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6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표적을 구한 어리석은 사람들”
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에게 표적을 보여 달라 하였을까?
(마 16: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이 시험은 늘 새롭게 되는 믿음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하는 사건이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애초에는 그들의 신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되려고 애를 쓴 자들이었다. 바리새인들은 헬라문화를 거부하고 오직 모세가 전하여준 율법만 준수하는 삶을 살려고 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모세가 전해준 율법과 구전으로 전해진 규칙까지 지키며 부활이 있다고 하는 내세소망을 가진 자들이었다.
반면에 사두개인들은 오직 모세 5경만 인정하고 부활은 없다고 함으로써 현세적인 삶에 무게를 두었기에 정치세력과 결탁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독식하며 그 땅에서 유력한 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의 그 생각은 점차 타성과 아집에 빠져들어 갔다. 이는 그 심령에 늘 새롭게 되려는 깨어있음이 사라진 결과였다. 결국 그들의 신앙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아집에 갇혀 점차 본질에서 멀어져갔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외쳤다.
(마 3: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주님도 마찬가지로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다.
(마 12:24) 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마 12:25)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마 12:26) 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 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마 12:27)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 내느냐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 12: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마 12: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마 12: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마 12: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마 12:33)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마 12: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 12: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마 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마 12:37) 네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마 12:38)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는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의 그 의도가 악하고 음란한 곳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판단하셨다.
(마 12:3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마 12: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마 12: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마 12: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할 수 없다고 했다. 과연 예수를 시험하는 그들은 악하고 음란한 타락한 자들이어서 중생을 이룰 수 없었고, 따라서 그들이 회개하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었다.
(히 6: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이를 아시는 주님께서 그들을 향해 연민의 정으로 하신 말씀이 “너희는 천기를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였다. 그들이 구원에서 제외된 그 사실이 예수를 가슴 아프게 했을 것이다. 구원에 이르지 못할 자들도 하나님이 지으신 자들이니 어찌 가슴 아프지 않으실까!
(마 16: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마 16: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마가는 이 일에 대해 더욱 분명하게 “마음 속에 깊이 탄식하시며”라는 기록을 남김으로써 예수의 그 마음이 어떠하셨는지를 더욱 분명하게 밝혔다.
(막 8: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께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막 8:12) 예수께서 마음 속에 깊이 탄식하시며 가라사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이런 사악한 자들은 사단에 속한 자들로서 성령을 훼방하는 일에 앞장서는 자들이다. 성령을 훼방하는 자들은 결코 구원의 은혜에 참여할 수 없다. 그들이 돌이켜 회개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기에 주님은 그들에게 더 이상 말씀으로 은혜를 입혀주시는 일을 하지 않으셨다.
그들과 논쟁하거나 설득하는 일을 애당초 염두에 두시지 않으셨다. 그것이 그대로 드러난 표현이 “~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였다. 이단에 속한 자들과 논쟁하는 것은 이처럼 무의미하다. 사단에 속한 자들과의 대화는 그래서 의미가 없다. 그 자리를 속히 떠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 것이다.
(마 16: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
우리 역시 신앙의 잠을 잘 수도 있다. 오랫동안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습관처럼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어느 순간에는 자신의 신앙적 아집에 빠지게 된다. 이는 참으로 미세한 변형을 통해 이루어지기에 감지하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사단은 그렇게 우리를 속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아집은 참으로 깊은 개미지옥과 같아서 한 번 빠지면 도무지 헤어 나올 수 없다. 이 아집의 덫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신앙을 늘 새롭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깨어있는 신앙이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딛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이와 같은 깨어있는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살아내지 못했기에 어느 순간에 자신들의 신앙적 아집을 고수하며, 그 땅의 기득권 세력으로서의 이익만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런 그들의 삶에 한 순간 위협적인 존재가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예수였다. 그들은 예수의 이적적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은 예수가 귀신의 왕을 빙자해서 그런 일을 행한다고 조롱했다.
(마 9:27)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새 두 소경이 따라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마 9: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마 9:29)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마 9:30)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계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 하셨으나
(마 9:31) 저희가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전파하니라
(마 9:32) 저희가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마 9:33) 귀신이 쫓겨나고 벙어리가 말하거늘 무리가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때가 없다 하되
(마 9:34) 바리새인들은 가로되 저가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유대 랍비들은 귀신들도 땅에서 행하는 이적을 행할 수 있지만 하늘에서 오는 표적은 오직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일로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이때까지 예수가 보여준 이적들은 땅에서 행하는 이적이니 능히 예수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빙자해서 행했을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이제는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보이라고 한 것이다. 그들은 예수를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능력을 입어 행하는 자로 여겼으니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은 능히 행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이 요구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란 모세가 하늘로부터 준 만나, 여호수아에 의해서 멈추어진 해와 달, 그리고 사무엘에 의한 뇌성과 비 등과 같은 성격의 표적들이었을 것이다.
