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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이 땅에서 치유의 이적을 베푸신 뜻은?-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

by 영동장로교회 2021. 8. 22.

2021. 8. 22.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예수가 이 땅에서 치유의 이적을 베푸신 뜻은?”

-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

 

예수께서 이 땅에서의 공생애 기간 중에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등의 일을 행하셨다.

그런 일들이 단지 자신의 능력 많음을 드러내어 보이려고 그리한 일들이었을까?

(요 11: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요 11: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요 11: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요 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요 11: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요 11: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요 11: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요 11: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요 11: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요 11: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요 11: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요 11: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요 11: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요 11: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요 11: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요 11: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요 11: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요 11: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요 11: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요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요 11: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요 11: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요 11: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요 11: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요 11: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요 11: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요 11: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요 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 11: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요 11: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요 11: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요 11: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요 11: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요 11: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요 11: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1: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요 11: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요 11:45)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

(요 11:46)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알리니라

 

병든 자라는 것은 곧 죽음을 향해 빨리 내닫는 자라는 의미이다. 병든 자가 아닐지라도 인간은 누구나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그 중에서도 병 들었다는 것은 더욱 분명하게 죽음에 이른 자라는 의미이다.

 

우리 모두는 누구나 예외 없이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존재들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지내는 것이 또한 우리들의 현실이다.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해주는 것이 바로 병이다. 병이 들 때 비로소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한다.

이 병의 기원은 어디인가?

 

애초에 아담이 지음을 입고 에덴동산에서 살 때에는 그는 이 죽음의 공포를 안고 사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가 하나님과 맺은 그 행위언약을 스스로 파기 할 때 비로소 죽음에 이르는 이 병이 그에게 다가온 것이다. 그리고 그 아담 이후의 그의 후손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이 병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창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창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자는 오직 하나님 한분뿐이시다.

죄는 하나님 앞에서 행위언약을 깸으로써 비롯된 것이니 하나님만이 죄를 없이 할 수 있다. 사람으로서 이 일을 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병든 자를 고치는 일을 하는 자를 의사라 한다. 하지만 이 의사도 고치지 못하는 병들이 많다. 소위 불치병이라는 것이다.

 

유독 예수는 그 당시 의술로는 도무지 치유가 불가능한 그런 병들만 고치셨다. 그리고 그 일들의 최고 절정은 죽은 자를 살려내는 일이었다. 과연 인류 역사 가운데서 완전히 죽은 자를 살려낸 자가 누가 있는가?

 

예수가 아무도 치료할 수 없는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것은 바로 이 병과 그것이 결과하는 죽음을 없이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어 밝히신 일이다. 이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인고로 예수, 그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신 일이다.

 

특별히 삼위 하나님 중에서 제 2위이신 성자하나님이신 예수가 이런 일들을 행하신 그것에는 어떤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

 

예수는 이 땅에서 세 가지 직임을 수행하셨다. 선지직과 제사직과 왕직을 수행하셨음이다. 그가 이 땅에서 사람이 고치지 못하는 불치의 병과 죽은 자를 살리는 그 일들을 행하신 것은 그의 직임 중에서 제사직을 수행하셨음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된다.

 

모세가 가르쳐준 제사의 규례는 바로 이 예수의 제사직에 대한 예표였다. 제사는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일이다. 선지자는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대표가 되기로, 그의 사자가 되기로, 또는 그의 의지의 통변자가 되기로 임명된 자이다. 그래서 그는 주로 종교적 선생이다.

 

한편 제사장은 하나님에 대한 백성의 대표였다. 그는 하나님에게 접근할, 또는 백성을 위하여 발언하며 행동할 특권을 가진 자였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그 죄에 대한 사하심을 구하는 일이 바로 모세가 가르쳐준 그 제사이다.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알게 한 그 제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범죄했을 때 그 죄 사함을 받는 길이었다. 이 때 죄를 지은 자는 희생의 제물이 될 짐승에게 안수함으로써 자신의 죄를 그 짐승에게 전가하고 그 짐승은 제물이 되어 하나님 앞에 드려졌다. 이는 죄를 지어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자에게 살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죄인에 대한 사랑의 처사인 것이다.

(레 1:1)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레 1: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레 1:3)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

(레 1:4)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레 1:5)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레 1:6) 그는 또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레 1:7)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제단 위에 불을 붙이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레 1:8)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레 1:9)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레 1:10) 만일 그 예물이 가축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

(레 1:11) 그가 제단 북쪽 여호와 앞에서 그것을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것의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레 1:12) 그는 그것의 각을 뜨고 그것의 머리와 그것의 기름을 베어낼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다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 위에 벌여 놓을 것이며

(레 1:13) 그 내장과 그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예수가 이 땅에서 불치의 병에 걸린 자를 치료한 것은 죽을 처지에 놓인 자의 그 모든 죄를 자신에게 전가시킨 행위였다. 긍휼하신 대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의 죄를 제거하실 뿐 아니라 그렇게 하심에서 우리의 모든 비참의 원인을 제거하셨다.

