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26.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참된 지혜란 무엇인가”
왜 솔로몬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했을까?
(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솔로몬이 하나님이라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경외해야할 그 대상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함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하면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는 하나님을 상정하고 그런 존재를 하나님이라 하여 경외할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그것이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이 될까?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생각 속에 내가 그리는 하나님을 두고 그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이라 하여 섬길지도 모른다. 자신을 부요하게 만들어줄 하나님, 또는 자기를 높은 자리에 세워주실 하나님, 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이루어주실 존재로서의 하나님을 섬길지도 모른다. 그런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그 하나님이 정말 여호와이실까?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떤 성품과 어떤 의지를 펴시는 자이신 줄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의 하나님을 만들어 그를 섬긴다고 할 것이다.
때로는 하나님일 수 없는 그런 존재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하나님이라 하기도 한다. 그러면 그것은 곧 우상을 경외함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그랬다. 그들은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가리켜 자신들을 애굽에서 구해낸 신이라 하였다.
그 때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다. 그들은 분명히 애굽에서 구출되었음을 알았고, 그래서 자신들을 구해준 신이 있다고 그렇게 믿었다. 그것은 그들이 분명히 겪어본 그들의 경험을 통해 인지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자신들을 구해준 그 신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인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존재를 그냥 신이라고 불렀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알려고 한 노력이라고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던 그 때의 이스라엘 족속들이었다. 오직 자신들의 만족만을 위해 자신들이 생각한 대로 자신들을 구원해준 신의 형상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만든 그 금송아지가 여호와일 수가 있겠는가?
(출 32: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라
(출 32: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아내와 자녀의 귀의 금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 오라
(출 32: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 오매
(출 32: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아무도 그 금송아지를 여호와라 하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냥 신이라고 했지 여호와라고는 하지 않았다. 여호와가 어떤 신인지를 그들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 때 그들에게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었고,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도 몰랐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찢어진 후에 북쪽 이스라엘의 왕이 된 여로보암은 그 백성들이 남쪽 유다의 예루살렘성전으로 가서 예배하는 그 일을 두려워했다. 그 두려움으로 인해 급기야 그는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고, 그것을 가리켜 자신들을 애굽으로부터 인도해낸 그들의 신이라고 부르도록 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으므로 이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였다.
(왕상 12:25)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왕상 12:26) 그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왕상 12: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왕상 12: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왕상 12: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왕상 12:30)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숭배함이더라
세월이 지나 북 이스라엘에 예후가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아합의 아들 요람을 제거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예후는 하나님의 명을 따라 바알을 섬기는 자들과 바알의 상을 모두 제거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진심으로 하나님을 알기를 갈구한 자는 아니었다. 그러했기에 그에게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이 만든 그 금송아지를 제거하는 그 일은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도 그 금송아지를 애굽으로부터 자신들을 구해 내어준 전능자라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것은 우상이 아니라 자신들을 구해준 신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막연히 자신들을 구해준 신이니 그것이 하나님이라고 믿은 것이리라. 여호와를 아는 참된 지식이 그에게도 없었음이다.
(왕하 10:25) 번제 드리기를 다하매 예후가 호위병과 장관들에게 이르되 들어가서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죽이라 하매 호위병과 장관들이 칼로 저희를 죽여 밖에 던지고
(왕하 10:26) 바알의 당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당에서 목상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왕하 10:27) 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당을 훼파하여 변소를 만들었더니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왕하 10:28)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왕하 10:29)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왕하 10:30)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 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 대를 지나리라 하시니라
(왕하 10:31)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그래서 솔로몬은 여호와라고 호칭하여 말함으로써 경외해야하는 그 대상에 대해 분명히 아는 그 지식을 강조했다. 우리가 무엇에 대해 대충 알고 하면 그 일은 반드시 실패하고 만다.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섬기면 그 섬김은 실패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인 구원에 이르는 그 일도 필경 실패하고 말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도 강조하여 외치기를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외쳤다.
(호 6: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호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던가?
인생을 내신 이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여호와께서 이 인생을 내신 것은 오직 그를 사랑하여 영원히 그와 함께하는 그 삶을 영위하시기 위함이었다. 인생의 이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 삶이 되고,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그를 복되게 해주시기를 원하셨다.
인생은 하나님에 의해 그 땅에 지음을 입은 존재들을 거룩하게 다스림으로써 자신들의 본분을 다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그 일이 되었다. 그런 삶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었다.
한순간 그 사람의 욕심이 하나님의 그 뜻을 거역함으로써 이 관계는 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사람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그 사랑은 변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리하실 수밖에 없으신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불변하심을 그 속성으로 지니셨기 때문이다. 우리를 사랑하시기로 정하신 그것은 어떤 이유로도 변개하실 수 없으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롬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배반하고 떠나버린 그 사람을 하나님은 버리실 수가 없으셨다. 그 첫사랑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를 낳으시고, 아브라함이 그의 믿음의 독자 이삭을 희생의 제물로 삼음과 같이 그를 희생의 제물로 삼으셨다. 그리 정하셨기에 그 일을 위해 주님은 이 땅에 오셔야만했다.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누가 주님과 같이 그렇게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있을까!
그가 행하신 하나님의 섬김에는 전혀 오류나 결핍이 없었다. 그는 그의 공생애 전 사역을 통해 한 점의 결함도 없이 완전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그 일에 모범을 이루어 보이셨다.
그는 성자하나님이셨다. 제2위이신 성자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제1위이신 성부하나님과 함께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셨다. 솔로몬은 그의 지혜서인 잠언에 지혜가 천지 창조 시에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한 자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하실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제2위이신 성자 하나님뿐이시고, 이와 같은 일은 그 분의 그 사역을 말함이다. 따라서 여기서 솔로몬이 말한 그와 같은 사역을 감당하신 그 지혜는 곧 성자하나님을 가리키는 일이 되었다.