(출 16:4)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수 10:10)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시므로 여호수아가 그들을 기브온에서 크게 도륙하고 벧호론에 올라가는 비탈에서 추격하여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이르니라
(수 10:11)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덩이 우박을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우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욱 많았더라
(수 10:12)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하매
(수 10:13)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기를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하지 아니하였느냐
(수 10:14)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삼상 7:10)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삼상 7: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을 따라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삼상 7: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어찌되었던지 간에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에 위협이 되는 예수를 제거하려고 혈안이 되어있었다. 그들의 그런 의도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그 해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의 입을 통해 나온 그 말이었다. 예수만 제거하면 자신들의 기득권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요 11:46)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의 하신 일을 고하니라
(요 11:47)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가로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요 11:48)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요 11:49) 그 중에 한 사람 그 해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저희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요 11: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요 11:51)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요 11:52)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요 11:53) 이 날부터는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한 것은 우리가 때로는 하나님께 이적을 일으켜 보여 달라고 기도하는 그것을 상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는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 놀라운 이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해달라고 떼를 쓰기도 한다. 이는 욕심에서 구하는 그 일이다.
보지 않고도 믿는 것이 참 믿음이다. 이는 내가 보지 않고도 신뢰함이니 이 믿음이야말로 복된 믿음인 것이다. 보지 않고, 즉 이적을 바라지 않고 순전하게 말씀대로 믿는 그 믿음이 복된 믿음이다. 주님도 우리와 같이 의심 많은 믿음의 소유자였던 도마에게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하셨다. 이래도 말씀만 의지하지 않고, 욕심에서 구하는 그 이적을 보여 달라고 기도할 것인가?
(요 20:24)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요 20:25) 다른
(요 2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요 20: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요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 20:28)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이 요구하는 표적을 보여주시지 않았던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는 예수의 절제와 겸손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예수께서는 세상의 유혹에 현혹되어 자신의 사명을 잊어버리는 우를 범하는 일을 전혀 행하지 않으셨다. 예수도 인성을 지닌 우리와 같은 사람인고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그 요구는 그 순간 예수의 입장에서는 유혹이었다.
자신이 신성을 지니셨으니 이스라엘 사회에 유력한 영향력을 지닌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그 요구에 능히 그들이 원하는 만큼의 표적을 이루어내어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 순간 그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실 때 사단이 다가와 한 그 유혹에 넘어가는 일과 같은 것이었다.
이 순간 예수께서는 단호하게 요나의 기적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심으로써 자신이 이 땅에 온 그 사명이 무엇이며, 오직 그 사명만 감당할 것이라는 의지를 드러내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었다.
이렇듯 예수의 인성은 항상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써 둘째 아담으로 오신 그의 사명을 온전히 이루어내셨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자신의 신부로 삼아주셨으니 우리는 예수의 신부로써 그에게 속한 자들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 앞에 완전한 순종을 이룸으로써 그에게 속한 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죄인이라고 정죄되었던 그 신분에서 풀려나 의인된 자의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예수께서 온전한 순종에 대한 모범을 보이셨고, 그가 이루신 그 순종의 공로가 우리에게 덧입혀짐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그 유혹을 자신이 이 땅에 온 그 이유에 대해 분명히 밝히는 기회로 삼으심이었다.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은 우리를 위한 구속사역을 행하려 하심이었고, 이로써 그는 참된 메시야가 되심을 스스로 증명하신 일이셨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를 곤궁에 빠트리려고 시험하는 그 간계를 하나님은 역으로 이용하셔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기회로 삼으셨다.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시니, 이로써 그들의 의도와는 반대로 예수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도리어 증명이 되었다. 그들은 애초에 모세가 하나님과 대화하며 율법을 받을 때에 하늘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그 일과 같은 것을 예수에게 해보라 요구한 것이다.
내심 그들은 그 일을 예수가 능히 할 수 없을 것이고, 그래서 예수를 민심을 동요시키는 일종의 사기꾼과 같은 존재로 몰아 세워 제거하려 했을 것이다. 그들이 원했던 대로 하나님이신 예수가 그렇게 표적을 행했다면 이는 둘째 아담으로서 성부하나님께 온전한 순종을 이루어야만 했던 예수의 사명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요나의 그 표적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심으로 자신의 사역에만 온전하게 순종하시는 그 순종의 모범을 보이신 것이다.
우리라면 이처럼 온전한 순종을 이룰 수 있을까?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이런 순종을 이룸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는 명령을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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