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24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애굽으로 보내심을 입은 모세, 그리고 이 땅에 보내심을 입은 예수”
출애굽기에서 소개되고 있는 모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꾸만 예수의 이야기가 오브랩되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모세는 레위족의 사람 아므람과 요게벳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 레위 족속은 훗날 하나님께서 제사장의 직임을 감당하도록 선택하신 족속들이다.
하나님께서 정식으로 제사장을 세우신 것은 이스라엘 족속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그 죄를 범한 후의 일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섬기는 자들을 이스라엘에서 제하라고 하셨고, 이 일을 위해 모세는 레위 족속에게 금송아지 우상을 섬긴 자 삼천을 칼로 제하라 명했다.
(출 32:21)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 백성이 네게 어떻게 하였기에 네가 그들로 중죄에 빠지게 하였느뇨
(출 32:22) 아론이 가로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출 32:23)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출 32:24)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어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출 32:25)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로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출 32:26) 이에 모세가 진문에 서서 가로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오는지라
(출 32:27)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그 친구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도륙하라 하셨느니라
(출 32:28)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인 바 된지라
(출 32:29)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그렇게 레위 족속들이 행한 그 일을 하나님께서는 옳게 여기셨고, 모세도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고 함으로써 레위 족속이 하나님께 헌신하는 제사장의 직임을 감당하는 그 일을 맡게 했다.
(출 28:1)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출 28:2)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출 28:3) 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 있는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이렇게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레위 족속 중에서 모세가 태어난 것은 그가 제사장과 같은 사명도 감당하게 될 것에 대한 암시였을 것이다. 과연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그 죄를 그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용서를 구하는 그 일을 했다. 이는 분명히 제사장이 감당해야 할 그런 일들이었다.
(출 32: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의 죄를 속할까 하노라 하고
(출 32:31)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출 32:32)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주옵소서
(출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출 32: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출 32:35)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의 만든 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
이스라엘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섬긴 것으로 인하여 그 책임 물으심이 하나님께서 그 이스라엘을 진멸하시고자 하심이었다. 정말로 그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섬긴 그 일은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음이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니,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그 진노를 피할 수 없는 자들이 되었다. 우상을 만들고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위이다. 그런 큰 죄를 지은 그 백성들을 위해 모세는 하나님께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라고 애원하는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출 32: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출 32:8)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며 그것에게 희생을 드리며 말하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출 32: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출 32:10)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출 32:11) 모세가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출 32:12)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출 32: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출 32: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그 간절한 모세의 기도를 하나님은 외면하실 수가 없으셨다. 이스라엘의 그 죄는 죽음을 면할 수 없는 그런 무거운 죄였지만 모세의 그 간절함이 하나님을 감동하게 했고, 하나님은 그 뜻을 돌이키셨다. 모세가 그런 기도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와 금송아지 우상 사건에 대해 정리를 한 후에 다시 그 산에 올라 하나님께 나아왔다.
그리고 다시 그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그 일을 했다. 그때 그의 기도는 자신의 생명을 건 그런 기도였다. 그 기도는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주옵소서”라는 것이었으니, 이는 자신의 영생을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건져내는 그 일과 맞바꾸려 함이었다.
자신은 비록 죽을지라도 그 백성들을 살려달라는 모세의 그 기도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어 가시면서 “아버지, 저들의 죄를 사하여주옵소서”라고 한 그 기도와 같았다. 그래서 어쩌면 이 기도는 모세가 주님의 그림자라는 것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
(출 32: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의 죄를 속할까 하노라 하고
(출 32:31)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출 32:32)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주옵소서
(출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출 32: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출 32:35)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의 만든 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
(눅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모세가 다시 그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려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온전히 사십일을 금식하며 다시 말씀을 받았다. 오직 그 백성들만을 위해 말씀을 받음이었다.
모세가 이렇게 말씀을 받은 그 일은 이 땅에 오신 주님께서 오직 택하신 주의 백성들을 살리시려고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사십 일간 금식하시면서 말씀으로 사단을 물리칠 그 일에 대한 준비였을지도 모른다. 이 모세가 받은 십계명은 그 백성들이 사단과 싸워 이길 그 무기가 아니던가!
광야에서 주님은 그 말씀으로 사단을 물리치셨으니 모세의 이 일은 주님이 그 일을 예표하며 또 예비한 일이 되었다.
