더라

(14:10)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군사가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14:11)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14:12) 소돔에 거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14:17)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그런 그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다. 그리고 두려워말라고 그를 안심시키셨다. 친히 아브라함의 방패가 되셔서 모든 위험으로부터 그를 지켜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약속은 신뢰하기 어려운 사람의 약속이 아니라 복의 근원이 되시는 전능하시고 그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약속이셨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기에 이 약속을 하신 하나님이야말로 아브라함에게는 큰 상급이 되는 것이었다.

(15: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의 이런 약속이 주어지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아브라함을 부르심에 있는 것이다. 그를 불러 주셨기에 하나님은 그의 모든 것을 책임져주시고 그를 지켜주시는 것이다.

 

이러한 약속이 우리에게도 유효한가?

이 약속이 우리에게도 유효함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처럼 그렇게 또한 우리를 불러주셨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의 능력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죄인이기에 우리에게는 스스로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아무런 능력과 권한이 없다. 오직 영적으로 죽어있는 우리에게 주님이 찾아오셔서 새 생명을 심어주심으로 우리가 주님과의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셨으니 주님은 또한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져주시고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주님은 그 옛날 아브라함을 부르셨던 그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주님은 두려움과 염려로 가득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의 짐을 대신 져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아브라함에게는 적의 보복도 근심거리였겠지만 정작 더 큰 근심거리는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아들에 관한 약속의 두려움이었다.

혹시 하나님이 아들을 주신다한 그 약속을 외면해버리면 어찌할까!

내 후사는 어떻게 이어야 할까!

약속하신 땅을 기업으로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이 모든 염려들이 그에게는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현실 앞에서 그는 큰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로서는 대책이 필요했다. 만약을 위해 그는 자신의 후계자로 엘리에셀을 생각했다. 아브라함으로서는 최선의 대책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할 바를 다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 이상은 하나님의 영역이다. 그 이상을 생각하고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라 할 수 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까지만 최선을 다하고,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두려워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아직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그 정도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15:2)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15:3)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자신으로서는 할 바를 다한 그 때 하나님이 그에게 오셔서 말씀하셨다. 너의 방법으로가 아니라 나의 방법으로 내가 할 것이라고. 그 순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그 약속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방법을 버렸다.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인정해주셨다. 이 인정하심에는 아브라함의 모든 것을 책임져주시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아브라함이 비록 자신이 최선을 다해 정한 방법이라도 하나님이 아니라하시고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면 그 길을 택한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생각과 뜻을 내어놓고 하나님이 명하시는 그 길을 택해야만 한다. 이것이 바른 믿음이다.

(15: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라는 것은 내가 너를 불렀으니 이제 너는 내 것이니 내 것에 대해서는 내가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뜻이다.

나는 진실로 이런 하나님을 신뢰하는가? 아브라함의 그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시다.

(15: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15:8)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15: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15: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15: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하나님이 이 같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음에도 그는 또 다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이전에 하나님이 보여주셨던 그 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이 닥치면 또 다시 두려워하는 것이 아직 성화를 완전히 이루지 못한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두려워하는 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분명한 약속을 하시고,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는 것으로 약속의 징표를 남기셨다.

(15:12)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15:14)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5: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5:17)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또 다시 그를 안심시키는 약속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의롭다하신 자에게 베푸시는 놀라운 은혜의 복을 그에게 약속하신 것이다. 이 약속은 이전보다 더 구체적이며 그 범위가 더욱 선명한 기업의 약속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15: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5:19)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15:20)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15:21)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비록 장래 일에 대해서는 온전히 알지 못하지만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그 약속을 부여잡고 약속하신 바를 이루는 일에 용기를 잃지 않아야 한다. 전능하신 자가 하신 약속이니 어찌 이루지 못할 것이 있겠는가? 우리는 다만 우리로서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하면 그 이후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아브라함을 통해 보이셨다.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길에서 벗어났다면 하나님이 직접 그 길을 다시 인도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염려하거나 두려워할 것이 없다. 두려워하던 아브라함이 그 땅에서 두려움을 완전히 벗어버린 날이 바로 모리아산에서 그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린 날이었다.

(22: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의 이 명하심에 아브라함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아침 일찍 길을 떠났고, 아무에게도 그 일에 대해 발설하지 아니하고 모리아 산에서 비로소 그 아들 이삭에게 하나님의 명하신 바를 이야기하고 마지막 순간에는 주저없이 그 아들을 번제로 드릴 준비를 했다. 거기까지가 아브라함의 영역이었다. 그 이후에는 하나님이 당신의 방법을 사용하셨다. 이미 번제물로 쓸 양을 준비하셨고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그것으로 자신에게 번제를 드리라고 명하셨다. 아브라함은 그 때 자신의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법을 따랐다. 온전한 믿음의 사람의 모습을 아브라함이 보인 것이다. 그때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인정하셨다.

(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22: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22:5)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22: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22:7)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22:8)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22:9)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22: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22: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22: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22: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이전의 아브라함이었다면 후손들의 앞날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은 모리아 산으로 가는 일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아브라함의 그 두려움이 변하여 담대함이 되었다. 그의 믿음이 온전하여진 것이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고 그를 책임지신다는 것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자리한 것이다.

 

내가 비록 이 아이를 죽일지라도 하나님은 능히 저를 살리사 나의 자손을 뭇별과 같이 많게 하시고 바닷가의 모래처럼 허다하게 하실 것이란 확신이 그에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에게는 더 이상 두려움이 없었던 것이다.

(12: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이제 우리 모두는 이렇게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나의 구원자이시며 나를 지키시는 방패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여! 나로 하여금 아브라함처럼 그렇게 온전한 믿음의 백성의 자리에 이르게 하여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