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26.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말라기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
(말 1:1) 여호와께서 말라기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경고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족속들을 사랑하고 계심을 나타내고 있는 말이다. 하나님이 저들을 사랑하지 않으신다면 굳이 경고하여 돌이킬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실 이유가 있겠는가?
인간들의 사회에서 상대가 어떤 행동을 실행에 옮겨 자신을 해롭게 하는 행위를 사전에 하지 못하게 할 요량으로 행하는 것이 경고를 발하는 일이다. 이 경우는 상대가 나에게 유해를 입힐 정도로 서로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을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자이시다.
따라서 이 경우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유해를 가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어 그것을 미리 저지할 요량으로 발하는 그런 의미의 경고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 경고이다. 이런 경우의 경고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일을 행하는 것을 금지시킬 요량으로 발하시는 것이니 이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하실 이유가 없는 일이다. 이 사실이 참인 것을 2절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 때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였느냐고 도리어 반문하고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이미 선택하신 것에서 드러나고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실 이유가 있었을까?
하나님은 누구에게로부터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시다. 아쉬운 일이 있어서 이스라엘을 선택해야만 하는 그런 존재도 아니시다. 그는 하나님이시니 전능하고 전지하시 모든 것에서 무한하신 절대자이시다. 그런고로 그는 변함없으시므로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선택하신 그 사랑이 시간이 경과하였다고 변할 리는 없으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셔서 사랑하신 그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그 사랑은 우리를 부르신 그 때나 지금도 한결같이 동일하시며 장래에도 변함이 없으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어떤 한 순간에는 하나님의 그 사랑이 변하여 나를 미워하시는구나하고 원망하기도 한다.
우리가 소망하는 어떤 일이 이루어지거나 세상에서 높임을 받는 일이 일어날 때, 그 때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하고 감격하는 그런 것은 바람직한 믿음의 태도가 아니다.
나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해주심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이스라엘은 그것을 능히 알지 못한 족속들이었다. 하나님의 백성된 자로서 가장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을 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자이다.
그래서 그 이스라엘은 어리석은 족속들이었다. 우리도 이 사실을 바르게 깨닫지 못한다면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백성일 것이다. 이는 믿음의 생활을 하는 자로서 가장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말 1: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말 1: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야곱이 그 형 에서보다 선한 자였기에 선택받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것도 내가 선한 일을 하여 선택되지 못한 자보다 나았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택하신 것은 오직 하나님이 야곱을 무조건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야곱은 아담의 그 죄를 물려받은 자였다. 그 죄를 ‘원죄’라 한다. 이 땅의 어느 누구라도 이 원죄에서 자유로운 자는 없다. 선택된 믿음의 백성인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아담으로 인한 그 원죄가 유전되어 있다.
따라서 누구나 죄인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런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므로 선택해 주신 것이다. 에서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하였으므로 그는 원죄를 지닌 그 상태대로 존재하였던 것이다. 그러했으므로 그는 죄악한 그 본성 그대로의 삶을 살아간 것이다.
야곱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지 않았더라면 그도 그렇게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었으므로 그런 삶을 청산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역시 그렇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해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우리의 죄악된 본성 그대로 살아갔을 것이다. 그런 삶을 살아갔다면 어쩌면 우리는 남을 해하고 남의 물건을 취하고 심지어는 가인과 같이 살인을 저지르는 끔찍한 범죄자의 자리에 섰을지도 모른다.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고한 것은 에돔의 교만이었다. 에돔은 하나님의 선택함을 입지 않은 족속인고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들의 힘을 믿어 어디까지든지 국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큰소리 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제일 미워하시기 때문에 에돔이 큰소리 친 것과는 정반대로 행하셨다. 끝내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무너뜨리셨다. 이는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이심으로 믿는 자들에게 본을 보이신 것이다.
한 해가 마무리 되는 이 시점에 서서 다시 한 번 우리들을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나는 겸손한 자의 자리에 서 있는 삶을 살아 왔는가?
(말 1:4)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경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영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사 2:17)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
(약 4: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벧전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의 그 위엄은 이스라엘 영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위엄이 온 세상에 가득함을 말라기 선지자는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경 밖에서 크시다“라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이 위엄으로 그의 주권을 세상 모든 나라에 행사하고 계신다. 그런고로 우리는 다만 그의 뜻대로 행할 뿐이다.
(말 1:5) 너희는 목도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경 밖에서 크시다 하리라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좋을 대로 자기들의 소견 따라 행했다. 그들에게서의 제사장이란 하나님의 그 뜻을 가장 잘 아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자들조차도 하나님의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일들을 자행했다. 이는 신앙에 있어서 바른 깨달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였으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그 일에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잘못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오히려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하며 항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실로 신앙인으로서의 무지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부족하면 이같이 자기 뜻대로 자기 좋을 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바른 신앙인의 모습이 될 수 없다.
과연 우리는 이 한 해 동안 하나님의 그 뜻을 아는데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말 1: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호 4: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호 4:2)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
(벧후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말 1: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말 1: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말 1:9)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를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말 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 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분별하지 못하면 하나님은 그 제단을 옮기실 것이다.
(말 1: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시기나게 하셔서 그들을 다시 깨우치실 것이다. 이는 그 택하신 자를 끝까지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그 사랑을 드러내어 보이시는 일이다. 이 사실에 대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롬 1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말라기 선지자의 이 말씀을 예수께서도 이같이 다시 말씀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그 뜻을 바르게 알고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요 4: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요 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요 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그들은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지식에 결핍되어 있었고 그 결과로 그들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 자리에서 떠나 있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였으니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그 일이 당연히 짐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였다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그 일이 왜 기쁘지 아니하였을까!
그랬다면 그들은 당연히 가장 귀하고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그들을 하나님이 외면하고 그들을 질책하였을까?
없는 중에서 좋은 것을 드리려고 애를 쓰는 그들을 얼마나 긍휼히 여기셨을까!
또 하나님은 그런 그들을 위해 좋은 것을 주시려고 얼마나 애를 쓰셨을까!
(말 1:12)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상은 더러웠고 그 위에 있는 실과 곧 식물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
(말 1:1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 1:14) 떼 가운데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있는 것으로 사기하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열방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나 그들은 어리석어 그렇지 못했다. 혹시 지난 한 해 나의 삶이 그러하지는 않았는지 한 번 돌아보아 보자. 이스라엘처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그 일이 내게는 습관화된 일이 되었고 때로는 그 일이 지겨워지기도 하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려고 갔는지를 생각해보자.
예배를 드리기 전에 “나는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가?”하고 나에게 물어본 적은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면 나도 그 이스라엘과 다름없는 신앙인이 될 것이다.
이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내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가를 자문하여 새로운 마음가짐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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