(출 34:28)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출 34:29)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자기 손에 들고 시내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모세가 산에 올라간 그 날이 유대력으로 6월 1일이었고, 40일을 지나 내려왔으니 7월 10일이 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온 그 날을 대속죄일로 정해주셨다. 이렇게 해서 대속죄일이 생겨났다. 이후로 이날은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하고 엄숙한 명절이 되었다.
이 대속죄일에는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자신과 백성들의 죄를 위해 황소와 염소의 피를 드리고, 다른 염소에게 죄를 안수한 후 광야로 보내는 의식을 행했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죄가 사해지고, 하나님과의 언약이 새롭게 되었다.
(레 16:3)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을 삼고 수양으로 번제물을 삼고
(레 16:4)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고의를 살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레 16:5)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속죄 제물을 위하여 수염소 둘과 번제물을 위하여 수양 하나를 취할지니라
(레 16:6)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권속을 위하여 속죄하고
(레 16:7) 또 그 두 염소를 취하여 회막문 여호와 앞에 두고
(레 16:8)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레 16:9)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레 16:10)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구약에서의 이 대속죄일을 신약에서 와서 주님께서 그 의미를 완성하셨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려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사단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모세 시대의 그 대속죄일이 완성된 것이다. 그런고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대제사장이시며, 우리의 대속자가 되신다.
예수의 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게 되었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도 있게 되었다. 모세 시대에서는 일회적이어서 완전하지 못했던 그 죄사함이 예수의 오심으로 완성이 되었다. 그래서 모세의 그 사역은 예수의 사역에 대한 그림자였고, 주님은 그 실체로 드러났다. 따라서 대속죄일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회개하고, 감사하는 날이 되었다.
그런데 두 번째 산에서 내려온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났다. 모세는 그 광채를 수건으로 가렸다. 하나님의 그 영광이 모세의 얼굴을 통해 드러남이었다. 만약 모세가 그 얼굴의 광채를 가리지 않았더라면 이스라엘은 모세의 그 얼굴을 보고 모세를 숭배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세는 자기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 수건을 벗었다. 만약 하나님 앞에서도 여전히 수건으로 가리고 그 앞에 섰다면 그것은 모세의 교만이 되었을 것이다. 자기 백성들을 하나님 앞으로 바르게 인도하여 구원 얻도록 하는 오직 그 일만을 위해 모세는 세심하게 그렇게 겸손한 자의 자리에 섰다. 모세에게서 이런 모습이 드러난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출 34:30)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출 34:31) 모세가 그들을 부르니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이 모세에게로 오고 모세가 그들과 말하니
(출 34:32) 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는지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하고
(출 34:33)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
(출 34:34) 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씀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며
(출 34: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는 고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씀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
이는 분명히 오실 주님의 그 겸손을 예표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님은 하나님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고, 보잘것없은 목수의 아들로서 그 삶을 사시면서 공생애를 준비하셨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 앞에 지극히 겸손한 자의 모습이셨다. 예수께서 화려한 옷을 입고 다니셨을까!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그런 차림새로 사람들 앞에 서셨다. 예수는 자신의 참모습을 변화산에서 제자들 앞에만 드러내셨다.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고 마태는 기록하고 있다. 이 모습은 모세의 그 모습,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그 모습과 흡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의 그 모습은 주님의 이 모습에 대한 그림자였을 뿐이고, 주님이 오셔서 이 모습을 보이심으로 그 실체를 드러내셨다.
(마 17: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 가셨더니
(마 17:2)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마 17:3)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마 17:4)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마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모세를 사람들이 신이라 불렀다. 모세가 그렇게 불렸다면 예수가 하나님이신 것은 더욱 분명해졌다.
(출 4: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출 7: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예수께서 변형된 몸으로 모세와 엘리야로 더불어 말씀을 하셨다고 했다. 과연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모세와 엘리야는 선지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께서 하실 수 있는 말씀은 그들의 노고에 대한 치하였을 것이다. “지독하게 고집스럽고, 완악했던 그들에게 나의 말을 전하고 가르치느라고 수고 많았다”고 칭찬하셨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확실히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가르친 충성스러운 종들이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모세와 엘리야가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였음으로써 칭찬받는 이 장면을 제자들로 목격하게 함으로써 그들 또한 용기를 내어 복음 전하는 그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해주시고자 의도하심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 영안이 열리지 못한 그 제자 베드로는 여전히 세상을 탐하는 그 말을 하고 있을 뿐이었으니! 이런 베드로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하나님께서 모세로 이스라엘을 구원토록 하신 것은 저들을 그 땅의 제사장 나라로 세우고자 하심이었다. 제사장이면 그 백성들의 죄의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자라야 한다.
