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drive.google.com/file/d/1BHhDw1mP1lmUW55JddRjVJROzH4rPd1s/view?usp=sharing
2019. 4. 14.
“진실로 예수는 왕으로 이 땅에 오셨는가?”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는 예수의 족보로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한 마태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족보의 시작은 아브라함이었다. 그 아브라함은 족장이었다. 그 시대의 족장이라면 왕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어서 모든 유대인들이 존경하는 다윗 왕이 등장한다. 그 후손으로 그리스도 예수가 기록되어 있다. 마태는 주님이 왕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다.
(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마 1: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마 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마 1: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마 1:10)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마 1:11)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으니라
(마 1:15)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마 1: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창세기 15장에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언급되고 있다. 그 멜기세덱이 왕과 제사장의 이중신분을 가진 자로 소개되고 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백성의 대표요, 멜기세덱은 오실 주님을 상징한다. 따라서 오실 주님은 왕이시며 대제사장이시라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강한 영감을 받아 그를 신약 시대 예수를 대표하는 자로 언급하였다.
(히 7: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히 7:12)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히 7:13)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히 7:14)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히 7:15)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히 7:16)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히 7:17)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백성의 대표이다. 그의 후손이 차지할 땅이 유브라데까지라는 것은 곧 믿음의 영역이 점차 확장되어 결국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를 것을 상징한다.
(창 15: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그런데 그와 같이 넓은 영토를 확장하여 완성한 이가 다윗 왕이다. 그러므로 그 다윗은 곧 예수를 상징한다. 주님이 믿음의 세계를 확장하여 당신의 왕국을 건설하실 것에 대한 예표이다. 그런 면에서 다윗 왕은 주님을 예표하고 있으니 주님은 진실로 왕이신 것이다. 빌라도가 유대인의 왕이란 팻말을 달아준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요 19:19)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대제사장과 그 무리들이 ‘자칭’이란 말을 그 팻말에 더하여 줄 것을 요구했으나 빌라도는 단호히 거절했다. 내가 쓸 것을 섰노라고 말함으로써.
(요 19:21)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요 19:22) 빌라도가 대답하되 나의 쓸 것을 썼다 하니라
자칭이란 말이 더하여졌다면 예수는 사기꾼이었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예수가 진실로 왕이셨다는 것이 빌라도에 의해 선언된 것이었다. 어쩌면 빌라도가 언연 중에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 아내가 꿈을 꾸고 그것을 빌라도에게 말할 때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참으로 두려운 일이라는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마 27:19)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하더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참된 후손에 대한 깨달음을 받게 된다.
(창 15: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 15:2)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창 15:3)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창 15: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내 집에서 길리운 자’란 세상적인 인연으로 맺어진 사이를 상징한다. 학연이나 지연 등으로 인해 맺어진 사이일 수도 있다. 그런 사이가 결코 구원을 이룰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네 몸에서 날 자’란 바로 믿음 안에서 맺어진 관계를 의미하게 된다. 그런 관계를 통해 맺어진 자들만이 구원을 얻을 백성이 되는 것이다.
주님의 그 복음 전파를 통해 이루어질 믿음의 백성들이 하늘의 뭇별과 같이 많아질 것을 예언하신다.
(창 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창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 말씀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을 것을 말씀하심이다. 아무런 공로 없이 오직 믿음만으로 의롭다고 하실 수 있는 이는 절대권을 가진 왕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이신 주님은 왕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창 15: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갈대아 우르는 죄악된 세상의 상징이요 이 땅은 구원 얻은 자가 얻게 될 그 천국을 상징한다. 천국은 주님이 다스리시는 왕국인 것이다.
(창 15:12)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캄캄함이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신 순간을 상징한다. 하나님을 떠난 자의 모습이며 이 때 그는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의 방패시며 나를 지키시는 자가 되신다는 것이다.
(창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창 15:14)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방의 객이 된다함은 사단의 지배를 받을 그 세상을 의미한다. 우리가 주님의 그 구속하심을 받기 전까지는 모두가 사단의 지배를 받은 그런 애굽 생활을 한 것이다.
사백 년이란 그 사단의 지배를 받는 세월을 상징한다. 그 세월은 그렇게 괴로운 세월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날들이 주님에 의해 마감되어지니 그 복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네 후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고 표현되고 있다.
실제로 모세가 그 백성들을 이끌고 나올 때 그들이 큰 재물을 가지고 나왔다.
(출 12: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출 12:36)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으로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의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그 재물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사용되어지게 된다.
(출 25: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출 25: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출 25:3)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출 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출 25:9)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결국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만났을 때 얻은 그 큰 기쁨으로 하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보이는 물질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는 그 넘치는 기쁨이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중요한 재물이란 것이다. 주님은 그렇게 우리의 경배를 받으실 왕이시다.
