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 그리고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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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 그리고 마리아”
한 여인은 이 땅에 죄가 들어오는 통로의 역할을 하는 자리에 섰고, 또 한 여인은 이 땅에 생명이 도래하는 통로의 자리에 섰다. 한 여인은 이 땅에 죽음을 잉태케 했지만 또 한 여인은 이 땅에 생명을 잉태케 했다.
예수의 모친 마리아는 다윗 가문의 출신이다. 이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라는 의미를 갖게 해준다. 그녀가 하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찾아오신 자에 해당하는 즉, 택하심을 입은 자였던 것이다.
택하심을 입은 믿음의 백성으로서의 도리는 그 택하심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하며, 이 감사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으로 나아가야 하고, 이 순종에 기반하여 그는 기꺼이 하나님이 스스로 영광을 드러내려 하시는 그 일을 돕는 자의 자리에 서야 한다.
과연 마리아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그 일을 위해 자신의 태를 기꺼이 내어놓다. 이 일은 하나님이 영광을 드러내려 하시는 그 일에 돕는 자로서의 그 자라에 선 것이다. 처녀로서 이 일을 감당한다는 것이 아무에게나 가능할까. 그 당시에는 처녀가 잉태하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목숨을 건 순종을 하나님께 드림이었다.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눅 1: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눅 1: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눅 1:28)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눅 1: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눅 1:30)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눅 1:31)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눅 1:32)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눅 1: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눅 1: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눅 1: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눅 1:36)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눅 1: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눅 1:38)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눅 1:39)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중에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눅 1:40)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마리아는 자신의 태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원했다. 진실로 자신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드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돕는 자의 자리에 서기를 원하였다. 하와와는 달리 그녀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충만하였다.
(눅 1:46)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눅 1: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눅 1:48)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눅 1:49)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눅 1: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눅 1: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눅 1: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눅 1: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눅 1:54)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궁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눅 1: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아들 예수를 낳고 나서 마리아는 그와 늘 동행했다. 이는 메시야의 사역을 돕는 일이었다. 하와가 아담을 돕는 배필로 지음을 입음 같이 마리아는 예수의 사역을 돕는 자의 자리에 선 것이다.
(눅 2:21)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러라
(눅 2:22)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눅 2: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눅 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눅 2:26)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눅 2: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눅 2: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눅 2: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눅 2: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눅 2: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눅 2: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눅 2:33)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
(눅 2:34)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눅 2: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눅 2: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눅 2:37) 과부 된 지 팔십사 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눅 2: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
(눅 2:39) 주의 율법을 좇아 모든 일을 필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눅 2: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눅 2:41)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눅 2:42) 예수께서 열두 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눅 2:43)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눅 2:44)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눅 2:45)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눅 2: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눅 2: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눅 2:48)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눅 2:49)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눅 2:50)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눅 2:51)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마리아는 가나의 결혼식에서 예수님과 같이 있었다. 마리아는 주님의 처음 표적을 나타내는 일에 온전히 돕는 자의 자리에 있었다.
(요 2:3)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요 2: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요 2:5)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요 2:6)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요 2: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요 2: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요 2: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요 2: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요 2:11)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다른 때에도 그랬으나(막 3:31) 그 순간에는 그녀 역시 육신의 한계를 넘지는 못했다. 자신의 아들인 예수가 선교사역으로 너무 과로하여 탈이 날까 염려하여 예수를 데리고 고향으로 가려는 의도로 예수가 사역하고 계시는 곳으로 찾아 왔다.
물론 이 때 많은 자들이 예수가 귀신이 들려 있다고 했으니 마리아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아들이 너무 과로하여 있다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마리아를 위시한 그 형제들이 예수를 붙들어 다시 나사렛에 억지로 데려가고자 했던 것이다. 실로 예수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당신의 적극적인 헌신 때문에 오히려 가족 내의 긴장에 직면했던 것이다.
심지어 사랑하는 어머니 마리아조차 자신의 아들은 특별한 소명을 위해 운명지워졌다고 익히 들어온 바였음에도 불구하고(눅 1:26-38), 그녀의 자녀들과 함께 그 순간에는 예수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뜻을 먼저 앞세웠다. 그들은 예수의 정신적 상태를 의심했고 그를 집으로 데려가려 했다. 심지어 예수의 형제들은 그를 비웃었다(요7:2-5).
이것은 분명 예수의 실체를 철저히 오해한 가족들의 관심의 수준을 대변해 줄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메시야이신 예수께 대한 그들의 불신앙을 반증해 준다(요 7:5). 그 순간의 마리아는 분명히 주님의 사역에 방해가 되는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다. 우리가 온전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 마리아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막 3:31) 때에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막 3:32)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막 3: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막 3:34) 둘러 앉은 자들을 둘러 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막 3: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이런 그녀가 이제 주님의 그 사역을 온전히 돕는 자의 자리에 서게 된다. 자신의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완전히 자신의 아들을 내어놓는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그 길에 함께 동행한다. 이는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재물로 내어놓음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 일에 돕는 자의 자리에 선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가까이 있었다.
(요 19: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요 19:26)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요 19: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승천 후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였다. 비록 자신의 육신의 아들이었지만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그 사역을 끝까지 돕는 자의 자리에서 이탈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 모임에서 결코 앞선 자의 자리에 서 있지 않았다. 주님이 정하신 대로 베드로가 그들의 지도자의 자리에 있었다.
(행 1: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행 1:13)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행 1:14)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행 1:15)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 가운데 일어서서 가로되
하와는 하나님이 아담을 돕도록 하는 자의 자리에 세워준 자였다. 그러나 그 하와는 자신의 자리에서 이탈하여 자신의 뜻대로 아담을 움직여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길로 가게 했다. 그것은 죽음을 향해 가는 길이었다. 하나님을 가장 슬프게 만든 자, 그는 하와였다.
그러나 마리아, 그녀는 하나님을 온전히 기쁘시게 한 자였다.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의 자리에 세우시려고 바로 이 마리아를 보여주신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