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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연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가?

by 영동장로교회 2023. 10. 1.

2023. 10. 1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나는 과연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가?”

 

한 달 치의 식량을 가지고 애굽을 떠나온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그 식량이 바닥났던 그 날에 “이제 우리가 주려죽는구나. 그럴지라도 우리는 애굽의 노예상태에서 풀려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나이다”라고 기도를 올려드렸더라면 그들의 삶이 어떻게 바꿔졌을까?

(출 16: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제이월 십오일이라

(출 16:2)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출 16:3)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그들은 그런 기도를 드리는 대신에 그들을 애굽에서 구해내신 하나님을 원망했다. 하나님의 입장보다는 자신들의 입장을 먼저 생각한 자들이 바로 이스라엘이었다. 먹을 것이 없게 된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처사를 불평하되 사실을 왜곡해가면서까지 하나님을 원망했다.

 

자신들이 애굽에서는 고기 굽는 가마 곁에서 풍족한 삶을 누렸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다. 노예로 지낸 그들인데 과연 고기 굽는 가마 곁에서 고기를 배부르게 먹은 풍요를 누렸을까?

 

하나님을 원망하기 위해 지나치게 부풀려 거짓을 이야기한 그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안중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기 위한 그 일들이 있기나 했을까!

 

우리의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의 이름을 찬미하는 것이다. 이는 자신들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자들에게서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오직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으며, 또 그런 자만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미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목적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이 뜻과는 전혀 다르게 오직 자신들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유익만을 먼저 구하는 그런 일들을 한 자들이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워주셨다. 그러나 왕이 된 후에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일보다는 자신의 유익을 먼저 택하는 자의 자리에 섰다. 사울왕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쫓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 일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겼다.

 

하나님은 그 전쟁에서 아말렉의 모든 것을 멸하라고 사울왕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는 그 전쟁에서 좋은 것들을 남겨서 자신의 것으로 취하는 그 일을 행했다. 그의 심중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그 일을 생각함이 없었다. 아말렉을 온전히 멸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그것을 멸함을 의미함이니, 이 일은 분명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 일이 됨이었다.

 

그러나 사울왕에게는 소와 양의 가장 좋은 것과 어린 양의 가장 좋은 것은 자신이 가장 선호하여 아끼는 그것에 해당하였으니, 그것을 모두 자기 소유로 삼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그 일을 행하고 만 것이었다.

(삼상 15:1)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을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삼상 15:2)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을 내가 추억하노니

(삼상 15:3)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삼상 15:4) 사울이 백성을 소집하고 그들을 들라임에서 계수하니 보병이 이십만이요 유다 사람이 일만이라

(삼상 15:5) 사울이 아말렉 성에 이르러 골짜기에 복병하니라

(삼상 15:6) 사울이 겐 사람에게 이르되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 내려가라 그들과 함께 너희를 멸하게 될까 하노라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그들을 선대하였느니라 이에 겐 사람이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니라

(삼상 15:7)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

(삼상 15:8)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삼상 15:9)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

 

 

하나님께서 새로 이스라엘 왕이 될 자를 정하셨으니 그것은 다윗을 새로운 이스라엘의 왕으로 지목하심이었다. 그 다윗은 사울과는 다르게 자신의 유익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목숨을 취하려고 쫓아온 사울 왕을 두 번이나 죽일 수 있는 찬스를 잡았지만 그 순간마다 그는 그 찬스를 외면했다. 어쩌면 하나님이 그런 기회를 만들어주시고 다윗에게 물으심이었을 것이다. “네가 나를 위해 어떻게 하려느냐?”라고 물으신 것이다.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찬스는 다윗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되기에 그를 따르는 자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절호의 기회이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말자고 설득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귀한 찬스를 하나님께 돌려드렸다.

 

다윗은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자를 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손상시키는 일이 됨이라고 고백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렸다. 우리라면 과연 그 귀한 찬스를 사용하지 않고 다윗처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을까? 그것도 두 번씩이나.

