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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덮으신 하나님의 은혜- 구원

by 영동장로교회 2018. 6. 3.

(하나님의 은혜)

우리를 덮으신 하나님의 은혜

 

누가 하나님의 심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오직 하나님만이 아실 이 심정을 그래도 성경을 통해 우리가 조금이라도 알 수 있게 하셨다. 그렇게 하심은 하나님의 우리를 사랑하심을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려 하심일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랑을 깨달아 하나님의 우리를 살리려하시는 그 구원사역에 감사함으로 동참하게 하려하심일 것이다.

 

성경은 참으로 많은 곳에서 하나님의 이 심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대표적인 몇 군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를 덮으신 은혜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세기 12절에 기록된 을 원전에서 살펴보면 접속사 와 정관사 가 붙어 있어 직역하면 '그런데 그 땅'이란 표현이 된다. 그리고 이 땅은 '지구'를 가리킨다.

이 땅은 사람이 살아갈 공간이니, 곧 이 땅이란 사람을 대신하는 표현이 된다. 다시 말해 이 땅은 우리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땅의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가득했다. 이것은 구원 받기 이전의 우리모습이다. 이것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우리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무엇을 하여야할지를 모르고 방황하는 모습, 왜 이 땅을 살아가야하는지를 모르는 염세적인 삶을 사는 자들의 모습, 그리고 절망으로 가득한 자의 모습이 주님을 만나기 전의 우리의 그 모습이 아니던가!

혼돈과 공허와 흑암과 같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우리의 모습은 구원을 절대적으로 요한다는 것이다.

많은 철학자들은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으나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창세기 12절이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의롭다하고 이 문제를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하는, 내 의를 드러내는 자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그 수면 위에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셨다. 하나님의 신은 성령하나님을 가리킨다. 혹자는 성령께서 신약 시대에야 비로소 활동하신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데(2:1-4) 성경은 성령께서 이미 구약 시대부터 여러모로 활동하였음을 보여준다. 이미 구약 시대부터 성령이 여러모로 활동하였음을 출 35:31, 3:10, 왕하 2:1215, 대상 12:18, 11:24과 같은 구절에서 보여주고 있다.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이 구절도 바로 성령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을 완성시키시는 이는 바로 성령하나님이시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가득 덮여 있는, 소망 없는 존재인죽어 있는 우리를 살리시키를 간절히 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고 표현하고 있다.

영적으로 우리가 죽어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시기를 간절히 원하셨던 것이다. 성경은 바로 이 점에 대해 수없이 많은 증명을 드러내어 보이심으로 우리의 구원에 대한 기록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성경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짝사랑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세상의 모양은 혼돈, 공허, 흑암이었다. 성령이 임재하기 전의 인간의 모습, 즉 우리의 모습을 표현한다. 세상이 혼돈되어 있고, 공허하고 암흑으로 되어있는 것을 성경의 표현으로 합쳐서 나타낸 말씀이 '수면, 바다'로 표현되고 있다.

그래서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다시는 바다가 있지 않겠고..’ 라고 말씀하는 것은,

다시는 혼돈, 공허가 없다는 뜻이 된다. ( 21:1 참조)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운행’ (라하프) 이란 의미는 암탉이 달걀을 부드럽게 품어 안는 모양을 뜻한다.

암탉이 달걀을 품어 안듯이 성령이 우리를 부드럽게 덮으시는 임재함이 있으면, 달걀에서 생명이 잉태되어 알을 깨고 탄생하듯이, 우리에게 새 생명으로 창조가 되는 그것, 곧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덮으심이다.

1;2은 그 말을 운행이란 단어로 설명하고 있다.

마치 암탉이 달걀을 부드럽게 품어 안듯이 덮는 것이요, 또한 독수리가 자신의 새끼를 돌보며 포식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공중에서 빙빙 선회하는 모습과도 같은 뜻으로 볼 수 있다.

성경의 시작인 창세기1:2운행이라는 용어를 기록하심은 성경은 우리를 살리시고자하는 하나님의 간절한 열망이신 구원의 도리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축복의 도리’, 즉 이 땅에서 물질적인 풍요와 정신적인 안정을 얻어 누릴 수 있는 비결을 말하는 그런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혼돈과 저주와 흑암, 그 카오스의 상태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새 생명이 어떻게 창조되어지는지를 원리로 보여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심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시겠다는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구원의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성경의 첫 문을 여는 순간부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해서 우리의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반드시 살려내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가 어찌하여 이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2. 아담과 하와를 위해 덮으심

1:2 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를 살리시겠다는, 즉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분명히 드러내 보이신 것이 창3:21의 말씀이다.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아담과 하와가 벗은 몸에 대해 서로 부끄러워한 것은 그냥 그들이 옷을 입지 아니한 벌거벗음에 대한 부끄러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이 서로에게 죄를 지은 그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그런 그들을 위해 하나님이 가죽옷으로 그들의 죄를 덮으시고 그 부끄러움을 면하게 하셨다. 이는 죄인된 우리를 칭의하실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그 부끄러움을 면하게 하시려고 흘리신 그 희생의 피로 그들의 부끄러움은 가리워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 일을 행하시기 전에 스스로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가리려고 무화과 잎을 엮어 치마를 둘렀지만 이니 잎사귀가 말라 부스러졌다. 그것은 결코 그들의 부끄러운 것을 영원히 가리지 못했다. 이는 우리의 죄를 우리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임을 밝힌 것이다.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죄를 해결하실 수 있으심을 밝힌 것이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이다.

나를 위해 피를 흘리시고 그 희생으로 우리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신 성자하나님, 주님의 그 사랑에 우리는 온전히 감사하는가?

