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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신 그 위대한 사랑이여!

영동장로교회 2019. 12. 22.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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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22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신 그 위대한 사랑이여!”

 

잘못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죄를 받는다면 이처럼 억울한 일이 있을까?

 

누구라도 살면서 이 같은 일을 한 번쯤은 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일을 당하면 자신의 억울함을 해결하려고 발버둥을 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억울함을 풀지 못하면 화병이라도 걸릴지 모른다. 모함한 그를 향해 치를 떨며 저주하고 또 저주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모함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모함한 자들에게 분노를 표출하기보다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의 그 죄를 용서해 달라고 청했다. 자신의 그 억울함을 해결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들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누가 그리할 수 있을까?

(23:32)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23: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23: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23: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23:36) 군병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포도주를 주며

(23:37) 가로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23:38)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23: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23: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23:41)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23:47)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예수,

그는 죄가 없으신 자였다.

세상의 그 어느 누구라도 이 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인류 최초의 사람 아담, 그는 최초의 범죄자였다. 그리고 그의 후손 모두는 그의 죄에 동참한 자이기에 모두가 죄인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수는 그 아담의 피를 받아 태어난 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하여 태어남으로써 죄 없는 육신을 입고 태어난 존재이시다.

 

그런 예수가 유대인들의 모함으로 죄인의 자리에 섰다. 빌라도 총독이 그를 심문할 때에 그는 자신을 변명하지 않았다. 빌라도도 그에게서 죄를 물을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그를 중죄인의 자리에 세웠다.

(27: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27: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소를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27:13)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저희가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거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27:14) 한 마디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

 

(23:1)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23:2) 고소하여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23:3)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 말이 옳도다

(23:4)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

(23:5) 무리가 더욱 굳세게 말하되 저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케 하나이다

(23:6) 빌라도가 듣고 묻되 저가 갈릴리 사람이냐 하여

(23:7)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

(23:8) 헤롯이 예수를 보고 심히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23:9)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23:10)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힘써 고소하더라

(23:13)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원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23:14)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을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어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사실하였으되 너희의 고소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 죄를 찾지 못하였고

(23:15)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저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저의 행한 것은 죽일 일이 없느니라

(23:16)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23:17) (없음)

(23:18) 무리가 일제히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23:19)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자러라

(23:20)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저희에게 말하되

(23:21) 저희는 소리질러 가로되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23:22)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한대

(23:23)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

(23:24) 이에 빌라도가 저희의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23:25) 저희의 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자를 놓고 예수를 넘겨주어 저희 뜻대로 하게 하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그 사실이 유대인들에게 구실이 되었다. 하나님을 망령되게 했다는 것이 그들이 주장한 죄목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참 외아들이셨다. 어처구니없는 그 모함을 당하면서 그는 한 마디도 변명하지 않으셨다. 더구나 자신을 모함한 저들을 향해 저주의 말이나 한마디의 원망도 없었다. 왜 그리하셨을까?

(14:61) 잠잠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가로되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

(14:6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14:63)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14:64) 그 참람한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뇨 하니 저희가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14:65) 혹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우고 주먹으로 치며 가로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속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22:70) 다 가로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 말과 같이 내가 그니라

(22:71) 저희가 가로되 어찌 더 증거를 요구하리요 우리가 친히 그 입에서 들었노라 하더라

 

자신이 주장한 것이 다 옳고 하나도 거짓이 없다는 그 결백함 때문에 변명하거나 원망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까? 그랬다면 그것은 교만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장 깨끗하고 고결한 존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교만이다. 예수, 그는 죄가 없으니 어쩌면 그렇게 자신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가 한 마디 원망이나 저주도 없었던 것은 자신을 그렇게 모함한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들을 진실로 사랑하였기 때문에 그리한 것이다.

성부께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감싸면서까지 하면서 그들의 그 무섭고 두려운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용서를 구하신 것은 진실로 그들을 사랑하였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19:10)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19: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하시니

 

(23: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십자가에서의 죽음이란 인간으로서는 당하기 어려운 가장 고통스런 죽음이다. 그 죽음을 향해 가는 그 길에서도, 그리고 그 무서운 십자가 위에서도 오직 그는 자신을 십자가에 매달도록 요구한 그들을 진실로 사랑하셨기에 스스로 그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 그가 십자가 위에서의 그 사랑을 보이셨기에 우리는 어떤 순간에서도 미움 대신 사랑할 수 있는 법을 배우고 따라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참으로 초대교회의 스데반집사가 그러했다. 그는 진실로 주님의 그 사랑을 온전히 소유한 자가 되어있었다.

(6: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6:11) 사람들을 가르쳐 말시키되 이 사람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6:12)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 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6:13)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가로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6:14)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6: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스데반집사의 얼굴이 천사와 같았다고 한 것은, 곧 그가 언급한, 모세에게 명령하신 그 천사를 닮음이었다. 그 닮은 모습에는 그 천사의 사랑을 온전히 소유하였다는 의미가 함께 담겨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 천사는 곧 오실 주님이셨던 것이다.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7:52)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7:53)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7:54)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7:57)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7:58)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7: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집사가 유대인들에게 한 설교는 그들을 힐난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죽어가면서까지 그가 그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말아달라고 간청한 것은 십자가위에서 하신 주님의 그 기도와 같았다. 진정한 사랑의 소유자만이 할 수 있는 그 기도를 스데반집사가 하고 있었다.

 

한 해가 저무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아직도 내 마음 속에는 분노가 있고 미움이 남아있는지.

 

그 분노와 미움이 주님의 그 사랑으로 바꿔지게 하여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여야 한다. 이것은 우리를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서정에 놓여 있는 택함을 입은 백성들인 우리들이 감당하여야만 하는 의무요 책임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참된 길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야 할 것이다.

 

미움과 분노와 저주가 주님의 은혜로 변화되어 사랑의 큰 역사가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