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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2. 16.
“니고데모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2)”
요한은 니고데모의 이야기에 이어서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분명히 요한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갈릴리로 가실 때 왜 사마리아를 통해 가셨을까?
유대인에게 사마리아는 갈릴리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기를 원하지 않았기에 요단 동쪽 길을 택해 먼 길을 돌아갔다. 그런데 그 당시 유대인들이 가기를 꺼려하는 그 길을 예수의 일행은 왜 갔을까? 갈릴리에 매우 급한 일이 있어 그 지름길을 택했을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인의 고을에서 이틀이나 머무신 것이 그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면 단지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시려고 그리하셨을까? 복음 전하신 것은 사실이다. 주님은 그곳에서 많은 사마리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 단지 그것뿐이라면 이 사실이 복음서에 기록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주님이 사마리아를 지나신 것은 구원에 관한 비밀을 우리에게 보여주려 하신 의도가 숨어있다.
자신이 의롭다고 여기는 자는 스스로 주님께 나아오지만 자신이 진실로 죄인이라고 여기는 자에게는 주님이 찾아오신다. 구원의 비밀을 깨닫지 못한 그 때의 니고데모는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고 의로우신 주님을 만나러 스스로 나아왔다. 부자 청년도 그러했다.
(마 19: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마 19: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마 19:18)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말라, 간음하지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말라,
(마 19: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마 19:20)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그리고 자신의 공로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니고데모의 생각을 주님은 받아주지 않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니고데모를 선택된 자의 반열에 두셨기에 그로 하여금 구원의 비밀, 중생에 대해 알게 하셨고, 그를 거듭나게 하셨다. 결국 그는 자신의 공로가 아닌 주님의 은혜로 구원 얻는 자의 반열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이 땅을 사는 날 동안 스스로 죄인이라 여기고 그 부끄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던 그 사마리아 여인을 위해서 주님이 직접 사마리아로 찾아 가셨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이심을 이 사건을 통해 직접 보여주고 계시는 것이다.
주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말했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고. 이 때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마 9:13, 개역)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7, 개역)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눅 5:32, 개역)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스스로 의롭다 하는 자는 결코 주님을 만날 수 없다. 오직 어떻게 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깊은 고백이 있는 자라야 주님을 만날 수 있다. 사마리아 여인은 진실로 자신이 죄인이라는 의식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유대인들이 개처럼 멸시하고 외면했던,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하나님 앞에 그보다 더할 수 없는 죄인이라 여겼던 그 사마리아, 그 사마리아인들 중에서도 죄인인 이 여인을 메시아이신 주님이 찾아가신 것이다.
(요 4: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요 4:4)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요 4: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왜 하필 주님은 사마리아 땅의 그 우물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주셨을까? 제육시면 사람들이 우물에 물을 길으러 오는 시간이 아니다. 죄인이라 여기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피하기를 원하는 그 여인의 마음을 읽으신 주님이시다. 얼마나 인격적이시고 세심하게 우리를 생각하시며 살피시는 하나님이신가!
(요 4: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육시쯤 되었더라
주님은 참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인격적이시니 우리를 대하심에도 그러하시다. 따라서 스스로 죄인이라 여기는 그 사마리아 여인의 눈높이에 맞추어 구원의 비밀을 너무나도 쉽고 직관적으로 이해 할 수 있게 하시려고 그 우물을 택하신 것이다. 우물은 그 여인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것이었다. 어쩌면 이 우물은 이 여인을 사랑하사 하나님이 그녀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사용하신 언어였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언어가 아니라 사마리아 여인의 언어를 이용하신 하나님의 그 사랑하심이여!
주님은 자신을 생명수라 하셨다.
(요 7:38, 개역)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마 5:6, 개역)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계 21:6, 개역)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 22:17, 개역)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하나님이 말씀하심에는 우리의 인격과 우리의 능력을 뛰어 넘는 차원에서 말씀하시지 않는다. 우리의 눈높이에 맞추어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어떻게 전능자가 유한자인 우리에게 그렇게 하실까! 이는 하나님이 사랑의 본질이심을 보이심인 것이다.
(요 4:7)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요 4: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요 4:9)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구속의 은혜를 베푸시려고 사마리아 그 여인의 앞에 서 계신 주님, 그녀는 알았을까?
구원은 우리의 능력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을 주님이 밝히신 것이다. 그 여인이 어떻게 자기 앞에 있는 이 사람이 메시아이며 어떻게 그 여인 스스로 주님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할 수 있을까! 이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요 4:1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주님이 구원에 관한 영적인 말씀을 하심에도 불구하고 그 여인은 그냥 일상적인 세상에 속한 문제로 이해하고 대화를 이어 가고 있는 것이다.
(요 4:11)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요 4: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세상에 속한 자들은 오직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달려 살아간다.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을 목마르다고 하는 것이다. 영생,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요 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요 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5)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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