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020. 1. 5.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전 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한해를 시작한다는 것은 우리의 믿음생활에 대한 또 하나의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익숙함에 대한 지배를 당하고 살아간다. 새로운 것에 대해 처음에는 긴장을 하고 따라서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음으로써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일이 오래 지속되면 적응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로 크게 의식 없이 그 일을 감당하게 된다. 적응이 된다는 것은 그 일에 적극적으로 주의를 기우리지 않아도 그냥 흘러가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그렇게 되어 진다.
믿음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롭게 다가오기에 긴장되기도 하고 주의 깊게 살피고 생각도 하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고 모든 것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적응이 되면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는 습성이 자리 잡게 된다. 그래서 더 새로울 것도 없어지게 된다.
예배의 형식은 변화가 있을 수 없으니 당연히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진다. 예배시간에 드리는 찬송은 그 찬송가 속에 들어있는 같은 곡이니 익숙해져서 생각 없이 따라 불러도 될 정도가 된다. 이 정도가 되면 모든 것이 자동적으로 되어지는 경력 많은 신앙인이 되는 것이다. 더불어서 처음의 그 기쁨과 감사도 사라진다.
과연 주님이 원하는 성도의 모습이란 이런 것이었을까?
주님이 사역하시던 그 당시에도 경력 많은 신앙인들이 존재했었다. 대제사장들이 그런 자들이었고 바리새인들 또한 그런 자들이었다. 그들은 그저 습관적으로 신앙생활을 한 자들이었다.
그들에게는 매일매일이 새로울 것이 없었다. 적어도 모세가 전하여준 그 율법에 대한 깨달음을 얻으려고 매일 간구하는 노력도 없었다. 그저 자신들이 듣고 배운 것대로만 반복하는 정도의 믿음 생활을 할 뿐이었다. 그러했기에 자신들을 죄에서 구속하시려고 오신 그 메시야를 알아보지도 못한 것이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그 날에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헤롯의 그 질문에 분명하게 주님이 나실 곳은 유대 베들레헴이라고 답을 했다. 이는 이미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이 은혜 베풀어주시려고 미리 알게 하신 사실이다. 그들이 진실로 늘 새롭게 하여 깨어있는 믿음을 지녔다면 당장 주님께로 찾아가 진심으로 기쁜 마음으로 영접하고 하나님이 주시려고 예비하신 그 은혜를 받아 누렸어야만 했다.
그러나 깨어 있는 이방인 동방박사들만 주님을 찾아가 경배하는 큰 복을 누렸다. 정작 그 땅에서 가장 믿음이 좋다고 스스로를 내세운 그들은 깊은 신앙의 잠에 빠진 불행한 신앙인들이었다. 그들의 신앙적 타성이 자신들을 구원받지 못할 자리로 내몬 것이다.
(마 2: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마 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마 2: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마 2: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마 2:5)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마 2: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주님께서는 이 신앙적 타성을 경계하시면서 깨어 경성하는 신앙인이 되라 하셨다.
(마 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마 24: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마 24: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그리고 또 주님께서 날마다 자신들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 하셨다. 날마다 그리하라는 것은 늘 새롭게 자신들의 신앙을 점검하고 타성에 젖어 편안하게 신앙생활 하는 신앙인이 되지 말라는 명령이셨다.
(눅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새로운 한 해를 허락하심은 나의 신앙을 돌아보고 나의 구원을 이루실 하나님의 그 사역하심에 걸림돌이 되게 할 불의한 요소들을 스스로 제하고 구원 얻을 자로서의 자신을 새롭게 무장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배려하심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구원 받을 자로서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려고 하는 새로운 결심을 이루어야 한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고전 9: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평생에 그는 자신과의 이 약속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런 그의 삶을 어떻게 잠 잔 신앙이라 할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 가장 모범적인 깨어있는 신앙인의 참 모습을 그는 진실로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우리도 그와 같은 신앙인의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구원 얻을 자로서 마땅히 행할 도리가 아닐까?
구원을 허락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일이다. 달음질을 하는 자가 스스로 상을 줄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자신이 스스로 구원 얻는 그 상을 줄 수 없다. 우리는 구원 얻을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지만 구원의 상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구원 얻을 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할 뿐이다.
이 한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깨어있는 신앙인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고전 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바울이 모든 일에 절제하라는 것은 우리의 구원에 방해가 될 일을 금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세상을 탐하여 기웃거려서는 안된다. 남과 비교하여 나의 삶이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하다고 탓해서는 안된다. 내 지위가 남들에 비해서 왜 이리 낮으냐고 자신을 힐난해서도 안된다. 나의 아이들이, 나의 배우자가 왜 남들보다 못하냐고 원망해서도 안된다. 그런 일들은 모두 세상적인 일에 속한다. 오히려 그러하기에 내가 더 주님을 의지하게 되었음에 감사해야 한다. 그 모든 것은 썩을 면류관일 뿐이다. 진실로 우리가 바라고 소망해야 하는 것은 바로 천국의 그 썩지 아니할 그 면류관이다.
(고전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진실로 우리가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주님의 뜻에 복종하고자 하는 것은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그 날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처럼 그 땅에서는 거룩하고 존귀하게 보였을지라도 그들은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버리워졌다는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고전 9:26)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이 한해에는 우리의 믿음이 더욱 새로워져서 주님의 영광이 우리들로 인해 이 땅에 더욱 빛나게 드러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하자.
이 한해, 주님의 크신 은혜와 위로와 새롭게 하심이 모든 성도들의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축원하노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