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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신앙에 관하여

by 영동장로교회 2023. 10. 22.

2023. 10. 22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종말의 신앙에 관하여”

 

온 세상이 전쟁으로 난리다. 그래서 교회는 이때가 바로 종말의 그 징조를 보이고 있는 때라하고, 더러는 종말의 때에 있을 휴거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때는 이 휴거사건이 사회적인 문제로 등장한 적도 있다.

당시의 휴거 소동은 1992년 9월 11일 추석 때부터 시작됐다. 경상남도 마산에서 나일론 끈에 목을 매어 목숨을 끊은 30대 여성이 고압선 인근에서 발견되었는데, 그녀의 유서에는 “10월 28일을 앞두고 세상 살기가 싫어졌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후에 인천의 한 산부인과에서는 의사가 어렵게 첫 아이를 가진 아이를 낙태하겠다는 30대 중반의 산모를 설득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 이유는 “10월 28일에는 아이가 있으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또 서울 구로경찰서에 두 아이의 실종이 신고 됐다는데, 범인은 아이들의 아버지였다. 남편은 아내에게 “10월 28일을 대비해야해”란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고 한다. 이와 같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전국 250만 교회의 신도 10만 명이 빠져든 ‘휴거 소동’의 때는 1992년 10월 28일 24시였다.

왜 이런 소동이 벌어진 것일까?

 

이런 사건이 발생한 것은 휴거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 때문이다.

 

지금의 지구촌이 전쟁으로 인해 불안한 정서가 만연되면서 교회는 이 휴거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의 유혹에 직면해있다.

(살전 4: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살전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전 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8)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성경에서 성도들이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져서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는 이 휴거에 관해 말씀하신 것은 믿음의 백성들로 하여금 두려움과 공포로 떨라 하심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신앙을 고수하며 복음을 전하는 믿음의 백성들이 핍박당하는 것을 도와 이겨내게 하려고 주신 비밀스런 희망의 메시지였다.

 

사도바울도 분명히 이 휴거를 이야기 하면서 “이는 비밀한 것이니 부디 핍박을 이겨내고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라”고 격려했다. 따라서 휴거란 믿는 자에게서는 공포가 아니라 절대적인 희망의 메시지였다.

(고전 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고전 15: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고전 15: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고전 15: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고전 15: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고전 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유의할 것은 사도바울이 이 휴거에 대해 언급하면서 중요한 가르침을 베풀었는데, 그것은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라”는 것이었다. 또 그는 주의 일에 힘을 쓰면 하나님께서 그 수고를 잊지 않으신다는 그 약속의 말씀을 첨가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수고를 잊지 않으신다는 것은 곧 그들을 구원으로 인도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셨다. 이는 믿음의 백성들이 구원을 약속 받았기 때문에 주의 일, 즉 복음 전하는 그 일을 감당하라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구원을 약속 받는 대가가 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믿음의 백성이기에 그 백성된 도리로서 복음전하는 그 일을 했는데,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공로로 인정해주시고 상급으로 구원을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믿음의 백성으로서 이렇게 하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 된다. 사랑은 먼저 손을 내미는 일이 아니던가!

스가랴 선지자의 입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에게 먼저 행하라고 하셨다. 그들이 돌아오는 그 일을 행하면 하나님께서도 그때에 돌아오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슥 1:1) 다리오 왕 이년 팔월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슥 1:2) 나 여호와가 무리의 열조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

(슥 1:3) 그러므로 너는 무리에게 고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사랑이라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먼저 하나님께로 나아가려는 그 마음을 갖고 나아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애타하시며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손을 내미는 일,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계셨음을 스가랴 선지자의 입을 빌어 밝히셨던 것이다.

(말 3: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말 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규례를 따라 금식을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금식을 하는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그렇게 금식한 것은 자기들만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이 자기들을 위해 금식한 그 일은 결코 하나님을 위한 일들이 아니었기에 그들의 그 일들은 하나님 앞에서는 허사가 되었다.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그런 자만이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그곳에 설 자격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 앞에 서게 됨은 곧 구원 받은 자의 자리에 섬이다. 예수께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구원의 반열에 들어설 수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슥 7:4)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슥 7:5)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슥 7:6) 너희의 먹으며 마심이 전혀 자기를 위하여 먹으며 자기를 위하여 마심이 아니냐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나님을 향해 먼저 손 내밀기를 싫어한 그들의 모습이 스가랴 선지자에 의해 구체적으로 언급 되었다. 그것은 그들이 진실한 재판을 행하기를 거절함이었고, 과부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함이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 자라면 과연 그러한 일들을 행하였을까!