어떻게든 저들로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깨달아 구원에 이르는 길로 나아오도록 만들어야만 한다. 그것이 제사장으로서는 가장 큰 책무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그 땅에 있는 많은 민족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해주어야 할 막중한 책임이 부여되어 있음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제사장 나라가 되며”라는 이 구절만 보일 뿐, 성경 그 어디에서도 이스라엘 민족이 이방 나라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이스라엘에게 깨닫게 해 주시려고 의도하신 것이 요나로 하여금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 하신 그 일이었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이고, 앗수르는 이스라엘에게는 원수와 같은 나라였다. 이는 결국 오신 예수께서 원수도 사랑하라는 그 말씀에 대한 예고편이 되었다. 분명히 모세도 원수를 사랑하라는 의미로 가르쳤지만, 그들은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랬으니 하나님이신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직접 말씀하시고 가르칠 수밖에 없으셨다. 그런데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자는 어찌할까!
(레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마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모세가 가르쳤지만, 도무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그 일에 미동도 하지 않는 그들을 깨우치시려고 하나님께서 직접 오시게 되었다. 그것이 주님의 탄생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 그 일을 감당하게 하셨다. 그리하심으로써 그들이 시기 나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만드시려 그리하셨다. 그 이방인이 바로 우리이다. 그런데 그 복음 전하는 일을 이스라엘 대신 우리에게 맡기셨는데, 과연 우리는 그 사명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하고는 있는가?
그런 우리를 보시면서 이 땅에 친히 오셨던 주님의 그 심정은 또 얼마나 답답하실까!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을 기념하는 그 일이란 바로 그 사명에 대한 깊은 책임감을 가지는 그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출 19: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부터 제삼월 곧 그 때에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출 19:2)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출 19:3)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출 19:4)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출 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출 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출 19:7) 모세가 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 앞에 진술하니
(출 19:8)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로 여호와께 회보하매
(출 19: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일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으로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함이니라 모세가 백성의 말로 여호와께 고하였으므로
(출 19: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 하며 그들로 옷을 빨고
(출 19:11) 예비하여 제삼일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제삼일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 시내 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출 19:12) 너는 백성을 위하여 사면으로 지경을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지경을 범하지 말지니 산을 범하는 자는 정녕 죽임을 당할 것이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깨닫게 하신 그때에는 깨닫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기회가 있었다. 그 기회를 주시려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었다. 예수께서 오셔서 기회를 주신 그 기회를 붙잡지 못하면 더 이상 기회는 없다. 모세는 오실 주님의 그림자였는데, 이제는 그 실체가 되시는 예수께서 오셨으니 이제 다시 더 오실 자가 있을 수 있는가!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신 말씀이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하신 그 말씀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여전히 기회가 많이 남아있다고 미룸인가?
(눅 9: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눅 9:60)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눅 9:61)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눅 9: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눅 13:23) 혹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저희에게 이르시되
(눅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눅 13: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눅 13: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눅 13:27)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눅 13: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눅 13:29)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눅 13:30)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이렇게 머뭇거리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다시 한번 경고하셨다. 이 경고의 말씀은 그때 말라기 선지자가 활동하던 그때의 이스라엘 제사장들에게만 한정된 경고의 말씀이 아니다. 지금 이 시대에 제사장된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경고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우리 역시 제사장이라 하지 않았던가!
(말 2:1) 너의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말 2: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말 2:3) 보라 내가 너희의 종자를 견책할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말 2:4)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말 2:5)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말 2:6) 그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말 2:7) 대저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어늘
(말 2:8) 너희는 정도에서 떠나 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파하였느니라
(말 2:9) 너희가 내 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편벽되이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모든 백성 앞에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를 따르던 많은 무리들은 각자 자기들의 세상적인 욕심을 채우려고 몰려든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상황을 예수께서 모르실 리가 있었겠는가! 그는 하나님이시니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탐하는지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계셨을 것이다.
우리를 구속하려고 이 땅에 오신 주님이셨으니 그가 진정으로 바라고 원하셨던 것은, 그런 주님을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자신들의 마음 깊숙한 곳으로 모시는 그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내면이 진실한 성전이 되는 그 일을 주님께서는 그토록 바라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을 보고 계시는 주님의 심정은 어떠하셨을까?
그래서 하신 말씀이 바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였다. 여우도 굴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그 당시 헤롯왕이 그 땅의 왕으로 지배하고 있음을 드러낸 표현이다.
