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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40일”
자연계에서 가장 완전한 구조체는 삼각형이다. 저절로 우연히 그렇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삼각형이 가장 완전한 구조체인 것을 자연의 이치라 한다. 그 이치를 만드신 자가 누구인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신 것에는 하시고자 하는 말씀의 뜻이 담겨 있다. 그것을 우리는 계시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를 원하시고 스스로 그 일을 하신다. 그 일을 위해 스스로 삼위 되신 것은 우리를 살리실 그 사역이 완전하시다는 것을 이렇게 자연을 통해 알려주신 것이다.
드디어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우리를 대신 해서 제물이 되시기로 하신 성자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고 그 위대한 사역을 하실 그 시작의 순간에 주님은 광야에서 시험을 스스로 당하셨다. 하나님이신 주님이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하실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시험을 스스로 받으셨다.
그러면 주님이 광야에서 40일간 시험을 당하신 뜻은 무엇이었을까?
성자 하나님은 그 본질에서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시다. 그런 면에서는 주님이 성부 하나님보다 아래에 계신 듯이 보이는 이 같은 일을 하신 것은 오직 우리를 구원하실 그 사역하심에 대한 순종일 뿐이다. 우리를 구원하실 그 사역에서 성자는 성부에게 순종하셔야 한다. 이 순종이 가장 완전한 순종이셔서 우리의 모든 순종에 대한 모범이 되신다. 주님의 그 완전하신 순종!
이 순종은 공생애의 사역, 즉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그 위대한 구속 사역을 시작하시기 위해 기도로 무장하시려고 한 일이었다. 이는 모든 사역자들의 본이 되어주신 사건이다. 하나님이신 주님이 바로 공생애 사역을 하셔도 될 일이었다. 왜냐면 당신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광야에서 40일간 주리시면서 금식기도하시면서 그 사역을 위한 준비 기도를 하신 것은 이 땅의 모든 사역자를 향한 위대한 가르침이셨다.
주님은 또한 완전하신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셨다. 이는 우리의 구원을 이루실 자이셨기에 그러하시다. 아담은 처음 사람으로 그가 범죄함으로써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게 하였다면 주님은 마지막 아담이 되셔서 우리를 살릴 자가 되셔야만 했다. 그래서 처음 아담은 먹는 시험을 이기지 못해 그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사단에게 패하고 말았지만 주님은 우리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아담이 실패한 이 먹는 문제의 시험을 이김으로써 사단을 물리치셔야만 했다. 사단으로 하여금 먹는 문제를 가장 먼저 하게 하신 것은 바로 이 이유 때문인 것이다.
주님이 당하신 이 시험들은 또한 우리를 위한 가르침이시기도 하다.
먹을 것을 창조하신 이가 그 먹을 것을 탐하실까. 그럼에도 사단이 먹는 문제로 시험한 것은 사역자가 그 일을 감당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바로 이 먹는 문제라는 것이다. 돈을 밝히는 것이 바로 이 먹는 문제와 연결되어있는 것이다. 먹고 사는데 꼭 필요한 것이 돈이니 사단은 이것으로 사역자를 유혹하고 그 사역에서 실패하게 하는 것이다.
무릇 이 땅을 사는 믿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 사는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모두가 사역자들인 것이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모두에게 각자에게 맞도록 능력을 주셨다. 이 능력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 일에 사용하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자들이 이 능력을 오직 자신의 이 먹고사는 일에만 사용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사단이 원하는 바이다. 이를 주님이 친히 모범으로 보여주시는 것이다. 당신이 이 땅에 메시아로 오셨고 이 사명을 이루시기 위대 가지고 오신 그 능력은 얼마나 크고 위대하셨던가. 굶주린 오천 명을 먹이시고 또 사천 명을 먹이셨던 주님이 아니셨던가. 그러나 그 능력을 당신을 위해서는 결코 사용하지 않으셨던 은혜의 하나님이시여!
엘리야가 사역을 감당할 때 하나님은 까마귀와 한 과부를 통해 그의 먹는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가나안 정탐꾼들은 40일간 가난안을 정탐하는 것을 통해 주님처럼 사단의 시험을 이겨냈어야 했다.
(마 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 4: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마 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우리는 신앙생활 중에 얼마나 많이 하나님을 시험하는지 모른다.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는 이 명령은 참으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시다. 우리가 이 땅을 사는 날 동안 부지불식간에 범하는 가장 큰 잘못이 이것이다. 우리가 기도로 간구하는 일 중에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을 얼마나 많이 저지르고 있는지 모른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에 순종하려고 하기 보다는 자신의 뜻과 자신의 고집대로 주장하고 일을 저지르고 그리고는 하나님께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이런 일이야 말로 얼마나 잘못된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인가!
주님이 순종하셨듯이 오직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에 순종하려고 하는 기도자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마 4: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마 4:6)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사단은 말씀을 이용하여 유혹할 때 그 말씀을 변형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하였다. 하와를 유혹할 때도 말씀을 변형하였고 이제 주님을 유혹하는 이 순간에도 말씀을 이용하되 변형된 말씀으로 유혹하고 있다. 사단은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는 이 문구를 빼고 사용하였다. 이단은 우리를 유혹할 때 말씀으로 하나 그 말씀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변형된 말씀들이다. 사단이 주님을 유혹한 이 허영적 명예심을 사명자는 절대로 조심하여야 한다.
(시 91:11)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시 91:12)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마 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이 땅을 살면서 명예와 권세에 대한 욕망을 이기고 산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신다. 이 땅의 부귀와 영화와 권세는 신기루와 같고 아침 이슬과도 같으니 이를 추구하는 것은 참으로 허무한 일임을 당신의 이 광야 시험을 통해 우리에게 일러주고 계신다. 이 땅위에는 우리의 본향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영원한 본향인 천국에 대한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 이는 우리의 구원을 통해서만 성취 될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마귀가 주님께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유혹한다. 어쩌면 주님은 마귀로 하여금 이 일을 하도록 허락하심으로 우리에게 이 유혹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려 하신 것인지도 모른다.
이 모든 유혹을 주님은 오직 말씀으로만 이겨내셨다. 우리에게도 그렇게 할 것을 명하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말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같이 말씀에 대한 이해를 사모하는가?
(마 4: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마 4: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 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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