(삼상 24:1)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따르다가 돌아오매 혹이 그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있더이다

(삼상 24:2)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새

(삼상 24:3)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그 발을 가리우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삼상 24:4) 다윗의 사람들이 가로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삼상 24:5) 그리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을 인하여 다윗의 마음이 찔려

(삼상 24: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삼상 24:7)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삼상 24:8) 그 후에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가 사울의 뒤에서 외쳐 가로되 내 주 왕이여 하매 사울이 돌아보는지라 다윗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삼상 24:9) 사울에게 이르되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삼상 24:10)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붙이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혹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치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였나이다

(삼상 24:11) 나의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자락만 베었은즉 나의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삼상 24:12)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삼상 24:13) 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삼상 24:14)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삼상 24:15) 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판결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신원하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삼상 24:16) 다윗이 사울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마치매 사울이 가로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삼상 24:17)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삼상 24:18)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내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붙이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삼상 24:19) 사람이 그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날 내게 행한 일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삼상 24:20)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삼상 24:21) 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비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라

(삼상 24:22) 다윗이 사울에게 맹세하매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요새로 올라가니라

 

(삼상 26:1) 십 사람이 기브아에 와서 사울에게 이르러 가로되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 산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삼상 26:2) 사울이 일어나 십 황무지에서 다윗을 찾으려고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과 함께 십 황무지로 내려가서

(삼상 26:3) 광야 앞 하길라 산 길 가에 진치니라 다윗이 황무지에 있더니 사울이 자기를 따라 황무지로 들어옴을 깨닫고

(삼상 26:4) 이에 탐정을 보내어 사울이 과연 이른줄 알고

(삼상 26:5) 일어나 사울의 진 친 곳에 이르러 사울과 넬의 아들 군대장관 아브넬의 유하는 곳을 본즉 사울이 진 가운데 누웠고 백성은 그를 둘러 진 쳤더라

(삼상 26:6) 이에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에게 물어 가로되 누가 나로 더불어 진에 내려가서 사울에게 이르겠느냐 아비새가 가로되 내가 함께 가겠나이다

(삼상 26:7)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혔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

(삼상 26:8)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날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나로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 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삼상 26:9)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삼상 26:10)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 죽을 날이 이르거나 혹 전장에 들어가서 망하리라

(삼상 26:11)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삼상 26:12) 다윗이 사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나가되 깨든지 이를 보든지 알든지 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로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다 잠이었더라

(삼상 26:13) 이에 다윗이 건너편으로 가서 멀리 산꼭대기에 서니 상거가 멀더라

(삼상 26:14) 다윗이 백성과 넬의 아들 아브넬을 대하여 외쳐 가로되 아브넬아 너는 대답지 아니하느냐 아브넬이 대답하여 가로되 왕을 부르는 너는 누구냐

(삼상 26:15) 다윗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용사가 아니냐 이스라엘 중에 너 같은 자가 누구냐 그러한데 네가 어찌하여 네 주 왕을 보호하지 아니하느냐 백성 중 한 사람이 네 주 왕을 죽이려고 들어갔었느니라

(삼상 26:16) 네 행한 이 일이 선치 못하도다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너희 주를 보호하지 아니하였으니 너희는 마땅히 죽을 자니라 이제 왕의 창과 왕의 머리 곁에 있던 물병이 어디 있나 보라

(삼상 26:17) 사울이 다윗의 음성을 알아 듣고 가로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음성이냐 다윗이 가로되 내 주 왕이여 내 음성이니이다

(삼상 26:18) 또 가로되 내 주는 어찌하여 주의 종을 쫓으시나이까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손에 무슨 악이 있나이까

(삼상 26:19) 청컨대 내 주 왕은 이제 종의 말을 들으소서 만일 왕을 격동시켜 나를 해하려 하는 이가 여호와시면 여호와께서는 제물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마는 만일 인자들이면 그들이 여호와 앞에 저주를 받으리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너는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라 하고 오늘날 나를 쫓아내어 여호와의 기업에 붙지 못하게 함이니이다