이는 자신이 진정한 왕으로 그 땅에 왔는데 아무도 그를 왕으로 인정하여 받아들이지 않고 대신 그 땅의 참 후손도 아닌 이방 족속 에돔의 후손인 헤롯이 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과 자신이 진정한 왕이라는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그 땅의 이스라엘 족속들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셨다.
모세도 사실상 이스라엘의 왕이었다. 이스라엘 족속들을 실질적으로 다스리는 그 자리에 있었으니 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모세의 이러한 위치는 장차 오실 주님의 왕이심에 대한 예표였다. 그런데 그런 모세에게 도전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었다. 이들은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 이백오십 인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에게 도전한 것이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도전한 우두머리들은 그 가솔들과 함께 땅이 갈라지더니 그 속으로 삼킴을 당해버렸다. 그 후에 모세를 원망하며 폭행하려 달려들던 자들 모두가 염병으로 죽임을 당했다. 이 사건은 모세의 고난을 보임이었으니 이는 훗날 왕으로 오셨으나 고난을 당하실 주님의 그 모습을 예표한 것이 되었다.
주님은 끝내는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하는 그 모진 고난을 당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을 유혹하여 예수를 그런 고난에 빠뜨리게 했던 그 사단은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써 완전히 굴복되고 말았다.
(민 16:1)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민 16:2)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 이백오십 인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리니라
(민 16:3)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
(민 16:4) 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
(민 16:5) 고라와 그 모든 무리에게 말하여 가로되 아침에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자가 누구인지 거룩한 자가 누구인지 보이시고 그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되 곧 그가 택하신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리니
(민 16:6) 이렇게 하라 너 고라와 너의 모든 무리는 향로를 취하고
(민 16:7) 내일 여호와 앞에서 그 향로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두라 그 때에 여호와의 택하신 자는 거룩하게 되리라 레위 자손들아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느니라
(민 16:8) 모세가 또 고라에게 이르되 너희 레위 자손들아 들으라
(민 16:9)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민 16:10) 하나님이 너와 네 모든 형제 레위 자손으로 너와 함께 가까이 오게 하신 것이 작은 일이 아니어늘 너희가 오히려 제사장의 직분을 구하느냐
(민 16:11) 이를 위하여 너와 너의 무리가 다 모여서 여호와를 거스리는도다 아론은 어떠한 사람이관대 너희가 그를 원망하느냐
(민 16:12) 모세가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보내었더니 그들이 가로되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노라
(민 16:13)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민 16:14)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과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
(민 16:15) 모세가 심히 노하여 여호와께 여짜오되 주는 그들의 예물을 돌아보지 마옵소서 나는 그들의 한 나귀도 취하지 아니하였고 그들의 한 사람도 해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고
(민 16:16) 이에 고라에게 이르되 너와 너의 온 무리는 아론과 함께 내일 여호와 앞으로 나아오되
(민 16:17) 너희는 각기 향로를 잡고 그 위에 향을 두고 각 사람이 그 향로를 여호와 앞으로 가져오라 향로는 모두 이백오십 이라 너와 아론도 각각 향로를 가지고 올지니라
(민 16:18) 그들이 각기 향로를 취하여 불을 담고 향을 그 위에 두고 모세와 아론으로 더불어 회막문에 서니라
(민 16:19) 고라가 온 회중을 회막문에 모아 놓고 그 두 사람을 대적하려 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회중에게 나타나시니라
(민 16:20)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민 16:21)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민 16:22) 그 두 사람이 엎드려 가로되 하나님이여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여 한 사람이 범죄하였거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나이까
(민 16: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민 16:24) 회중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면에서 떠나라 하라
(민 16:25) 모세가 일어나 다단과 아비람에게로 가니 이스라엘 장로들이 좇았더라
(민 16:26) 모세가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이 악인들의 장막에서 떠나고 그들의 물건은 아무 것도 만지지 말라 그들의 모든 죄 중에서 너희도 멸망할까 두려워 하노라 하매
(민 16:27) 무리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면을 떠나고 다단과 아비람은 그 처자와 유아들과 함께 나와서 자기 장막문에 선지라
(민 16:28)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일을 행케 하신 것이요 나의 임의로 함이 아닌 줄을 이 일로 인하여 알리라
(민 16:29) 곧 이 사람들의 죽음이 모든 사람과 일반이요 그들의 당하는 벌이 모든 사람의 당하는 벌과 일반이면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심이 아니어니와
(민 16:30)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으로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민 16:31) 이 모든 말을 마치는 동시에 그들의 밑의 땅이 갈라지니라
(민 16:32)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속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키매