(슥 7:9) 만군의 여호와가 이미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피차에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슥 7:10)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남을 해하려 하여 심중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슥 7:11) 그들이 청종하기를 싫어하여 등으로 향하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슥 7:12)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신으로 이전 선지자를 빙자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노가 나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나왔도다

(슥 7:13)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었노라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은즉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고

(슥 7:14) 회리바람으로 그들을 그 알지 못하던 모든 열국에 헤치리라 한 후로 이 땅이 황무하여 왕래하는 사람이 없었나니 이는 그들이 아름다운 땅으로 황무하게 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서로 진실을 말하며 해하기를 도모하지 않는 것과 거짓 맹세를 싫어하는 것과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푸는 일은 하나님을 사랑함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만약 그들이 그렇게 했다면 그 일들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들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슥 8:15) 이제 내가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 말지니라

(슥 8:16)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각기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을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슥 8:17) 심중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나의 미워하는 것임이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거듭하여 그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 은혜를 구하는 일을 하라고 촉구하셨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일을 먼저 한다면 하나님께서도 그들에게 오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는 먼저 손 내밈이 없는 사랑은 참 사랑일 수 없음에 대한 암시였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는 일을 행함이 없이는 하나님도 움직여주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실까?

 

하나님을 찾아 은혜를 구하는 일을 하라고 촉구하신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 택하신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이셨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들이라면 그들의 삶이 하나님께 먼저 다가가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먼저 다가가는 그 일이 그들이 구원 얻음에 공로가 될 수는 없다. 이미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하셨으니 먼저 손을 내밀어 사랑하신 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택하심을 입은 자가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일은 선택된 자로서의 당연히 행할 바, 그 의무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나아온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을 약속하고 계신 것이다. 그 은혜 베푸심은 곧 그들을 구원하여 살리시는 그 일이었을 것이다.

(슥 8:18)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슥 8:1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지니라

(슥 8:20)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후에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거민이 올 것이라

(슥 8:21) 이 성읍 거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할 것이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슥 8:22)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슥 9:16)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면류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슥 9:17) 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소년은 곡식으로 강건하며 처녀는 새 포도주로 그러하리로다

 

 

하나님께로 나아온 자들은 특별히 거짓 선지자들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주께서 친히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명하셨다. 이는 거짓 선지자들을 바르게 구별하지 못하고 따르는 것은 그들 자신의 책임에 해당되는 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분명히 믿는 자들에게 능히 분별하는 능력을 주셨기에 영들을 분별하라고 하셨다.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44:23)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

(3:18)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전 12: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고전 14: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5: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요일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구원에 이를 자들은 그 열매로 알 수 있다. 주께서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의 열매를 예화로 들어 이를 말씀하셨다. 오직 자신이 구원에 이르기만을 바라는 이기적인 신앙의 소유자를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7: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7: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7: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그 일은 분명히 하나님 앞에 좋은 열매로 인정받을 그 열매로 열릴 것이다. 이 땅에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선지자 노릇을 한 것이다. 그러하니 이는 전적으로 자신의 유익만을 구한, 하나님 앞에서의 무익한 삶이었을 것이다. 그런 자들이라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었을까?

만약 지금도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목회자의 자리에 서 있는 자가 있다면 그도 하나님 앞에 불법을 행한 자가 될 것이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그 일을 행한 그것은 결코 그의 공로가 되지 못한다.

