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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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 10.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성화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며 이는 천국의 백성으로 준비되어져 가는 과정이다.
주님이 가르치신 것이 겸손이요 순종이다.
(마 11:29, 개역)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눅 2:51, 개역)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눅 8:25, 개역)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저희가 두려워하고 기이히 여겨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고 하더라』
(요 3:36, 개역)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겸손과 순종은 성화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사도바울이 위의 것에 복종하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롬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롬 13: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롬 13:3)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롬 13:4)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롬 13:5)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롬 13:6)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롬 13: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공권력자들에게 복종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복종을 이루지 못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한다. 순종하지 못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그들보다 낫다는 것을 드러냄이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는 가르침은 성화를 이루어야할 자가 반드시 이루어내어야 할 과업이다.
(빌 2:3, 개역)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범죄 한 아담은 스스로를 하나님과 겨루는 자리에 서려고 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 된 자리를 잃었다. 이 땅의 죄인 된 자들의 모습이 이러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남보다 우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어떤 일이 벌어지면 하나같이 모두 언성을 높여 비난한다.
꾸짖는 것은 꾸짖음을 당하는 자보다 나은 위치에 있다는 표현이다. 이런 자들은 결코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길 수 없는 자들이다. 그렇다면 그런 자들은 분명히 그 순간에는 성화를 이루는 자리에 서지 못하였으며, 여전히 그런 자리에 있는 한 그들에게는 구원이 허락될 수 없으며, 천국의 백성 자리에 나아갈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고로 성화의 핵심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다.
주님께서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하신 말씀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는 한 영혼이 구원을 얻는 것이 천하보다 귀하고 소중하다는 것인데, 이는 하나님이신 주님의 말씀이므로 온 우주의 주인 되시는 자의 선언과도 같다. 따라서 이 말씀은 참으로 진실한 진리이다. 내가 이처럼 귀하니 무릇 택하심을 입은 자라면 모두가 하나님 앞에 이같이 귀하게 여김을 받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같이 귀하게 여기는 자를 이 땅의 누가 감히 하찮게 여길 수 있을까!
(마 16:26, 개역)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막 8:36, 개역)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눅 9:25, 개역)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바로 구원받은 영혼이 이같이 귀함을 몸소 보여주신 행위이신 것이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 얻을 자들로 세우셨다. 성부 하나님의 그 택하심을 입은 자들. 그들을 죄에서 구속하신 주님이 그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내가 이들을 이같이 소중한 자로 여기니 온 천하가 이들보다 귀할 것인가!”라는 것을 선언하신 순간인 것이다. 그 순간에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성자 하나님의 그 무릎 꿇으심을 통해 보여주신 것이다.
이 원리를 깨달은 자라면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하신 주님의 그 명령을 온전히 수납하여 그 명령을 온전히 따를 수 있게 될 것이다.
(막 12:31, 개역)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모세가 그 백성들에게 가르친 “네 이웃을 압제하지 말며, 늑탈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라는 것은 바로 이 원리를 깨달은 자만이 온전히 행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때 이스라엘은 이 원리의 깨달음이 온전하지 못하였기에 모세가 명한 그 일 하나하나를 지키는 일에 급급했다. 결국 그들은 율법에 매인 자들이 되었고 율법의 종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모세의 그 율법은 그들에게 무거운 멍에가 되었다.
(레 19:13, 개역) 『너는 네 이웃을 압제하지 말며 늑탈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레 19:16, 개역) 『너는 네 백성 중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며 네 이웃을 대적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주님은 그런 무거운 멍에를 진 자들을 부르셨다. 그리고 그들을 자유케 하실 것이라고.
(마 11:28, 개역)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9, 개역)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 11:30, 개역)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주님의 그 가르침을 통해 구원받은 백성은 이제 더 이상 율법의 노예일 수 없고 율법에서 자유로운 자유자가 되었다. 바울이 또한 이 원리를 온전히 깨달았기에 믿음의 백성들에게 이와 같이 가르쳤다.
(롬 13: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갈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은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존경이라는 것도 나보다 낫다고 여기는 자에 대한 일종의 사랑의 표현인 것이며, 원망은 그와는 반대이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다.
이는 그들이 모세와 아론을 존경하며 사랑하지 않았음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 그들이 과연 구원을 얻을 수 있었을까? 하나님이 그들 모두를 그 땅에 장사 지내신 것은 그들에게 구원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을 드러내신 것이었다.
(민 14:2, 개역)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민 14:22)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민 14:23)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민 14:24)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민 14:25)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거하나니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로 하여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민 14:26)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민 14:27)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민 14: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민 14:29)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 세 이상으로 게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민 14: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민 14:31)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민 14:32) 너희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민 14:33)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다. 성경의 가르침은 곧 하나님의 우리에게 명하신 명령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은 믿는 자라면 거역할 수 있는 것일 수가 없다. 우리의 형편이나 우리의 기분에 따라 적당히 변형하여 수용하여도 되는 일이 아니다. 반드시 그 말씀 그대로 우리의 처지와 형편과는 상관없이 온전히 행하여야만 한다. 명령은 그런 것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수 있는 자는 오직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하나님과 이웃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런 일들이 이루어져가는 것이 성화다. 성화 과정이 없으면 구원은 결코 이루어지지 못한다.
믿음의 백성들인 성도들은 이런 깨달음을 얻어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로써 우리의 온전한 구원이 이루어질 때 하나님은 진정으로 영광을 얻으시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