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설교-링크 클릭하면 재생됩니다

니고데모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1)

by 영동장로교회 2018. 12. 9.

https://drive.google.com/file/d/1kx_oeqS-rHBXp94cQBw6iUutNM_RVCHW/view?usp=sharing

2018. 12. 9.

니고데모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1)”

 

요한이 요한복음 3장에 니고데모라는 대단히 믿음이 좋은 유대인 한 사람을 등장시키고, 이어서 4장에는 그 때 당시에 모든 유대인들이 이방인이라고 손가락질한 사마리아인, 그 중에서도 부정하다고 사마리아인들에게서조차 무시당한 한 여인을 등장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시간적 순서대로 일어난 사건이라서 기록했을까?

 

성경은 사건을 시간순서대로 기록한 기록물이 아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위대하신 사역의 기록이다. 따라서 이 두 사람이 등장한 것도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사역을 위함이다.

 

자신이 의롭다고 여기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온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자는 하나님이 그를 찾아오신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말은 죄인이라 여기는 자를 찾아오신 하나님을 말함이다.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자를 주님은 내가 너를 알지 못하노라 하시고 죄인이라 여기는 자는 내가 주를 위해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나이다라고 고백한다. 주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는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의 대표격이고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이 죄인이라 생각하는 자의 대표격이다.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7: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니고데모는 엄격한 유대교를 신봉하는 바리새인이었다. 그는 유대인의 관원이었는데, 관원이라 함은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라는 것이다. 산헤드린은 그 당시 유대인의 최고 종교기관으로서 그 구성원이 71명이었고 고위 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백성들의 지도자들이었다. 니고데모는 그 당시로서는 대단한 고위직 인물이었던 것이다.

(3:1)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니고데모는 자신의 조상들의 율법에 정통하여 백성들로부터 존경받는 율법 교사중의 한 명이었다. 그런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은 아브라함을 통해 계승되는 자연적, 육적 출생에 있다고 믿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믿음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 스스로 그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지 않는다면 그 누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문득 예수라는 자의 소문이 들려온 것이다.

(2: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니고데모는 그 당시 유대인들의 종교지도자들의 신앙적 모습이 위선적이고 의롭지 못하다고 여겼고 그 반면 그는 스스로 자신이 신앙적으로 모범적이고 그래서 스스로 의롭다고 여겼던 것이다.

(7:50) 그 중에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저희에게 말하되

(7:51)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그래서 많은 표적을 일으킨 예수에게 일종의 동질감 같은 느낌을 느꼈고, 그래서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성경은 그가 예수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3: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는 표현 속에는 당신이 의인이니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그런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그것을 알고 말하는 자는 그와 같이 의롭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데, 내가 그것을 알았으니 나도 당신과 같이 의로운 자요, 하나님의 백성 될 자, 즉 천국에 갈 자입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니고데모의 마음을 주님이 모르셨을까? 주님은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니고데모는 자신의 의가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자였던 것이다.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자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며 주님이 주시는 구속의 은혜로만 구원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구원이다. 주님은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니고데모에게 중생의 비밀을 알려주신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믿음의 의를 이루어야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된다고 믿고 가르친 니고데모로서는 주님의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의 말에 맞장구를 쳐줄 것이라는 기대와 그래서 자신의 의롭다는 것이 더욱 돋보이는 순간을 기대했는데 그 기대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예수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그 순간 니고데모는 당황했을 것이다.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니고데모는 주님 앞에서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래서 그의 입에서 튀어 나온 말도 안되는 소리가 이것이었다,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유대인들의 율법 선생이며 그들의 잘못에 대해 재판하며 다스린 그런 자리에 있는 자의 입에서 나온 이 황당한 소리는 중생에 대한 깨달음이 전혀 없는 니고데모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지금도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한 그 구속의 은혜로 우리를 살리신 그 중생으로 우리가 구원의 반열에 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의로 공로를 세워 그것으로 내 구원을 이룬다고 착각하는 그런 신앙인들이 있음은 니고데모의 그 때와 일반이다.

(3: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하나님이 당신의 선하신 기쁜 뜻대로 우리를 선택해 부르셔서 영적으로 죽어있는 우리에게 새 생명의 씨를 심어주셔서 우리를 살리셨다. 이는 하나님이 새 창조의 사역이시다. 그렇게 새 생명을 얻은 우리는 그제서야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되고 그 하나님 앞에 설 때 자신이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눈물로 회개하는 그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회개하는 일도 내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의 일이니 나의 공로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이 과정에 물로 하는 세례라는 것이 이루어진다.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바리새인들은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이 영생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 땅에서 자신의 의를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이라 믿고 있었던 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땅에서 형식적인 믿음에 매달렸는지도 모른다, 의롭게 보이려고.

(3: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우리가 육신의 태어난 날을 누가 가르쳐주기 전에는 알 수가 없듯이 우리가 새 창조를 입은 날, 내가 거듭난 중생의 그 날을 알 수는 없지만 우리의 믿음 속에서 중생한 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자신이 알고 행해왔던 믿음의 생활 속에서는 도무지 생각하지 못했던 그 중생의 위대한 가르침에 대해 너무나도 큰 충격을 경험한 니고데모는 계속 당황하고 있었다. 모든 게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3: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3:1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니고데모가 이러할진대 중생에 대한 개념이 전무하고 그 마음에 세상적인 욕망으로 가득하여 기득권만을 지키며 거룩한 채 하기 바쁜 바리새인들이야 주님의 이 말씀을 받아드릴 리가 전무한 것이다.

(3: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3: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이제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자신이 니고데모가 말한 랍비나 선지자가 아니라 수난 받으실 메시아라는 것을 밝히신다. 이 가르침 때문이었을까? 니고데모는 주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후에 제자들은 도망갔지만 직접 가서 장사를 지내드린다. 니고데모에게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말씀을 주신 것으로 보아 분명 그는 이 일 후에 중생의 원리를 깨닫고, 자신이 의로워서 구원받는다는 생각을 버리고 죄인의 자리에 서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믿고 그 구원을 이루었을 것이다.

(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3: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어서 니고데모를 통해 주님은 그 당시의 바리새인들을 엄중히 꾸짖으셨다. 우리는 진리를 쫓는 자의 자리에 서야 한다.

(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3:21)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