(민 16:33)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채로 음부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총회 중에서 망하니라
(민 16:34) 그 주위에 있는 온 이스라엘이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도망하며 가로되 땅이 우리도 삼킬까 두렵다 하였고
(민 16:35) 여호와께로서 불이 나와서 분향하는 이백오십 인을 소멸하였더라
(민 16:41) 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하여 가로되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 하고
(민 16:42) 회중이 모여 모세와 아론을 칠 때에 회막을 바라본즉 구름이 회막을 덮었고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더라
(민 16:43) 모세와 아론이 회막 앞에 이르매
(민 16:4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민 16:45)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하시매 그 두 사람이 엎드리니라
(민 16:46) 이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향로를 취하고 단의 불을 그것에 담고 그 위에 향을 두어 가지고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셨으므로 염병이 시작되었음이니라
(민 16:47) 아론이 모세의 명을 좇아 향로를 가지고 회중에게로 달려간즉 백성 중에 염병이 시작되었는지라 이에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민 16:48)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염병이 그치니라
(민 16:49) 고라의 일로 죽은 자 외에 염병에 죽은 자가 일만 사천칠백 명이었더라
(민 16:50) 염병이 그치매 아론이 회막문 모세에게로 돌아오니라
예수께서 말씀하신 공중의 새는 그 땅에 살고 있으면서 예수를 쫓아다니는 무리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여우가 헤롯을 암시한다는 그 힌트는 주님의 말씀 속에 담겨져 있었다. 주님은 헤롯이 주님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려준 어떤 바리새인의 말에 이렇게 대답하셨다.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삼 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고 하신 것이다.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헤롯을 여우라고 표현하심이었다. 그러므로 “여우도 굴이 있다”는 것은 헤롯이 좋은 궁전에 살고 있다는 것이고,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하신 것은 “진정으로 왕인 나는 아무도 반겨주는 사람이 없구나. 진심으로 나를 구원자, 메시야로 받아들이는 자가 없도다”라는 그 심정을 표현한 말씀이다.
만약 지금 내가 예수를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아로, 이 예수를 내 심중 깊숙한 곳으로 모시는 그 일을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일로 여기지 않는다면 나 역시 그때 그들처럼 예수를 거처가 없는 자로 만들고 있음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마 8: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마 8: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주님께서 그 땅의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시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자기들의 소견대로 자신들의 세상일에 신경 쓰기에만 바빴다. 분명히 그들의 원치 않음이었다. 이는 분명히 기회를 스스로 놓침이었다. 그들의 그 처사가 참으로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런데 그 어리석음이 우리에게도 발견되는 것은 어찌하는가!
(눅 13:31)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눅 13:32)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눅 13:33)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눅 13: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눅 13:35)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모세는 참으로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가르쳤다. 그래서 그는 선지자로서의 모범을 보인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말하기를 훗날에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한 사람 세우실 것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 했다. 자신은 그 선지자의 그림자라는 말이다. 그 선지자가 누구인가?
(신 18: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예수께서는 그림자였던 모세의 실체가 되는 바로 그 선지자가 되신다. 그의 말씀은 그 옛날 선지자들이 전하여준 그 말씀의 실체였다.
왕 같았고, 제사장의 역할을 하였으며, 진실한 선지자였던 모세의 그 삶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은 그 실체가 되는 이 땅에 오실 예수의 세 가지 직임에 대한 그 그림자를 보여주심이었다. 그림자였던 모세의 실체로 오신 주님의 그 삼중직은 오직 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발로였다. 참으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은 오직 나를 위한 하나님의 그 사랑의 드러나심이셨던 것이다.
우리는 성령 하나님의 은혜로 중생함을 입은 고로 능히 주님의 그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한 자가 되었다. 그러하니 부지런히 주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서 실천하는 자의 자리에 서야 한다. 그것이 이 땅에 오신 주님에 대한 그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부지런히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노라, 아멘!
'주일설교-링크 클릭하면 재생됩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령이 가난한 자 (1) | 2024.01.07 |
---|---|
이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1) | 2023.12.31 |
하나님 사랑에 대한 모범을 보이신 예수 (1) | 2023.12.17 |
나의 바벨탑 (4) | 2023.12.10 |
가인과 아벨에 관한 이야기 (4) | 2023.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