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14.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왜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심으로써 유대인들을 시기 나게 하셨다.
(신 32:19)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셨으니 그 자녀가 그를 격노하게 한 까닭이로다
(신 32:20)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겨 그들의 종말이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세대요 진실이 없는 자녀임이로다
(신 32:21)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롬 10:19)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롬 1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 이는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의 약속이셨고, 이 약속을 지키심으로 스스로 자신의 신실하심을 증명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덕적 속성을 지니신 하나님으로 드러나 보이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속성상 그 택하신 족속 이스라엘을 버리실 수는 없다. 그의 도덕적 속성에 따르는 지극히 선하심에 따라 그는 진정으로 그 백성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계신다. 비록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그 일을 행할지라도 그 족속 전체로는 결코 버리실 수 없다.
(계 1: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그러면 하나님이 무능하셔서, 또는 주무시고 계셔서 이스라엘의 그 완악함을 알지 못하시는 것일까?
결코 그런 것은 아니다. 그분은 분명히 이스라엘의 완악함과 주를 배반하는 그 일을 알고 계신다. 그는 전지하신 하나님이신고로 알지 못하시는 것이 있을 수 없으시다. 다만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을 아픈 가슴으로 수용하고 계실 뿐이다.
그러면 왜 그렇게까지 참고 계실까?
그는 그 도덕적 속성상 잘못을 모른척하고 눈감아주실 그런 분은 또한 아니시다. 분명히 그들에게 자신의 공의로 그 잘못을 징계하실 것이다. 어쩌면 성경에 언급된 그 대환란 날이 바로 그 순간이 아닐까? 나는 이 대환란의 날이 임하기 전에 온전한 믿음의 백성된 자의 자리에 선 우리는 모두 주님의 부르심을 입어 주님과 함께하는 그 자리에 있게 될 것으로 믿는다.
믿음이 온전하여지도록 하기 위한 방법으로 하나님은 그 택하신 백성들에게 항상 고난이 임하게 하신다. 이것은 성경 속에서의 믿음의 백성들의 믿음을 온전함에 이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그 행하심 속에 언제나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기본 원리였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하여졌을 때 더 이상 그에게는 시험의 그 고난이 없었다. 이삭에게서도 그랬고 야곱에게도 그랬다. 욥의 경우에는 너무나도 끔찍한 그 시험이 주어지고 그 시험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믿음의 경지에 그 욥이 오른 후에 하나님은 그에게 곱절의 은혜를 베푸셨다.
(욥 42: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욥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 42: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욥 42:9)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욥 42: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욥 42:11)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다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
(욥 42:12)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욥 42:13)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욥 42:14)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니
(욥 42:15) 모든 땅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그들의 오라비들처럼 기업을 주었더라
마찬가지로 대환란 날이 이를 무렵에는 우리의 믿음의 훈련이 마감되고 주님의 부르심, 그 휴거의 날이 이를 것이다.
(살전 4: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살전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전 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대환란 날은 남은 이스라엘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마무리 작업이 될 것이다. 그날 이후에 그들은 참되고 진실되게 주님께로 돌아오고 천년동한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는 귀한 사역을 감당할 것이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천년왕국이다.
그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유대인들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게 하실 것이다. 이로써 하나님은 비록 구원을 허락하지 않을 자들에게도 복음을 듣게 하실 것이고, 그로써 훗날에 저들이 지옥에 이르는 것이 저들의 책임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실 것이다, 이와 같은 보통은혜를 베푸심은 핑계치 못하게 하려 하심이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롬 1: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유대인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저들을 죄악 가운데 버려두심은 저들이 구원의 은혜를 받는 그 날에 하나님의 그 구원의 은혜 베푸심이 얼마나 귀하고 영광스러운 일인지를 깊이 깨닫게 하려하심이다. 그 깨달음은 결국 그들에게 진정한 복을 가져다준다. 이 사실은 주님께서 친히 탕자의 비유를 통해 가르치셨다. 탕자가 죄를 통해 아버지의 은혜가 어떠함을 깨닫게 되었듯이 유대인들로 그렇게 하려 하심이다.
(눅 15: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눅 15: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눅 15: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눅 15: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눅 15: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눅 15: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눅 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눅 15: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눅 15: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눅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눅 15: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눅 15: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눅 15: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눅 15: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죄는 지극히 저주 받아 마땅한 것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그 죄조차도 주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셨다. 모든 것이 이렇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유대인들을 죄악 중에 버려두심으로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하셨다.
구원하시기로 정하신 우리들이 구원을 얻어 주와 같이 왕노릇하는 것을 유대인들로 하여금 보고 시기 나게 하신다.
(갈 3: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갈 3: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갈 3: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갈 3: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갈 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 3: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갈 3: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 3: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그들이 구원을 얻지 못하고 고난을 겪는 그 동안에 주님의 구속사역은 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나를 살리시려고 유대인들의 구원이 미루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의 구원과 더불어 이스라엘을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이 같은 의도하심이 바로 하나님의 경륜이시다. 나를 향하신, 그리고 믿음의 맏형이 되는 그 유대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이 깊으신 뜻을 우리가 싶게 이해할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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