(잠 8:22)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잠 8:23) 만세 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여기서 말하는 나란 곧 지혜를 말함이다)
(잠 8:24)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잠 8:25) 산이 세우심을 입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잠 8:26)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잠 8:27)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잠 8:28)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잠 8:29)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로 명령을 거스리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잠 8:30)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잠 8:31)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었느니라
제2위이신 성자하나님이신 예수는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그 일에 표본이 되어주신 자이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그 모범을 보이신 자의 그 행하심, 즉 그 방법이 ‘지혜’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혜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그 방법 혹은 수단을 뜻함이 된다.
경외한다는 것은 공경하면서 두려워한다는 것이니, 경외한다는 것도 상대를 대하는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것도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인 지혜의 한 부분에 속한다 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바로 ‘경외함’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것이 지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그 근본 되는 그 일이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할 수가 있게 된다.
(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 9:11) 나 지혜로 말미암아 네 날이 많아질 것이요 네 생명의 해가 더하리라
지식이라는 것 또한 여호와를 경외하는 방법에 속한다.
신앙한다는 것은 바르게 아는 그 지식을 얻는 것을 첫 번째 필요조건으로 하고 있다. 바르게 알지 못하면 바른 믿음에 이르지 못한다. 바른 믿음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은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을 암시한다. 따라서 택하심을 입은 믿음의 백성이라면 이 아는 지식을 구하는 그 일에 전심전력하여야 한다.
미련한 자란 무엇을 뜻하는가?
구원을 사모하지 못하는 자야말로 이 땅에서 가장 미련한 자이다. 그런 자들은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 지혜를 멸시함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자리에서 비켜남이요, 훈계를 멸시함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멀어짐을 암시한다.
결국 이런 자는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이요, 설사 믿음의 생활을 하고 있는 자라 할지라도 이처럼 하나님을 아는 그 일에 게으른 자는 미련한 자와 동류라 할 것이다.
(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그 일에 대한 방법, 즉 ‘지혜’를 우리에게 온전히 전달해 주려함이었다. 이 지혜를 바르게 알게 해주시려고 그는 그 모든 고난을 이기시며, 그 사랑을 베푸셨던 것이다. 그의 하신 모든 행동들은 그 자체로 지혜이셨다.
그의 가르침은 입으로만 함이 아니었다. 그의 가르침은 그의 삶 속에 그대로 녹아있었다. 심령이 가난하라 한 대로 그는 구원받아야 할 영혼들이 목자를 만나지 못하고 떠도는 양같이 이 땅을 헤매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채워지지 아니한 그 가난한 마음을 가지셨다. 그랬기에 그는 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실 수 있었다.
팔복에서의 이 여듧 가지는 반드시 행함을 동반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주님의 삶 그 자체가 여기에 담겨 있음이다. 그래서 이 복을 우리가 따라함으로써 주님을 닮아가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그 방법을 체득코자 함이었다.
(마 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마 5:2)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마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 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 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 5: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주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누명을 쓰셨음에도 아무 변명도 하지 않으심은 그의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순종이셨다. 그의 이 순종이야말로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신 그 방법이셨다. 억울한 누명을 쓰신 그 순간 얼마나 억울하고, 숨통이 터질 정도로 답답하셨을까!
그러나 그는 선지자의 그 예언을 이루시려는 그 순종을 향해 걸어가셨고, 그리고 그것은 그만의 하나님을 섬기는 그 방법이셨다.
(마 27: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마 27: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소를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마 27:13)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저희가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거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마 27:14) 한 마디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 53: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우리가 그를 아는데 전심하고 또 그의 삶을 모방하여 닮음으로써 ‘지혜’를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지혜를 얻으면 하나님을 바르게 알게 되어 비로소 하나님을 ‘여호와’라 부를 수 있게 될 것이며, 또한 여호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그 일도 자연스럽게 이룰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원하고 원하신다.
이런 상태에서만 하나님과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그 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이런 상태가 처음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그 일이다. 이 관계만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할 수 있고, 또한 이 관계에서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우리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것이며,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호와를 바르게 섬기는 그 방법을 알아 가야만 한다.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그 길을 찾으면 이로써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회복되어 처음 그 때로 돌아가는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이런 삶이야말로 가장 복된 삶이라 할 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 곧 ‘지혜’를 얻는 그것인데, 이때의 지혜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데 필요한 그 수단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지혜는 오직 주님을 닮음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
솔로몬은 그의 삶을 통해 참으로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를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 복된 삶이란 오직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그것으로써만 가능함을 그의 노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래서 뒤에 오는 자들에게 그 지혜를 구하는 일에 힘을 쓰라고 권면하고 있다.
지혜의 근본이 되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일을 바르게 아는 데에 있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던 솔로몬이었다. 젊은 날에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고 자신의 지식과 방법으로 살았고, 급기야는 그 땅에 우상까지도 끌어들였다.
모두가 그를 지혜로왔다고는 했지만 실상은 그는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하는 그 일에는 무지했다. 그랬으니 그 땅에 우상을 끌어들인 장본인이 되는 그 자리에 스스로 나아갔고, 노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런 삶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노년에 이르러서야 솔로몬은 그의 실패한 삶을 통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 속 깊이까지 깨닫게 되었으니 그렇게 살아온 삶이 얼마나 후회스러웠을까!
그러했기에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그 근본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그것에 있다는 사실과 함께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기는 그 방법인 ‘지혜’를 얻어 참된 행복자의 자리에 설 것을 우리에게 힘써 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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