 

그가 행하신 여러 가지 이적들에서, 귀신들을 몰아내심에서, 소경과 귀머거리와 절름발이와 앉은뱅이를 고침에서, 죽은 자를 살리심에서 그는 능히 우리를 우리의 모든 비참에서 완전히 구속하실 수 있다는 사실의 결정적인 증거를 보여주셨다. 아무리 큰 죄와 죄책이라도, 아무리 극한 비참이라도 그는 능히 그의 제사적 긍휼과 왕적 권능으로 제거하실 수 있으시다.

 

그의 제사적 활동은 특별히 그의 최종 고난과 죽음에서 표현되었으나 그의 생명을 우리를 위한 대속물로 주시는 것은 그가 하시려고 이 땅에 오시고 그의 일생을 통하여 수행하신 봉사의 성취였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는 모세의 그 제사에서 죄를 지은 자의 그 죄를 전가 받은 희생의 제물이 된 짐승이 감당했던 바로 그 일이었기에 모세의 제사에서 그 희생의 제물은 바로 이 예수에 대한 예표였던 것이다. 모세의 제사에서 제사장은 그 희생의 제물을 하나님 앞에 드림으로써 그 죄인의 죄를 사할 수 있었다. 예수는 자신이 친히 완전한 제물이 되어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렸다. 이 행위는 바로 제사장의 그 일이었다.

 

그러므로 구약의 제사장은 장차 오실 참 제사장이 되실 이 예수에 대한 예표적인 자들인 것이다. 구약의 그 제사는 완전하지 못했다. 죄를 지을 때마다 그 제사가 시행되었으니 그 제사는 반복적으로 행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예수는 단번에 자신을 희생의 제물 삼아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림으로써 죄인들인 우리의 죄를 속할 수 있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매번 제사를 드리는 행위를 하지 않아도 되는 처지가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더 이상 죄인의 자리에 서지 않아도 되는 의인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진 것을 “예수께서 우리를 ‘칭의’하셨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칭의된 것은 전적으로 예수의 공로이다.

(롬 3: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롬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롬 3: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롬 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롬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제물되어 하나님 앞에 드려진 그 제사는 그 내재적 가치에 의하여 우리의 모든 부채를 절대적으로 소멸한 금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께서 죽으신 때에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하고 있었던 그 휘장이 초자연적인 손에 의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갈라졌다.

(마 27: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마 27:45)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마 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 27:47)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마 27:48)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마 27:49) 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마 27: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마 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마 27: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마 27:5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예수에 의한 참된 속상이 끝난 때에 그것을 대표하는 모세의 제사에서의 상징적 체계 전부는 그 역할을 다하고 폐지되었다. 후에 실상이신 그리스도 예수가 오신 때에는 그 때까지 그림자였던 구약에서의 제사들은 사라지게 되었다.

(히 10: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히 10: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히 10: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히 10:8)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히 10: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히 10: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 10: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히 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히 10: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히 10: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구약에서의 제사들은 그리스도 예수와 그의 사역을 예표하는 것들이었다. 사도바울은 골로새서에서 모세의 제도 전부를 염두에 둔 “이것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골 2: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히브리서 기자도 또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히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 9: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히 9: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따라서 모세가 전한 그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였던 것이다.

(히 10: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구약에서 유월절의 양은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예표였다.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벧전 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죄인의 신분에서 벗어난 우리에게는 더 이상 죽음이 우리를 지배할 수 없다. 물론 이 땅에서 사는 삶이 마무리 되는 일은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임종이 없고 이 땅에서 영원히 산다고 하면 그것은 저주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땅은 죄로 인해 오염된 공간이니 고통과 고난이 없을 수 없고 미움이 가득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간에 머무른다는 것은 일종의 형벌일 수 있다. 더더욱 그러한 처지가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은 그래서 저주받은 자가 됨일 것이다.

(창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 3: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창 3: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전 2:16) 지혜자도 우매자와 함께 영원하도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모두 다 잊어버린 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전 2:17)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

(전 2:18) 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

(전 2:19) 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에서 내 지혜를 다하여 수고한 모든 결과를 그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

(전 2:20)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도다

(전 2:21)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하였어도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넘겨 주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며 큰 악이로다

(전 2:22)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전 2:23)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처지를 종결지어주시니 그것이 우리에게는 임종의 순간이다. 그 임종의 순간을 지나면 영원한 복락이 주어지는 그 공간으로 우리는 이동한다. 그래서 믿는 자에게 있어서 임종은 또 다른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는 순간인 것이다. 사도바울은 이 비밀을 알았기에 그것을 사모하였던 것이다.

(전 4: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전 4:2) 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전 4:3) 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

 

그러나 그는 비록 그 임종의 순간을 사모하였지만 부득불 받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서 자신의 생명을 이어간다고 고백했다. 이 모습이 바로 참다운 신앙인의 자세인 것이다.

(빌 1: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빌 1: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빌 1: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빌 1: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빌 1: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빌 1:17)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빌 1: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빌 1:19)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빌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빌 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 1: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빌 1: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빌 1: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고전 9: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고전 9: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고전 9:17)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고전 9: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은 그 깨달음을 얻어 위대한 신앙인의 반열에 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