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이 가난한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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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이 가난한 자는”
(마 5:3, 개역)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주님이 하신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
어찌 가나한 자가 복이 있다 할 수 있을까? 세상의 이치로는 가난한 자는 복이 없는 자라고 여김을 받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찌하여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하는가?
주님이 말씀하신 가난한 심령을 가진 자란 한 마디로 자신이 온전한 죄인이라는 고백을 한 그 심령을 가진 자를 말한다. 자신이 죄인인고로 그는 자신의 구원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서 자신이 의로운 자라고 여기는 자는 스스로 자신을 구원 할 수 있다고 여길 것이다. “내가 이처럼 의로운데 과연 하나님이 나를 천국 백성으로 불러주시지 않는다면 누가 천국에 갈 수 있으랴!”하고 장담하는 자는 마음이 부유한 자에 해당한다.
세상 사람들 중에는 이 땅에서 선한 일을 많이 하면 결국 소위 말하는 천당이라는 곳에 갈 것이라고 여기는 자들이 많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는 그곳, 천국은 이런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주님은 분명히 당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이같이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죄인이라 고백하는 그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선언하고 계신다.
(막 2:17, 개역)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따라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는 주님의 부르심을 입지 못하며 이런 자들은 결국 천국의 백성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에게는 신앙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신앙이란 죄인들이 자신을 죄에서 구해주실 수 있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있을 수 없다는 고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부류의 사람은 교회 구성원의 자격이 있을 수 없고, 교회의 구성원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장차 천국의 백성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하니,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자는 결단코 구원을 얻지 못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구원 얻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하고, 기초되는 것이 바로 죄에 대한 인식과 그것으로부터 결과하는 죄인 의식을 갖는 것이다.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임을 드러내는 것이 되며, 이런 자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복이 주어지고, 그 복의 결과로 천국의 소유권을 얻게 된다.
이 사실에 대해 사도바울은 분명한 인식을 하였기에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표현하고 있다.
(딤전 1:15, 개역)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또한 죄인된 자신을 살려낼 수 있는 일을 결코 자신이 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롬 7:24, 개역)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오직 이 일은 주님밖에는 하실 수 있는 이가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마 9:13, 개역)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일, 그것이 회개이다. 다시 말해 회개한다는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분명히 고백하는 것이며, 죄인인 자신을 구원하여 살리실 자는 예수밖에 없음을 시인하는 일이다.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이 일을 기뻐하신다는 것은 죄인임을 고백함을 통해 구원을 얻게 되고 결국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이기에 당연히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주님이 진실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일인 것이다. 이 사실을 사도바울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인식하였음으로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정도에 머문 것이 아니라 죄인 중에 괴수라고 표현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갔던 것이다.
(눅 15:7,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눅 15:10,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이런 깨달음을 얻는 것이 참으로 소중함을 주님께서는 한 세리의 모습을 통해 말씀하셨다.
(눅 18:13, 개역)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주님의 일군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바로 이 죄인의식을 갖느냐에 있다.
베드로가 주님의 제자로 택함을 입었지만 그가 진정으로 죄인의식에 대한 깨달음이 있기까지는 그는 주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지 못했다. 그저 주님을 따라다니는 자일뿐이었다. 드디어 그가 참된 죄인의식을 갖게 되었을 때 주님은 그에게 당신의 자리를 내어주셨다. 내 양을 먹이라고.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베드로가 주님 앞에서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스도라 함은 메시아라는 고백이니 이는 스스로가 죄인이라는 고백을 함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의 이 신앙고백에 대해 주님은 성부 하나님이 알게 하셔서 고백케 하신 것 일뿐 베드로의 깨달음이라 보지 않으셨다.
다시 말해 이 신앙고백 속에는 아직 베드로가 스스로에 대해 진정으로 죄인임을 인식한 고백이 없다고 보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지금 베드로를 ‘베드로’라 부르지 아니하시고 세상에 속해 있었을 때의 이름인 ‘시몬’으로 부르고 계신 것이다.