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5.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에 대한 그 비밀에 관하여(3)”
- "아브라함의 믿음과 구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예표하는 믿음의 여정"에 관하여
구약 시대의 아브라함도 구원받았다고 한다면 그도 중보자를 통한 제사를 드렸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 때에는 아직 제사장에 데한 규례가 없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중보자 되는 제사장이 없이도 자신의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여 구원에 이른 것이었을까?
분명히 성경에서의 기록에는 아브라함이 중보자인 제사장이 주관하는 그런 제사를 드린 흔적이 없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구원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브라함이 구원받았다고 말할 때, 그는 분명히 중보자나 제사장을 통한 제사를 드린 기록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구원을 얻었다는 성경의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며, 이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특별한 이해에서 비롯된다.
아브라함의 구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제사 제도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아브라함의 구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몇 가지 중요한 점을 살펴보아야 한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이 구원을 얻었다고 할 때, 그 핵심은 그의 믿음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해야 한다. 이 믿음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성경은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
(창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 구절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하나님에 의해 의로 여겨졌음을 명시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약속을 신뢰했다. 구약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여겨지는 방식은 믿음을 통한 관계 회복이었다.
이는 아브라함이 의로운 존재가 된 이유가 자기 행위나 제사로 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그분과의 관계를 믿은 결과였음을 뜻한다.
(롬 4: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여기에서 바울은 아브라함이 믿음을 통해 구원에 이르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구원을 얻은 것은 제사 제도를 따름 때문도 아니요, 중보자인 제사장이 있음 때문도 아니었다. 그런 것이 없었음에도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브라함 시대에는 아직 레위 지파의 제사 제도가 없었고, 중보자로서의 제사장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죄사함을 받았고, 또 구원을 얻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브라함이 구원받았다는 것은 그가 제사 제도를 통해 구속을 받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분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구속을 받았다는 것이다. 구약 성경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의 약속을 신뢰함으로 의롭게 되었다.
아브라함이 죄 사함을 받는 방식은 중보자 없이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통해 이루어졌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의지하여 구원을 받았다. 따라서 그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을 믿고 따른 결과였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시대에는 아직 구체적인 제사 제도가 확립되지 않았으니 아브라함은 형식을 갖춘 제사 제도를 통해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에서 여러 가지 제사를 드린 기록이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과의 약속을 확립하기 위해 제물로 동물을 바친 사건이 있다.
(창 15:8)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창 15: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창 15: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창 15: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창 15:12)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창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창 15:14)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창 15: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창 15: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창 15:17)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창 15: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창 15:19)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창 15:20)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창 15:21)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그러나 이 제사는 속죄 제사라기보다는 언약을 맺는 제사였으며, 하나님과의 언약을 확인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행위였다.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구원받은 방식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질 완전한 구속의 그림자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니 아브라함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의 구속 사역을 예표하는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구약 시대의 의로움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속죄 사역으로 완성되었다.
(요 8:52) 유대인들이 가로되 지금 네가 귀신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요 8:53)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요 8:5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어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요 8:55)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장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요 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요 8:57)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요 8: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요 8:59)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날, 즉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미리 보았다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하나님의 구속 계획, 즉 궁극적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었음을 시사한다.
아브라함이 구원을 얻은 방식은 제사 제도를 통한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중보자 없는 상태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로 여겨진 믿음의 결과였다. 아브라함은 그 시대에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통해 구속의 약속을 믿었고, 이를 통해 구원을 받았다.
성경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셨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믿음으로 의롭다 여겨지는 구원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음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구원은 제사 제도를 따르지 않고, 중보 역할을 하는 제사장이 없이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그 믿음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 원리는 구약의 많은 인물들에게 적용된 구속의 방식이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그 그림자로 이해될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것에 대한 고백과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사 죄를 자백하면 그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실 것이라는 그 사실에 대한 믿음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은 자신의 죄인임에 대한 고백이 반드시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의 우리 중에서도 죄에 대한 고백 없이도 누구라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뜻이 될 수 있다.
또 아브라함이 속죄를 위한 제사에서 그 자신이 중보자로서 제사장의 역할을 했다고 보아야 하는데, 이는 지금의 우리가 모두 제사장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그것에 대한 그림자였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핵심이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신다는 이 사실을 믿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는 신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구절에 대해서도, 그의 믿음이 단순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이상의 깊은 의미, 즉 죄에 대한 고백과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믿음을 포함해야 한다. 과연 아브라함에게서의 그 믿음이란 무엇이었을까?
먼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지적인 신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믿고 따르며,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고 구속하신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믿은 믿음이었다.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그 믿음이 자신이 죄인임을 인식하고,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 반드시 포함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창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 구절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 여겨주시는 은혜와 관련이 있다. 아브라함이 의롭게 여겨졌다는 것은 그의 믿음이 단순히 하나님을 신뢰한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선언하실 수밖에 없는 조건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믿음이었을 것이다.
(롬 4: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롬 4: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롬 4: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롬 4: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롬 4:7)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롬 4:8)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아브라함의 의로움은 행위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어진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분명히 밝혀지고 있다.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진 것은 죄에 대한 고백과 그 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용서와 구속을 믿는 믿음이 포함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이미 조카 롯을 구원하는 그 일에서 자신을 티끌과 같은 자라고 고백하고 있음에서 자신이 죄인이라 고백하고 있음이 암시되고 있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은 단순히 지적인 신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겠다는 약속을 믿은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창 18:2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창 18:27) 아브라함이 말씀하여 가로되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한편, 아브라함이 속죄를 위한 제사에서 중보자로서 제사장의 역할을 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께 속죄 제사를 드린 기록이 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몇 가지 중요한 사건들이 아브라함의 제사장적 역할을 감당하였음에 대한 암시를 담고 있다. 대표적인 첫 번째 사건이 멜기세덱과의 만남이다.
(창 14: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창 14: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창 14: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아브라함이 멜기세덱(Salem 왕이며, 하나님께 속한 제사장)과 만났을 때, 멜기세덱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장적 축복을 아브라함에게 전달한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속죄 제사의 중보자로서의 역할을 한 동시에, 아브라함은 그에게 십일조를 바쳤다.
이 사건은 제사장적 역할을 하는 멜기세덱을 통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사건은 제물로서의 아들 이삭을 바친 일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시험을 받는다. 비록 하나님께서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막으셨지만, 이 사건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제사장의 역할을 맡아 자신의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중요한 장면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예수께서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치시며 행하신 중보자로서의 그 역할을 행하실 것을 예표하여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창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창 22: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 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창 22: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창 22:5)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창 22: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창 22:7)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창 22:8)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창 22:9)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창 22: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창 22: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창 22: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 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의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간의 관계를 살펴보면, 그 둘은 많은 면에서 상징적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제사장적 역할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예표하는 사건”에 관하여는 다음 주에 논하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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