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
2018. 5. 27.
“하나님의 은혜”
- 아담, 하와 그리고 뱀
아담이 하나님과 맺은 행위언약은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인해 깨어졌다. 이것은 아담이 하나님 앞에 불순종의 죄를 지은 것이다. 이 불순종은 아담의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이 불신앙은 아담으로 하여금 교만에 이르게 했다. 이 교만이 욕심을 잉태했고 그 욕심은 죄를 낳았다. 아담의 그 죄는 그의 허리에 있었던 모든 인류의 씨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쳐 모든 인류는 죄 중에서 태어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시 51:5, 개역)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아담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또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셔서 우리를 살리려고 하신다. 이 하나님의 심정을 성경 기록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선악과를 따먹고 그것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위반한 범죄라는 것을 깨달아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아담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이렇게 물으셨다.
(창 3:11)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이 물음은 하나님께서 아담이 범죄한 것을 몰라서 물어보시는 것이 아니다. 죄를 범한 아담에게 그 죄지은 것에 대한 용서의 기회, 즉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이 때 아담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내어 보이고 용서를 구했다면 인류의 역사는 전혀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 앞에 회개의 모습을 보여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대신 모든 잘못을 남에게 돌려 자신의 죄 없음을 주장했다.
아담처럼 지금 이 땅의 모든 자들은 자신이 죄가 없는 의로운 자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아담은 자신의 아내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책임이요, 잘못이라고 항변했다. “하나님이 주셔서“라는 것은 하나님이 잘못하신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여자를 주시지 아니했다면 내가 선악과를 먹지 아니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창 3:12)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과연 아담의 말대로 하나님이 주신 그 여자가 없었다면 그는 선악과를 먹지 않았을까?
계시록에 천년 왕국에 대해 언급되고 있다. 그 천 년 동안은 사단이 무저갱에 갇혀 아무도 유혹하지 못하는 시대가 열린다.
(계 20:2, 개역)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계 20:3, 개역)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그런데 이 천 년이 지나서 사단이 미혹할 때 모인 자의 수가 바다 모래와 같이 많았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수의 무리들은 이미 그 천 년 동안 스스로 욕심을 잉태한 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죄를 범하는 것이 외부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아담이 범죄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그 아내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에게서 잉태한 그 욕심에서 시작된 것이란 말이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죄를 범하는 모든 이유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죄에 대한 책임은 곧 내게 있는 것이다.
(계 20:7) 천 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계 20: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하나님이 범죄한 하와에게도 물으셨다. 이 역시 아담과 마찬가지로 하와를 살리시기 위해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신 것이다. 이 순간 하와가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회개를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하와 역시 그 기회를 날려버렸다. 아담과 하와 모두 회개할 기회를 놓친 것은 우리 모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모두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어찌 그리 어리석을까!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그러나 우리가 그 자리에 선다면 아담이나 하와와 다를 수 있을까?
하와 역시 아담과 마찬가지로 범죄함에 대한 모든 책임을 남의 탓으로 돌린다. 뱀이 그랬다는 것은 그 뱀을 만드신 이가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의 책임이라는 뜻도 담겨있다.
(창 3: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죄를 범한,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아담과 하와를 살리시기 위해 회개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의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아담과 하와를 그래도 하나님은 버리지 못하셨다. 그래서 또 다른 길을 여셨다. 그들을 낙원에서 내어보내셔서 종신토록 땅을 파고, 크게 더하여진 잉태의 고통을 통해 수고하여 자식을 낳는 그런 세월을 보내게 하셨다. 이 일은 죽는 날까지 이어지게 하셨다.
(창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이것은 얼핏 보기에는 하나님의 형벌 같으나 결코 형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처사였다. 처음 정하신 언약에서는 그들이 범죄하였으니 당장 죽어야할 처지에 있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바로 죽음을 내리지 아니하시고 그 땅에서 사는 날을 허락하신 것이다.
이렇게 하심은 그들이 그 땅을 갈고 그 소산을 먹으면서 하나님 앞에 회개할 기회를 다시 허락받은 것이다.