 

3. 지성소에 나타난 하나님의 덮으심

-속죄소가 언약궤를 덮고 있는 모양이 주는 은혜의 의미

 

성막의 핵심은, “속죄소와 언약궤이다.

1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희생의 짐승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가 법궤 위(법궤 뚜껑 위) 속죄소에 그 어린 양의 피를 붓는다이는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당신의 아들의 피로 덮어버리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언약(율법)을 주셨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다 지켜 살지는 못한다. 그런고로 하나님께서는 어린양의 피로, 그 언약이 들어있는 궤를 그 피로 덮으시는 은혜를 허락하시는 것이다.

피로 덮고, 그 밑에 인간의 죄와 허물은 안 보시겠다는 것이다.

그 위의 예수님 피만 하나님은 보시겠다는 것이다.

그 아래 있는 자는 모두 무죄 선언을 해 주신 것이다. 이는 성자하나님의 칭의하심이다.

 

이것이 천국의 모형이요, 출애굽기에 나타난 복음이다

 

*참조 :

속죄소는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긴을 찾아오셔서 그의 죄를 완전히 덮어 주시는 은혜와 화해의 장소임을 반영한 명칭으로 제사장이 일년에 1번씩(대속죄일)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에 안치된 법궤의 뚜껑 부분에 위치한다.

 

속죄소의 이 말은'덮는다'는 뜻의 '카파르'에서 유래했는데, 이 단어는 상징적으로 '속죄하다', '용서하다'는 뜻을 지닌다. 이밖에 '카파르'란 단어속에는 '칠하다', '제거하다'는 뜻도 있는데 이는 곧 죄를 덮어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마치 제거한 것인 양 간주하여 용서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속죄소(贖罪所)란 인간의 죄를 덮어(용서해)주는 장소-당신의 백성의 죄를 사해주시기 원하는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란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이를 '자비의 자리'(a mercy seat)로 번역하고 있다.

동시에 속죄소는 그런 목적으로 하나님이 강림하시는 자리로도 언급되고 있다(22절 레 16:2; 7:89). 이상과 같은 의미를 지닌 속죄소도 예수와 관련된 중요한 예표론적 의미를 지닌다. 곧 속죄소는 인간의 죄를 덮어 도말해 버리는 예수의 보혈을 예표하고 있다는 점이다(5:9; 1:7).

 

(16:18) 그는 여호와 앞 단으로 나와서 그것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곧 그 수송아지의 피와 염소의 피를 취하여 단 귀퉁이 뿔들에 바르고

(16:19)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단을 성결케 할 것이요

(16:20) 그 지성소와 회막과 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친 후에 산 염소를 드리되

(16:21)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16:22)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

(16:23) 아론은 회막에 들어가서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 입었던 세마포 옷을 벗어 거기 두고

(16:24) 거룩한 곳에서 물로 몸을 씻고 자기 옷을 입고 나와서 자기의 번제와 백성의 번제를 드려 자기와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16:25) 속죄제 희생의 기름을 단에 불사를 것이요

(16:26) 염소를 아사셀에게 보낸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진에 들어올 것이며

(16:27) 속죄제 수송아지와 속죄제 염소의 피를 성소로 들여다가 속죄하였은즉 그 가죽과 고기와 똥을 밖으로 내어다가 불사를 것이요

(16:28) 불사른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진에 들어올지니라

(16:29)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칠월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리하라

(16:30)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4. 보아스의 옷자락이 룻을 덮은 은혜

이제 성경은 좀 더 가까이 우리의 구원하심의 예를 제시한다. 죄로 인해 이방인이나 다름없이 취급될 우리를 하나님은 끝내 구원하실 것을 이방인 룻을 빗대어 말씀하신다.

(3:8-9) 밤중에 그 사람이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웠는지라 가로되 네가 누구뇨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의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이방인이지만 시모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삼아 끝까지 섬기려고 이스라엘 땅을 밟은 룻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그녀가 그런 결심을 한 것은 오직 성령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이다. 그 마음에 새생명의 씨를 심어주셨으니 그가 하나님을 섬길 마음이 자라났고 결국은 이스라엘 땅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그 때의 룻의 모습은 거지 그 자체였다.

 

거지가 된 룻이 그 땅의 지주인 보아스와의 결혼으로 보아스의 삶에 연합하여져서 보아스의 지위로 올라가는 것에 비유된, 구원과 복음의 이야기가 룻기이다.

도무지 구원 얻을 자격이 없는 우리를 택하셔서 당신의 자녀삼아주신 하나님의 이 놀라운 은혜 베푸심을 우리는 진심으로 감사하는가?

 

5. 마리아에게 나타난 덮으심의 은혜

 

1:35절에도 덮는다는 말이 나온다.

(1: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마리아는 구약의 미리암(마라)’에서 온 말인데, ‘반역이란 뜻이다이 마리아(반역) 1:2절의 혼동, 공허 그리고 룻기의 룻의 거지 상태와 매치된다. 우리의 구원 받기 이전 상태를 나타낸 것이다.

반역자에 성령이 임하시는 것은 또 다른 덮으심의 표현이요, 덮으심으로 예수가 잉태되었다. 바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오늘날 나 같은 반역자(마리아)들에게, 성령이 덮으시면 내 속에 예수가 잉태되어, 우리가 작은 예수가 되는 것이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6. 결 론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이 구원의 은혜를 잊지 말고, 빚진 자로서의 당연한 도리를 행하는 자가 되자.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모든 이들에게 우리도 주님의 이름으로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베풀자, 그들이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