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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 교만한 자, 겸손한 자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교만한 자와 겸손한 자이다.
부자이기 때문에 교만하고 똑똑하기 때문에 교만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교만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같이 이 땅에 마음을 두고 살기 때문이다. 이 땅에 마음을 둔 자들은 이 땅의 것을 얻으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남보다 나아야 하고 또 남보다 나은 자라고 과시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교만한 자인 것이다.
사울왕 때 도엑이라는 자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거하는 자였으나 이방 족속 에돔의 사람이었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다. 이는 비록 성도들 속에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자들이 교만한 자의 편에 서는 것이다.
도엑은 자신의 세상적 욕망을 위해 사울에게 자기만이 충신인 것처럼 그렇게 교만한 자세로 다윗을 밀고한다.
(삼상 22:6) 사울이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함을 들으니라 때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나무 아래 앉았고 모든 신하들은 그 곁에 섰더니
(삼상 22:7) 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로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삼상 22:8)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삼상 22:9) 때에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신하 중에 섰더니 대답하여 가로되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 것을 내가 보았었는데
(삼상 22:10)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식물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
이때의 일을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시 52:1) [다윗의 마스길, 영장으로 한 노래, 에돔인 도엑이 사울에게 이르러 다윗이 아히멜렉의 집에 왔더라 말하던 때에] 강포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시 52:2)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시 52:3)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셀라)
(시 52:4) 간사한 혀여 네가 잡아 먹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시 52:5) 그런즉 하나님이 영영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취하여 네 장막에서 뽑아내며 생존하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셀라)
(시 52:6) 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며 또 저를 비웃어 말하기를 (비웃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알지못하는 그어리석음을 불쌍히 여긴다는 의미)
(시 52:7) 이 사람은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아니하고 오직 그 재물이 풍부함을 의지하며 제 악으로 스스로 든든케 하던 자라 하리로다
도엑은 한발 더 나아가 아무도 하나님의 제사장을 죽이라는 사울의 명을 따르기를 싫어하는 시위대를 대신하여 자기 손으로 제사장들을 죽었다. 이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가장 교만한 자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이 일로 그는 사울의 신임을 얻어 부와 권세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이 사울와의 시대는 끝나고 다윗이 왕이 되는 시대가 열리게 된다.
(삼상 22:17) 왕이 좌우의 시위자에게 이르되 돌이켜 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의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고발치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삼상 22:18)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이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이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인을 죽였고
(삼상 22:19)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그날에도 도엑이 여전히 부와 권세를 누렸을까.
이 사실을 전해들은 다윗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뜻을 따르는 겸손한 자의 표본이 되고 있다. 내 뜻과 의를 내세우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고 따르는 것이 참으로 하나님의 사람이요 이런 자라야 진실로 겸손한 자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다윗이지만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항상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심을 고백한다. 이는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진정한 믿음의 용기이다.
(시 52:8) 오직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
(시 52:9)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영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함으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의지하리이다
이런 겸손한 자를 하나님은 끝까지 함께 하시고 그를 영화로운 곳으로 인도하신다. 다윗이 참으로 어려운 날들을 보낸 후에 결국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것은 겸손한 자를 하나님이 이같이 하실 것이라는 것을 증거해 보이신 사건인 것이다.
겸손한 자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요, 구원의 은혜를 받을 자임이 얼마나 중요했으면 성경 말씀의 기록에서 가장 먼저 언급 되고 있을까.
(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땅은 혼돈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자의 모습이 이렇다. 화산 활동을 통해 땅은 아마도 높을 수 잇는데까지 솟아올라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교만한 자의 심정은 언제나 공허하고 깊은 어두움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에 물은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낮은 자리에 서는 것이 겸손이다. 이 물은 겸손한 자를 상징한다. 그 물 위를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운행한다는 것은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그렇게 보호하심을 베푸시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 가장 겸손한 자를 하나님은 끝까지 지켜 보호하신다는 것이다. 결국 겸손한 자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를 결국은 구원하시고 왕같은 제사장의 위에 세우시는 그 복을 허락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같은 진리를 깨달은 믿음의 사람이라면 하박국 선지자와 같은 위대한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합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 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합 3: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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