(창 15:17)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어두울 때는 우리의 믿음이 약하여져 희망 없고 두려운 삶의 순간을 묘사한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은 희망의 불꽃이 되신다.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남은 우리의 믿음의 고백 위에 임하실 주님의 그 은혜를 상징한다. 그 은혜로 우리는 참된 희망, 구원의 빛을 얻게 되는 것이다. 주님은 진실로 그와 같은 권능을 베푸실 참된 왕이신 것이다.
(창 15: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이 광대한 땅은 구원 얻을 백성이 누릴 그 큰 복을 상징한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이 같은 큰 영토를 얻게 되는 것이 다윗 왕 때에 실현된다.
(대상 18:3) 소바 왕 하닷에셀이 유브라데 강 가에서 자기 권세를 펴고자 하매 다윗이 저를 쳐서 하막까지 이르고
(대하 9:26) 솔로몬이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블레셋 땅과 애굽 지경까지의 열왕을 관할하였으며
따라서 다윗 왕은 오실 주님을 그대로 상징한다. 주님에 의해 사단이 패하여 그 차지하고 있던 영토를 내어주게 되니 실로 그 영역이 이같이 넓어질 것을 보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실 주님은 진실로 왕이신 것이다. 왕이란 통치하는 자이며 지배자이시니 그가 능히 사단을 지배하여 패망시키실 온 우주의 왕이시라는 것이다.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을 때 아무도 그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심지어 그 아비조차도 그를 하찮게 여겼다. 설마 이 아이가 왕이 될까하고 생각한 그 아비였다. 오직 사무엘만이 그를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오신 주님이 그랬다. 양치기 소년이었던 다윗을 왕으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처럼 말구유에 누우신 그분도 아무도 왕으로 알아보지 못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늙은 여선지자 둘과 동방박사들과 목동들 외에는 아무도 그가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시고 사단을 제압하고 온 우주를 통치할 참된 왕이시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마 2: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마 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트린 것은 사단을 박살내실 그 주님을 상징한다. 골리앗은 너무나도 크고 두려운 그 사단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삼상 17:3) 블레셋 사람은 이편 산에 섰고 이스라엘은 저편 산에 섰고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더라
(삼상 17:4)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요
(삼상 17:5)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고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 세겔이며
(삼상 17:6) 그 다리에는 놋경갑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단창을 메었으니
(삼상 17:7) 그 창자루는 베틀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는 앞서 행하더라
(삼상 17:8)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항오를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삼상 17:9) 그가 능히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기어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삼상 17:10) 그 블레셋 사람이 또 가로되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로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삼상 17:11)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군사가 바위틈에 숨어 떨고 있었던 것은 믿음의 백성들이 사단을 보고 크게 두려워하며 떨고 있는 그 모습을 상징한다. 그런 우리를 위해 주님이 오신 것이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다윗이 골리앗의 정수리를 친 것은 주님이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이란 하나님의 그 말씀의 이루어질 것에 대한 예표였다.
(삼상 17:49)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삼상 17:50)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 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삼상 17:51)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집에서 빼어 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외형상으로는 왕처럼 보이지 않는 다윗이었지만 그는 그 땅의 실제 왕이었던 사울도 감당 못한 그 골리앗을 단숨에 제압한 것처럼 주님도 두무지 외형상으로는 왕 같아 보이지 않았지만 십자가 사건으로 그는 완전히 사단을 제압하셨다. 주님 스스로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셨다.
(마 27: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그리고 그의 십자가에는 분명히 유대인의 왕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유대인은 모든 믿음의 백성들을 상징하고 있었다.
그는 이 땅에 왕으로 오셨지만 결코 무력을 사용하시지 않으셨다. 다윗이 골리앗을 굴복시킬 때 칼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물매를 사용했던 것처럼 주님도 자신의 가장 소중하며 능력있는 무기인 사랑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셨다.
(삼상 17:39)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치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고하되 익숙치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삼상 17:40)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주님이 대제사장의 종들에게 붙잡히시던 그 순간에도 무력의 상징인 검을 사용한 제자를 나무라셨다. 끝까지 그 사랑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셔서 사단을 온전히 제압하신 것이다.
(마 26:51)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마 26: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마 26: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마 26: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
주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자신의 무기인 사랑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셔서 사단을 제압한 위대한 승리의 순간이었으며 다윗이 골리앗의 머리를 자르는 바로 그 순간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분명히 왕으로 이 땅에 오셨고 미래의 그 날에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위엄을 갖추신 영광의 왕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통치자로서 이 땅을 심판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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