(삼상 26:20) 그런즉 청컨대 여호와 앞에서 먼 이곳에서 이제 나의 피로 땅에 흐르지 말게 하옵소서 이는 산에서 메추라기를 사냥하는 자와 같이 이스라엘 왕이 한 벼룩을 수색하러 나오셨음이니이다

(삼상 26:21) 사울이 가로되 내가 범죄하였도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네가 오늘 내 생명을 귀중히 여겼은즉 내가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 되었도다

(삼상 26:22) 다윗이 대답하여 가로되 왕은 창을 보소서 한 소년을 보내어 가져가게 하소서

(삼상 26:23) 여호와께서 각 사람에게 그 의와 신실을 갚으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오늘날 왕을 내 손에 붙이셨으되 나는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삼상 26:24) 오늘날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 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삼상 26:25)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 하니라 다윗은 자기 길로 가고 사울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누구라도 그 순간에는 그 사울왕을 죽이려 했을 것이다. 다윗의 부하들은 모두 그렇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그 선택을 했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은 위대한 왕의 자리에 세워주셨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시험은 더 큰 복을 주시려는 그 의도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그 시험은 더 큰 복을 주시려는 구실을 만들어주심이었다. 다윗이 위대한 왕의 자리에 서게 됨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큰 복이었다.

 

이 큰 복을 주신 그 근거는 그가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두 번이나 되는 그 찬스를 하나님께 돌려드린 그것 때문이었다. 그 일을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공로로 인정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구실 삼아 그에게 그런 큰 복을 베풀어 주셨던 것이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어떤 존재이던가!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하셨다.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이삭이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그 일을 먼저 생각했다. 이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자 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이었다.

 

그는 아들 하나,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바닷가의 모래만큼이나 많은 후손을 상급으로 주셨다. 이 큰 복을 그에게 주시려고 그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내어놓으라고 하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번제물이 모자라서 그 이삭을 달라하셨을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그 아들 이삭을 바치는 것을 그의 공로로 인정해주시고 그것을 그에게 큰 복을 베푸실 구실로 삼아주셨던 것이었다.

(창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창 22: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 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창 22: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창 22:5)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창 22: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창 22:7)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창 22:8)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창 22:9)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창 22: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창 22: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창 22: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 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창 22: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창 22: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창 22:16)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창 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창 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께서 하필이면 그 가난한 사르밧 과부에게로 엘리야를 보내셨을까?

 

먹을 것이 없어서 마지막 남은 한줌의 가루로 떡을 만들어 먹고 그 아들과 같이 죽으려고 했던 그 과부에게 엘리야를 보내셔서 그 남은 가루 한줌을 내어놓으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가루 한줌이 없어서 그 가루 한줌을 탐내셨을까!

(왕상 17:8)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왕상 17: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왕상 17:10) 저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곳에서 나무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가로되 청컨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나로 마시게 하라

(왕상 17:11) 저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저를 불러 가로되 청컨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왕상 17:12) 저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내가 나무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왕상 17:13)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왕상 17:14)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왕상 17:15)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날 먹었으나

(왕상 17:16)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그 과부에게 가루 통이 비지 않게 하시는 그 복을 주시려고 그 남은 가루 한 줌을 내어놓으라고 하셨던 것이다. 과연 그 과부는 하나님을 위해 자신이 아껴둔 그 가루 한줌을 내어놓았다. 어쩌면 그 가루 한줌은 자신의 목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가루 한줌을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그 일에 쓰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내어놓은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과부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때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그것을 주시려고 그녀에게 가장 소중하고 가치가 있는 그 남은 한줌의 가루를 요구하셨던 것이다. 결국은 그녀가 내어놓은 가루 한줌은 하나님으로부터 그녀가 복을 받을 수 있는 구실이 되었다.

 

도무지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할 줄 모르는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은 십일조를 바치라고 명하셨다. 이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구하지 못한 자들인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들의 자리에 세우시려는 그 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함이었다.

(말 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말 3: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말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 선지자의 이 권고대로 그들이 십일조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이 복을 주시나 아니주시나를 검증하였더라면 과연 그 드림이 순수했을까?