귀신이 쫓겨나는 것은 주의 이름에 의해 주의 능력으로 된 일이니 그에게 돌아갈 공로는 있을 수 없다. 또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했다면 그 권능은 주로부터 나온 것이니, 이것도 결코 그의 공로가 되지 못한다. 그러니 이런 일을 행했다고 구원을 요구할 권리가 생겨날 수는 없다.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행함으로써 자신을 드러낸 자는 이미 자신이 받을 상급을 그 때 그 세상 사람들로부터 받았음이니 하나님께서 더 주실 상급은 있지 않다. 그런고로 그에게 돌아갈 구원의 은혜 베푸심이란 남아있을 수 있겠는가!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 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마 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마 7: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마지막 때의 징조에 관해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고, 이에 대해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마 24:3)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이때 예수께서 가장 먼저 언급하신 말씀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당부이셨다. 어떤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는가 하면 바로 자신이 스스로 그리스도라 주장하는 그런 자들이었다.

 

대표적인 그런 자들은 대체로 이단의 교주들일 것이다. 대체적으로 그들은 말세라 하며 공포를 조장하고 자신을 섬기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협박한다. 그들의 그와 같은 협박이 통하는 이유는 그들을 따르는 자들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 때문이다. 교주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맹종한다.

 

그런 두려움을 느끼는 자들에게서의 구원 얻음이란 단지 어리석은 욕망일 뿐이다. 구원이란 자신이 욕망한다고 주어지고, 구원을 욕망하지 않는다고 해서 주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구원은 인간 편에서의 요구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절대주권 하에 있는 것이 구원이기에 구원은 하나님의 뜻대로만 정해질 뿐이다.

 

따라서 구원이 내개 주어질까 아니 주어질까를 염려하는 그 일 자체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월권하는 행위가 된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의 그 뜻에 따른 그 일을 바르게 행하는 그 순종을 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만 염려할 그것만이 우리의 할 일이다.

 

하나님의 그 뜻에 따라 행하여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복음을 전하는 그 일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 이 세상에 종말이 오더라도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되는 그 일에만 우리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어야 한다. 사도바울이 강조한 주의 일에 힘쓰라는 그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는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명하신 우리의 사명이다.

(행 1:7)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9)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이 일 외에 주님이 언제 임하실지, 휴거가 언제 진행 될 것인지 등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염려하는 것은 분명히 믿음의 백성으로서는 주제넘은 일이 된다는 것을 이해해야할 필요가 있다. 주님께서도 그 날은 아버지 외에는 자신도 알지 못한다고 하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그 선을 지킬 것을 간접적으로 명하셨던 것이다.

(막 13:26)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막 13:27) 또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막 13:28)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막 13:29)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

(막 13: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막 13:31)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막 13: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막 13: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막 13:34)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막 13: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막 13:36)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막 13:37)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또 주님께서는 믿음의 백성들에게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심으로써 약속의 말씀을 베푸셨다. 끝까지 견딘다는 것은 자신의 신앙을 보전시키는 그 일을 의미하는데, 자신의 신앙이란 곧 전해야 될 복음이 담긴 그릇일 것이다. 그런고로 끝까지 견딘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복음을 전하는 그 일을 행함에서 따르는 그 모든 고난을 견디어내는 것을 의미함이 된다.

 

이 일을 감당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구원이라는 것이 주어질 그것에 대해 약속하셨으니, 따라서 우리가 염려해야 할 일은 주께서 명하신 그 명령을 우리가 잘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그 염려이어야만 한다.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그 염려가 되어서는 안되며, 그런 것으로 미혹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분명히 거짓 선지자에 해당한다.

 

강단에서 그 누구라도 이 구원을 명분삼아 협박하는 설교를 한다면 그는 분명히 거짓 선지자와 같은 부류에 속한 자임에 분명하니 그 가르침에 유혹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마 2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마 24: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마 24: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마 24: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마 24:8)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마 24: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마 24: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마 24: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마 24: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마 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모세는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애원했다. 이는 자신이 구원을 얻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백성들은 구원에 이르게 해달라는 모세의 간절한 애원이 담긴 기도였다.

(출 32: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의 죄를 속할까 하노라 하고

(출 32:31)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출 32:32)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주옵소서

(출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모세와 같이 자신은 비록 구원에 이르지 못할지라도 죄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하시어 살려 달라는 간곡한 애원을 할 수 있는 그런 자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다. 휴거의 은혜는 이와 같이 자신의 구원에만 관심가지기보다는 복음이 전하여져 죽어가는 심령들이 구원에 이르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이타적 신앙의 소유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일 것이다.

 

오직 자신만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애원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시며 구원에서 제외시키실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