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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메섹 도상에서의 바울

by 영동장로교회 2019. 3. 31.

https://drive.google.com/file/d/1Y0QfIlFaHl0_3NDz7mnAP8zmVkcUiDdE/view?usp=sharing

2019. 3. 31.

다메섹 도상에서의 바울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태양보다 강한 빛을 만난 것은 참으로 그를 살리시려는 주님의 강한 의지의 표현이셨다.

 

이 순간까지 사울은 구원 받지 못할 잘못된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다.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만이 구원에 이른다면 분명히 사울은 구원에 이르지 못할 자였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분명 예배 대상이 되셔야 한다.

 

그러나 그 순간까지 사울은 예수님을 성자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어 단 일을 꾸민 자는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었다. 그들은 모세가 전해준 그 율법을 준수하는 자들이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그들이 최소한의 형식적 규범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게 하신 것이었다.

 

그들에게 주신 율법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필요한 것의 최소한이었다. 그들은 죄로 인해 영안이 가리워진 자들이었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이라도 지키게 하셔서 그들을 살리시려 하신 것이었다.

 

그 외형적인 규례를 지킴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참된 뜻을 깨닫도록 노력했어야만 했다. 모세가 율법을 그들에게 전할 때 그 계명을 하나하나 지키는 것과 아울러 분명히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그 내면적 신앙도 함께 가르쳤다.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러나 그들은 그 깨달음에는 이르지 못하고 외형적인 형식적인 신앙에만 머물렀다. 대제사장이 그랬고 바리세인들이 그랬다. 그리고 사울은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다. 그러했기에 사울은 그 외형적인 신앙에만 매달렸다. 내면적인 신앙의 깨달음에는 전혀 이르지 못한 전형적인 바리새인이었던 것이다.

 

그런 사울이었기에 믿는 자들을 혹독하게 핍박했다. 외면적 신앙의 틀에 갇힌 그는 그런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일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그런 일을 하는 데에 자부심과 우월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자신의 신앙이 가장 모범적인 신앙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내가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 누가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을 수 있으랴하고 자만했던 사울이었다. 스스로 의를 이루고 그것을 담보로 하여 자신의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 의롭다고 여긴 자였다.

(26:9)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26:10)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26: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26:12)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그런 우월감과 자부심에 심취되어 믿는 자들을 잡아오기 위해 가던 길이 다메섹 도상이었다.

(9:1)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9: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도무지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그 사울을 주님은 얼마나 불쌍히 여기셨을까!

한 낮의 태양보다도 더 강한 빛이 그에게 비춰짐으로써 겉으로는 기세등등하지만 구원받을 수 없는 불쌍한 사울에게 주님의 은혜가 임한 것이다.

(26:13)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구원 얻지 못할 자에게 구원의 은혜가 임한 것이다.

(26: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강한 빛에 그가 땅으로 꼬꾸라졌다. 땅에 엎드려졌다.

(9: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9: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가장 교만한 사울이 가장 낮은 자의 자세를 취한 것이다. 주님이 그로 하여금 교만한 자의 자리에서 가장 겸손한 자의 자리에 세우신 것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자를 살 자의 자리에 세우신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은혜로 어리석은 사울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게 하셨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고 하신 물음은 네가 어찌 하나님에 대하여 바르게 알지 못하고 그릇되이 섬기며 예배하고 나의 사역을 방해하느냐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사울은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섬기는 것이며, 또한 이 일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실 하나님의 일이라고 굳게 믿은 자였다. 이 일 후에 그가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한 것은 이 말씀에 대한 충격이 너무 큰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아무 것도 먹을 생각도 못할 정도로 그는 깊은 회개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사흘 동안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며 회개를 했을까! 이는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동안 회개하며 기도했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1: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 일 삼 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

(2:1)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2:2)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이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2:8)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2: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

 

사울이 엎드려져서 물었다. 누구시냐고. 그 때 주님은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답하셨다.

(9: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이 부분의 헬라어 본문은 '에고 에이미'라 되어 있다. 이는 예수님의 자기 선언의 한 양태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자기 선언이신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3:14)70인역(LXX)에서 '에고 에이미'란 문장으로 표현된 데서 비롯되었다. ‘에고 에이미는 히브리어로 여호와란 말이니 주님께서 자신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자신이 구약에서 모세가 만난 그 하나님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밝히신 것이다. 이 말씀은 사울에게 너무나도 뜻밖의 가르침이요 깨닫게 하심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이 그렇게도 괴롭혔던 그 예수가 바로 자신이 섬긴다고 그렇게 자랑한 하나님이셨다니!

이 깨달음은 훗날 그가 쓴 로마서에 고백되어 있다.

(9:5)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그 사흘 동안 그는 장님이 되어 있었다.

(9: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9)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그동안 그는 하나님을 아는 일에 사실상 장님이었던 것이다. 그 많은 학식을 지닌 사울이었지만 사실상 그 학식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주님이 하나님이신 것도 볼 수 없었던 그의 학식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세상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이시다. 오직 성령의 은혜를 통해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다.

(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주님께서는 사울로 하여금 사흘 동안 깊은 회개의 기도를 하게 하심으로 그를 절망 가운데 놓인 자의 자리에서 구원 얻을 자의 자리에 세워주셨다.

(9:11)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온전함을 더해 주시고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자의 자리에 세워주셨다. 자신의 신앙에 새 생명을 심어주셨다. 새로운 신앙의 결단이 그에게 일어났다. 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진 것은 바로 이런 사울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9: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9: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바울이 사흘간 장님으로 회개의 기도를 마친 후에 세례를 받음은 그가 진실로 자신이 의인이 아니라 죄인이었음에 대한 온전한 고백이 이루어진 것에 대한 증거였다. 이는 훗날 그의 고백을 통해 알 수 있다. 죄인임을 온전히 고백하는 것은 구원 얻을 자임에 대한 징표이다. 스스로 죄인임에 대한 깨달음이 없이는 그 누구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

(딤전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눈에서 비늘이 벗겨진 사울에게 주님이 사명을 맡기셨다. 부르심을 입은 자가 마땅히 행할 일이다.

(9: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9: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9: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부르심을 입은 우리들에게도 주님이 사명을 맡기셨다. 이를 행함은 부름 받은 자의 의무요 책임이다. 사울이라는 바울은 평생에 이 사명을 감당하는 위대한 사역을 이루어 냈다. 그는 진실로 구원을 얻은 우리들의 참된 모범이 되어주었다. 그는 담대하게 외쳤다. 나를 본받으라고.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 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