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15. 영동장로교회 최규만 목사
“중보자이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가 아는 바로는 소위 성인이라는 자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석가모니가 그러했고 공자도 그러했다. 그러나 예수에게서는 그런 것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성경 기록에서는 그가 자라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워져 갔다고 하는 기록만이 보일뿐이다.
(눅 2: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그가 진리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다른 성인들처럼 그렇게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진리를 알고 그것을 전파했다.
(마 22:16)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만약 예수도 자신의 노력을 통해 진리에 대해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는 다른 성인들과 마찬가지로 사람일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이 진리인 듯이 그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그가 진리의 본질이었다면 그는 그 이유로 하나님이심이 분명하다. 이것이 참인 것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는 분명 진리의 원천이시기에 우리는 고백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참으로 ‘성자 하나님’이신 것이다.
(요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그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어떤 일도 하지 않으셨다. 이 땅의 성인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한 것은 일종의 자기 자신의 유익을 추구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는 그런 일조차 하시지 않으셨고 오직 자신을 내어주기만 하는 손해 보는 것 같은 삶을 살았다. 끝내는 십자가 위에서 모든 죄인들을 대신해서 죽는 일로 자신의 생을 마감했으니 진실로 그러했다.
왜 그리했을까?
그는 오직 이 땅의 죄인들인 우리를 구하기 위해 오신 성자하나님이셨다. 자기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삼아 성부하나님과 죄인들인 우리 사이에 화해를 이루어주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예수가 하신 이 사역을 우리는 ‘중보사역’이라고 칭한다.
‘중보’란 하나님과 사람과의 사이에서 죄인인 우리를 대신해 피를 흘리고 죽음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말한다. 이 역할을 위해 성자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일, 즉 ‘성육신’은 타락한 인류인 우리들을 구속하는 일에 있어서 유일한 방도요 필요하여 없을 수 없는 일이었다. 구속은 다른 방법으로는 결코 조성될 수 없었다. 만약 예수의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으로 조성된 죄인에 대한 칭의하심이 다른 방도로 될 수 있었다면 예수의 죽음은 공연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갈 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 3: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성자하나님이 성육신하심으로써 예수라 불리는 한 사람이 이 땅에 존재케 된 것은 성부하나님과 그 하나님 앞에 죄인된 우리 사이를 회복시켜 화목케 하려 하심이었다. 불화한 당사자들을 화목시키는 것은 중보의 일인고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중보’라 칭한다.
화목시키는 일이 단순히 대리해서 말을 전하는 것이나 교섭에 의해 성취되어져버린다면 그 일을 행한 대언자도 ‘중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화목의 사역이 하나님께 대한 범죄로 인한 공의의 만족을 포함하는 경우라면 ‘속죄’를 행하는 자만이 ‘중보’가 될 수 있다. 이 일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능히 행하셨으므로 오직 유일하게 예수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이시다. 그는 십자가의 속죄로 죄인된 우리를 하나님께 화목시키는 평화공작자이시다.
(엡 2: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엡 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엡 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엡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엡 2: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엡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엡 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엡 2: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유일중보자가 계시니 곧 그리스도 예수이시다.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시킬 중보자로서의 자격은 어떠하여야 할까?
첫째로 그는 반드시 사람이어야 한다.
중보자가 인간과 같은 이성적 존재인 천사의 성질을 취하지 않으시고 우리와 같은 인성을 취하신 이유는 그가 인류를 구원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히 2: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히 2: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히 2: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성육신하신 예수는 우리가 위범한 그 율법 아래에 계시면서 모든 의를 행하셔야 했다. 그리고 그는 수난을 당하시고 죽으시고 그의 백성인 우리의 모든 연약함에 동정하시고 우리와 같은 성질로 우리와 연합하시는 것이 필요하였다. 죄책과 오염으로부터 성화시키는 자와 그 성화를 받는 자들이 같은 성질을 가짐이 필요하였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이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이었다.
(히 2: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둘째로 그는 반드시 무죄하셔야 한다.
율법에 따르면 제단에 드리는 희생의 제물은 반드시 흠이 없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지게 되는 그리스도는 죄 없음이 요구된다. 또 우리에게 합당한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도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셔야 할 것이 필요했다.
(히 7: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예수, 그는 분명 그리스도이셨으니 그는 죄인인 우리에게 있는 그 죄가 없으셨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만일 예수가 우리와 같이 그 죄가 있는 자라면 그는 우리의 구주가 되실 수 없었을 것이다. 죄 있는 상태에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니 어찌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대언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겠으며 또한 죄를 속하는 제물이 되기도 불가하였을 것이다.
세 번째로는 반드시 신적 인격을 가지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만약 단순히 피조물뿐인 자였다면 그의 피 흘림은 죄를 제거하기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죄를 사할 수 있는 존재는 죄를 선언하신 하나님밖에 없다. 따라서 죄를 제거할 권세를 가진 그는 하나님이셔야 하니 반드시 신적 인격을 가지셨을 것이다.
오직 신적 인격만이 능히 사단의 권세를 파멸하고 사단에게 포로된 죄인들을 구출하실 수 있다. 전능과 전지한 자만이 능히 세상만사를 관할하여 구속의 계획을 완성하시고 만민 위에 심판주와 교회의 머리로서 활동하실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직에 요구되는 이 모든 자격들은 성경이 선언하는 바로서 전부가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집합되어 있다. 그는 한 위에 신인이성(神人二性)을 가지신 신인이신고로 위에서 언급한 모든 요구에 응수하실 수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사람의 화목을 완성할 수 있는 유일한 중보자이시다. 타락한 인간의 구속은 신적 위만이 감당할 수 있는 사역이다.
우리를 위해 친히 중보가 되어주신 하나님이신 예수의 이 은혜에 어찌 보답할까!
'주일설교-링크 클릭하면 재생됩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왕이신 예수 (0) | 2021.08.29 |
---|---|
예수가 이 땅에서 치유의 이적을 베푸신 뜻은?-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 (0) | 2021.08.22 |
예수의 승귀 마지막 계단인 네 번째 계단 – 예수의 유형한 귀환 (0) | 2021.08.08 |
예수의 승귀 세 번째 계단 –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 (0) | 2021.08.01 |
예수의 승귀 두 번째 계단 - 승천 (0) | 2021.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