 

진심으로 드리는 그 헌물을 기쁘게 받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그런 자에게 한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이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이 비록 이런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고 복을 받을 것을 기대하고 드리는 그 십일조라 할지라도 십일조를 드리라는 그 명령을 따른 것만으로도 그들의 공로라고 인정해주셔서 상급을 베푸실 하나님이시다.

 

주님께서 한 가난한 과부가 한 고드란트를 헌금한 그 일을 칭찬하셨다. 부유한 유대인은 자랑하듯이 그렇게 연보 궤에 헌금을 넣었다. 그 행위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보다는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려함이었다. 그는 자기 받을 영광을 다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더 주실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 과부는 스스로 한 고드란트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 앞에 너무나도 죄송스러워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하나님께 드렸다. 그런데 그 한 고드란트는 그 과부에게 있어서 모든 것이었다. 그러니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그 한 고드란트는 얼마나 귀한 것이었겠는가!

 

그 귀한 것 전부를 하나님께 드렸으니 하나님께서는 그 가난한 과부에게 얼마나 더 좋은 것으로 주셨을까!

(막 12:41)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막 12: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막 12: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막 12:44)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천국이 그녀에게 선물로 주셨음에는 분명하다. 그녀에게서 가장 소중한 한 고드란트를 받은 그것을 공로로 삼아서 큰 복을 주실 구실로 삼으셨던 하나님이시다.

 

아무런 공로 없이 상급을 받으려는 것은 거지 근성의 발현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지와 같은 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우리를 당신의 지극히 귀한 자녀로 삼아주시기에 우리로 하여금 반드시 대가를 치르도록 요구하신다. 그것이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 그것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그것은 그 순간에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그것일 것이다. 내게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내어놓는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다는 그 고백일 것이다. 내게 가장 귀하고 소중한 그것을 내어놓는다면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가장 귀하고 소중한 그것을 내게 내어주심이 등가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가장 가치있는 그것이라면 사람의 입장에서야 얼마나 가치있는 그것이겠는가!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면 과연 그것에 욕심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그리할까!

가난한 과부가 하나님께 자신의 소유의 전부였던 그 동전 한 닢을 드렸을 때 하나님이 주실 그것을 기대하고 드렸을까?

 

지금 이 비밀을 밝히는 것은 지금까지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린 자에게 그 자신이 기대하지 않았던 하나님의 베푸신 그 놀라운 은혜에 대해 깊이 감사할 수 있게 해주려함이다.

 

그런데 이 비밀을 알고 의도적으로 베푸실 그 은혜의 큰 복을 기대하고 하나님께 드린다면 그 드림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기뻐하실까!

 

온 천하 만물이 다 하나님의 소유이며, 우리에게 있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우리에게 맡기심이라는 것을 알면 무엇인들 하나님께 돌려드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는 것은 그것을 모두 나의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격적이시기에 그 사랑하는 자가 대가없이 무엇을 바라는 자가 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귀한 것을 기쁘게 드릴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것 중에서 구별하여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래서 욥은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린다”고 고백했던 것이다.

(욥 1:13)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

(욥 1:14) 사자가 욥에게 와서 고하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욥 1:15)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욥 1:16)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양과 종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욥 1:17)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되 갈대아 사람이 세 떼를 지어 갑자기 약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욥 1:18)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더니

(욥 1:19) 거친 들에서 대풍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소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한지라

(욥 1:20)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욥 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욥 1: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 2:9)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욥 2:10)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

 

어린아이에게 먹을 것을 하나 쥐어주고 한 입만 달라고 하면 잠시 망설인다. 그러다가 손을 내밀면서 먹으라고 하면 모두 다 대견해하며 예뻐한다. 그 먹을 것이 원래 누구에게서 나왔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조그만 주먹을 내민 그 아이가 대견해 더 많이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 것이 그 부모의 마음이다. 그런데 그 마음은 어디로부터 온 것이며, 누구를 닮은 것이던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그 마음을 알게 하시려고 우리로 하여금 부모가 되게 하셨고, 그래서 이렇게 아이의 그 행동에서 기쁨을 얻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게 한 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