아담은 그 땅을 갈면서 자신의 죄를 돌아보았을 것이다. 흙으로 지음을 입은 자신을 생각했을 것이다. 흙으로 지음을 받은 자신이니 얼마나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 그럼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셔서 참으로 귀한 자의 자리에 두셨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모든 것을 다스리는 왕같은 자리에 두셨는데, 나는 어찌하여 하나님을 신앙하지 아니하고 교만한 자의 자리에 올랐던가! 그런 깨달음을 아담은 얻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삶을 살아내었을 것이다. 그러했음으로 그 자식,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그 믿음을 배운 것이다.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죄에 대한 인식이 있음을 의미한다. 제사는 그 죄를 용서해달라고 청원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창 4: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창 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그냥 그의 크신 능력으로 한 순간에 요술방망이 휘두르듯 그렇게 순식간에 내신 것이 아니었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을 흙으로 지으셨다고 했다. 지으심은 하나님이 수고하여 만드신 것을 의미한다.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기에 사람을 정성 없이 만드실 수 없다. 당신의 온갖 정성을 다 들여 만드신 것이다. 그 과정에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의 온 몸에 스며들게 그렇게 수고하여 지으셨을 것이다.
하와는 산고의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이 사람 지으신 심정을 깨달아 갔을 것이다. 그 지으심이 얼마나 수고로우셨으며 얼마나 위대한 사랑이 녹아 들어갔는지를 분명하게 깨달아 갔을 것이다. 성경의 이 기록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그 사랑을 깨달아 알라는 외침인 것이다.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다윗은 아담이 깨달은 이 마음을 온전히 소유한 자의 대표적 예이다. 그는 평생에 하나님 앞에 보잘 것 없는 목동이었던 자신을 택하셔서 그 땅에 왕이 되게 하신 그것을 늘 감사하며 결코 교만한 자의 자리에 서지 아니하려고 노력한 자였다. 그는 평생에 어린 날 자신이 목동으로 지낼 때 사용했던 지팡이와 그 옷을 장에 보관하고 그것을 들여다보았다고 한다. 그것을 보면서 항상 겸손하게 하나님께 감사들 드리는 그런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물론 그런 다윗도 한 순간 교만한 자의 자리에 서기도 했다. 그 순간에는 그 다윗에게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없었다. 그것이 성경에 기록되어진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항상 성령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도록 깨어 경성하라는 것을 알려주심이다.
주님이 열 처녀의 비유를 우리에게 주신 것도 바로 이런 마음을 우리로 하여금 가지게 하려 하심인 것이었다. 한 순간 졸면 우리가 잡아야할 그 기회가 지나가 버린다.
(마 25: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마 25:2)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마 25: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마 25: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마 25: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마 25:6) 밤 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마 25: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 새
(마 25: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마 25: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마 25:10)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마 25: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마 25:12)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마 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그런데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와는 다르게 뱀에게는 이 회개의 기회를 주지 않으시고 바로 형벌을 선고 하셨다. 왜 그리 공평하지 않은 처사를 행하셨을까?
(창 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하나님은 천사를 당신이 부릴 종들로 만드신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회개하고 구원얻을 기회를 허락하지 않으셨다.
반면 사람은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어 당신을 기쁘시게 할 자로 지으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 칭함을 받는 것이다.
아이들이 재롱을 부리는 것을 보면서 그 부모들이 기쁨을 얻듯이 하나님은 사람인 우리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런 일들을 하는 것을 통해 기쁨을 얻기 원하신 것이다. 이런 사실들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분명히 말씀하셨다. 보시기에 좋았다고.
(창 1:21)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종류대 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23)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창 1:24)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창 1: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창 1: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 1: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사람을 만드신 날에는 보시기에 좋았다가 아니라 심히 좋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그 만드신 자들을 통해 받으실 그 영광이 그렇게 좋았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를 지으신 그 뜻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드러내어 보이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이유와 그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났으니 그것이 우리가 죄인인 이유이다.
그런 죄인인 아담을 살리시려고 기회를 주신 하나님이 또한 우리를 살리시려고 기회를 주셨다.
주님이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그 첫 순간에 하신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라 명하신 것이다.
(마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이는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라는 것이다. 죄인임을 고백함 없이는 회개는 불가능하며 우리의 구원도 불가하다.
이렇게 주님이 외치신 것은 우리를 살리시려는 하나님이 또 다시 우리에게 살 기회를 주신 것이다. 이 후에 주님이 열 처녀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도 우리로 하여금 영원히 살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잡으라는 간절한 외치심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주의 영광을 드러낼 그 귀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니 우리의 선택사양이 아니다.
하나님의 큰 영광을 이룰 자들이여! 이 말씀을 기쁘게 받아 하나님의 큰 영광을 이루는 역사를 이룰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