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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by 영동장로교회 2019. 5. 12.

https://drive.google.com/file/d/1k1oOnlIoWG9hjpl160d6zR1p-iR2fdpI/view?usp=sharing

2019. 5. 12.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어찌 하나님이신 주님이 종처럼 사역하셨는가!

 

이는 오직 우리를 살리시려 하신 하나님의 그 지극하신 사랑으로 인한 연고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대신 할 자로 지음을 입었으나 자고하여 스스로 높은 자의 자리에 서고자함으로 인해 멸망당할 자, 죽음에 이를 자가 되었다.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그런 자를 살리시려고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스스로 낮은 자가 되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깨달아 살 자의 자리에 서도록 하신 것이다. 주님의 가르침 중에 유독 종에 관한 비유가 많이 등장하는 것도 바로 그런 주님의 의도를 드러내신 것이다. 지극히 교만하여 도무지 구원 받지 못할 우리를 그렇게 살리시길 원하신 주님이셨던 것이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서로 높은 자의 자리에 서려고 할 때 주님은 그들에게 종이 되라고 가르치신 것은 가장 대표적인 예가 되고 있다.

(10: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10: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10:37)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10:3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10:39)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10: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10: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10: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10: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10: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는 주님의 이러하신 뜻을 분명히 이해하였고, 그래서 그가 마가복음을 기록한 것은 주님의 종으로서의 사역하심에 대한 기록이었던 것이다. 다른 복음서들은 그 기록에서 서두를 열 때 주님이 왕으로 오심이나 메시아로서 오심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마가복음에는 예수의 기적적 탄생이나 그 조상에 대한 언급이 없이 바로 주님의 사역하심에 대한 기록으로 곧장 이행하고 있다. 그렇게 마가가 기록한 것은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사역은 가장 모범된 종으로서의 모습이었으며, 그렇게 하심은 우리로 하여금 그대로 본을 보게 하려하심이었고, 그 의도하심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스스로 종의 자리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높은 자리에 서려고 하는 것은 오직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발상에서 비롯된다. 이는 욕망이다. 높은 자의 자리에 서려는 것은 교만한 마음에서 표출되어진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했다. 이러한 것들은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들이다.

(16:17)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니 그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전하느니라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16:19) 겸손한 자와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종의 자리에 서는 일이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구원을 얻는 것도 자신의 노력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된다.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하나님이 하실 일은 무엇인가? 구원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니 이렇게 하는 것은 곧 자신이 하나님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죄인이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한 논리인가!

결코 그것은 불가능하니 따라서 종의 자리에 서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남을 입은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인 것이다.

 

중생한 자는 그 심령이 변화를 입어 새롭게 되니 이전의 그 교만함이 변하여 겸손을 옷 입게 된다. 가장 겸손한 자가 누구이든가!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하고 자신이 가장 낮은 자라할 그 종이 아니던가! 주님이 가르치신 그 종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가장 겸손한 자의 모습이며 또한 구원 얻기에 가장 합당한 자의 모습이니, 이는 진실로 우리에게 요구되어지는 모습인 것이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제자들이 서로 자신이 큰 자라고 논쟁을 벌였다. ‘크다라는 것은 자신이 잘난 자라는 것이다. 이 땅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가 어디 있는가! 하나같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한,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이 아니던가! 그런데 무엇이 잘낫다고 주장할 것이 있는가! 그러나 주님의 제자들은 그렇게 자신이 크다하고 논쟁을 벌인 것이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주님이 모르고 물으셨을까?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이신 주님이신데 어찌 모르실 수 있을까! 그렇게 물으심은 제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그 어리석음에 대한 깨달음을 촉구하시는 물음이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르침을 주셨다. 섬기는 자가 되라고. 종이 되라는 것이다.

 

그 순간 제자들은 그 사실을 바로 인지하고 깨달음에 이르러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게으른 잠자는 종들이었다. 그렇게 가르침을 주셨지만 앞서 언급한 1037절에 기록된 대로 높은 자리를 탐하는 그런 어리석은 종의 모습을 여전히 버리지 못했다.

(9: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노중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9:34) 저희가 잠잠하니 이는 노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9: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9:36)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9: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주님의 가르치심 중에 종의 태도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주신 것이 누가복음에 소개되고 있다.

(17:7)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17:8)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17: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우리가 주님의 종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이는 주님의 은혜로 거듭남을 입은 자로서의 마땅히 지켜 행하여나가야 할 의무요 책임인 것이다. 의무와 책임을 감당하였다고 우리가 상 받기를 바랄 수 있을까! 말씀과 같이 명령받은 것을 행한 후에 우리는 다만 무익한 종이라 하고 고백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고백한다는 것은 우리가 진실로 구원 얻을 자의 반열에 들어섰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또한 참된 종으로서의 삶이란 어떠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주님은 예화를 통해 가르치셨다.

(19:12) 가라사대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19:13)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19:14) 그런데 그 백성이 저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가로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노이다 하였더라

(19:15)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은 준 종들의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 저희를 부르니

(19:16) 그 첫째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9:17)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19:18) 그 둘째가 와서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19:19)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19:20) 또 한 사람이 와서 가로되 주여 보소서 주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19:21)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19:22)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

(19:23)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을 은행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변리까지 찾았으리라 하고

(19:24)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19:25) 저희가 가로되 주여 저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19:26) 주인이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9:27)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악한 종은 참된 종일 수 없다. 우리 모두 주님이 인정하시는 진실되고 충성된 종으로서의 삶을 살아야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사 이 땅을 살아가게 하신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주께서 원하시는 참된 종으로 완성되어지라 하심이다. 우리에게 허락된 삶의 시간, 우리의 수명이란 그렇게 되도록 허락하신 기간이다. 이 땅을 사는 동안 진실되고 참된 종으로의 변화를 이루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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